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 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2/2)
1-5중 필자의 주관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이렇게 묻는 말을 써 놓은 글에서 생각해 봐야 할 말이 필자와 주관 이다.물론 이 정도의 말은 고등학생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말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날이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 이런 말이 들어가면 그 글은 저절로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또 우리말이 있으면 마땅히 우리말로 써야 하는 것이다. 위의 글에서 필자와 주관을 모두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다시 써본다.
1-5중 글쓴이의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이렇게 쓰면 한결 쉬운 글로 읽게 된다. 만약 이렇게 썼더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잘못 쓰는 사람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다음 문제가 이렇다.
a에 표출된 화자의 심리를 지적한 것은?
1. 안도 2. 만족 3. 모멸 4. 자만 5. 환희
이렇게 물어 놓은 말에서도 표출 화자와 같은 말은 괜히 어렵게 쓴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 아는 말이지만 심리 지적 따위 한자말도 쉬운 우리말로 쓰면 훨씬 더 이 묻는 말의 뜻을 알기 쉽다. 그래서 내가 만일에 이 문제를 낸다면 다음과 같이 쓸 것이다.
a에 나타나 말하는 이의 마음을 바르게 가리킨 것은?
이렇게 내가 쉽게 써 놓은 말과 앞에 있는 원문이, 그 내용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르지 않다면 우리말을 안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혹시 내가 쓴 글이 도리어 원문보다 더 머리에 얼른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예삿일이 아니다. 마치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자라난 아이가 돌아와서 우리말은 어렵고 외국말은 쉽다고 하듯이 말이다. 외국에서 자라났을 경우에는 그렇게 되기가 예사이고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곳이 어느 나라인가? 제 나라에서 제 나라말을 배웠다는 아이들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고, 잘못된 공부를 하고 있는가? 이런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시험문제만은 제발 깨끗한 우리말로 썼으면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말부터 어렵게 되어 있고 보니, 마치 될 수 있는대로 어려운 한자말을 묻는 말에다 써서 이런 한자말을 아는가 모르는가를 알아 보는 시험문제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에서 들어 놓은 다섯 개 한자말 가운데서 한 개를 가려내는 것은 아주 이 다섯 개 한자말의 뜻을 묻는 문제가 되어 있다. 이와같이 해서 대학입시의 언어 문제는 거의 모두가 어려운 한자말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꼴로 되어 버렸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글을 읽자면 어려운 한자말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험문제가 거의 모두 이렇게 되어서 어찌 하겠는가? 옛날 글을 읽기 위해서 한자말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나날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을 옛날 사람들처럼 남의 글자말로만 써서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 국어 교육은 우리말을 죽이는 교육이 되었다. 사실은 입시문제에서 과목을 적는데 언어 라고 하고, 더러는 국어 라고 한 것부터 잘못되었다. 왜 말이 아니고 언어 이고, 우리말 이 아니고 국어 인가? 국어와 우리 말 이어떻게 다른가? 학교에서 학생들이 우리 말 공부를 하지 못하고 국어 공부를 하는 이상, 우리말은 바로 그 국어 교육으로 아주 무지막지하게 짓밟혀 죽어갈 것이고, 죽지않고 간신히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상처투성이 괴상한 병신말로 되어 버릴 것이다. 이번에는 대학입시 본고사 문제에서 한 가지만 살펴 보겠다. 역시 가장 쉬운 말로 된 보기글을 들기로 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이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이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단 한 낱말도 꺼림찍한 한자말을 쓰지 않아 참으로 깨끗한 우리말로 되었다. 글에서만 쓰는 한자말을 쓰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우리말로 된 한자말조차 안 쓰고 토박이 말을 살려 쓰기도 했다. 산 이라고 하지 않고 뫼 라고 한 말이 그렇다. 이 시를 발표한 1932년에는 벌써 뫼 란 말이 다 죽어 있었던 것인데. 이 시인은 이 말을 묻혀 있던 땅에서 파내어 숨을 불어넣어서 이렇게 살려 놓았던 것이다. 이 시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매김자토씨 관형격조사 의 의 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이 시의 말법이 순전한 우리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정지용 시인의 시 가운데서도 이 시가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그런데 이 시를, 다른 다섯 가지 글과 함께 내어 보인 다음에 문제를 내어 놓았는데. 이 시만을 두고 물어 놓은 문제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다음과 같다.
위의 글들 중에서 귀향 을 주제로 한 것이 있다. 귀향 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공간적 의미와 시간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시간적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 어구를 글 다 에서 찾아 쓰시오.
이렇게 물어 놓은 글뜻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주 잔뜩 긴장해서 거듭 읽어야 한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말을 왜 이렇게 썼을까? 내가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쓰겠다.
위의 글 중에는 고향에 돌아감 을 주제로 한 글이 있다. 고향에 돌아가 찾으려고 하는 곳의 뜻과 시간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시간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말귀절을 글 다 에서 찾아 쓰시오.
우리 글에서 공간적 시간적 이렇게 무슨 -적 하는 말을 아주 많이 쓰는데, 이 말은 우리 글을 어설픈 외국글체로 만드는 데 가장 큰 노릇을 하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고 아이고 글에서뿐 아니라 말에서까지 마구잡이로 쓰고 있지만, 이 말만 들어가면 말이 그만 이상하게 굳어진 것으로 되고 글은 어설프고 사납게 되어 듣는 사람이고 읽는 사람을 흔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험문제에서 묻거나 지시하는 말부터 이런 괴상한 말이 들어 있는 글체로 되어 있으니 학생들은 죽자사자 이런 말을 쓰고 이런 말이 들어 있는 글의 질서에 자신을 길들이려고 한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다음 또 하나 문제는 이러하다.
글 다 에서 시인의 마음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연이 첫째 연과 끝연이라고 보자 이 두 연이 넌지시 드러내는 화자의 모습을 비유하는 표현을 글 바 의 한시에서 찾아 한자로 쓰시오.
이 문제는 앞에서 들어 놓은 시 고향 을 제대로 읽어서 잘 알고 있는가를 묻는다기보다는 바 의 한문시와 한자말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한자를 쓸 수 있는가를 알아 보는 문제로 되어 있다. 우리 시 작품을 들어 놓은 문제조차 이렇게 한자말을 알고 있는 능력을 재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밖의 문제야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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