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오월이라 단오날에
어제 오후 저자에 갔던 아이가 창포 한 묶음을 사들고 왔다. 우리의 모든 세시 풍속이 날로 잊혀져 가는 요즘 세월에 그나마 단오절을 기억해서 창포를 베어다 팔아 주는 아낙네가 있어 주었던가 싶으니, 우리 겨레의 멋을 말없이 이어 주는 숨은 정성이 아직도 우리 둘레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시켜 창포를 삶아 그 물을 뜰 모퉁이 작은 상추밭에 두어 밤이슬을 맞히게 하고, 목욕탕에 물을 넣도록 일렀다. 이슬 맞힌 창포물을 섞어 머리를 감고, 또 상추잎에 내린 이슬 방울을 받아 분을 찍어 아이에게도 발리고 나도 화장을 했다. 가르마엔 분실을 넣고, 창포 뿌리엔 주사를 발라 곤지를 찍었다. 올해 여든이신 어머님께서도 화장을 시켜 드렸더니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띄셨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머리에서 은은히 풍겨나는 창포 향기를 맡으며, 나는 옛날로 돌아간 듯 가슴이 느긋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께선 해마다 단오절이 오면 이렇게 창포 목욕을 시켜 주셨고, 상추 이슬을 접시에 받아 거기 박가분을 개어 얼굴에 발라 주셨기 때문에 나도 어머님과 아이에게 그대로 해 주어서 옛날 여성들의 멋있었던 정조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화장품이 발달되지 못했던 옛날엔 마른 버짐이 허옇게 피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단오날 상추 이슬에 분을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살결도 고와진다면서, 이른 새벽 상추밭에 이슬을 받던 그 시절, 어머니들이 자기네 아이들 미용에 얼마나 관심 있었는지 그 심정이 다사롭게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크림을 찍어 발라 준다든가 튜브에 약을 짜 바르는 것에 비해 얼마나 멋있고도 지성스러운 모정이 어려 있는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앵두를 사다가 화채를 만들고 쑥계피떡을 사다 가족들이 단오맛을 내어 보자고 했다. 내가 어리던 시절엔 명절 중에서도 단오절이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났는지 모른다. 여성들은 창포 목욕, 분가르마에 붉은 주사 곤지를 찍고, 낭자머리나 다홍빛 댕기 끝에는 천궁잎과 창포 뿌리를 꽂고 달아서 솜씨껏 모양을 내고는, 그네가 매어져 있는 마을 앞 버들 숲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버들 숲 속에 삼단 같은 머리채를 휘날리며 그네를 뛰는 아가씨들의 풍성한 여성미의 제전에 맞서, 남자들은 씨름판으로 싱싱한 남성의 멋을 과시하던 단오절! 정초 설날의 줄다리기.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며, 추석절의 강강수월래가 멋있지 않는 바 아니었지만, 신록이 구름같이 피어나는 5월의 푸르름 속에 청춘을 휘날리는 그네뛰기와 씨름판은 바로 인생의 환희가 아닐 수 없으며, 그 날은 규중 깊은 곳에 숨어 살던 아가씨들도 쓰개치마를 벗어 던지고 모두 나와서 참례하는 놀이였고 보니 모든 구경꾼 속에는 신랑감을 물색하기에 눈이 바쁜 이들도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항라 깨끼 저고리 속을 괴비쳐 풍기는 아가씨들의 은은한 자태들은 전나체에 수영복만 걸친 시속 미인 대회보다 얼마나 격조 높은 잔치였는지 모른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서구식 영향을 받게 되어, 요즘 권투니 레슬링이니 하는 주먹다짐에 목숨을 걸고 날뛰는 악착 같은 경기나, 우승컵 따기에 악을 빡빡 쓰는 쟁탈전과는 달리 마을마다 골짝마다 끼리끼리 명절을 즐겨 우쭐거리던 5월이라 단오절! 갈수록 숨차기만 한 과학 문명의 틈바구니 속에 신경질적인 이 세월에 진정 유유한 민족 특유의 멋을 하루쯤이라도 살려 이 푸른 계절을 숨쉴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의 정서 순화는 물론, 주부들의 마음도 얼마나 넉넉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5월이라 단오날!
가정에도 학교에도, 전차, 버스, 사무실 안에도 창포 향기 그윽한 오늘이 되어질 수 있기를 혼자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한 정서가 오늘날의 각박한 숨결에 한 방울 기름의 역할이 될 수 있지나 않을까 싶은 목마름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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