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4/4)
- 의문 있어도 확인까지 기다렸어야
이것은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코스 길이가 문제가 됐을 때, 바로 한국최고기록을 세운 김완기 선수가 한 말을 동아일보에서 기사로 실으면서 낸 제목이다. 이것도 기다렸어야 가 아니고 기다렸더라면 이라 하든지, 아니면 기다려야 했다 고 허야 우리말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기사를 읽어 보니 바로 김선수가 그렇게 말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코스 길이에 의혹이 있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 그치고 최종확인을 기다렸어야 하는데 일부 언론에서...
신문기사란, 남이 말한 것조차 흔히 기자의 글 버릇대로 고쳐서 나오는 글이 되어 있어서 김 선수가 이런 말투로 애기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실제로 또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도 잘못된 말법으로 쓴 글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글만 읽어 왔으니 입으로 하는 말까지 오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갔어야 했어야 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갔더라면 했더라면 하든지 가야했다 해야 되었다 고 써야 우리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그래도 나는 이유를 단다.
이런 말도 순조롭게 이해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 를 달았다는 것일까? 그 앞에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했다고 했으니, 일을 그만 두고 무슨 핑계를 대서 어디로 빠져 나가려고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말은 그래도 나는 핑계를 대고 어디로 놀러 가려고 했다 고 써야 할 것이다. 이유 란 말은 까닭 이나 핑계 로 쓰는 것이 좋다.
-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을 잊기 쉽다.
여기 봉사 란 말이 나오는데,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봉사란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두고 하게 되는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봉사한다고 할 수 없다. 이 글에서 봉사하시는 이란 말 대신에 애쓰시는 이란 쉬운 말을 쓰면 아주 알맞고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다. 무엇이든지 잘 써 보려고, 유식한 글을 써 보려고 하면 이런 탈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서 와서 잘 알고 있는 말을 쓰면 틀림이 없고 좋은 글이 되는데, 그런 쉬운 말 쉬운 글은 안 쓰고 어려운 말과 글을 쓰려고 하니 잘못된다. 머리로 글을 만들면 저절로 이런 꼴이 되고 만다.
-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이 글월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말이 있다. 항쟁하듯 이란 말인데, 정말 어머니가 일하시는 것을 항쟁하듯 한다고 보았을까? 이런 경우에도 보통 우리라 말하는 쉬운 말로 썼으면 좋겠다.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고 쓰지 말고 땀 흘려 일하신다 든지, 뭐 이렇게 말이다.
- 그러나 엄마, 미래를 기다려요.
여기 나온 미래 란 말, 참 딱한 말이다. 왜 입으로 하는 우리말을 쓸 줄 모르고 유식병에 걸린 어른들의 글말을 따라 쓸까? 이럴 때 실제로 어머니 앞에서 말을 한다고 해 보라. 어떤 말이 나오겠는가? 아마 틀림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먼 훗날을 기다려요. 그리고 미래 란 말은 앞날 이라고 해도 된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미래 라는 말은 거의 모두 앞날 이란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어느 신문, 어느 잡비에서도 앞날 이란 우리말을 쓴 글을 보지 못했다. 모조리 미래 라고 쓴다. 이래서 우리 어른들은 모두 한자말에 중독이 되고,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는 무더기 정신병(집단정신병)에 결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니 한문글자를 써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렇게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외국숭배사상이다. 제것을 멸시하고 남의 것만 쳐다보는 이 더러운 마음가짐은, 일제시대에는 왜놈들한테 붙고 그 뒤로는 미국에 매달리고 서양만 쳐다보면서 서양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들어 모시는 판이 된 것이다. 말 하나 바로잡는 것이 단지 말버릇 하나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우리 겨레의 마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어머니 란 글은 어느 학급문집에 실려 있는 글인데, 글 끝에는 놉 이란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다.
- 식사를 제공하고 날삯으로 일을 시키는 품꾼.
식사를 제공하고 이게 안 된다. 밥을 먹이고 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쓴 학생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 학생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니..
이런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방이 더러우면(농사짓는 집에서 방이 좀 어질러져 있는 것을 더럽다 고 하는 것부터 크게 잘못되어 있다.) 스스로 깨끗하게 청소할 생각은 안 하고 어머니한테 야단치다니 참 어이가 없다. 또 담배 모종을 하면서 그 일을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다음, 어머니가 일하시는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빨래 청소는 물론, 모든 것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하신다.
이런 대문에서 읽을 수 있는 희생 이라든가 항쟁하듯 하는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희생 이라고 보고, 또 어머니가 쉴새 없이일 하시는 것을 항쟁하듯 하는 것으로 본 것은, 이 학생 스스로 일을 하면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일이란 것은 귀찮고 고달프고 지긋지긋하고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피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잘못된 교육과 사회풍조에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일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며 태도이지만, 어땠든 잘못된 생각이고 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그이 어수선하고 말이 제것으로 되어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은 자기의 마음과 삶을 올바르게 가꾸어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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