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수길편)"
안수길(1911~1977)
소설가. 호는 남석. 함남 함흥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수학. 초기에는 만주에서 주로 농촌 소설을 썼고 해방 후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더듬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특히 장편 "북간도"는 10년 가까운 세월을 바쳐서 완성한 대하 소설로 4대에 걸친 겨레의 수난사를 그린 문제작이다. 수필에서도 깔끔하면서도 격조 놀은 품격을 보여 주었다.
일하는 행복
알랭이 그의 "행복론"에서, '파리의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말은, 언제 생각을 해 보아도 재치 있고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기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뒤를 이어 기다리고 있고, 직책상 그것을 처리하지 않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 하품을 하거나 적적한 느낌이 들 때는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이란 일을 하는 데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사실, 일에 열중하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에 일종의 리듬이 생겨 쾌적한 느낌을 맛볼 수 있고, 일한 자리가 생기게 되므로, 역시 일종의 정복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특정한 일을 끝마쳤을 때의 쾌감은, 일이 주는 일련의 행복감의 절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일을 싫어하는 본능 같은 것이 사람에게는 있다. 게으름이 그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 게으름의 검은 흐름은, 마치 물이 낮은 데로 한없이 흐르게 마련인 것처럼, 걷잡지 않으면 끝가는 데를 알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일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감에 영영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불행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불행한 사회요, 이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 역시 불행한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게으름의 검은 흐름에 둑을 쌓고 일에 열중해야 함은 물론, 사회나 나라를 위해서도 일하는 기풍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하물며,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이런 풍조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음에랴.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일이라고 하면 흔히 육체적인 것만을 생각하거나, 혹은 물질적 보수만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물론, 정신적 노동의 경우에도 육체적 노동의 요소가 전연 없는 것이 아니요, 또 일에는 대체로 물질적 보수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육체적 노동만이 일이라거나, 일에는 반드시 물질적 보수가 따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생이 공부로 책을 읽는 것은 학생으로서는 훌륭한 일이나 육체적 노동은 아닌 것이요, 일인 공부를 했다고 해서 학생이 보수를 받는 법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일이란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보수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어쨌든 각자가 해야 할 바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각자가 해야 할 바에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달려들어 열중하는 습관을 특히 학생들은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런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매일 일정 분량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란 처음 달라붙을 때에는 싫고 신명이 나지 않으나, 견디고 그냥 밀고 나가는 사이에 리듬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요, 리듬이 생기게 되면 비로소 행복감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로댕도 덮어놓고 일을 하지고 말했고, 도스토예프스키도 언제 영감을 기다려 일에 달라붙겠는가 하고 말했다. 스탕달도 매일 일정량의 일을 규칙적으로 했다고 스스로 써 놓고 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겨 놓은 사람들의 일하는 방법은 한결같이 우선 달라붙는 것이요, 매일 끊임없이 일정량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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