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4/4)
한 편을 더 들어 본다.
침묵 - 6월 18일 (주일)
차라리 침묵을 지키리라. 주님이 정죄하신 입술로 무엇을 말하랴. 무엇으로 민주를 외치랴. 무엇으로 나를 내세우랴. 참말로 이 입술이 죄다. 신현복의 모슨 것을 사랑할 수 있어도 이 입술만은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간디의 말씀을 곱씹기 시작했다.
소란을 소란으로 막으랴. 침묵으로 막으리라.
비폭력은 침묵에서 시작.
침묵의 유익함은 체험을 통해서만 안다.
간디는 비폭력 정신을 소중히 여겼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침묵을 사랑했다. 위대한 성인이 그 침묵을 사랑하듯 나도 이 침묵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침묵의 아름다움을 인식시켜 나갔다. 실제로 침묵은 아름다웠다. 악을 용납하는 침묵으로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곧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침묵은 비굴이 아니라 무던히 참아내는 인내였다. 침묵은 교만이 아니라겸손이었다. 침묵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나에게 이 침묵은 너무나 절절히 요구된다. 이 죄인은 이제 그만 교만과 미움을 버려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 죄인에겐 홀로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침묵은 비폭력보다 앞서 요구되는 과제가 되었다.
------------------------------------------------------------------
이 글은 첫머리에 시작한 짧은 글월들의 맺음을 -리라 고 해 놓은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잘못한 듯 입술이 죄라면서 간디의 말을 들어서 침묵을사랑한다고 했고, 그래서 침묵을 찬양하고 있는 말들이 매우 그럴듯하게 읽힌다. 주님이 정죄하신 입술 이 죄인은 이 죄인에게 따위 말들이 나오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무슨 말을 잘못한 일이 있었던가 싶은데, 그렇다면 그런일의 경과를 먼저 적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거기서 우러난 생각을 남들이 참 그렇겠구나 하고 함께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말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구나, 말을 안 하는 것이 이롭고 말이 없는 상태가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일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또 가령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고 자기만 보고 마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마음의 움직임만을 적기보다는 사실과 체험을 적어 두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고 뒷날에 참고도 된다. 느낌과 생각이 삶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 삶의 체험을 기록해 놓지 않고는 느낌과 생각이 살아날 수 없다. 또 삶의 체험을 적어 놓으면 느낌과 생각이 저절로 그 속에 나타나게도 되는 것이다. 이래서 이 침묵 이라는 글은 그만 책에서 읽은 간디의 말을 예찬하는 글처럼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침묵은 유익하다, 침묵은 아름답다는 말들은 아주 그럴듯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런 말들이 현실을 떠나 생각만으로 펼쳐지는 말이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침묵은 아름다웠다. 악을 용납하는 침묵으로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악이 우리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땅히 그 악을 바로 잡으려고 해야 할 것이고 악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행동은 빛나고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그 악이 더럽다고 피하는 침묵이 아름답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악을 피해 침묵하는 것은 제 몸만 사리는 이기심에서 나온 몸가짐이요, 비겁한 것이다. 둘레의 형편에 따라서는 침묵을 반드시 비겁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부끄럽고 괴로워해야 할 일이 되었으면 되었지 아름다운 행위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행동이 없고, 있어도 보잘 것이 없는 정도로 되어 있고 다만 책만 읽고 글만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으로 읽은 지식과 관념을 제것처럼 여겨서, 보잘 것 없는 제것과 마구 뒤섞어 놓기 때문이다. 이것은 글만 쓰는 문학인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말재주의 결과라고 할 것인데, 슬기로운 소년 현복이도 벌써 이런 길을 접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낱말 두어 가지를 지적한다. 의미하기도 이 말은 뜻하기도 라 쓰는 것이 좋겠다. 절절히 이 말은 간절히 나 절실히 로 써야 한다. 같은 한자말이면, 널리 써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이 밖에 간디의 말을 따와서 침묵의 유익함은 체험을 통해서만 안다 고 한 것은, 어느 책에 나온 것이겠지만 침묵이 유익함은 체험으로만 안다 고 하든지, 말없음이 이롭다는 것은 몸소 겪어야만 안다 고 써야 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