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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 2 - 가치 있는 글은 어디서 오는가 (1/2)
먹는 이야기를 쓴 글
다음은 여중 3학년 학생이 쓴 밤을 먹은 이야기다. 여러분을 무엇을 먹은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는지, 이런 글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밤
어제 엄마께서 경동시장에 가셔서 밤을 사 오셨다. 갈색의 윤기가 나는 알밤이었다. 동생들은 밤을 사 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그 밤이 싫었다. 옛날에는 밤을 무척 좋아했지만 작년부터 밤을 싫어한다. 이유인즉, 작년에 할머니께서 주셨다며 엄마께서 밤을 한 봉지 가져 오셨다. 우린 그 밤을 난로 위에 얹어놓고 밤이 익기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있으니까 밤 껍질이 갈라지면서 하얀 색의 밤살이 드러났다. 우린 서로 먹겠다며 서투른 솜씨로 밤을 까고 조그마한 밤알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껍질도 다 까지 않고 그냥 입을 통과,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입속에서 쫀든쪽든한 것이 톡 터지면서 단물이 흘렀다. 나는 그냥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씹어대며 입속으로 밤을 연신 집어넣었다. 근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뱉어보니 까만색의 밤벌레가 몸이 어진 채로 내 입속에서 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생들은 신이 나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웃으시며 물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때 물을 무척이나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종일 살다시피 했다.
나는 그후로 밤을 싫어한다.
그리고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밤을 먹고 있을 때는 무지무지 먹고 싶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
밤을 맛있게 먹다가 벌레를 씹고 놀란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 느낌을 가질 것이다.
1) 벌레를 씹어 먹었다니 얼마나 놀랐겠나. 끔찍한 일이다.
2) 나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 이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3)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쓰겠다.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사람에 따라 온갖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대체로 이 세 가지 느낌이 가장 많으리라 생각한다. 밤을 먹다가 잘못하여 그만 밤 속에 들어 있던 벌레까지 먹게 되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밤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평범한 일이다. 말하자면 이 글을 누구에게나 있는 일, 보통으로 겪는 일을 쓴 것이다. 이렇게 일상으로 겪는 일을 일상으로 하는 말로 쓴 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우선 앞에서 든 것처럼 가장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다 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곧 자기표현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또한, 쓴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게 하고, 삶 속에서 자기를 바로 세워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게도 한다. 참된 글쓰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런 글을 누구보다도 중고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싶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대체로 자기가 나날이 겪는 일, 느낀 일을 솔직하게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근사해 보이는 것, 문인들이 쓴 글에서 흔히 나오는 것, 무슨 척하는 것을 쓰고 싶어한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는 초등 학생 때부터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이 되면 더욱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같이 자기가 겪은 조그만 일을 자기말로 쓰는 글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리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이 자리에서 좀더 많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루도 빠짐없이 무엇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 먹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고 누구나 나날이 그것으로 살고 있는데, 어째서 먹는 이야기를 쓴 글이 드문가? 더구나 학생들의 글에서 그렇다. 먹는 것은 천하고 동물들이나 즐기는 것이고, 그래서 고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덮어두어야 할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 먹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목숨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 어떻게 천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는가?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먹는가, 먹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하는 일들을 걱정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그것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정치고 경제고 역사고 학문이고 종교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문화인 것이다.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예술이고 문학이고 철학이고 종교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이어가는 먹는 것 을 대수롭잖게 여긴다면 그것은 필경 거짓밖에 안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쓰는 글도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 앞에서 든 글은 밤을 먹다가 생긴 일을 썼다. 밤이나 감같은 과일은 누구나 가끔 먹는다. 그런데 밥은 누구든지 날마다 먹는다. 밥을 먹는 이야기는 더 많이 글로 씌어져야 한다. 어떤 밥을 먹는가, 어떤 반찬을 먹는가. 어디서 누구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는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가. 요즘은 온갖 오염식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오염식품을 먹은 이야기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아무튼 중고등학생의 글은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들이 쓰는 문학작품의 흉내를 글감과 제목에서부터 내려고 하다보니 솔직한 자기 이야기, 평범한 삶의 이야기가 잘 안 나온다. 그래서 대체로 뿌리가 없이 공중에 뜬 종이꽃처럼 되어 있기 예사다. 앞에서 보인 밤 이란 글은 이런 점에서 모두가 한번 읽어 볼 만한 글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겪은 일상의 일들을 자기가 하는 말로 정직하게 쓰는 것이 모든 글쓰기에서 가장 귀한 바탕이 되고 알맹이가 되는 것임은 초등 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나 육칠십 나이가 된 늙은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뭔가 근사한 것, 보기 좋은 것을 찾고 말재주를 부리려고 하는 태도로 쓰게 되면 어른이고 아이고 아주 병든 글만 낳게 되어, 글을 쓰는 자신은 물론이고 그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보기글 밤 이 읽는 이들에게 줄 좋은 면만을 말했다. 이제부터는 좀 문제가 되는 점, 좀더 잘 썼으면 하는 면에서 말해 보겠다. 자기가 보고 듣고 한 것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삶을 가구는 참된 공부가 되고 모든 글쓰기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겪은 것을 솔직하게 쓰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체험을 쓴다는 것과 정직하게 쓴다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나? 밤 이란 글을 다시 살펴보자. 이 글을 요약하면, 밤을 구워서 서로 많이 먹으려고 하다가 그만 밤벌레가 입안에 들어간 줄도 모르고 씹어 먹었다. 나중에야 벌레를 씹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물을 자꾸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했다. 그 뒤로는 밤이 싫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은 안 먹겠다.
- 이렇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 심정과 기분을 그대로 쏟아놓기만 했다. 이렇게, 이런 정도로 써서는 국민하교 3,4학년이 쓴 글과 다를 것이 없다. 제 동생, 동생의 동생이 쓴 글 정도밖에 될 것이 없고, 동생의 동생쯤 되는 나이가 갖는 생활과 생각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야 하나? 어떤 생각이, 어떤 삶의 몸가짐이 더 있어야 하나? 앞의 글을 또다시 살펴보면, 밤은 먹기 싫다, 죽을 때까지 나는 밤을 안 먹겠다고 했는데, 그런 얕은 기분방출만 했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가 가지게 된 그런 심정에 대한 검토는 조금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이 국민하교 중간학년 아이가 쓴 글 정도밖에 안 되고 만 것이다. 이 학생이 벌레를 씹어먹게 된 것은 동생들하고 서로 다투어 많이 먹으려고 보늬도 잘 까지 않고 먹어서 그렇다. 보늬를 잘 벗기지 않으면 벌레가 먹은 밤도 겉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그렇게 된다. 벌레를 씹어 먹었다고 놀라고, 다시는 밤을 안 먹겠다고 했다면 마땅히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할 것인데, 동생과 서로 다투어 많이 먹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밤벌레를 한 번 씹었다고 해서 앞으로 평생 밤은 안 먹겠다고 한 태도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나이만큼 그 마음이 자라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면 밤알 속에 들어가 밤만 먹는 벌레란 얼마나 깨끗한 것인가? 사람은 온갖 짐승과 별의별 벌레를 다 잡아먹는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람의 몸을 차츰 병들어 죽게 하는 갖가지 무서운 독이 든 약들을 빵과 과자와 음료수들에 넣어 고운 색깔을 만들고 향기를 풍기게 하고 달콤한 맛을 들여서 먹게 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쓴 학생도 그런 가공 식품은 즐겨 사 먹을 것이다. 그런데 밤벌레 한 번 씹었다고 다시는 밤을 안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나는 밤 이란 글을 쓴 학생이나 이 학생과 별로 다름없는 태도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달콤한 가공식품을 사 먹는 것보다 차라리 벌레 먹은 밤을 벌레가 들어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천 배 만 배 건강에 좋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한다고 벌레 먹은 밤을 그대로 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또 밤만 먹으면 됐지 벌레까지 먹을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벌레 먹은 밤을 그대로 먹었다고 해서 죽을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는 그런 어리석고 좁은 마음의 울 안에서 마땅히 벗어나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다시 되새겨 말하면,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제 이 글에서 말을 어떻게 썼는가, 표현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보기로 하자.
- 옛날에는 밤을 무척 좋아했지만 작년부터 밤을 싫어한다. 이유인즉, 작년에 할머니께서 주셨다면 엄마께서 밤 한 봉지를 가져 오셨다.
옛날에는 했는데, 작년 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옛날이란 말은 맞지 않다. 지지난해까지는 하든지 재작년까지는 이라고 써야 옳다. 이유인즉 이란 말은 이유도 까닭 이란 우리말이 좋고,
-인즉 도 글말이니 입으로 하는 말
-는 이란 토를 쓰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까닭은 이 된다.
그런데 이 글월에서 까닭은... 해 놓고 그 까닭이 적혀 있지 않다. 그러니까 까닭은 이렇다. 고 해서 한 글월을 따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할머니께서 주셨다면 어머니.. 이렇게 께서 가 거듭 나오는 것이 문제다.
-께서 를 다 없애고 할머니가 주셨다며 어머니가.. 해도 되고 할머니께서 만
-께서 를 붙여도 된다. 초등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엄마께서 아빠께서 이렇게자꾸 께서 를 붙이는데, 실제 말에서는 안 쓰는 께서 를 자꾸 붙이는 것은 교과서의 글과 시험 문제가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엄마가 오셨다. 고 하면다 되는 것이지 엄마께서 오셨다. 고 할 필요가 없고, 그런 말을 없는 것이다.
-께서 가 자꾸 들어가면 글이 어설퍼지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30분 정도 있으니까 밤 껍질이 갈라지면서 하얀 색의 밤살이 드러났다. 난로 위에 얹어 놓은 밤이 익는데 30분이나 걸리는가? 그리고 밤살이 하얀 색인가? 이런 것을 자세하게 쓰지 않더라도 틀리게 써서는 안되는 것이다.
-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껍질도 다 까지 않고 그냥 입을 통과, 뱃속으로 들어 갔다.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는 더 먹겠다고 서로 다투어 라고 쓰는 것이 더 알맞은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껍질도 다 까지 않고 했는데 이 껍질 은 두꺼운 겉껍질이 아니고 속껍질이니 보늬 라고 해야 한다. 그냥 입을 통과... 이렇게 쓴 것은, 밤을 씹지도 않고 그냥 꿀떡 넘긴 것 같다. 글은 천천히 알맞은 말을 골라서 공을 들여서 써야지 거칠게 아무렇게나 마구 써서는 안된다.
- 까만 색의 밤벌레가...
밤벌레가 까맣던가? 밤 알맹이와 비슷한 색이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 화장실에서 종일 살다시피 했다.
어느정도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사실이면 사실같이 써야지.
- 그리고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밤을 먹고 있을 때에는 무지무지 먹고 싶다.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치는데, 한편 또 그것을 무지무지 먹고 싶다니, 어찌된 것인가? 소름이 끼친다는 감정과 무지무지 먹고 싶다는 욕구는 한꺼번에 일어날 수 없다. 아마도 먹고 싶다고 한 말이 진정일 듯 싶은데, 그렇다면 소름이 끼친다는 말은 부풀린 말이거나, 그 앞까지 써온 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다 보니 거짓이 된 말인지 모르겠다.
-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
무지무지 먹고 싶다고 해 놓고는 이렇게 마지막을 맺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말도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는 말을 살리기 위해서 쓴 것같이 느껴진다. 무지무지 먹고 싶은 걸 뭐 때문에 죽을 때까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하는가? 그래야만 밤벌레를 먹고 혼이 났다고 써 놓은 글이 살아나는가? 글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속여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절대로 글이 살아날 수 없다. 정직하게 쓴 글이라고 했는데, 자세하게 살피니 이런 문제가 또 드러난다.
글쓰기에서는 일부러 거짓을 쓰려고 할 때만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의 어떤 모양을 내어 보이려고 한다던가, 자기가 한 말을 자꾸 강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말이 부풀어져서 정확하지 않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이 거짓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물을 정확하게 그려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더구나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빈틈없이 성실하게 나타낸다는 것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고, 정직하게 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높은 가치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