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헌구편"
이헌구(1905~1982)
평론가. 함북 명천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불문과 졸업. 문학 박사. 민중 일보 사장, 공보처 차장, 이화 여대 문리대학장 역임. 일제 시대에 민족적 자유 정신과 세계적 양식을 추구하는 일련의 평론을 발표하다가 일제 말기에는 붓을 꺾었었다. 해방 후에는 반공 자유 문화를 일관성 있게 제창하였다. 정확한 비평 논조와 문장으로 지목된 평론가였으며 그 면모를 여기에 실린 수필들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시인의 사명
평화로운 시대에 있어서 시인의 존재는 가장 비싼 문화의 장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인이 처하여 있는 국가가 비운에 빠지거나 통일을 잃거나 하는 때에 있어서, 시인은 그 비싼 문화의 장식에서 떠나, 혹은 예언자로, 또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선구자적 지위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도 군대도 가지지 못하고, 제정 러시아의 가혹한 탄압 아래 있던 폴란드 인에게는, 시인의 존재가 오직 국민의 재생을 예언하며, 굴욕된 정신 생활을 격려하는 크나큰 축도를 드리는 예언자로 생각되었으며, 아직도 통일된 국가를 가지지 못하고 이산되어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시성 단테는 '오로지 유일한 이탈리아'로 숭모되어 왔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때에, 독일군의 잔혹한 압제하에 있었던 벨기에 인에게 있어서, 시인 베르하렌은 조국의 한 신령으로 추앙되었었다.
우리가, 과거 40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밑에서, 인류가 정당히 가질 수 있는 모든 자유와, 의욕과, 사색과, 행동을 여지없이 박탈당하고 있던 중에서도, 오히려 우리의 시가는 문학의 다른 어느 부문에서보다도 훨씬 생기를 띠고 찬란하여, 예술의 아름다운 경지를 지켜 왔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를 풍요하게 하는, 높은 문화의 생산자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1, 2년 전부터, 저들은 민족 문화 말살의 최악의 행동을 전개시키기에 사력을 다하여, 한국 문화 전멸 운동으로 나왔으니, 어론 기관은 폐쇄 당하고, 한글 운동을 탄압되고, 드디어는 창씨 제도라는 인류사에 없는 야만 정책을 베풀어서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없애 버리려 들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시인의 붓은 꺾이어지고, 아니, 불타는 정의와 민족애의 시혼은 저들의 칼끝 아래서 저주받고 절단되어 버렸고 오직 일부의 반동적인 문학만이, 불가항력이라기보다 착각된 의식전도로 민족적 불행의 사실을 연출함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8월 15일에 이르기까지의 약 5년간의 혼란기와 반동기에 있어서, 시인들은 오로지 침묵함으로써 웅변 이상으로 우리의 시가와 민족의 정신을 지켜 온 영광의 전사였다. 이제, 우리의 모든 감정과 지혜와 심혼은 해방되었다. 폐쇄되었던 시의 전당의 철비는 일격에 깨뜨려지고 말았다. 우리의 말이 홍수처럼 밀려나오고, 우리의 감상이 조수처럼 부풀어오르는 자리에서, 시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터지는 듯한 흥분 속에 휩싸여졌다. 그리하여 저들이 우리에게 준 지옥의 낙형에서 소생하였다. 선정이라고 가르치던 억압에서, 미덕으로 꾸미어 내던 약탈에서, 굴욕을 충절이라고 깨우치려 들던 그 모욕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들은 아름답지 못한 과거를 불살라 버리고, 우리 혈관 속으로 흘러든, 그 불순한 피의 원소를 모조리 씻어 낸 다음, 우리의 심경에 일점의 흐림도 없이, 재생하는 조국의 광복만을 비추어 볼 것이 아닌가? 폴란드의 모든 시인처럼, 단테나 베르하렌과 같이, 우리의 진정한 시혼으로 하여금, 해방의 역사 위에 빛나는 시의 기념탑을 세워야 하고, 유일한 예언자나 신령처럼 숭앙되어야 할 이 땅의 시인들이 아닌가? 시인아, 이제 너는 불사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선구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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