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광섭편"
김광섭(1905~1977)
시인. 호는 이산.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대통령 공보 비서관, 세계 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역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민족 의식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그 후로는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를 담았다. 말기의 시에는 사회 비평적 의식과 근원에서 향수가 짓들어 있다.
나무
널찍한 마당도 아닌데 남쪽 한귀퉁이에 파초 한 그루, 단풍 한 그루, 무궁화 한 그루와 풀 몇 포기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화단이 있어서 겨울을 지낸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풀에는 어서 봄이 되어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마루에 앉아서 외로울 때면 저으기 위로도 받으며 말은 없지만 변함 없는 친구처럼 대한다. 그러니까 나무는 식물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나에게 친근해진다. 어떤 때에는 머리를 흙 속에 파묻고 땅에 거꾸로 서서 팔을 위로 올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경건한 자세같이 보이기도 하여 일생에 한 번도 경건한 마음을 가져 보지 못한 위인보다도 더 고상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를 창생이라고 느끼는 때도 있다. 창생이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초목에 비유해서 가리키는 말인데, 그 창생이 하도 많고 우글거리기에 억조창생이라고도 한다.
지구상에 인구가 억으로 헤일 만큼 많기도 하지만 아직 조에는 이르지 못한다. 조라면 천 억의 10배다. 처음에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과대성을 빌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저 울창한 나무처럼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암시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될 때 사람과 같이 나무까지 합쳐서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사람같이 본 적이 많았다. 성황당에 서 있는 나무도 그랬고 단군의 나무처럼 보아 온 박달나무 아래 처음으로 신시가 열렸다 해서 그 때의 박달나무를 신단수라 하여 신성시한 것도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지금도 시골 같은 데서는 마을에 몇백 년 묵은 노목이 있으면 그 나무에 제도 지내고 치성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나무에 불경한 식을 하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함부로 도끼질을 못할 뿐 아니라 그 마을의 수호신처럼 어렵게 대한다.
그래서 산에 나무가 무성하면 그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점도 많거니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기도 한다. 나무가 울창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신화적인 생존자들 같기도 하다. 이런 데서 산림의 사상이라는 것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신화의 발생이 곧 그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잘사는 나라에는 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또 신화나 전설이 많다. 따라서 나무는 인류의 문화에까지도 관련된다. 나무는 주로 산에 산다. 사람의 대부분은 나무처럼 산에 사는 것이 아니고 들에 살지만 그 나라의 인구가 부조리하게 늘어나면 원인이야 따로 있겠지만 간접적으로 산까지 해를 입어 점점 황폐해져서 나무가 자연 그대로 살지 못한다.
사람이 가까이 살면 새나 짐승도 마음놓고 살지 못하지만 나무도 사람 냄새가 풍겨서 그런지 사람 곁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까 인구가 많은 나라나 대도시에서는 수목 애호와 애림 사상이 발생하게 되어 대도로나 거리에까지 나무를 심어 자연의 작은 일부나마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한국으로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금수강산으로 유명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전승되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금수강산, 금수강산 한다. 그렇게 아름답던 금수강산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동안에 마음과 정신도 황폐하고 산도 황폐해진 까닭에 국토를 다시 애호하는 정신으로 정부에서 산에 나무심기 운동을 전국에 펴기 시작한 것이 식목일의 제정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산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산금지까지 강력히 실시하고 있으나 식목일이 있어 20여 년이 되건만 산은 녹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통일하겠다는 자각과 결심에 얼마나한 실천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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