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용어사전
● 미메시스(mimesis)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문학의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이 말은 흔히 재현(representation), 또는 모방(imitation)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문학은 결국 흉내내기의 결과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양자의 견해는 달라서, 플라톤은 문학이 사물의 본질을 규명하려 하지 않고 헛되게 모방만 하는 것이라 하여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시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모방하는 것은 보여지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배후에 숨겨진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한다. 즉, 문학은 '가치 있는 것'에 대한 모방 행위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조한다. 이후의 서양 문학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동조했으나, 개성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는 설득력을 잃고 만다. 그러나 개성과 상상력도 사회적 경험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사실주의 문학관이 대두하면서 미메시스-모방 이론은 다시 영향력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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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反) 소설(anti-roman)
소설의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소설들로, 독자들이 소설에서 기대하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효과, 즉 소설이 현실을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논리적이며 정돈된 대리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환상을 심어 주려 하지 않는 작품들을 말한다. 주요 특징으로는 플롯의 부재, 산만한 에피소드, 최소한의 성격적 전개, 대상의 표면에 대한 세부적 분석, 많은 반복, 어휘나 구두법, 문장의 다양한 변주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 밖에도 무수한 실험성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는 나탈리 싸로트나 로브그리예 등의 누보 로망 계열과 우리 나라의 경우, 이인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로' 등이 있다.
● 반어(irony)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에 상반(相反) 관계가 있는 말을 뜻한다. 기교로서는 어떤 말의 뜻과 반대되는 뜻으로 문장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을 이른다.
● 반전(反轉)
사건의 흐름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급전 직하하여 독자를 놀라게 하며, 아울러 주제를 강조하는 기법이다.
● 발견으로서의 기법
'발견으로서의 기법'은 1948년 마크 쇼러에 의해 발표되었던 비평문의 제목으로, 신비평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의 불가분리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성취된 내용 혹은 예술과 작품화되지 않은 내용 혹은 경험 사이의 차이는 명확한 것이라고 하며, 문학에 있어서 진정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 '형상화된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러한 형상화된 경험과 형상화되지 않은 경험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기법이며, 기법은 소재와 주제를 한정하고 발견하는 근본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마크 쇼러의 '발견으로서의 기법'은 결국 기법만이 예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하나의 명제로 축약될 수 있다.
● 발단
발단은 소서의 구성 단계 중 처음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기에서는 보통 등장 인물이 소개되거나 배경 및 기본 상황이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발단에서는 인물들의 기본적인 성격과 사건의 전개가 암시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계속 작품을 읽어 가게 하는 흥미를 유발시킨다. 발단 부분은 대개 배경 묘사로 시작되는 것, 인물의 성격 제시로 시작되는 것, 인물의 행동 제시로 시작되는 것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데, 선우휘의 '불꽃', 정한숙의 '고가' 등은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하며, 김유정의 '봄.봄'이나 김동인의 '감자' 등은 두 번째 유형에 속하고, 현대 소설에 올수록 직접적으로 인물의 행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현대 소설에서는 전통적 개념의 발단을 무시하고 소설의 절정이나 갈등의 단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 배경(setting)
한 편의 서사물에서 이야기의 성분을 구성하는 공간적, 시간적 상황을 가리킨다. 배경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자질일뿐더러 이야기의 심미적 양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은 가시적인 상상의 공간을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심화시키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노인과 바다'는 배경이 소설 자체이다시피 하며, 김승옥의 '무진 기행', 황순원의 '소나기' 등에서 배경은 작품의 미적 기능을 담당한다. 그 외에도 이상의 '날개'에서의 방의 구조나 이외수의 '장수하늘소'에서의 산의 의미 등은 소설의 진행에 밀접하게 연결된 배경으로 드러나고 있고, 포우의 '검은 고양이'에서의 지하실, '어셔가의 몰락'에서의 붕괴 직전의 성채와 실내 등은 작품을 더욱 심미적으로 이끌면서 적극적으로 작품의 내용과 관련을 맺고 있다. 브룩스와 워런의 '소설의 이해'에서는 배경이 인물과 행동의 신빙성을 높이고, 인물의 심리적 동향과 이야기의 의미를 암시하고, 분위기의 조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병리 소설
현대 소설에는 신체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비정상성 내지는 불합리성에 대한 증폭된 관심의 결과인데 병리 현상에 대한 관심은 정상과 이성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투시함으로써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이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일제 시대에 박태원과 이상이 병든 일상의 세계에 주목하였으며, 6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사회적 삶의 황폐함으로부터 소설의 소재를 얻게 된다. 강용준의 '광인 일기', 서정인의 '후송', 이청준의 '활홀한 실종' 등이 대표적이다.
● 복선(伏線, foreshadowing)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암시를 뜻하는 것으로서 다가옥 사건들이 미리 그 전조(前兆)를 드리우는 방식으로, 서사적 흐름이 진행되는 이야기적 장치를 말한다. 복선은 보통 예시적인 주변 사건들을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인물이나 배경 등에 의해 유추된 추론의 형태, 즉 그러한 요소들이 계속되는 사건의 진행을 투사하는 형태를 취한다.
● 본격 소설
이 용어는 장르 개념이 아니며, 다만 소설을 가치에 의해 평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가치론적 의미이다. 본격 소설은 오락 소설이나 목적 우선적인 프로파간다 소설이나 통속 소설과는 다른 '순수 소설'을 의미하는 말로 정착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김동리가 주로 이 용어를 사용해 프로파간다 소설을 비판했다.
● 부조리 문학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인식을 표현하고 있는 문학들을 말하는데, 이는 전통적 문화 및 문학의 신념과 가치 체계에 대한 하나의 반항으로 2차 대전 이후에 나타났고,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등 전위적 예술 유파의 형식 실험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이 용어를 최초로 문학에 도입하고 유행시킨 사람은 알베르 카뮈이다.그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서 인간이 태어나는 것 자체가 그의 선택에서 기인하지 않은 모순된 것이므로 존재와 삶 자체도 부조리하다는 인식, 즉 하나의 개인은 이유 없이 낯선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며, 우주는 아무런 내재적인 진리나 가치와 의미를 지니지 않고 인간의 삶은 무(無)에서 왔다가 무(無)로 돌아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중점적으로 강조했다. 부조리 문학이 다루는 중심 주제는 삶과 죽음, 고립과 소외 의식, 의사 전달의 문제 등 비교적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카뮈의 '이방인', '칼리굴라', '오해'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등이 대표적이다.
● 분단 소설
남북 분단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씌어진 소설이나 혹은 분단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 즉 남북 분단의 원인과 고착화 과정,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소설을 가리킨다. 80년대 이전까지는 '6.25 소설' 혹은 '전쟁 소설'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으나, 그러한 용어가 단지 전쟁이라는 현상에만 시선이 고정되는 것일 뿐,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분단 소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분단 소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혹은 분단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로 보는 태도와 분단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여 그것의 극복을 위해 씌어진 소설로 보는 입장이 그것이다. 8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접근과 분단의 외재적.내재적 원인 등에 대한 접근이 시도되었다. 분단에 대한 인식은 우리 소설사에서 가장 폭 넓은 작품을 산출하고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선우휘의 '불꽃', 조정래의 '태백산맥',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김하기의 '노역장 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
● 분위기
한 작품을 일관하는 특징적인 인상 혹은 그 작품을 전체적으로 압도하는 지배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기저에 깔리는 배경적 자질이다. 고즈넉하고 전원적인 분위기는 그러한 분위기에 맞는 공간적 배경에 의해서, 분망(奔忙)하고 숨막히는 도회지적 분위기는 그러한 도회지적 공간의 묘사에 의해 환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작가의 수사적인 노력으로, 똑같은 지리적 배경을 묘사하더라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작가의 시각과 일치하는 것으로 결국 분위기는 사물을 보는 작가의 관점이 좌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비극적 플롯(tragic plot)과 희극적 플롯(comic plot)
아리스토텔레스가 설정했던 플롯의 두 가지 근본적 유형이다. 비극적 플롯이란 주인공의 운명이 플롯의 최종 단계에서 앞의 단계에 비해 하강하는 구조이며, 희극적 플롯이란 반대로 주인공의 운명이 상승하는 구조를 말한다. 운명의 상승과 하강의 조건으로 제시될 수 있는 기준들은 삶과 죽음, 사랑의 성취와 실패, 심리적으로 느끼는 행복감과 불행감, 신분과 지위의 상승 및 하락 등 인간의 구체적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요소들이다. 왕의 신분에서 미치광이가 되는 '리어 왕'이나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뽑고 떠돌이가 된 '오이디프스 왕'은 전형적인 비극적 플롯의 인물이다. 봉사의 딸에서 왕후가 되는 '심청'이나 '춘향전'의 성춘향 등은 희극적 플롯의 인물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주인공의 운명이 교차하는 경우는 '희비극' 또는 '비희극' 등의 용어가 사용된다.
● 비판적 리얼리즘
막심 고리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서, 흔히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이전의 사실주의 창작 방법을 일컫는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19세기의 봉건 제도와 자본주의 사회가 지녔던 부정적 측면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그 생활 형태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적 형상화를 보여 주는 작품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 작가로는 발자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세계관에서는 왕당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은 당대의 사회를 고발하고 명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 빈궁 소설
주로 궁핍한 삶의 경제적 현실에 서술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소설 일반을 가리킨다. 삶의 가혹한 현실을 야기하는 결정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경제적 결핍이라는 점에서 사실주의적 양태를 나타내며 경험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하고 있다. 우리 소설사에서는 1920년대 일제하의 현실이 궁핍하였으므로 당대에 많이 산출되었는데, 김동인의 '감자', 현진건의 '빈처', '운수 좋은 날', 최서해의 '탈출기', '박돌의 죽음'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이후 빈궁의 문체는 1970년대 이후 산업 사회 속에서의 노동자와 빈민 문제로 옮아 가게 되는데, 이문구의 '장한몽', 박태순의 '외촌동 사람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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