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나만의 글쓰기 비법
딱딱한 이론을 앞세우지 않은 글쓰기 강의
글을 쓰는 데에는 왕도가 없다. 이것은, 글이란 것은 반드시 이러 이러한 방법으로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뜻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내가 소설가에 뜻을 두고 글쓰기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에 참고했던 글쓰기 공부에 관한 몇 가지 책들은 한결같이 딱딱한 이론을 앞세우는 것들뿐이었다. 나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문학병이 들었고,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그 어느 누구의 강의나 저서를 통해서도 글쓰기의 비법다운 비법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지금 나의 문장쓰기, 구성하기, 글 속에 주제담기 비법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글쓰기 공부 강의는 나의 그러한 많은 시행착오의 일화와 그것을 통해 얻어진 나만의 비법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준 <문학사상사> 여러분에게, 이 책을 위해 여라가지로 도와준 제자 박창희에게 깊이 감사한다.
제1교시
자기만이 쓸 수 있는 글이란 어떤 것인가, 생명이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1. 엿장수 이야기
옛날에 장사하는 수법이 탁월하여 돈을 많이 번 엿장수 한 사람이 있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하고 궁리하던 한 청년이 그 엿장수를 찾아갔다.
"저에게 장사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청년이 그 엿장수에게 간곡히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엿판을 하나 만들어 짊어지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장사하는 법을 배우시오." 청년은 그 엿장수가 시키는 대로했다. 탁월한 엿장수가 엿판을 짊어진 채 앞장서 가고, 청년은 제자가 되어 뒤를 따랐다. 앞장을 선 스승 엿장수는 가위질 소리를 멋들어지게 내고, 엉덩이춤에다 어깨춤까지 추면서, "둘이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 사시요오" 하고 노랫가락을 섞어 가며 외쳤다. 뒤따라가는 제자 엿장수는 그 소리를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목구멍 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앞장서 가는 스승 엿장수가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조금 전에 스승 엿장수가 소리친 말을 열심히 따라 외웠다. 한데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첫사랑의 맛같이 새콤달콤한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 사시요오" 하고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는 또 그말을 열심히 외웠다. 그러자 스승 엿장수는 또 말을 바꾸었다.
"장가 못 간 총각은 장가가게 하고, 시집 못 간 처녀는 시집가게 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그러고는 제자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또다시 조금 전에 스승이 한 말을 머릿 속에 외워 담았다. 그런데 스승 엿장수는 곯리기라도 하듯이 또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시어머니가 이 엿을 먹으면 주름살이 펴지고, 며느리가 먹으면 나온 입이 들어가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사시요오"
그 때까지 제자 엿장수는 한마디도 외치지를 못했다. 스승 엿장수가 제자 엿장수를 향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얼른 따라 외쳐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그 재촉에 못이겨,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소리를 지른 다음에 기껏, "내 것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다니는 스승 엿장수의 엿은 사는데, 뒤따라 다니며 "내것도" 하고 외치는 제자 엿장수의 엿은 사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 엿장수는 사람들이 왜 자기의 엿을 사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덨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스승이 외친 다음에 곧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내 것도오"
이 세상에는 그 스승과 같은 엿장수가 한 사람만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제자 엿장수는스승 엿장수를 따라서 "내것도오" 하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기의 호박엿을 먹어보고 또 먹어 본 다음에 그것의 맛과 향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만 외칠 수 있는 독특한 말(상업적인 기술 혹은 상업적인 구호)을 연구해 내야 한다. 그것을 연구하려고 자기의 호박엿을 맛보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자. 자기의 혓바닥마저도 달크무레한 그 호박엿물을 따라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리려 할 만큼, 그맛디 달고 구수하고 새콤하게 느껴 졌다. 그리고 그것을 삼키고 나자 뱃속이 개운해 지고, 머릿 속이 환해 지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얼굴 살결 또한 희어지는 것 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 말을 외치면 디는 것이다.
"혓바닥까지 넘어가는 훌륭한 호박엿이요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인 아들 딸한테 먹이면 지능지수가 높아지고, 중학생인 아들 딸들판테 먹이면 국어, 수학, 영어 시험에 모두모도 백점만 맞게 되는 호박엿이요오 고등학생인 아들딸한테 먹이면 대학에 누워서 들어가게 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처녀가 먹으면 피부가 고와지고 총각들이 먹으면 힘이 세어지는 호박엿이요오"
제자 엿장수가 이렇게 자식들의 교육문제와 피부미용에 대한 소리를 곁들어 외친다면, 기껏 사랑놀음의 말만 앞세우고 외치는 스승 엿장수 보다 훨씬 많은 엿을 팔 수 있지 않을까?
2.누가 써도 마찬가지인 글
글을쓸 때, 우리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첫째, 누가써도 마찬가지인 글을 써서는 안된다.
(1) 까마귀과에 속한는 종으로, 우리나라의 외딴 섬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45센티미터이며, 암수의 깃털은 동일하다. 머리, 등, 가슴, 꽁지는 광택 있는 검은색이며 배는 흰색이다. 날개의 일부분은 흰색이며 나머지 부분은 진한 청록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이다. 주로 시골, 인가 주변, 들판, 야산 도시의 공원 등에서 무리를 지어 산다. 둥우리는 소나무, 아카시아, 밤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 가지위에 짓고, 여섯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개구리, 곤충, 보리, 쌀, 콩 등을 먹는다.
(2) 남아메리카 원산지인 식물로 우리나라에 오래 전에 들어와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고 있는 바늘꽃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높이는 50-90센티미터쯤 자라고, 굵고 곧은 뿌리가 나는데 한 개 혹은 여러개의 대가 곧게 자란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사방으로 둥글게 퍼지며, 줄기에서 나온 잎은 끝이 뾰족한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7월과 9월 사이에 노란 꽃이 피고, 잎 겨드랑이에 한 개씩 달린다. 저녁 때에 노란색으로 피었다가 아침에 햇빛이 비치면 곧 시드는데, 약간 붉은 빛이 돈다. 꽃받침은 네 개로 두 개씩 함쳐지며, 꽃이 피면 뒤로 젖혀진다.
(3)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남한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라이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립니다. 대한 민국은 면적이 좁으며 사람들이 많이 살아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춘하추동이 뚜렷합니다. 봄은 따듯하고 온갖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납니다. 여름은 매우 덥고, 8월은 1년중 가장 더운 달입니다.
(4) 우리나라의 국기는 태극기로, 태극은 우주 만물의 근원을 나타내는데, 네 귀에는 건(하늘), 곤(땅), 감(물), 이(불)를 나타내는 검은색의 네 괴가 있다.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 이며, 국가는 안익태님께서지으신 애국가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70퍼센트가 산지 인데, 대부분 복쪽과 동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이 낮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사이에 있어 계절풍기후를 이룬다. 겨울에는 삼한 사온 현상이 아타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위애 든 보기 (1)은 '까치'에 관한 글의 일부이고, (2)는 '달맞이꽃'에 대한 글의 한 대목인데, 백과사전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3)과 (4)는 ;우리나라'라는 제목의 글로서, 독자들이 보내온 글 중에서 두편을 골라 앞부분을 인용했다. 이 글들은 모두 누가 써도 마찬가지인 내용의 글이다. 내용과 문투가 이미 어떤 생각의 틀 속에 들어가 있는 상식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주어진 어떤 제목을 앞에 놓고, 그 제목이 주는 고정 관념에 얽매이게 되면 이렇게 백과사전 투의 상식적인 글을 쓰게 도니 . 이런 글을 '기술하는 문장의 글' 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매끄럽게 다듬고 수식어들을 동원하여 치장을 하고 엄살을 피우더라도 절대로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곧 생명이 없는, 죽은 글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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