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1/3)
임진록에 대하여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일종의 전쟁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것과는 달리 민족적 설화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보통 말하는 역사소설과는 색다를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본래 역사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상의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상의 기록을 소재로 삼되, 이를 작자 자신의 주관에 의하여 해석하고 창조하여 다시 재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어야 할 필요는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역사소설은 진실, 곧 가능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소설에서 그 작자의 인생관이나 회고, 그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임진록'은 우리가 민요에서 작자를 찾아볼 수 엇는 것 처럼 작자도 없는 설화문학적 성격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전쟁을 소재로 삼기는 했으나 한 작가에 의한 창작 이상의 것으로서 외적의 침입에 대한 전 민족의 몸부림이며 염원의 표출, 그리고 민족 자체의 삶을 구현한 민족 설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대전란 이후 민족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진작시키고, 왜적에 대한 민족적 적개심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이 작품은 부득이 허구적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있어서는 내용이 사실과 어긋난다든가 인명, 지명 등이 틀린다든가 하는 문제는 크게 탓할 바가 못된다고 본다. 더구나 작중 인물들에게 거의 모두 초인적인 도술을 갖게 하였고, 또한 광해군 때에 중국에 출전한 일이 있었던 김응서, 강홍립 두 장군을 등장시킨 것 등도 의식적인 허구였을 것이다.
비록 나라의 운명이 불행하여 현실적으로 패배한 민족이 정신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꾸며 놓은 문학을 편의상 '정의적 승리의문학'이라고 부른다면 바로 이 작품이 가장 전형적인 것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예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데, 바로 저 유명한 '삼국지연의'이다. 이러한 문학이 민중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믿어지는 것은 대개문화는 고도로 발달하였으나 무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주변의 야만적인 민족에게 늘 위협을 받는 이른바 문약한 민족에게 고통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약소 민족의 문학이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패배한 유비를 비롯한 뭇장수들이 활약하는 '삼국지연의'가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 수입되어 널리 애독되어 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 도처에서 이'임진록'의 내용과 비슷한 설화나 전설이 많이 나돌아 다녔는데 그것은 대개 신앙적, 자존적, 반항적인 것들이다. 그럼 여기서 <임진록>에 나타난 특징을 몇 가지 간추려 보기로 하자.
첫재로 지적할 점은 임금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즉, 처음 장면에서 임금이 꾼 꿈을 올바르게 해몽한 여의정을 오히려 귀양보내는 데서 작자는 임금이 대외 정세관에 어두웠다는 것을 은근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왕의 재목이 초라하다하여 군사를 돌리겠다고 하는 말할 수 없는수모를 당하는 대목도 작자가 임금을 바라보는 시선의 한 면을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둘째로 민간 영웅의 구국 의거를 민족적 시야에서 바로 보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들 중에서 허구적인 인물이나 또는 사실과 달리 설정된 인물도 있지만, 어쨋든 그들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다. 또 이들의 대부분이 민중 속에 파묻혀있던 영웅과 의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셋째로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잘 나타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한 예로 실제 인물이 아닌 듯한 김수업이 군량미를 조달하라는 임금의 청을 받았을 때 두말하지 않고 쾌히 희사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굶주려 죽은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나중에는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라고 하는 당시의 정황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만큼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난세를 극복하려는 집념이 민중 속에 도도히 넘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적에 대한 보복심의 정도는 등장인물인 김응서와 강홍립의 행적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사실에 없는 왜국 정벌에 두 장수가 출전했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적개심의 발로로 볼 수 있겠다. 실제 사료를 보면 김응서와 강홍립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김응서가 평양서 왜적을 방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620년에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두 사람이 원군으로 함께 출전한 일이 있다. 강홍립이 원수, 김응서가 부원수로 출전해서 처음에는 공을 세웠으나 부거에 서 패한 뒤 강홍립이 전군을 이글고 후금에 항복하여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때 김응서가 적의 정세를 몰래 기록하여 본국에 보내려고 했으나 강홍립의 고발로 죽음을 당했다. 이같이 임진왜란 후 중국과 결부된 역사적 사실을 이삼십 년전의 대외적 투쟁에 결부시키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대외적적개심의 정도가 높았던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고 있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신이적, 주술적인 힘의 존재와 그 징후다. 우선 임금이 왜적의 침입을 예시하는 꿈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절한 국난 속에 휘말려 들었다. 그리고 신립은 원귀의 간계에 빠져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또한 김응서 일행이 왜국 정벌을 떠나려고 할 때 왜덕강이라는 신이 나타나 사흘 후에 떠나라고 간곡히 권했으나 강홍립이 이를 일축하고 자기 고집대로 했기 때문에 결국 참패하여 대군을 잃는다.
이상은 모두가 신이적 존재의 조언을 무시하거나 빠져 들었기때문에 당한 패배의 예라 볼 수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이던 관운장이 실제로 나타나거나 꿈에 나타남으로써 전란에 깊이 개입하고 우리를 돕는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비운의 장군인 관운장이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에 작자가 민족신앙에서 따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비현실적, 신이적인 수법에 의한 사건 처리방식은 작품 전편의 밑바닥에 흐르는 하나의 기본적인 색조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임진록'과 아울러 연구되어야 할 작품은 병자호란을 소재로한 '박씨전'을 들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이 두 작품에서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록'은 사본으로만 전해져온 관계로 이본이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국립도서관본 '임진록' 2. 이명선본 '흑룡록' 3. 백순재본 '흑룡일기' 4. 박로춘본 '임진록' 5. 권영철본 '임진록' 6. 숭전대도서관본 '임진록' 7. 고려도서관본 '임진록' (한문본)
이상 여러 작품들은 등장인물, 사건의 내용, 허구적인 심도, 사건을 파악하는 방식과 시각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작품은 일제 관헌의 금기의 책이 었으므로 많은 박해를 받았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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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작자미상)
조선 선조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외척의 침입이 없어 나라는 평온하고 백성들은 힘써 일해 풍년을 노래하니 그야말로 태평 성대였다. 임진년 정월 어느날. 대왕께서 책을 읽으시다가 잠깐 졸으셨다. 이때 한 여자가 기장을 잔뜩 넣은 자루를 머리에 이고 들어와 대왕 앞에 내려놓았다. "그게 무엇인고?" 그러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물러가 버렸다. 대왕이 놀라 벌떡 일어나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대왕께서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어 뭇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꿈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신하들을 돌아보고 물으셨다. "경들은 이 꿈을 행몽해 보라." 그러자 영의정 최일령이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해몽해 보겠나이다." "어서 말해 보오." "신이 해득하오니 가장 불길하옵니다." 대왕께서는 듣고 놀라시어 급히 물으셨다. "왜 불길한지 어서 까닭을 얘기해 보오." 최일령이 엎드린 채 자세히 여쭈었다. "신이 해득한 바로는 인변에 벼 화하고, 그 아래 계집 여자가 붙었으니 이 글자는 왜자 이옵니다. 아마도 왜놈이 곧 쳐들어올 거인가 하옵니다." 대왕께서 듣고 크게 노하시어 꾸짖으셨다. "그 무슨 요망한 소리인가? 시절이 이렇게 태평하거늘 어찌 요사스러운 말을하여 인심을 소란케 하고 짐의 마음을 불안케 하느뇨?" 이어 금부도사를 불러 명하였다. "일령을 멀리 귀양 보내도록 하라." 최일령은 궐하에 엎드려 사죄했다. "신이 아는 것이 없사와 요망한 말을 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죽어도 갚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엎드려 비오니 폐하의 너그러우신 용서만 바라겠나이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도리어 역정을 내렸다. "무슨 잔말이 이렇게 많은가? 어서 빨리 적소로 가라." 이에 최일령은 불평하지 않고 오직 대왕의 안위만 생각하며 보냈다.
세월은 흘러 임진년 춘삼월이 되었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고, 풀들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니 최일령은 자기도 모르게 고향이 생각나 마음이 어리러웠다. 이에 근처에 있는 한 정자에 올라가 산천을 구경하며 시름을 잊으려고 하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멀리 보이는 수평선상에 커다란돞을 단 배가 백여 척 나타났다. 최일령은 크게 놀라 큽히 정자에서 내려와 그 고을을 다스리는 동래부사를 불러 말했다. "적의 배가 쳐들어오니 그대는 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막으라." 비록 귀양은 와 있지만 최일령은 임금 다음의 지위까지 올랐던 대신이니 동래부사는 즉시 명을 받아들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동래부사는 황급히 군사를 모으고 한편으로는 임금께 올리는 글월을 써서 보냈다. 이때 적의 배는 벌써 강변에 닿았다. 배에서 새까만 갑옷을 입은 왜병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나왔다. 왜놈의 장수 소서가 칼을 들고 강변으로 뛰어 나오며 벽력같이 외쳤다. "조선 동래부사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동래부사 이순경이 크게 노하여 장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뿔싸! 소서의 칼이 번뜩 하더니 이순경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를본 왜군 대장 청정이 크게 기뻐하여 북을 울리고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그 군사가 거의 칠십만 명이고 용맹스런 장수가 수만 명에 달하니 동래를 지키던 조선 군사들은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쳤다. 동래를 점령한 청정은 장대에 높이 앉아 휘하 장병들에게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먼저 소서행장을 불러 이르기를, "그대는 강원도 원주를 친 후 평안도로 올라가라."하고, 이어 동경청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는 전라도를 친 다음 김해에 있는 군량을 우리 군사에게 수송토록 하라."하고 군사 일만 명과 장수 천 명을 주었다. 또 문경을 불러 명령했다. "그대에게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줄 것이니 충청도영동을 치고, 함경도 이십 육 주를 치도록 하라." 문경이 명을 받고 나가자 이번에는 부경이 들어왔다. "그대는 강원도 십팔 주를 치고 군량을 각처로 운반토록 하라."하고는, 군사 이십만 명과 용장 삼천 명을 내주었다. 다만 마룡을 불러 정병 일만 명과 용장 천 명을 주며 명했다. "그대는 전라도를 친 다음 황해도로 가라." 흉악하게 생긴 평수길이 앞에 대령했다. "그대는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삼천 명을 거느리고 경상도를 석권하라" 마지막으로 뭇장수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나, 청정은 남은 장수와 군졸들을 거느리고 경상우도로 짓쳐 들어갈 것이다. 거기를 평정한 다음에는 충청좌도 로 쳐들어 가겠다. 소서는 충청우도를 친 다음, 다음 목적지인 경기도로 가라. 조선왕을 항복시킨 후에 나, 청정은 조선왕이 되어 그대들에게 일품 벼슬을 주리라. 그러자 뭇군졸들과 여러 장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만약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청정이 즉시 출발하라고 명령하니 왜군은 조선 파도로 짓쳐 들어갔다. 깃발과 창검이 햇빛에 번쩍이고 고각과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키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조선 팔도의 백성들은 여지껏 평화스럽게 살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께 격으로 난을 당했다. <왜놈이 쳐들어왔다!> <어서 피난하자!> 백성들은 남녀노소 구별없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며 피난길을나섰지만 어찌 무사하겠는가. 처절한 울음소리가 산천 여기 저기서 울려나니 그 가련한 광경은 눈뜨고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왜장 소서는 군사를 풍우같이 몰아 강원도로 향했다. 왜놈들이란 원래 성질이 포악한데다 장수되는 소서가 용맹을 한껏 떨치니 조선 군사가 그 앞에서 낙엽처럼 흩어져 달아났다. 흡사 무인 지경러럼 소서가 강원도를 휩쓸어 들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전령이 와서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장군, 본국에서 편지가 왔나이다." "오, 편지라고? 누구한테서냐?" "장군의 매씨되는 분이옵니다." "누이 동생이? 어디 보자."
소서는 전령이 바치는 누이동생의 편지를 보았다. '번거로운 인사말 줄이옵고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소나무 송자 있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송자 있는 곳을 가면 크게 패할 것입니다. 부디 잊지 마십시오.' 누이 동생 올림 편지를 읽은 소서는 크게 놀랐다. 그의 누이 동생은 앞날에 일어날 일을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는지라 평소에도 늘 이런 충고를 아기지 않았던 거이다. "송자 있는 곳을 가지 말라. 대체 어느 곳일까?" 소서는 중얼거리다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내 누이 동생이 주의를 주었다. 송자 있는 마을에는 가지 말라고 하니 대체 어느 곳인가?" 그러자 조선 지리에 밝은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송자가 있는 곳이라면 분명히 청송과 송도, 지금의 개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청송과 송도라고? 그렇다면 우리 군사를 그곳으로 보내지 말라." 이에 소서는 청송과 송도를 일부러 피해 군사를 몰았다.
한참 진격하는데 앞길에 제법 많은 조선 군사들이 진을 치고기다렸다. 바로 강원감사, 지금의 강원도 도지사, 이래의 군사였다. 그러나 그동안 태평 성세를 즐기느라 훈련을 쌓지 않은 조선 군산들이 어찌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조선 군사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주해 버렸고, 강원감사 이래는 장렬하게 전사했다. 삽시간에 강원도를 짓밟은 소서는 쉬지 않고 평안도로 북상했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평안감사 이공태는크게 놀라 각 고을의 군사를 모아 대비했다. 하지만 모여든 병사 역시 오랫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낸 탓으로 몸이 둔하고 창칼 역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니 기세 등등한 소서의 군사를 어찌 막으랴. 이공태가 필사적으로 군사들을 독려하여 맞아 싸웠으나 역부족 이었다.
"적장은 나의 칼을 받으라!" 이공태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단신으로 소서에게 달려들었다. "흥, 가소롭구나!" 소서는 껄걸 웃더니 장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칼날이 번뜩 하더니 이공태가 피를 뽑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대장이 죽으니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의기 양양해진 소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평양성에 입성했다. 미처 피난가지못한 수많은 백성들은 악귀처럼 날뛰는 왜군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다. 소서가 평양감영 높은 자리에 앉아 한창 군사들을 호령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잡혀 들어왔다. 여인을 바라본 소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버들 같은 눈섭, 앵도 같은 입, 오똑한 콧날, 하느적 하느적거리는 버들허리는 그야말로 양귀비가 무색할 지경인 절세 가인이었다. 소서는 갑자기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목소리 또한 한껏 부드러웠다.
"웬 여인이냐?" 서소가 묻자 군졸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예, 이곳 평양 기생 월천이라 하옵니다." "월천이라고? 과연 천하 일색이로다. 오늘부터 내게 수청을 들라."
왜장의 명령이니 그 누가 거역할 수 있으랴, 이에 그날부터 소서는 월천을 첩으로 삼아 평양에서 경치가 제일 아름다운 연광정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한편 다른 왜장들도 조선 팔도에 흩어져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니 곡성이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왜군 총대장 청정은 경상도를 삽시간에 짓밟고 조령에닿았다. 조령에는 병자, 정삼품의 무관 벼슬, 이 군사를 이끌고청정의 군사들을 막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조령은 산이 높고 험악하여 지키기에는 쉽고 깨뜨리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관문이라 매우 중요한 요새였다. 그러나 조총을 탕탕 쏘며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왜군 앞에 별장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청정의 칼날 아래 이슬이 되었다. 이렇게 되니 왜군의 진격을 막을 장수가 그 누가 있겠는가. 이때 재상 벼슬에서 이미 은퇴한 이순신은 미리 왜군이 쳐들어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 발명한 거북선이었다. 이순신은 왜군이 바다로 밀려 들어오자 거북선 수천 척을 몰로 싸우러 나갔다. 거북선 안에는 맹렬히 훈련을 쌓은 용맹한 군사 수만 명이 숨어 있었다. 또한 거북선 좌우에는 구멍이 무수히 있어 안에서 밥을 지을 때 나는 연기가 배 입으로 통해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가 보아도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 물에 떠다니며흰 안개를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왜군들은 거북선을 보자 그만 대경 실색해 버렸다.
"괴상하게 생긴 배다!" "괴물이 나타났다!" 군졸들이 무서워 도망치려고 하자 왜장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총과 화살을 쏴라!"
그러자 왜군들이 총과 활을 무수히 쏘아댔다. 하지만 거북선 등은 철판으로 깔려 있는지라 총알과 화살이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수천 척의 거북선이 검푸른 바다 위를 떠다니며 일제히 포를쏘니 흡사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에 비오듯이 화살이 날고 대포알이 적선을 깨뜨렸다. 왜군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무수히 죽어갔다. 청정이 이를 보자 크게 놀라 부하들을 재촉했다.
"어서 저 거북선을 막으라!"
대장의 명령이라 왜군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총과 화살을 쏘는 데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거북선은 끄떡도 하지 않고 도리어 입으로 안개를 토하고 등의 구멍에서는 화살이 마구 쏟아지니 왜군의 시체는 바다로 새까맣게 떨어졌다.
"안되겠다, 어서 후퇴하라!"
청정은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후퇴 명령을 내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왜적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라! 어서 추격하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짚고 우레같이 호통쳤다. 용기 백배한 조선 군사들은 적을 뒤쫓아가 창칼을 휘둘러 치니적의 시체가 삽시간에 산을 이루고 흐르는 피는 내를 이루었다. 이순신의 거북선은 가는 곳마다 왜적을 무찔러 남해에서는 적의 배는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순신은 적을 뒤쫓아 어느덧 한산도에 닿았다. 여기서 군사들을 잠시 쉬게 하고 정탐군을 보내 왜적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이윽고 밤이 되어 둥근 달이 두둥실 떴다. 이순신은 밤의 경치를 살피다가 나라의 운명이 근심되어 시조 한 수를 읊었다.
'한산선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이튿날 새벽. 왜적의 동정을 살피러 나갔던 정탐군이 돌아와 아뢰었다.
"아뢰옵나이다. 적의 배 수백 척이 이리로 오고 있나이다."
이순신은 보고를 듣자 즉시 장졸들을 모아 놓고 명을 내렸다.
"왜적이 다시 쳐들어 온다고 한다. 한 척도 남김없이 물 속에 장사지내라."
명령을 내리고 이순신은 사당으로 홀로 들어가 하늘에 간절히기도를 드렸다.
'하늘이시어, 제 한 목숨을 바치겠사오니 왜적을 남김없이 섬멸케 해주옵소서.'
이어 전포를 입고 은빛 투구에 삼 척 장검을 찼다. 거북선에 올라 진군의 북을 치니 수천 척의 거북선이 위풍 당당하게 나아갔다. 한 시간쯤 바다로 나가자 왜적의 배가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장병들은 들어라! 왜놈들은 하나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삼 척 장검을 빼어 들고 벽력같이 외쳤다. 드디어 양쪽 배가 맞붙어 화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총쏘는 소리가 콩볶듯이 일었다. 그러나 왜적들이 어찌 거북선을 당할 수 있으리오. 처음에는 숫자를 믿고 제법 용맹스럽게 달려들었으나 화포에 맞아 머리가 으깨지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속속 물고기밥이 되었다.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말라!" 이순신은 친히 북채를 잡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왜장 청정은 이를 보자 부하들에게 은밀히 일렀다. "이순신을 쏘아 죽여라.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에 왜군 중에서 총을 제일 잘 쏘는 자가 배를 가까이 몰아 이순신 을 노리고 조총을 쏘았다. "타앙."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가 났다. 이 순간 왜병이 탄배는 거북선 에서 쏜 화포를 맞고 산산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무슨 하늘의 시기심이란 말인가. 이순신은 적의 총알이 날아와 가슴을 정통으로 맞히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장군님!" 옆에 있던 휘하 장병들이 놀라서 달려와 부축했다. 이순신은 손을 내저으며 영을 내렸다. "어서 방패로 나를 가려라.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군사들에게 알리지 말라. 계속 북을 울려 군사들을 독려하라..."
말을 마친 이순신은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이에 휘하 장졸들은 치밀어오는 통곡을 억지로 죽여 참고 이순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가 더욱 힘차게 북을 치니 대장의 죽음을 아직 모르는 군사들은 용맹을 떨쳐 닥치는 대로 적을 베고 찔렀다. 바다에는 온통 왜적이 시체들로 가득찼다. 푸른 바닷물조차도 왜적의 붉은 피로 붉게 물들었으니 실로 귀신이 보고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 왜장 청정은 자기편 배가 불과 수척밖에 남지 않자 혈로를 뚫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왜적을 모두 쳐부셨다. 만세!"
군사들은 환호성을 치르며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순신이 적의 탄환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군이 가시다니... 이 무슨 청천 벽력이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구나!"
왜적을 쳐부셨다는 기쁨은 삽시간에 통곡으로 변하였다. 군사들이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돌아올 때 통곡하는 소리가 멀리 왜국에까지 들렸다. 왜장 청정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숨어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청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외쳤다. "이제는 조선에 명장이 없으니 이 나라를 빼앗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리라." 하고는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바로 서울로 향했다. 하늘이 보낸 장수 이순신이 죽었으니 그 누가 왜적을 막을 수 있으랴. 진주병사 양익태와 경상감사 이짐이 필사적으로 왜군을 막으려고 했으나 도리어 많은 군사만 죽이고 항복했다. 기세 등등한 청정은 다음으로 상주를 쳤다. 상주목사 남덕천인들 어떻게 막겠는가. 청정의 칼날아래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군사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쳤다. 삽시간에 경상도를 짓밟은 청정은 휘하 장병들에게 영을 내렸다. "칠십 일 주에 있는 군량을 급히 수송하라." 이어 조령을 넘어 충청도를 쳤다. 이때 조선 명장 신립장군은 충청도 군사들을 이끌고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신립 장군은 군사적 요충지인 조령산성에다 진을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신립 장군에게 엎드려 아뢰었다.
"장군께 아뢰나이다. 이곳에다 진을 치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고개 아래 장변에 있는 탄금대에다 진을 치옵소서. 그러면 반드시 승전할 것이옵니다."
장군이 놀라 깨어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신 립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지시한 것이다.) 하고,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탄금대에다 진을 치라고 명령했다. 휘하 장졸들은 대장의 이와 같은 명령에 불평이 대단했지만 군령이 엄한 터라 명령대로 탄금대에다 배수진을 쳤다. 장졸들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자 신 립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물을 등지고 이렇게 배수진을 치면 뒤로 물러날 수가 없으므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한신(중국 한나라의 명장)이 조군을 대파한 것이 바로 이 배수진이니 염려 말라."
이때 청정이 조령을 넘어 신 립의 진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조선에 장수가 없음을 가히 알겠도다. 신립이 조령에서 우리를 막지 아니하고 강변에 배수진을 치다니 정말 우습도다. 신립이 그 옛날 한나라의 한신을 본받아 배수진을 친 것 같은데 어찌 나를 당하리오." 청정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단숨에 저 배수진을 깨뜨려라!" 그러자 왜졸들은 언덕에서 조총을 콩볶듯이 쏘아대며 개미떼처럼 몰려 내려갔다. 슬프다! 칼창과 활밖에 없는 조선 군사 십만 대병은 신병기인 조총 앞에 가을철의 나뭇잎처럼 쓰러졌다. 비명소리, 총소리, 물에 빠지는 소리... 뒤는 시퍼런 강물이니 어디로 몸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십만 대병은 손 한 번 제대로 눌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으니 시체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늘이여, 이 무슨 변이란 말씀입니까!" 신립은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자기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으니 여지껏 쌓아올린 무명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졌다. 청정이 승전고를 높이 울리고 단숨에 강을 건너니 백성들이 놀라 통곡하며 어지럽게 도망쳤다. 청정은 쉬지 않고 군사를 몰아 충주목사 지군을 베고, 병사 문명마저도 한칼에 무찌르고 경기도로 들어갔다. 기세 등등한 왜군이 진격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가 임진년 사월이었다. 충청감사가 임금께 장계를 올리거늘 펼쳐보니 이러했다. '왜적이 세력이 너무 강하여 칠십만 대병이 물밀 듯이 쳐들어왔나이다. 동래부사가 죽음으로 맞아 싸웠으나 소용이 없었나이다. 대적은 지금 각 도로 짓쳐 들어가니 조선 팔도가 위험하나이다. 왜적의 대장 청정과 소서는 그 용맹이 너무 뛰어나 삼국시대의 조자룡이라도 해내지 못할 듯하옵니다. 폐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이어 경기감사의 장계가 당도했다. '왜적은 경기도 칠십 일 주를 항복받고 바로 충청도로 쳐들어왔나이다. 신 립의 십만 대병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장졸만 모조리 죽고 대장 신립도 물에 빠져 자결했나이다. 승승 장구한 왜적은 충청도로 들어가 충주목사와 병사를 죽이고 일로 서울로 향하오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군사를 내어 왜적을 막으소서.' 장계를 보신 임금께서는 크게 놀라시었다.
"최일령이 꿈을 해득한 것이 꼭 들어맞는구나. 그런데도 짐은 그것을 모르고 오히려 충신을 귀양보냈으니 어찌할꼬..." 임금께서는 즉시 좌우 대신을 둘러보고 하문하였다. "누가 나가서 능히 왜적을 대적하겠는가?" 신하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제일의 명장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립이 단 한번의 싸움에서 허무하게도 패해 죽었다고 하니 그 누구라도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임금께서 보시고 용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왜란을 당했는데 안으로 용장이 없고, 밖으로 왜적의 세력이 크게 강성하니 그 누가 나가서 왜적을 맞겠는가? 종묘 사직(역대 왕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한 왕조의 기초)과 곤경에 빠진 백성을 구하여 짐의 근심을 덜게 할 인재는 없는고?" 그러자 포도대장(죄인을 다루는 관청의 우두머리)정출남이 앞으로 나와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왜적을 무찔러 전하의 근심을 덜게 하겠나이다." "오오, 장한지고." 임금께서는 크게 기뻐하시어 즉시 군사 오만 명과 장수 오십명을 주시며 분부하였다. "경은 군사를 이끌고 어서 나가 왜적을 무찌르고 짐의 근심을 없게 하라." 이에 정출남이 어명을 받고 남대문을 나와 여러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 칼을 잘 쓰는 김여춘으로 선봉장을 삼고, 창을 잘 쓰는 백여철로 중장군을, 남익신으로 우익장을 삼았다. 또한 좌선봉에는 기운이 장사인 양희발, 후군장에는 지략이 뛰어난 김치운이 군사를 거느렸다. 그리고 남은 장졸들에게도 각기 소임을 정한 후에 정출남은 푸른 털빛을 가진 말에 높이 올라타고 진군을 했다. 손에는 거의 칠십 근이 나가는 장창을 비껴들고 군사들에게 엄히 분부했다. "강토를 침범한 왜적을 무찔러 이 나라를 지킬 것이다. 만일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정출남이 군사를 이끌고 충주로 내려오니 왜적이 이미 포진하고 있었다. 적진을 바로보니 군세가 매우 웅장했다. 창칼이 햇빛에 번쩍이고 어깨에 둘러맨 조총이 위합감을 주니 조선 군사들은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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