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2/3)
토끼가 귀를 벌룸벌룸 하며 대꾸했다. "이 세상의 재미를 말하면 그대는 재미가 나서 오줌을 줄줄 쌀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둥글넙적한 몸이 오줌 속에 빠져서 뱃놀이하느라고 헤어나지 못할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자라가 속에서 치밀었지만 꾹 참고 점잖게 대꾸했다. "헛된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대강 말해 보시오." 토끼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형씨는 산경치가 어떤 줄 아시오? 산봉우리는 칼날같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데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대하니 앞에서 봄비가 연못에 가득 차 있고 뒤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오. 좋은 장소에 집터를 잡고 초당 한 칸을 지으니 반 칸은 청북이 차지하고 나머지 반 칸은 밝은 달이 차지하는구려. 흙섬돌에 대나무 사립문이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학은 춤을 추고 봉황은 날아 오른다오. 뒷산에서 약을 캐고 앞내에서 고기를 낚으니 이 아니 즐겁지를 않겠소? 청산에 밝은 달이 고요한데 깊은 산 속에 홀로 문을 닫고 산다오 .한가로운 구름이 그림자를 희롱하니 이 어찌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니겠소? 이 몸이 구름과 같아서 세상의 시비가 없고 보니 내 자취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추위가 지나가고 더위가 돌아오면 철이 바뀌었음을 짐작하고 날이 가고 달이 오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모른다오. 물 맑고 산 푸른 깊은 곳에 온갖 화초는 우거지고 봉황새와 꾀꼬리가 아름답게 지저귀니 이 봉우리 저 봉우리가 풍악으로 가득 차오. 석양에 취한 흥을 반쯤 띄고 강산의 풍경을 구경하며 곤륜산 상상봉에 흰구름을 쓸어 밀치고 땅의 형세를 내려다보니 태산은 청룡이 되어 있고, 화산은 백호로 변해 있더이다. 상산은 현무가 되고 형산은 주작이 되었구려. 소상강과 팽려택으로 연못을 삼고 황하와 양자강으로 띠를 삼아 적벽강의 아름다운 경치는 글을 지어 노래하고, 아미산의 달빛은 취중에 희롱하고, 삼신산의 불로초는 마음대로 뜯어 먹고, 동정호에서 목욕하다가 산속으로 돌아오면 바윗돌이 곧 집이 되지요. 한가롭게 누워 있으면 수풀 사이로 밝은 달이 나타나 은근한 친구와 같고,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은은한 거문고 소리라 할 만하지요. 돌베개를 높이 베고 취흥에 잠이 드니 어디선가 학의 울음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지요. 이윽고 일어나서 한산의 돌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이리저리 거니니 흰 구름은 천리만리 피어 있고, 밝은 달은 앞내와 뒷내에 골고루 비치고 있다오. 산이 첩첩하고 물이 잔잔하니 이 아니 좋으리오. 도도한 이 내 몸은 산과 물 사이에 있으니 무한한 이 경치를 어찌 정승 벼슬과 바꾸리오. 동편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부니 한가롭기 그지없고 앞에 있는 시냇물을 굽어보며 글을 지으니 이 아니 좋습니까? 오동밭의 밝은 달은 가슴에 비치고 버들가지의 맑은 바람은 얼굴에 불어오니 청풍 명월이 나의 친구가 아니겠소? 병 없는 이내 몸은 태평한 세상에 한가로운 백성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땅 위의 신선이외다. 강산의 풍경을 마음대로 희롱한들 그 누가 시비하겠습니까? 배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피고 푸른 버들이 드리운 곳에 동서남북의 미인들 와서 노니 그 풍경 한 번 근사하지요. 오월 단오날이면 녹음 방초 우거진 곳에 색동옷을 입은 미인들이 버들가지에 그네를 매고 짝을 지어 뛰는 모습은 광한루가 분명하지요. 풍류를 즐기는 호걸로 태어난 이내 몸은 이 세상 재미를 나 혼자 즐기고 있소이다."
말을 다 듣고 난 자라가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습고 우습도다. 그대의 말은 모두 거짓이니 그 누가 곧이 들으리오. 내가 그대의 신세를 생각하건대 최소한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두 귀를 기울여 잘 들으시오. 동지 섣달 추운 겨울내 흰 눈은 휘날리고 깎아지른 절벽은 빙판이 되어 산골짜기가 막혔으니 어디 가서 지낼 것인가? 이것이 바로 첫 번째의 어려움이오. 북풍이 사납게 부는데 돌구멍 찬 자리에서 먹을 것은 전혀 없어 콧구멍을 핥을 적에 이는 얼음같이 얼어 붙고 네 다리가 굳어져서 팔자타령 절로 나오니 이것이 둘째 어려움이오, 봄바람이 따뜻한데 꽃송이와 풀잎이나 뜯어 먹자고 산 속으로 얼마큼 들어가니 뜻밖에 저 독수리란 놈이 날개를 접고 살같이 달려들 때 두 눈에서 불이 나고 작은 몸이 오그라져서 바위틈으로 기어들어 넋을 잃으니 불쌍하구나. 이것이 셋째 어려움이요. 오뉴월 삼복 중에 산과 들에 불이 나고 시냇물이 끊어질 적에 살에서는 기름이 번지고 털에서는 누린내가 풍풍 풍겨 짧은 혀를 길게 빼고 급한 숨을 헐떡이며 샘가로 달려갈 대 그 꼴이 오죽 합니까? 이것이 네 번째의 어려움이오. 단풍이 붉어지고 국화꽃이 만발할 적에 과실이나 얻어먹자고 조용한 곳으로 찾아가니, 아뿔싸 매를 가진 사냥군이 봉우리에 높이 앉아 있고 근력 좋은 몰이군과 냄새 잘 맡는 사냥개가 뒤를 쫓으니 발톱이 뭉그러지고 진땀이 바짝 나서 천방지축 달아나는구나. 이것이 다섯째 어려움이오. 천행으로 멀리 도망하여 죽을 고비를 벗어나니까 총 잘 쏘는 포수가 총을 둘러메고 이 목과 저 목에 질러앉아 탄환을 재어서 염통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니 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간장을 말리며 간신히 도망해 숨을 곳을 찾으니 여섯째 어려움이오. 모진 고생 끝에 간신히 숲속으로 달려드니, 얼숭덜숭한 큰 호랑이가 철사같이 모진 수염을 위엄있게 꼬고 버티고 있구나. 소리는 우레와 같고 대가리는 산덩이 만하며 허리는 반달 같고 터럭은 불빛인데 칼 같은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주홍같은 입을 크게 벌리고 써레 같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번개같이 날랜 몸을 사방으로 이리저리 번득이며 좌우를 충돌하여 이 골짜기와 저 골짜기를 두루 다니니 어찌 무섭지가 않으리오. 공연히 돌도 툭툭 밟아보고 나무도 뚝뚝 꺾어보고 하니 그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가 또한 씩씩하여 당당한 산군이로다. 제 용맹을 버럭 써서 횃불같은 두 눈을 부릅뜨고 톱날 같은 발톱을 내놓고 숨을 한 번 씩 하고 쉬면 나무가 왔다갔다 하는구나. 소리를 한 번 우웡 하고 지르면 산악이 움직움직하니 천지가 캄캄하고 정신이 아득하여 죽을 맛이로다. 이것이 일곱째의 어려움이요. 죽을 것을 겨우 면하고 목숨을 보존하여 넓은 들판으로 달려드니 침이 말라 목구멍이 다 칼칼하도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변인고. 나무를 베는 초동들과 소먹이는 아이들이 창과 몽둥이를 둘러메고 잡으려고 달려드니 이것이 바로 여덟째 어려움이오. 그대가 이렇듯 어려울 때에 무슨 경황에 경치를 구경하며 어느 틈에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먹고 동정호에 가서 목욕할 것이오? 그 밖에 다른 고생도 부지기수이지만 그대가 듣기에 좋지 않은 듯하여 이만하겠소."
토끼가 듣고 샐쭉하여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소진-전국 시대의 웅변가-과 장의-전국시대의 웅변가-말씀도 잘 하시고 소강절의 추수인지 알기도 잘 아오. 그러나 남의 흠을 너무 말하지 마십시오. 듣는 이도 생각이 있소이다. 거룩하신 공자님도 진채에서 어려움을 당하셨고 천하제일의 장사였던 초패왕도 대택 속에 빠졌으니 화와 복은 하늘에 매여 있고 잘되고 못됨은 운수에 달린 것이오. 그건 그렇고 그대의 고향인 용궁의 재미는 어떤지 한번 말씀해 보구려." 자라가 목청을 가다듬고 점잖게 입을 열었다. "우리 용궁의 얘기를 하면 토선생은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오. 오색 구름이 깊은 곳에 붉고 높은 궁궐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백옥으로 층계를 만들고 호박으로 주춧돌을 하였으며 기둥은 산호요, 난간은 대모로다. 황금으로 기와를 잇고 유리창과 수정렴에 야광주로 초롱을 달고 칠보를 방마다 깔았으니 그 빛깔은 햇빛마저 가리고 서기가 공중에 서려 있소이다. 날마다 잔치가 베풀어지고 잔치마다 풍류가 귾이지를 않으니 정말 선경이오. 연꽃 같은 미녀들이 쌍쌍이 춤을 추며 포도주와 벽동주와 천일주를 앵무배에 가득히 부어 놓고 호박반 유리상에 금강초 옥찬치 불사약을 소복히 담아다가 일일이 권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황홀해지지요. 아미산의 달빛과 적벽가으이 좋은 경치, 방장산 봉래산 영주산을 낱낱이 구경하고 뱃놀이를 한 끝에 돌아올 적에 채석강, 소상강, 동정호, 팽려택을 뜻대로 오고가니 이 아니 좋은가. 이슬은 강에 빗겨 있고 물빛은 하늘을 접하였구나. 지는 노을은 따오기와 함께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빛일 때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남으로 터져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지요. 모랫가에 기러기는 내려 앉고 흰 갈매기는 잠드는구나. 어디선가 구슬픈 퉁소 소리는 어부사를 화답하니 깊은 구렁에 잠긴 용은 춤을 추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는 슬피 운다오. 달이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데 까마귀와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이 비파를 뜯어 울적함을 씻어주고 강 건너편에서 장사하는 아가씨가 부르는 노랫가락은 간장을 녹여내는구나. 밤중에 은은한 쇠북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가. 바람결에 뚜렷한 방망이 소리는 강촌에서 울리는 거로구나. 초강에서 고기잡는 어부들은 어기여차 노래하고 금못과 옥섬에서 연꽃을 따는 아가씨들은 상사곡을 노래하니 정신이 다 황홀하구나. 아마도 신선 세계는 수궁 뿐인가 생각되오." 토기가 저으기 의심이 일어나 흥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구료. 나는 본래 팔자가 기박하여 산림처사로 산중에 매여 있으니 부질 없이 남의 호강을 부러워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자라가 점잖게 입을 열었다. "나는 벗을 위하여 좋은 도리를 권하려고 한 것이니 그대는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마시오. 옛말에도 말하기를 위태한 곳에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말라고 했소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냥 살고 계시오? 이제 이렇게 나를 만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에 그대가 이 티끌 세상을 하직하고 나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간다면 선경에서놀면서 천도, 반도 복숭아와 불사약, 천일주, 홍감로를 날마다 취하도록 먹을 수 있을 것이외다. 또한 깊은 대궐 높은 집에서 무산의 선녀가 벗이 되어 순임금의 오현금과 왕대욱의 옥퉁소와 춘면곡, 양양가를 때때로 화답하며 악양루의 경치도 구경하고 등왕각에서 잔치하니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오? 그리고 황학루에서 글도 짓고 봉황대에서 술을 먹으니 태평한 세상의 부귀공명은 꿈 속에서 부쳐 두고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십시오." 자라가 그럴 듯하게 꾀자 토끼는 수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의 말은 비록 듣기에는 좋으나 매우 위태하오. 속담에 이르기를 팔자 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한다고 했소이다. 나처럼 육지에 살던 몸이 무엇하러 물나라에 들어가겠소? 용궁의 고생이 육지의 고생보다 더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소? 첫째로 숨을 쉴 수가 없을 것이니 세상 만물 중에서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으며, 둘째로 네 발은 멀쩡해도 헤엄을 칠 줄 모르는데 넓고 깊은 푸른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갈 것입니까? 팔자에 없는 남의 호강을 쓸데없이 욕심내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대를 따라 수궁으로 들어갔다가는 반드시 일곱 구멍에 물이 들어가 필경 죽을 것이오. 내 목숨을 속절없이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면 임자 없는 내 넋이 푸른 바닷물 속에 외로운 넋이 되어서 굴원과 짝이 될 것이니 일가친척과 자손들이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겠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십에 팔구는 위태합니다 그려."
자라가 웃으며 그럴 듯하게 대꾸했다. "토선생은 어찌 그리도 답답합니까?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릅니다 그려. 옛말에도 긴 강을 한 개의 갈대로 건너간다라고 했소이다. 여선문-송나라의 상량문을 잘 짓는 인물-은 광묘궁에 들어가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천하에 글 잘 짓는 이태백은 고래를 타고 달을 건지러 들어갔고, 삼장법사는 수륙 삼천 리를 건너가서 대장경을 구해왔고, 한나라 대 장건은 은하수에 올라가서 직녀의 지기석을 주워 오고, 서방세계의 아란존자는 연잎에 거북을 타고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쳤으니 생물의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데 공연히 죽을 것 같습니까?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렇듯 연약하니 될 말이오? 자고로 군자는 사람을 몹쓸 곳에 추천하지 않는 법이니 내가 어찌 그대를 나쁜 곳에 권하겠습니까?" 토끼가 마음이 솔깃하여 물었다. "나는 본디 산중에 깊이 살아 벗을 사귀지 못하였고 또한 평안이 살 곳을 찾고자 한 생각이 없지 않으니 그대가 빨리 가르쳐 주면 어떻겠습니까?"
자라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이놈이 드디어 내 계략에 말려드는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사뭇 점잖은 투로 말했다. "내가 그대의 얼굴을 보니 털빛이 누릇누릇, 해뜩해뜩하고 금빛을 띠었으나 염려할 필요가 없소이다. 목을 길게 타고났으니 고향을 바라보고 타향살이할 기항이요, 하관이 뾰족하니 위로 구하면 거슬리게 되어 무슨 일을 해도 어렵지만 아래로 구하면 순리대로 되어 온갖 일이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두 귀가 희고 잘 생겼으니 남의 말을 잘 들어 부귀를 누릴 것이요, 이마가 탁 틔었으니 용문에 올라 이름을 빛낼 것이요, 목소리가 부드러우니 사는 동안 험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토선생의 관상이 이처럼 좋으니 이 뒤에 영화와 부귀가 무궁하여 즐거움을 누리는데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당나라 명황의 양귀비와 한나라 무제의 승로반이요, 팔자로는 백자천손을 거느린 곽자의요, 부자라는 석승이요, 풍악으로는 요임금의 대황곡과 순임금의 봉조곡, 장자방의 옥퉁소가 저절로 따를 것입니다. 또한 사마상여의 거문고에 탁문군이 담을 넘어올 것입니다. 말솜씨는 전국시대를 휩쓸던 소진과 장의도 따라오지 못하고, 가슴에 품은 경륜은 팔진도로 지휘하던 제갈량이 저리 물러갈 것이오. 이러한 생김새와 너그러운 마음씨가 세상에 으뜸이요, 천하를 주름잡을 만한 영웅호걸입니다. 그대가 마침 팔딱팔딱 뛰는 버릇이 있으므로 이 땅에서만 묵혀 있어서는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즐거움을 결코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 전과같이 재앙만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 땅을 떠나야만 온갖 일이 뜻대로, 될 것이니 심사숙고하시오." 토끼가 듣고 나더니 기분이 좋아 코를 벌름벌름하면서 말했다. "내 얼굴도 뛰어나지만 그대의 관상보는 재주도 신통하구료. 내가 그대를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닙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한 것이 평생에 남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떠돌이꾼을 좋은 곳에 추천하니 고맙기가 그지없소이다. 그건 그렇고 수궁에 들어가면 벼슬하기는 쉬운지요?"
자라가 듣고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네가 드디어 내 꾀에 말려 들었구나.' 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토선생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군요. 역산에서 밭을 갈던 순임금은 당요로부터 임금자리를 물려받았고,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신야에서 밭을 갈던 이윤은 탕임금의 재상이 되었고, 부암에서 담을 쌓던 부열은 은나라 고종의 어진 재상이 되었고, 소를 먹이던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의 정승이 되었고, 빨래하는 여자에게서 밥을 빌어먹던 한신은 한나라의 명장이 되었으니, 이 세상이나 우리 수국이나 뽑히기는 일반이오. 어진 임금은 신하를 가려 쓰고, 밝은 신하는 임금을 가리는 법이니 우리 용왕께서는 문무를 다 갖추시어 어진 선비를 널리 구하는 중이올시다. 그래서 한 가지 능력과 한 가지 재주만 있는 자라도 모두 높은 벼슬에 올려 쓰십니다. 나같이 재주없는 인물도 벼슬이 외람되게 주부에 이르렀으니 더구나 토선생처럼 훌륭한 바탕과 뛰어난 문필을 지닌 인물이야 가기만 하며 부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용궁에는 역사책을 꾸미지 못해 태사관-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이 될 인물을 널리 구하고 있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근심한 지가 오래입니다. 보아하니 토선생의 글재주가 이 소임에 꼭 알맞을 듯합니다. 만약 그대가 중서군의 옛붓대를 잡아 동호의 의리를 밝혀 준다면 우리 수국의 다행이겠고 그대의 높은 이름이 온 세상에 떨쳐질 것입니다. 내가 토선생과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면 즉시 우리 용왕께 곧장 추천할 것입니다."
토끼가 듣고 마음이 솔깃했지만 아직도 의심이 있어 주저했다. "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지만 어젯밤의 내 꿈이 불길하니 마음에 저으기 꺼림칙합니다." 자라가 듣고 점잖게 말했다. "내가 젊어서 조금 해몽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대의 꿈 얘기를 한 번 듣고 싶소이다." 토끼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대꾸했다. "꿈에 칼을 빼어 배에 대고 몸에 피를 칠해 보이니 아마도 좋지 못한 일을 당할까 염려됩니다." 자라가 잠시 생각하다가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너무 좋은 꿈을 가지고 공연히 걱정하십니다. 그려. 배에 칼을 대었으나 칼은 곧 금이므로 금띠를 띌 것이요, 몸에 피칠을 하였으니 붉은 관복을 입을 징조입니다.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칠 것이니 이 어찌 부귀할 꿈이 아니겠오? 공자가 주공을 본 것은 성인의 꿈이요, 장자가 나비로 된 꿈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꿈이요, 제갈공명이 초당에서 꾼 꿈은 먼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의 꿈은 수국으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 위에 오를 것을 의미하니 이 얼마나 좋은 꿈입니까?"
토끼가 듣고 정신이 황홀해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높은 벼슬길에 오를 것만 같았다. 해서 기쁜 얼굴로 자라를 보며 말했다. "그대의 해몽 실력은 참으로 귀신같소이다. 소강절-송나라의 학자-과 이순풍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그대보다 잘 풀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꿈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 부귀는 손 안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나 넓고 깊은 바닷속을 어찌 들어가겠습니까?" 자라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토선생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 등에만 오르면 어떤 풍랑이라도 파선할 염려가 없고 무사히 용궁에 당도할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겠소?" 토끼가 제법 점잖은 체하며 사례했다. "그대가 벗을 위하여 이렇게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하니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대의 등에 올라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 마음이 불안하구려." 자라가 웃으며 말했다. "토선생은 참으로 고지식합니다. 그려. 위수에서 고기를 낚던 강태공은 주나라 문항과 함께 수레를 함께 탔고, 이문에서 문을 지키던 투영이는 신릉군의 웃자리에 앉았으며 부추산에서 밭을 갈던 엄자릉은 한나라 광무제와 한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그러니 친구를 위한 자리에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함께 들어가면 한평생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것이니 무엇이 미안할 것이 있습니까?"
토끼가 크게 기뻐하여 고개를 숙여 절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높은 은혜는 참으로 뼈에 사무치도록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못당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중에서도 저 몹쓸 사람들이 총을 둘러메고 암상스럽게 보챌 때는 송편으로 멱을 따고 접시물에 빠져 죽고 싶은 때가 그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맏아들 놈은 나무하는 아이에게 죄없이 잡혀가서 구멍밥을 먹어가며 갇힌 지가 어느덧 칠판 년인데 놓여 나올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놈은 사냥개에게 물려가서 까막까치의 밥이 되었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속이 상해서 어찌하면 이 원수 같은 세상을 하직할까 생각하며 밤낮으로 궁리하던 차에 천만 뜻밖에도 그대 같은 군자를 만나 밝은 세상을 보게 되니 이것은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도우신 것으로 압니다.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고 하더니 나와 같은 영웅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알 것입니까? 하늘에서 내리신 영웅이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헛되이 산중에서 늙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수국의 백성들이 어진 벼슬아치를 만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토끼는 의기양양하여 자라와 함께 바다로 떠나려고 했다. 이때 바위 뒤에서 한 짐승이 달려나오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의 수작을 처음부터 대강 들었도다. 이 어리석은 토끼야, 내 말을 자세히 들어보아라. 대개 부귀 공명이란 뜬구름과 같은 것이요, 또 차례가 있는 법인데 네가 이제 허무맹랑한 자라의 말을 듣고 죽을 땅에 가려고 하니 그 아니 불쌍하냐? 그리고 속담에도 이르기를 고향을 떠나면 천해진다고 했으니 네가 만약 용궁으로 들어간들 무슨 부귀를 갑자기 얻을 것이냐? 너는 헛된 욕심을 내지 말고 나의 충고를 듣거라." 토끼가 이 말을 듣고 두 귀를 쫑긋거리며 발을 멈추는 것이 머뭇거리는 빛이 완연했다. 자라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너구리였으므로 크게 노하여 속으로 욕을 했다. '내가 지금 토끼를 온갖 꾀로 달래 어서 거의 뜻을 이루었는데 저 원수 같은 너구리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방해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만약 어색한 빛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간사한 토끼 놈이 의심할 것이니 내가 먼저 너구리 놈의 말을 타박하여 토끼가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 해서 껄껄 웃으며 너구리를 향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찌 그리 무식하오? 조주땅 선비인 여선문은 일개 가난한 문사였으나 우리 수궁에 들어와서 영덕전의 사량문을 지었으므로 우리 용왕께서 야광주 열 개와 통천서각 한 상을 내리셨오. 이 소문이 천하에 알려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그대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구료. 더구나 태사관은 나라의 귀중한 벼슬이므로 내가 토선생의 문장과 필법을 아끼어 함께 가자고 한 것인데 그대가 공연히 남을 의심하여 마치 천한 벗을 죽을 땅으로 인도하는 것같이 말씀하니 이 무슨 논리입니까? 나는 남의 의심을 받아가며 토선생과 함께 가지는 못하겠오." 준절히 꾸짖고는 토끼를 보고 정중히 말했다.
"내가 토선생과 지난날에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어찌 그대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일을 권하겠습니까? 그대는 나와 불과 하루의 사귐이 있을 뿐이니 어찌 옛친구의 충고를 저버릴 수 있겠소. 나는 본래 우리 용왕의 분부를 받들고 동해로 사신차 갔다가 오는 길이므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떠나렵니다. 토선생은 부디 편히 지내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서서 가려고 하니 너구리는 무안하여 한편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토끼의 마음이 급해져 너구리를 향해 매섭게 꾸짖었다. "네가 무슨 일로 남의 앞길을 방해하느냐?" 하고는 급히 자라를 쫓아가며 크게 소리쳤다. "주부어른, 그대는 거기 잠깐 머물러 나의 말을 들으시오." 자라는 속으로 크게 기뻤으나 일부러 두어 걸음 더 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토선생은 무슨 일로 나를 쫓아옵니까?" 토끼는 점잖게 한 마디 했다. "그대는 왜 이다지도 마음이 넓지 못합니까? 내가 아무리 어리석으나 어찌 무식한 자의 부질없는 말을 곧이 들으려고 합니까. 내가 어찌 그대가 나를 생각해 주는 점을 모르겠습니까? 내가 잠깐 망설인 것을 탓하지 말고 어서 떠납시다." 자라가 크게 기뻐하여 서둘러 토끼와 함께 해변으로 내려갔다. 망망한 대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산에서만 살던 토끼 어찌 놀라지 않으랴. "아니, 저게 모두 물이요?" "그렇지요." "수국의 사람은 모두 저 속에서 산단 말씀이요?" "물론이지요." "콧구멍에 물이 들어갈 테니 숨을 쉴 수 있겠오?" "그렇기에 내 콧구멍은 조금만 뚫렸지요." "내 코는 구멍이 크니 어찌하란 말씀이요?" "쑥 잎을 뜯어 막으시오." "얼마나 깊으오?" "한 번 빠지면 한 달을 내려가도 발이 땅에 닿지 않으오."수작하며 토끼를 등에 업고 푸른 물결에 뛰어들어 남해 용궁으로 향했다. 토끼는 자라의 등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소상한 깊은 물은 눈앞에 고요하고 동정호 넓은 호숫물은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 하겠구나. 토끼는 마음이 흐뭇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하늘의 도움으로 자라를 만나 세상의 티끌과 산중의 고생을 다 내던지고 수국으로 들어가사 부귀를 누릴 것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해서 자기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서 한 곡조의 노래를 불렀다. <세상을 하직하고 길을 떠나니 물나라가 푸른 산보다 크구나. 자라 등에 높이 앉아 한없이 가고 또 가니, 흰 구름이 오고 가며 웃는도다. 내가 장차 사기의 붓대를 잡으면 수국의 백성들이 모두 무릎을 꿇을 것이로다. 부귀와 영화에 맑고 한가함을 겸하였으니 평생의 편안함을 기약하는도다.> 토끼는 노래를 마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자라가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토끼란 놈이 정말 교만하구나.' 그러나 내색은 않고 노래로 화답했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을 품고 바쁘게 청산을 오고가는구나. 이 몸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푸른 물결을 박차고 갔다 오는구나.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세우니 대왕의 기쁜 안색을 뵈오리라. 우리 대왕의 병환이 쾌차하시고 나라의 평안함을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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