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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가 천문대 맞나요? 논란 속 진실은? - 박은봉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이자 세계 최고의 천문대.’ 2007년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쓰여 있는 첨성대.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첨성대는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다. 논쟁의 핵심은 첨성대의 정체성, 즉 첨성대가 무엇을 위한 건축물인가라는 점에 있다.
제기된 주장은 매우 다양하다. 천문관측을 위한 천문대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주장, 해시계이거나 혹은 24절기를 재는 규표圭表라는 주장, 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라는 주장, 수학적 상징물이라는 주장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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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에 대해 이렇게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천문대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경주에 가서 첨성대를 직접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첨성대는 그 명성이 불러일으키는 상상과는 딴판으로 너무 소박한 모습이지 않은가.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라면서 높은 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평지에 있는 데다 키도 나지막하다. 게다가 그 꼭대기는 한두 사람 올라서기도 불편해 보인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천문관측을 했을까, 과연 천문대가 맞나 싶다. 칭송의 대상이 되곤 하는 우아한 곡선미는 천문대로서의 실용성에선 불편하기 짝이 없게 보인다.
제단 혹은 상징물?
첨성대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그 구조와 모양이 천문관측을 하기에 불편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 입론의 근거를 두고 있다. 첨성대는 몸체가 총 27단으로 되어 있고 밑에서 13단째부터 15단에 걸쳐 네모난 문이 나 있는데 문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쯤 된다. 이 문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 안으로 들어가면 12단까지는 흙과 자갈이 차 있다. 이 흙이 원래 차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천 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절로 차오른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다시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갔을 거라고 추정된다.
첨성대의 외부는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내부는 다듬지 않은 돌 그대로다. 사람이 그 안으로 드나들었다면 어째서 다듬지 않은 채로 두었을까? 그리고 첨성대 꼭대기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하고 있다. 천문관측 기구를 설치하고 별을 관찰하기에는 옹색한 공간이다. 거기서 할 수 있는 천문관측이란 간단한 기구로 하는 소박한 수준의 것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다. 천문대설에 반대하는 반론자들에게 첨성대는 생김 그 자체가 충분한 반론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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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가 아니라면 첨성대는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반론 중 주목받는 것은 제단설과 상징물설이다.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제단, 아니면 농업신인 영성靈星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천의례를 지내는 제단이었을 거라는 주장, 혹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 책인 『주비산경周?算經』에 담겨 있는 원리를 반영한 상징적인 탑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첨성대의 위치와 건립 연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에 따르면, 첨성대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승과 도리천을 연결하는 통로, 즉 우주 우물이다. 즉위 초부터 여왕이라는 점 때문에 왕권에 도전을 받았던 선덕여왕은 왕으로서의 권위를 탄탄히 하기 위해 분황사와 영묘사,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고, 뒤이어 첨성대를 세워 하늘 세계, 즉 도리천과 자신을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천문을 묻는다’는 것
과연 첨성대는 무엇 하던 곳일까? 첨성대의 정체성을 알려줄 단서는 없을까? 옛 기록들을 살펴보자. 첨성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다. 『삼국유사』「기이편」 ‘선덕왕 지기삼사’조를 보자.
“별기別記에 말하기를, 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단 한 줄 언급했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첨성대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것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선덕여왕 때에 돌을 다듬어 대를 쌓았는데, 위는 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높이는 19척이며 그 속은 비어서, 사람이 속으로부터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
『증보문헌비고』『서운관지』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역시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만 ‘천문을 관측한다’는 대목은 없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보다 250여 년 뒤인 18세기에 안정복이 편찬한 역사책 『동사강목』에는 훨씬 자세한 설명이 달려 있다.
“신라에서 첨성대를 만들었다.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축조하였는데, 위는 방형이고 밑은 원형이며 그 속은 비게 하여 사람이 그 속으로 통해서 올라가게 되었는데 높이가 19척으로 천문을 관찰하고 분침??(요망스런 기운)을 살펴보는 곳이다.”
요망스런 기운을 살피다니, 무슨 뜻일까? 전근대 사회에서 천문관측은 정치의 일부였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는 농사의 풍흉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으며 농사의 풍흉은 곧 정치의 잘잘못, 위정자인 왕의 잘잘못으로 직결되었다. 전근대 사회의 왕들이 천문관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일식과 월식을 관찰하거나, 가뭄이 들면 왕이 몸소 기우제를 지내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면서 근신하는 태도를 보이곤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조선시대에 승정원에서 매일 발행한 신문인 《조보朝報》에 단골로 실린 기사는 특이한 자연현상이나 천재지변에 관한 것이었다. “혜성이 나타났다” “달에 점이 생겼다” “네 발과 네 날개를 가진 병아리가 태어났다” “달걀만 한 우박이 내려 나는 새가 모두 죽고 사람도 놀라 죽었다”… 이런 기사의 말미에는 어김없이 천재지변의 원인은 인륜을 어그러뜨리고 정치를 잘못한 탓이라는 논평이 달리곤 했다.
이렇듯 천문관측은 정치의 일부였기 때문에 천문관측소는 왕궁 가까이 있게 마련이었다. 고려시대의 천문대나 조선시대의 관천대도 왕궁 가까이 혹은 왕궁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신라의 첨성대가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왕궁인 월성 근처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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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이름 그대로 ‘별을 보는 곳’이다. 그런데 당시 ‘별을 본다’는 것, ‘천문을 묻는다’는 것은 현대 천문학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현대 천문학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별의 운행과 변화상을 관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묻는’ 것은 하늘의 뜻을 물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는 정치행위인 동시에,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별을 보고 천문을 묻는 행위는 풍년을 기원하고 평온무사한 삶을 기원하는 제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정복이 말한 ‘요사한 기운을 살폈다’란 바로 그런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천문대설과 제단설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보완해주는 것으로, 고대 사회에서 천문대는 제단이었고 천문관측 활동은 제례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첨성대를 세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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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 별을 관측하는 일은 점성술과 구분되지 않았다. 하늘의 변화는 정치와 일상생활의 변화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삼국유사』「왕력편」 ‘내물마립간조’에서는 첨성대를 ‘점성대占星臺’라 하고 있다. 내물 마립간이 묻힌 릉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점성대 서남쪽에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관측과 점성술의 밀접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첨성대가 만들어진 선덕여왕 대는 한마디로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있었으며, 여왕의 지도력은 대내외적으로 불신당하고 있었다. 당 태종은 군사지원을 청하는 신라에게, 신라의 위기는 여자가 왕 노릇하기 때문이라면서 사람을 보내줄 테니 신라 왕으로 삼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으며, 상대등 비담은 여왕이 통치를 잘못한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선덕여왕은 안으로는 왕권을 세우고 지도력을 강화하며 밖으로는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선덕여왕 때 황룡사 9층탑을 세운 건 안팎으로 조여드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의 일환이었다. 마치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맞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것처럼. 첨성대 또한 천문관측소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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