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대 씨 아파트 베란다는 망루입니다. 대형 망원경이 언제 침탈할지 모르는 적을 향하여 스물네 시간 번뜩이는 눈으로 감시합니다. 거실은 야전부대 상황실입니다. 노트북 세 대가 시시각각 변하는 적의 동정을 파악하여 기록합니다. 적에게 고립된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지원을 요청합니다. 안방은 물품 보급창고입니다. 생수와 라면, 그리고 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계영대 씨는 비밀 루트를 통하여 끊임없이 물품을 조달받습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노트북만 다섯 대입니다.
계영대 씨는
쌍용자동차 ‘강제’ 희망(?)
퇴직자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직원들은
공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수십 년간 일해 온 공장에 77일간을 스스로 몸을 옥죄고 있었습니다. 물이 끊기고,
전기가 끊겼습니다. 산짐승이 되어 공장을 지키던 계영대 씨는 68일째 되는 날, 백기를 들고 공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친형 계영휘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형, 미안해. 먼저 나갈게.’ 자진해서 옥쇄를 풀고나오면 선처를 베풀겠다는 선무방송을 듣고, 계영대 씨는 동료와 친형을 남겨두고 공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곧바로 손목에
수갑이 채어지고 온몸이 오랏줄로 묶였습니다.
아파트를 망루로 만든 쌍용차 강제 '희망' 퇴직자
계영대 씨가 ‘선처’를 받아 간 곳은 유치장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내가 공장을 그만두기를 희망해서 스스로 사직을 한다’는 ‘퇴직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공장을 다니겠다는, 그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식구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계영대의 진심은 갈기갈기 찢기고 정말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서’를 써야 했습니다. 계영대 씨가 오랏줄과 수갑에서 풀려나서 유치장 너머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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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8월 5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을 점거중인 노조원들이 인근 건물을 모두 장악한 경찰과 사측 직원들의 공격을 피하며 바리케이트 저지선을 만들고 있다. ⓒ노컷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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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계영대 씨는 자신의 아파트가 공장이 되었습니다. 지키지 못한 공장을 자신의 집에 세우고 다시는 나의 진심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망루를 세우고 상황실을 꾸리고 보급품을 준비했습니다. 계영대 씨의 눈은 망원경 너머 세상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 년이 흘렀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가해진 야만의 77일이 끝난 지. 계영대 씨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전투 상황실에서 계영대 씨와 살 수 없었던 아내와 자식은 그 전에 전쟁터를 탈출했습니다. 68일째 공장을 나왔던 계영대 씨. 이번에는 홀로 남더라도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포로가 되어 병원에 갇혔습니다.
해고가 옳은지 그른지, 노동자들의 공장 지키기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말하려고, 기억하기조차 끔직한 일 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닙니다.
평택을 고용
촉진지구로 지정해
일자리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건설현장 날일 아니면
대리운전이라는 말도 꺼내기 싫습니다. 공장에 있던 노동자들이 짐승보다 못한 야만에 시달려 거의 절반 남짓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공장에 있던 600명 가운데 부상자가 290명이었다는 이야기도 이제 그만 하고 싶습니다. 이미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목숨을 버려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호소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대한민국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그냥 묻고 싶습니다. 뜨거운 심장에 묻는 게 아닙니다. 냉철한 이성에 묻는 것도 아닙니다. 2010년 대한민국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국가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니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대한민국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사람의 눈이 필요할 때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와 지식과 경험이 쌓여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뭔가 앞서가는 사고, 새로운 철학, 뛰어난 이론, 훌륭한 정책을 내놓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찾는 것입니다. 경쟁의 눈, 생존의 눈, 물질의 눈, 야수의 눈, 파괴의 눈, 강자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 냉혈이 아닌 따뜻한 붉은 피가 돌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기쁘면 함께 웃고, 어려움은 나누고, 더디더라도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사람, 그 본연의 눈.
한여름입니다. 이 무더위 언제 지나가나 한숨이 푹푹 나오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추위 언제 지나가나, 봄은 언제 오나, 호들갑떨며 두툼한 외투 깃 올릴 날, 그리 멀지 않았으니. 조용히 귀 기울여 보세요. 스무날 살고 지는 매미 울음 사이로 귀뚜리 울음 들릴 겁니다. 가만히 눈여겨보세요. 창창하게 푸르던 나뭇잎에 가을이 살포시 물들었습니다. 귀 기울이고 눈여겨 이웃을 바라보세요. 아, 그곳에 계영대 씨가 있다고요? 곳곳에 망루가 늘어가고, 망원경이 세상을 향하여 사람을 찾고 있다고요?
일 년 전 쌍용자동차를 떠올리며, 굳이 절망을 되뇌고 싶지 않습니다. 위정자를 꼬집고 싶지도, 사람이 없는 공장에 삿대질하기도 싫습니다. 내
얼굴에 사람의 눈과 귀가 아직 달려 있는지 손으로 매만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