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산문 ‘강가에서’를 매주 화요일에 싣습니다. 산문 연재를 위해 13년 만에 고향 집으로 다시 들어간 시인이 고향 마을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교 들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들려줄 것입니다.
‘화무삼일홍’ 너무 허망한 봄
삶도 그러하니 건방떨지 말라
이 산 저 산 꽃들이 한 차례 산과 들을 휩쓸고 지나가고 산천은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간다.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그 사이를 가르며 보라색 오동 꽃이 피어난다. 오동나무 오동 꽃이 피어나는 산에 꾀꼬리가 울며 노랗게 솟으면 층층나무, 때죽나무, 이팝나무 같은 큰 나무에 하얀 꽃이 핀다. 커다란 나무에 핀 하얀 초여름의 꽃들은 첫 출산의 고통을 통과한 여인처럼 성숙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이제 반성은 끝났다. 이제 지루한 녹음이 우리들의 위에 드리워지리라.
올해는 꽃들이 열흘 이상 앞서 피었다가 졌다. 섬진강에 매화꽃이 핀다고 온갖 난리(정말 매화꽃이 핀 곡성, 구례, 화개, 광양, 하동 쪽에 가면 꽃이 ‘난리를 피운다’는 말이 맞다.)들을 피우다가 구례 산동 산수유로 그 난리가 옮겨 붙더니, 이게 웬일인가. 이 꽃 저 꽃 온갖 지초들이 그 시기를 앞당겨 한꺼번에 우우우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벚꽃이 피고 산벚꽃이 피고 산복숭아꽃이 피고 그 사이사이에 진달래가 피며, 네가 먼저 피어라, 아니다 나는 아직 필 때가 아니니 네가 먼저 피어라, 사양하고 권하며 이렇게 저렇게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꽃들이 순서를 지키며 차례차례 피어나야 하는데, 이놈의 꽃들이 한꺼번에 무엇에 쫓기듯 우우우 피어나는 것이다. 꽃들이 그렇게 우우 피었다가 가 버리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날씨가 갑자기 무더워져서일 터인데, 꽃들이 하루나 이틀 동안만 피었다가 금세 또 우수수 져 버리는 게 아닌가.
산벚꽃이 피면 그래도 한 사나흘은 그 화사한 꽃이 산을 환하게 물들이며 사람들 속을 환장하게 뒤집어 놓기도 하는데, 이건 아니었다. 해 저문 날 산을 바라보며 저 산 산벚꽃 좀 봐라! 하고 일렀다가 그 이튿날 그 꽃을 산에서 찾으면 그냥 희미하게 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꽃 볼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꽃이 금세 지니, 꽃 피고 지는 일이 아무리 허망하다 하나, 이건 너무 허망한 일이다. 내가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이런 예는 없었던 것 같다. 더디게 온 봄이 이렇게 도망치듯 서둘러 자리를 털고 뜬 것은 기후 변화가 분명해 보인다. 봄 날씨가 추웠다가 따듯해졌다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기온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놈의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 버리니, 나무와 풀들이 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것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은 자연 아닌가. 사람들만 늘 더디게 뒷북을 치며 호들갑들을 떤다. 아무튼 봄은 “날씨가 왜 저렇게 미쳤다냐?”라는 우리 어머니의 험한 말씀만 남기고 허망하게 떠났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학교에는 유독 꽃들이 많이 피었다. 80년에 가까운 연륜을 자랑하는 벚나무의 꽃은 그 꽃빛이 희고 탐스럽다. 그 꽃이 피었다가 지며 꽃잎들이 내가 앉아 있는 집 을 넘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나는 감탄하고 감동했었다. 그러나 허망하다. 꽃들은 벌써 그 흔적도 없는 것이다. 거짓말 같다. 생이 또한 이런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일이 이렇게 다 일장춘몽이 아닌가. 열흘 가는 꽃 없다더니, 올해는 열흘은커녕 사흘 가는 꽃도 드물어졌다. 꼭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꼬라지’하고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가. 사람들아! 지난봄 그 허망한 꽃들을 생각하라. 그리고 제발 건방들 떨지 마라.
5월이다. 강가에 다시 섰다. 강물을 다시 보기 위해서다. 강물은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강물은 우리의 거울이다. 강물이 죽으면 우리들이 죽고, 강물에서 고기들이 쫓겨나면 사람들도 강물에서 쫓겨날 날이 머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 앞 강물이 소 탕 물(소 외양간에서 나오는 물)같이 갈색으로 변했다. 올봄 비가 오지 않아서일 터이지만 강물에서 가 나고, 고기들도 눈에 뜨이게 줄어들었다.
“다 망해부렀다” 어머니의 한탄
해 저문 산 그늘 서러운 찔레꽃
나는 앞으로 강으로 세상을 질타하고, 강으로 울고, 강으로 웃고, 강으로 분노하고, 강으로 세상의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강가에 살고 있는 내 삶이 그러하였다. 산이 강을 두고 가지 않은 것처럼 나는 강을 두고 어디로 간 적이 없다. 징검다리 징검돌에 앉아 빨래하는 어머니 등에 업혀 흘러오는 강물을 바라보고, 흐르는 강물에 손을 담근 이래 나는 강물을 떠나지 않았다. 내 일생은 눈을 뜨면 강물이었다. 잠을 잘 때도 늘 물소리가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저문 물은 부산하고, 새벽 물 소리는 조용했으며, 아침 물 소리는 서서히 깨어났다. 그 강물을 따라 살던 마을 사람들 중에 아직도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강 그 사람들의 세세한 일상도 여기 옮길 것이다.
나는 그 물을 머리맡에 두고 평생을 살았다. 어디 가서 잠을 자든 그 강물은 내 머리맡에서 흐른다. 그곳이 어디든 잠을 자다가 조금만 마음을 모으고 귀를 기울이면 금세 강물 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내가 사는 마을 산과 강은, 그리고 거기 사는 오래된 마을 사람들은 내 몸과 같다. 내 육체는 내 마을 흙으로 빚어졌다. 내 피는 그 강물로 이어져 있어서 강물 아프면 내가 아프고 그 땅이 아프면 내 몸이 아프다. 그 강물이 울면 나는 강물을 뒤로하고 돌아앉아 산을 안고 운다.
나는 그 강가에서 태어나 그 강가에서 자라 그 강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일찍,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사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 가치에 내 생을 걸었고, 또 그렇게 아이들 곁에서 강을 노래하며 살았고, 또 그렇게 남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내가 생긴 그만큼만 살 것이고 또 그만큼만 쓸 것이다.
강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선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그 강 길이 옛길이나 사람들은 떠나가고 또 죽고, 사람들이 강을 떠나는 것처럼 고기들도 강을 떠났다. 어느 날 10여년 전에 찍은 동네 어른들 사진을 보았는데,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아침에 어머니와 밥을 먹으며 동네 사람들이 모두 28명이라고 했더니, 남은 사람들도 서넛 빼고는 성한 사람이 없다고 하시며 “동네가 다 망해부렀다”고 하셨다. 강변에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해 저문 산그늘 속의 찔레꽃은 왜 그리 서러운지, 산그늘 아래 파르르 살아나는 검푸른 풀빛은 지금도 나를 긴장시키는지. 산과 산,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들이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나는 이때를 못 견뎌했다. 그리하여 나는 땅거미가 밀려오는 이 어둠을 견디지 못해 산과 강변을 헤매곤 했다. 그러다가 어둠이 밀려오면 모든 사물들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나도 마음이 가라앉아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불을 밝혔던 것이다.
강물은 늘 자기가 거느린 모든 것들을 강물로 다 불러들여 흐르게 한다. 나도 강물을 따라 얼마나 흘렀던가. 내 글이 내 나라 내 산천에 저 강물처럼 굽이치며 하얗게 부서지고, 산굽이를 힘껏 들이받으며 외치고, 작은 자갈돌들을 돌아가고, 희고 고운 모래 위를 흐르며 그렇게 또 유유하고 자적하기를 바란다. 지금 강변엔 짙은 남청색 붓꽃이 한창이다. 붓꽃이 활짝 피기 전 그 붓끝 같은 붓꽃을 뽑아 침을 묻혀 바위에 이름을 쓰던 생각이 난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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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김병호
1969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고 자람.
홍익대 시각과 졸업.
그린 책으로 <똥은 참 대단해> <짱구네 고추밭 소동> <바보별> <싸움소> <똥 싼 할머니> <저것이 무엇인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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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0돌] 연재 작가 공지영·김용택·안도현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