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흔히 ‘작은 우주(小天地)’에 비견된다. 50억년 지구의 역사가 사람의 몸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천지 자연의 변화에 따라 몸과 마음이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데, 옛 사람은 이를 ‘음양(陰陽)의 조화’라고 표현했다. 양생의 비결은 계절과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 섭생과 생활을 조절함에 있다. 음양의 조화를 잃으면 건강을 잃게 된다.

폭염의 계절인 한여름(盛夏)은 양기가 극(極)에 도달하는 시기이다. 자연의 과정은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자라며 한여름에 질적 변화를 거쳐 가을에 결실을 맺는 순리를 따른다. 한여름이 한여름답지 못하면 성장이 질적으로 변화하지 못해 가을에는 쭉정이만 남는다. 사람의 몸도 다르지 않아 ‘덥고’ ‘낮이 길고’ ‘습도가 높은’ 한여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자율신경 실조(失調)현상에 시달려 알 수 없는 피로가 쌓여만 간다. 낮이 길어지면 활동시간이 늘어난다. 휴식시간은 그만큼 짧아져 체력 소모가 많아지고 만성적인 수면부족이 뒤따른다. 찜통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인체는 대사 활동을 높이는데, 지속적인 에너지 발산 현상이 뒤따라 쉽게 피로해진다. 더위와 함께 오는 높은 습도는 불쾌지수를 높이고, 인체의 대사 활동을 저하시킨다. 가중된 스트레스는 짜증으로 대표되는 각종 심신증(心身症)을 일으킨다. 이래저래 여름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를 유발하는 계절이다.

여름철 건강 관리의 요점은 수면과 영양 부족을 해결하고 정신적 긴장을 낮추는 데 있다.만성적 수면 부족 해소법으로는 낮잠이나 순간 수면이 그만이다. 점심시간 후의 가벼운 낮잠은 정신노동자와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보약이 된다.

전통적인 여름 보양식으로는 삼계탕과 개장국 등이 있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음식들로 고단백 식품이다. 빠져나가는 만큼 채워야 하고, 허(虛)한 장기는 보(補)해야 한다는 체험적 지혜의 산물이자 원리다. 자연의 양기가 극에 달하면 이에 대응하는 인체의 양기도 극대화해야 하며, 몸의 허한 곳은 보완해야 한다.

한방에서는 여름철 ‘보기조양(補氣助陽)’에 좋은 약재로 다섯 가지를 꼽는다. 인삼과 황기, 오미자와 하수오 그리고 더덕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기(氣)를 보하고 진액을 보충하며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공통 효과를 나타낸다. 하루 4g 정도를 달여서 건강차로 복용하면 더위를 이기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우선 인삼은 ‘원기를 보하고, 갈증을 없애고 진액이 나오게 한다. 외부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내부의 균형을 잡는다’는 설명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약리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간혹 인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체질의학에서는 열이 많은 ‘소양인(小陽人)’이 여기 해당한다. 열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아픈 증세가 나타난다. 그러나 치료 목적이 아닌 건강차로 달여 먹을 경우에는 면역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며, 큰 문제는 없다. 삼계탕을 먹어도 인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한증(多汗症)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황기는 인삼과 더불어 기를 보하는 대표적 약재다. 땀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아물게 하고 원기를 보해 면역력을 조절한다. 피부가 약하고, 땀을 많이 흘리며, 잔병이 많은 사람으로 특히 인삼이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 적절하다.

다섯 가지 맛을 낸다는 오미자는 오래 복용하면 면역력을 키워 피로감을 없애준다. 정력을 증강시키는 효과도 있다. 중추계통에 작용해 지혜 발달 능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갈증을 멎게 하고, 혈당치를 내려주는 효과가 있어 당뇨가 있는 사람에게 특히 적절하다. 간 효소의 활성을 돕고, 신경 쇠약에도 효능이 있다. 수험생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적당하다. 오미자는 차로 마시는데, 잘 씻은 오미자를 냉수에 10시간 정도 담가 두었다가 발갛게 우러난 물을 끓여서 마시면 된다. 오미자를 직접 끓이면 탄닌 성분이 많이 빠져나와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하수오(何首烏)에 대해서는 머리가 검은 아버지가 백발의 노인 아들을 야단쳤다는 고사(故事)가 전해온다. ‘어찌 머리가 검어지지 않겠는가’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장복하면 회춘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수오는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허약 체질로 허리와 무릎이 약한 사람, 병적인 백발(白髮), 조기노화 현상에 도움이 된다. 혈액의 흐름을 도와서 피부 가려움증에도 좋다. 체질이 허약하고, 만성 피로감 같은 성인병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더덕은 효능이 인삼과 비슷해‘사삼(沙蔘)’이라고도 한다. 뿌리에 혹이 많아 마치 두꺼비 잔등처럼 더덕더덕하게 돼 있다고 해서 더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맛이 달고 서늘한 기운을 갖고 있어, 몸 안의 부종을 치료하고 축적된 독성물질을 배설해주는 효능이 있다. 거담 효과가 탁월해 호흡기 질환의 치료제로 많이 쓰인다. 감기로 인해 열이 심하고 갈증을 느끼며 물을 자주 마시는 사람에게 좋다.

체력 소모가 많을 때는 허한 곳부터 탈이 난다. 노년층은 근본 원기를 보하는 고본단(固本丹) 계열, 정신을 많이 쓰는 수험생은 총명탕 계열로 부족한 곳을 보하면서 다섯 가지 약재를 이용한 건강차를 병행한다면 한여름의 폭염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더위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해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안고 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폭염은 사람이나 자연에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힘으로 더위를 피하려 해봐야 얻는 것은 냉방병뿐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참선방(參禪房)에서는 여름에 일부러 선풍기를 없애기도 한다. 더위를 안고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잘 쉬고, 잘 자고, 잘 먹고, 부족함을 보충하면 찜통 더위는 일년의 보약이 될 수 있다. ▒

여름철 ‘보기조양(補氣助陽)’ 약재 다섯 가지

인삼  원기를 보하고 갈증을 없애며 진액이 나오게 한다.
황기  다한증에 효과. 상처를 아물게 하고 면역력을 조절한다.
오미자  피로와 갈증 없애고 정력 증강에 좋다. 냉수에 우려먹어야 한다.
하수오  장복하면 회춘 효과. 동맥경화, 피부 가려움증에 좋다.
더덕  몸속 부종을 치료하고 독성물질 배설. 거담 효과도 탁월하다.

/ 김 경 현 | 서울대 전기공학과, 경희대 한의대 졸업. 마산불교한방병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