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선인들 이야기
미녀는 괴로워
고려시대라면 근 오백년 동안 개성에 도읍하였다. 창업지주인 태조 왕건 자신이 해군 출신이고, 중국을 읗해 문호를 열어서 개성의 외항은 자못 벅적거렸다. 개성은 임진강과 예성강을 양옆으로 둘렀으며, 전면은 한강수를 역류로 받고, 강화도가 수구를 막았는데 김포와 사이의 염하를 통해 남도로 연락한다. 물에 둘러싸여 물길로 사방 연결되는 위에, 서쪽으로 예성강만 건너면 황해평야의 기름진 땅이 펼졌으니, 참으로 하늘이 낸 좋은 땅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중국은 당이 멸망한 후 고도의 문화를 지닌 중국족의 세력이 차츰 남으로 밀려나고,북쪽에는 강력한 서북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어, 그전과 같이 육로로는 통할 수 없는 실정이라, 중국과의 교류는 뱃길로 황해를 건너다닐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자니 개성 가까이 예성강 하구에는 자연 국제적인 항구가 형성되어 자못 일성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런데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여기서 한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물자를 교역하러 왔던 중국의 돈 많은 상인 하두강이라는 이가 어떤 부인을 보고 홀딱 반해 버린 것이다. 오매불망 그 부인 모습에 정신이 나간 하대인은 골몰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한 꾀를 내었다. 어떤 경로로 밟았는지 그 부인의 남편되는 이와 알게 되고, 둘이는 시간만 나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며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상대방은 장사 수완으로 닳고 닳은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 바둑 수완은 서로 빤히 들여다 보이게쯤 되었고, 하대인은 지는게 분했는지 돈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제의해왔다. 뻔한 결과로 하대인은 연일 상당한 재물을 내기에서 잃었다. 오기가 났든지 내기에 거는 금액을 높여 갔으나 그의 바둑 수완으로는 부인의 남편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곱상한 아내를 둔 주인공-고려 사람이니(까오따아런) 이라고 해 두자- 은 한밑천 톡톡히 잡았다. 그러던 어느날 하대인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제의하는 것이다.
“정말 까오따아런 바둑 수완은 못 당하겠어.
"울리 사람이 그동안 내기에 다 잃고 이제 남은 거라곤 배 한척 하고 불알 두 쪽밖에 없어 해. 마지막으로 한 번 내기하는데 나는 남은 재산 다 걸고 따아런은 부인을 걸면 어때해?”
“이 사람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나마 다 잃으면 만리타국에서 알거지가 될 텐데, 그땐 어떡하려고...”
“괜찬아 괜찬아, 울리 송나라 사람 의리있어 해. 친구들 배 타고 귀국하면 울리집 장원 아직도 더 있어 해.”
사람좋은 고대인은 상대방 바둑 수완쯤 익히(?) 아는 바라 괘히 승낙하고 판을 대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몇 점 놓으면서 보니 자기보다 몇 수나 위다. 점점 위기에 몰려든 고대인은 한 판을 다 못 두어 돌을 내려 놓고 말았다.
“휴우!”
“까오따아런! 장사꾼은 신용이 제일이야. 당신 아내는 이제 울리 사람 꺼다. 알았지?”
이리하여 아내를 내기에 잃은 고대인은 그 동안 내기로 딴 재물이 있으니 아내를 값을 쳐서 팔아먹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아내를 싣고 가는 배의 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강 언덕에 멀거니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지어서 부른 것이 예성강곡이다. 천하일색을 손에 넣고 의기양양해서 돌아가던 배는 바다 복판에서 방향을 잃었다. 풍파도 없는데 한자리를 빙빙 돌며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나서 점을 쳐보니 부인의 높은 절개에 감동하여 하늘이 시킨다는 풀이다. 뱃사람들은 요동을 떨며 뱃머리를 돌렸고, 일동의 목숨도 온전할 수 있었다. 무사히 돌아와 남편을 대면한 부인은 눈물을 삼키면서, 노래 한곡조를 불렀는데, 이것이 예상강곡 후렴으로 물론 가사나 곡은 전하지 않는다.
왕건의 조상
고려시대의 정사인 <고려사> 첫머리에 김관의의 편년통록 기록이라면서 태조 왕건의 조상에 대한 기술이 재미난다. 성골장군 호경이라는 이가 친구들과 열이서 사냥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바위 굴에서 밤을 나는데, 호랑이가 굴 어귀에서 으르렁거리고 떠나질 않았다. 누군가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라고 열 사람의 갓을 차례로 던졌더니 다 물리치고 호경의 것을 덮쳐서, 호경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는데, 범은 간 곳이 없고 굴이 탈싹 내려 앉으며, 나머니 아홉 사람은 모두 깔려죽고 말았다. 무사히 살아난 것이 고마워 산신께 제사지냈더니, 산신이 자기와 부부가 되자면서 함께 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혼이 옛 아내에게 다니면서 강충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가 이인의 의견을 따라 송악으로 자리잡아 원 노릇을 하며, 대단한 부자로 지냈다. 두 아들 중에서 아우가 중이 되어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돌아왔는데, 꿈에 곡령에 올라가 오줌을 누어 온 세상을 덮은 것을 형에게 얘기했더니, 이제건이 형을 사위로 삼아 두 딸을 낳았다. 큰딸이 또한 오관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어 세상을 덮은 꿈을 꾸고 동생인 진의에게 얘기하였다. 그랬더니 진의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든지, 비단 치마를 줄테니 그 꿈을 팔라고 했다. 언니가 응낙하자 동생은 그 꿈 얘기를 다시 하라고 하며, 그것을 받아 품는 몸짓을 세 번 하더니 매우 흡족한 눈치였다. 그때 당나라 숙종 황제가 아직 임금이 되기 전, 천하를 두루 유람하고자 명황 천보 12년 봄, 바다를 건너 패강 서포에 왔는데, 마침 조수가 빠져 개펄이 드러나서, 수행원이 배 가운에 엽전을 꺼내서 펴고 상륙한 때문에, 그것을 전포라고 하게 되었다. 드디어 송악군에 이르러 곡령에 올라 남으로 바라보고
“여기가 도읍할 만하다.” 라고 평하고 여러 경로를 거쳐 보육의 집에 묵게 됐는데, 주인의 두 딸을 보자 마음에 기뻐, 옷이 튿어졌는데 좀 꿰매주지 않겠는가라고 한다. 보육이 상대방이 중국의 귀하신 몸인 것을 알고, 곧장 큰딸에게 따르라고 일렀더니 간신히 문지방을 넘어서자 갑자기 코피가 터져서, 대신 작은딸을 들여보내 시중들도록 하였다. 머문 지 달포 만에 아기 가진 것을 알게 되자, 떠나기에 임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대당의 구인이로다. 남자아이를 낳거든 이 활과 살을 주라.”
과연 아들을 낳으니 이 분이 작제건인데 훌륭히 커서, 열여섯이 되자 어머니가 감춰뒀던 활을 내어주니 백발백중이라, 세간에서 이르기를 신궁이라고 하였다. 이에 자기 아버지를 찾아 뵈려고 장사꾼 배를 빌어 탔는데, 바다 복판에 이르더니 구름과 안개로 사방이 캄캄하여 사흘이나 나아가지 못하게 되자, 배안의 사람들이 점쳐 보고는 고려사람을 없애야 된다고 야단이다. 작제건이 활과 화살을 지닌 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더니, 밑에는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달랑 서게 되었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고 바람이 일어 장사배는 나는 듯이 떠나 버렸다. 이윽고 늙은이 하나가 나타나 절하며 이르기를
“나는 서해의 용왕인데 매일 밝을 녘이면 늙은 여우가 광채를 뿜어 부처의 모습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과 안개 사이에 일월성신을 늘어놓고, 북 치고 소라 불며 이 바위에 앉아 옹종경을 외워대면 내 골이 빠개지는 듯 아프구려! 듣자니 낭이 활을 잘 쏜다기에 나의 괴로움을 없애달라고 붙잡았소.”
제작건이 쾌히 응낙하고 기다리는데, 정한 시각에 과연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울리며 서북으로부터 내려오는데, 하도 장엄하여 혹시나 진짜 부처나 아닌가고 망설였더니, 노인이 다시 나타나
“틀림없이 늙은 여우니 마음놓고 쏘라”고 한다. 그래 잔뜩 당겨서 쏘지 떨어지는데 과연 여우다. 노인이 기뻐서 자기 궁전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의 소망을 물어 자기 딸을 주고 또 많은 보화를 주어 돌려보냈다. 그 용녀가 새로 우물을 파고 그리고 들어가 친정인 용궁으로 왕래하는데 남편과 약속을 했다.
“내가 우물로 왕래하는 것을 보아서는 안되오. 지키지 않는다면 가서 돌아오지 않겠소이다.”
그런 것을 하루는 답답해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몰래 엿보았더란다. 소녀와 함께 우물로 들어가더니, 황룡이 되어 오색구름을 일구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용녀가 돌아와 딱 잘라 말한다.
“약속을 어겼으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소.”
그리고는 우물에 들어가 용이 되어 모습을 감추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용녀의 몸에서 네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 용건이 한씨를 얻어 도선이 일러주는 명당자리에 가 살다가 왕건 태조를 배어서 낳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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