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뒤끝은 반드시 있다
양주 조씨에 이우당 조태채라는 분이 있었다. 숙종 때부터 벼슬을 하여 우의정에까지 올랐다가, 왕위계승 문제로 반대당의 모함을 받아 세상을 떠난 분이다. 그가 중년에 부인 심씨를 잃고 비통해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때의 일이다.
판서로서 공적인 일이 생겨 담당 서리가 들어와야 일을 처리하겠는데 새벽같이 찾아와야 할 놈이 해가 높다랗도록 소식이 없다. 대감은 대단이 화가 나서 곧장 잡이를 차려타고 관청으로 출근하였다. 물론 이놈을 잡아들여 볼기를 쳐서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 줄 심산이었을 게다. 그런데 막상 서리가 잡혀 들어와서 뜰아래 엎드리며 신상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데, 그 이야기가 애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놈이 죽을 죄로 공무를 소홀히 하였사오나, 벌을 받을 때 받더라도 현재 당하고 있는 딱한 사정이나 말씀드리고 나서 처분을 바라겠사오니 잠시만 고정해 주십시오. 무슨 놈의 팔자가 글쎄 이 나이에 계집이 죽어가지고, 집에 겨우 다섯 살 짜리를 맏이로 둘째놈이 세 살이요, 딸년이라는게 난지 겨우 여섯 달이지 뭡니까? 어려운 살림이라 사람을 두어 돌보게 할 수도 없고, 이놈이 일일이 돌보자니 아비 겸 어미 겸 사람으로선 견디지 못할 고생이옵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그 핏덩이가 울어대지 뭡니까? 그래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청해서 젖을 얻어 먹이고 나니, 이번엔 둘째놈이 배고프다고 울어대기에 달려가 죽을 사다가 먹여주고, 그리고는 대감 분부가 소중하와 큰놈은 옆집에 부탁하고, 소인은 잔입으로 그냥 달려온다는 게 이렇게 늦었사오니, 그저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대감은 벌써부터 듣다 말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만둬라, 그만 둬. 네 사정이 어쩌면 그리도 나하고 똑같으냐? 알았다. 그만 둬라.”
서리는 풀려 나오면서 혓바닥을 낼름하였다. 이런 나쁜 놈이 있나? 대감의 정경을 익히 알고 있는 때문에 모두가 꾸며댄 거짓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대감은 아기 키우는 데 보태쓰라고 쌀과 피륙까지 넉넉히 마련하여 보내주었다. 그러기에 군자는 가기이방, 점잖은 분은 방법을 가지면 속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이런 인정 많은 상전이었기에 그의 하인 중에는 신명을 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한 이도 있었다.
임동석이라고 중앙관서에 서리를 다녔던 그댁 하인이 있었는데, 반대당의 대관들이 공을 헐뜯어 상소하는 문서를 닦으며 그더러 받아쓰라고 했더니 단연히 거절한다.
“자식으로서 제 아비의 죄를 적을 수 없듯이, 상전과 하인 사이는 부자와 같은 관계인데 어찌 이 손으로 그런 글을 베껴 쓰겠습니까?”
서슬이 시퍼런 대관들은 그를 잡아 넣고, 모진 형벌로 다스렸으나 그는 끝내 굴복하지 않고, 공이 귀양을 가게 되자 구실(옛날 관아의 직무를 이르던 말)살던 것을 팽개치고 제주까지 따라가 봉사하였다. 그러나 기어이 조정에서 주인 대감께 사약이 내리게 되었다. 이때 후에 대제학을 지낸 둘째 아들 회헌 조관빈이 아버지의 임종이나마 지켜 보려고 말을 달려 가는데, 약사발을 받든 금부도사가 먼저 도착해 빨리 마시라고 독촉이다. 동석이 나서며 죄인의 아들이 미구에 도착하겠으니, 그가 도착하거든 부자 상면이나 하게 하고 나서 마시게 하여 줍시사고 극구 간청을 하였건만 듣지를 않는다. 그러자 동석이 아무리 공사이기로 인정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사약그릇을 발길로 차 엎어버렸다. 그러니 모두들 죽을 상이다. 임금이 내리시는 약이니 이 일을 문제시 삼으면 걷잡지 못할만큼 커지겠기에 말이다. 그러나 금부도사는 풍랑에 약그릇을 바다에 빠뜨렸노라고 꾸면서 보고를 드렸으니, 다시 사약을 내려보내는 데 달포나 걸리는지라, 이 동안 도달한 회헌은 아버지를 마지막 한달 동안 모시고 지낼 수 있었다. 그 사이 대감은 아드님께 유언을 겸해 신신 당부하였다.
“동석이를 친동기같이 여겨야 하느니라.”
동석은 상주와 함께 유해를 모시고 돌아와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서리를 살았는데 대대로 그 구실을 세습하도록 하고, 대감의 유언을 받들어 오래도록 한집안같이 내왕하였더란다. 임동석의 사람됨도 신실하였겠지만, 그의 이같은 충성은 수하 서리의 속임수에 넘어가 오히려 도와 줄 정도로 착한 대감의 마음씨가 은연중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착한 뒤끝은 반드시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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