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퉁이 황진사
우리나라 역사에, 어쩌다가 고집세기로 후세에 이름난 분이 있었으니, 황순승이라는 어엿한 성명과, 진사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있건만, 세간에서 황고집으로 통하게 된 어른의 이야기다.
성질이 워낙 강직해서 한번 말한 것은 꼭 준행하고 조금도 굽힐 줄을 몰랐던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모두 황고집이라고들 불렀다.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싫지 않게 여겨, 집암이라는 호를 지어 쓰더라고 하니 그의 인품을 미루어 알 만하다. 평양 인현리에 살았는데, 세간에서 외성의 황씨라면 모두가 알아주는 그런 가문의 출신이다. 한번은 동네 앞 개울에 다리를 놓는데 또 한번 황진사의 고집이 활동하였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장마가 져서 으레 홍수가 지는 때문에, 여간 완고하게 놓은 다리가 아니면 배겨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여름 한철은 아예 개울에 다리 없이 첨벙거리고 건너 다니다가, 늦장마까지 염려가 가신 뒤에야, 온 동네가 나와서 함게 다리를 놓아 겨우내 건너다니다가, 이듬해 단오가 지나고 뜯어서 쌓는 것이 연중행사로 되어 있었다. 동네에서는 추렴을 거둬 재목을 구하여 끝구멍을 파고 촉을 해 맞추어, 마치 집 짓듯이 교각을 조립식으로 구성해 놓고는 그 위에다 섶을 얹고 흙을 펴 밟아 다지고 건너다니게 마련이었는데, 흙을 파다 붓는데 보니 허옇게 회가 섞여 있는 것이라 진사님이 물었다.
“자네들 이 흙 어디서 파 왔나?”
“저 산날 잘라진 끝에서 파 왔습죠.”
“거긴 사람들 묘 썼던 자린데, 그렇다면 이거 산소를 꾸몄던 광중 흙이 아닌가? 사람 시신을 딛고 다니는 것이나 같으니, 그 흙 버리고 다른 흙을 깔게.”
“아유, 진사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회 섞인 흙이면 더 좋지 무슨 그런 걱정을 다 하십니까?”
젊은 사람들하고 더 다투기 싫어서 혀만 쩍쩍 차며 돌아서고 말았는데, 그 뒤가 문제다. 황선생은 겨우내 나들이 할 때 차가운 개울물을 그냥 첨벙첨벙 건너다녔지, 다리 위로는 통과를 않는 것이다. 한번은 도둑놈들이 길 가는 이들의 옷가지라도 벗겨갈 요량으로 어두운 뒤에 목을 지키고 있는데, 저만치 옷깃이 번듯한 사람이 오기에 `옳지 저놈을 털어야겠다.` 하고 벼르는데, 이 양반이 다리목까지 와서 얼음이 써걱써걱 하는 개울물을 그냥 건너는 것이다. 서로 쳐다보고 혀를 내둘렀다.
“얘들아, 황진사님이다. 우리가 이 생업을 해 먹을 망정, 그 어른의 옷을 벗긴다면 도둑놈 의리에 금이 간다.”
그리고는 그날 영업을 거두고 돌아갔다는 얘기가 전할 정도다. 한번은 볼 일이 있어 서울 출입을 했는데, 와서 들으니 그곳에 사는 친구 아무개가 죽었다는 얘기다. 일행들이 `마침 왔던 길이니 문상하고 가자` 하는 것을 그는 또 거절하였다.
“볼일 보러 왔던 길에 문상을 하다니 친구간 의리에 그럴 수가 있나?”
그리고는 부지런히 평양까지 돌아갔다가, 차림을 갖춰 다시 상경해, 문상을 치르고 돌아갔더라고 한다. 서울서 평양을 550리라 해서, 하루 평균 80리를 걷는데도 왕복에 보름이 걸린다. 친구간의 의리를, 더구나 죽은 사람 상대로도 이렇게 신의를 지켰으니, 다른 일엔 어떠하였으랴! 물론 조상 제사를 지내는데도 정성이 남달라서, 제수 흥정을 꼭 자신이 몸소 나서서 하는데, 한번 지목한 물건의 값을 물어 턱없이 비싸게 달라더라도, 다른 물건으로 대신하거나 값을 깎는 일이 절대 없었다.
“값을 깎아서 살 양이면 아예 제사를 안 지내는 쪽이 낫지.”
아들이 장성하여 장가를 들였을 때의 일이다. 새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의당 이튿날 아침 예모를 갖춰 문안을 드려야 하는 것인데, 해가 높다랗도록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 여자 하인을 시켜서 가 동정을 보고 오라 일렀다. 그랬더니 하인이 돌아와 하는 말이라.
“밝기 전에 이미 일어나 세수랑 치장을 마치고 그림같이 앉아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그러면 나도 이렇게 일어나 있으니 들어와 뵈올 일이지, 무엇을 기다린단 말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진사님! 새아씨 말씀이 `아버님께서 사당에 뵙고 내려오시거든 일러다오, 그러고 나서 들어가 뵈어야 순서니라`고 하십니다.”
황진사는 낯이 홍당무같이 붉어지며 감탄하는 것이다.
“내 행신 좀 봐라. 가도를 세운다는 주제에, 저 자신 아침마다 조상 사당에 다니는 체통은 안 지키면서, 자부의 인사부터 받으려 하다니...”
그 길로 사당에 올라가 절하여 뵙고 내려와 앉으니, 그제사 새며느리가 하인의 인도를 받아 들어와서 날아가는 듯이 절을 올리는 것이다. 진사님은 방바닥에 두 손을 짚어 자부의 절을 맞았다.
“네가 오늘 도리로써 나를 깨우쳐 줬으니, 정말 내집 며느리답도다. 일후로도 이 늙은 시아비에게 잘못이 있거든 서슴없이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부터 그 며느리의 의견을 남달리 존중하고, 옳은 가풍을 세우기에 전보다 갑절 마음을 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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