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6장 생물 시계의 다양한 주기
다양한 주기의 리듬
여러분 중에도 플라나리아라는 벌레를 본 친구가 있을 것이다. 플라나리아는 편형동물의 일종이다. 플라나리아의 몸은 납작하고 머리는 삼각형으로 생겼다. 삼각형의 머리에는 순해 보이는 눈이 달려 있고, 몸의 색은 보통 회색빛이 도는 흰색이다. 물이 맑은 개울에서 돌이나 나무를 살짝 들어 보면 그 밑으로 플라나리아가 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플라나리아는 동작이 느려 사로잡기 쉬우므로 키우면서 실험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플라나리아]
플라나리아를 재료로 해서 가장 흔히 이루어지는 실험은 재생 실험이다. 플라나리아의 재생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플라나리아를 둘로 잘라서 물 속에 놓아두면 두 마리의 완전한 플라나리아를 이루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플라나리아와 가까운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콘벌루터라는 동물이 있다. 콘벌루터는 광합성을 하는 편모충과 공생을 하면서 조간대에서 살아가는 벌레이다. 콘벌루터는 썰물이 지면 모래 밖으로 나오고, 밀물이 되면 모래 속으로 다시 파 들어가는 행동을 보인다. 과학자들은 콘벌루터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보이는 주기적인 행동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이 콘벌루터를 채집해 실험실에서 키웠다. 그리고 콘벌루터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나타내는 행동이 어떤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계획했다.
과학자들은 계속 조명을 켜 둔 상태에서 콘벌루터를 길렀다. 그리고 채집한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 주기와 거의 같은 시간 간격으로 수면을 올리고 내리고 했다. 인공적인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콘벌루터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렇게 인공적인 낮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사는 콘벌루터는 밤의 밀물과 썰물에 해당하는 활동 리듬은 보이지 않았다. 낮 사이의 활동 리듬만을 갖게 되어, 낮의 밀물과 썰물에 해당되는 시간에만 모래 밖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결국 콘벌루터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활동하지만, 밀물과 썰물뿐만 아니라 조명에 따른 활동도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 사는 게도 밀물과 썰물에 따른 활동 리듬을 갖고 있다. 게들은 낮과 밤으로 2번 밀물이 질 때, 아주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게를 실험실로 옮겨 놓고 실험하면, 야행성의 서커디언 리듬을 보인다.베도라치라는 물고기가 활발하게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활동 리듬 역시 밀물과 썰물의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베도라치의 활동 리듬은 콘벌루터나 게와는 달리 실험실의 항상 조건(조명과 온도를 계속 일정하게 유지시킨 조건)속에서도 하루 2번으로 나뉘어 계속된다. 그런데 베도라치의 활동이 나타내는 주기는 밀물과 썰물이 한 번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인 12시간 25분보다 조금 길다. 이는 베도라치가 보이는 활동 리듬이 베도라치 특유의 생물 시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 밖에도 다른 많은 동식물을 대상으로 해서 다양한 활동 리듬이 연구되고 있다.
조간대에 사는 생물에는 약 반 날과 약 하루, 그리고 약 반 달의 주기를 가진 리듬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주기를 나타내 주는 생물 시계가 이런 생물의 몸 속에 따로 따로 갖추어져 있는 것일까? 아직 그것까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약 반 날 주기와 약 하루 주기의 활동에 대해서는, 하나의 서커디언 시계가 있고, 그것이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활동을 명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약 반 날 주기의 활동 리듬은 모기 떼가 아침과 저녁, 2번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등으로 많은 예가 있다. 그러면 반 달 주기의 활동 리듬은 어떨까? 반 달 주기의 리듬을 보이는 것은 바다깔따구 말고도 꽤 많은 생물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고동의 한 종류가 나타내는 활동은 약 15일을 주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갈조류의 한 종류에서는 배우자라고 불리는 생식 세포를 방출하는 리듬이 15일 주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주기는 항상적인 조건 하에서도 계속된다고 한다. 이 밖에 약 1달을 주기로 하거나, 1년을 주기로 하는 리듬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와 친근한 포유류의 경우 약 1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활동 리듬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람쥐는 겨울잠을 잔다. 자연 상태에서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험실 안에서는 어떨까? 따뜻한 실험실 안에서 살아가는 다람쥐도 겨울잠을 잘까? 실험을 해 보았다. 다람쥐를 실험실 안의 항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했던 것이다. 이 실험을 할 때, 항상적인 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론 조명과 온도라고 하겠다. 자연 상태에서는 계절에 따라 낮의 길이가 달라진다. 따라서 실험실 안에서는 인공적인 조명을 통해 1년 내내 밤낮의 길이가 달라지지 않도록 했다. 하루에 12시간은 조명을 밝게 비추고, 12시간은 어둡게 해 둔 것이다. 그리고 온도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시켰다. '설마, 이래도 겨울잠을 잘까?' 과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다람쥐의 행동을 지켜보았을것이다. 그러나 다람쥐가 보인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실험실의 항상적인 조건 하에서도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는 시기, 체중과 체온의 변화가 모두 약 1년을 주기로 변화했던 것이다. 온도를 12도로 일정하게 했을 때에도, 그리고 3도로 일정하게 했을 때에도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동면을 시작할 때 최고가 되는 체중 변화의 리듬도 일정하게 1년을 주기로 되풀이되었다. 음식물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했는데도 체중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포유류의 활동 리듬 중 1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것으로는 또한 사슴의 뿔이 있다. 사슴의 뿔은 약 1년 주기로 갈라져 나와 자라난다. 또 많은 포유류에서 번식을 하는 시기나 털갈이를 하는 시기가 약 1년을 주기로 되풀이하고 있다. 이 역시 생물 시계의 영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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