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5장 생물 시계의 작용
해변에서 - 바다깔따구 이야기
바닷가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고 밀물이 졌다가, 다시 썰물이 진다. 밀물이 지고 썰물이 지는 일은 1태음일에 두 번 반복된다. 태음일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태음일이란 간단히 이야기 하면 달을 기준으로 한 하루하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음력 하루라는 뜻은 아니다. 음력이든 양력이든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하루라고 할 때는 태양일을 가리킨다. 태양일이란 태양이 어떤 자오선(남극과 북극을 연결한 커다란 원)을 통과한 뒤에 다시 그 자오선을 통과할 때까지의 시간을 하루로 잡은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해가 한 번 뜨고,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의 시간을 하루로 정했다는 것이다. 태음일은 이와 반대로 달을 기준으로 해서 정한 하루이다. 달이 어떤 자오선을 통과한 다음, 다시 그 자오선에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달이 뜨고 다시 달이 뜰 때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태양일보다 조금 길어서 평균하면 24시간 50분 정도이다.
밀물과 썰물은 해와 달, 그 중에서도 달이 잡아끄는 힘에 의해 바닷물의 높이가 주기적으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밀물과 썰물의 주기는 태양일보다는 태음일에 따르는 것이다. 밀물과 썰물은 1태음일에 2번씩 밀려오고 밀려가고, 태음일은 평균 24시간 50분 정도이므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주기는 12시간 25분 정도인 것을 알 수 있다. 바닷가의 해안선은 밀물이 지고 썰물이 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부분은 계속 바다에 잠겨 있고, 어떤 부분은 항상 공기 중에 나와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시간에 따라 물 속에 잠겼다가 밖으로 드러났다가 하는 일을 반복하는 곳도 있다. 밀물이 질 때에는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질 때는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조간대라고 한다. 조간대는 물에 잠기기도 하고, 공기 중에 노출되기도 하기 때문에 생물이 살아가기에는 그리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환경 조건이 좋지 못한 조간대에서도 꽤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밀물과 썰물은 1년 365일, 항상 같은 정도로만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밀물과 썰물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밀물이 질 때 바다의 수면은 높아지고, 썰물이 질 때 바다의 수면은 낮아진다. 이렇게 해수면이 높을 때와 낮을 때의 차이를 조차라고 한다. 조차는 달이 지구 주위의 궤도를 도는 운행 주기에 따라 차이가 난다. 달이 지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5일이다. 달이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따라 지구에서 보는 달의 모습은 1번 차오르고 이지러진다. 결국 조차의 변화는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데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조차가 가장 커질 때를 한사리, 혹은 사리라고 한다. 이 때는 매달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이다. 반대로 조차가 가장 작아질 때는 조금이라고 한다. 이때는 매달 음력 8일과 23일이다.
여러분은 깔따구라는 이름을 가진 곤충에 대해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깔따구는 모기와 비슷하게 생긴 물가에 많이 사는 곤충이다. 그런데 깔따구 중에는 바다깔따구라는 종류가 있다. 이 가엾은 곤충들은 평생을 조간대에서 살아간다. 평생이라고 해 봤자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바다깔따구 중의 어떤 종은 조간대의 중간쯤 되는 높이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1년 내내, 매일 2번씩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곳이다. 따라서 매일 두 번씩 바닷물 속에 잠겼다, 공기 중에 드러났다를 반복하게 된다. 조간대의 중간쯤에서 살아가는 바다깔따구의 번데기는 썰물이 질 때 우화를 한다. 이 때 번데기의 허물을 벗은 엄지벌레는 우화를 하자마자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를 끝낸 암컷은 썰물 때문에 공기 중에 드러나 있는 바위나 진흙에다 알을 낳는다. 이렇게 알을 낳은 후에는 암컷도 수컷도, 약 1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같은 바다깔따구라도 조간대의 훨씬 더 낮은 곳에 살아가는 종류도 있다. 이런 종류들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한사리의 썰물 때가 아니면 서식처가 바닷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번데기는 한사리의 썰물 때를 택해서 우화를 한다. 한사리의 날, 즉 음력 보름과 그믐 날에도 밀물과 썰물이 지는 것은 하루에 두 번씩이다. 한데 이런 바다깔따구들은 반드시 오후에 썰물이 질 때를 택해 우화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다깔따구가 우화하는 리듬은 과연 어떤 요인에 의해 생기는 것일까? 바다깔따구가 우화하는 행동을 보면 이들이 밀물과 썰물의 리듬을 알고 있어서 그 주기를 따라 우화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바다깔따구의 우화하는 리듬에 흥미를 느낀 과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다깔따구의 우화를 일으키는 요소를 알아내려는 실험을 했다. 우선 이들은 조간대의 가장 낮은 곳에 살아가는 바다깔따구를 채집해서 실험실에서 키웠다. 그리고 실험실 내부의 조명을 조절했다. 하루 중 16시간은 조명을 밝게 켜 두고, 나머지 8시간은 캄캄하게 해 두는 일을 반복했다. 인공적인 밤과 낮을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30일에 4일씩 인공적인 달빛을 비춰 주었다.
인공적인 달빛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시기에, 0.4럭스 정도 되는 약한 불빛을 밝혀 주는 것을 말한다. 조명은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것을 그대로 모방했지만, 밀물과 썰물은 만들어 주지 않았다. 결국 실험실의 바다깔따구들은 밀물과 썰물은 없고, 밤과 낮,그리고 달밤의 주기만큼은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바다깔따구의 우화 현상을 관찰했다. 밀물과 썰물이 없을 때도, 바다깔따구는 우화의 리듬을 보일 것인가? 답은 그렇다였다. 밀물과 썰물이 없는 실험실의 인공적인 조건에서 바다깔따구가 우화의 리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바다깔따구의 우화가 가장 많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인공적인 달빛을 비춰 주었을 때(자연에서라면 보름날)와 그로부터 약 2주의 시일이 흘렀을 때(자연의 환경으로 보자면 그믐날)였다. 결국 반 달 정도의 주기로 우화의 리듬이 나타났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일뿐만이 아니었다. 우화가 집중된 시간대는 인공적인 보름날과 그믐날 중에서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바다깔따구들은 낮의 16시간 중에서도 느즈막한 시간을 택해 우화했던 것이다. 하루 중 어느 시간을 택해 우화하는 성질은 조명을 끄고 항상 어둡게 해 둔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온도에 의해서도 어긋나지 않았다. 실험 결과를 통해 우리는 바다깔따구가 약 반 달 주기와, 약 하루 주기의 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다깔따구는 이런 시계를 가지고 혹독한 자연의 조건에서 밀물과 썰물의 리듬이나 달빛이 비치는 리듬, 그리고 햇빛이 비치는 리듬에 맞춰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다깔따구의 생물 시계를 환경에 맞추는 일을 하는 요인이 달빛과 햇빛이라는 것이다. 바다깔따구가 우화하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밀물과 썰물의 리듬 그 자체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초파리의 우화 현상도 살펴보았다. 초파리의 우화를 환경에 맞추는 일을 하는 요인은 분명 빛이었다. 그러나 초파리의 우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 아니라 습도였다. 그럼에도 초파리는 습도가 아니라 빛에 맞추어 우화하는 시간을 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햇빛만 가지고서도 가장 습도가 높은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초파리와 마찬가지로 바다깔따구 역시, 달빛과 햇빛만 가지고도 밀물과 썰물의 주기를 정확히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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