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2장 꿀벌과 찌르레기의 실험
철새의 이동과 태양 나침반 프리슈가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발표한 바로 그 해, 1950년에 또 다른 중요한 발표가 있었다. 그라머라는 과학자가 찌르레기의 태양 나침반 시계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상 커다란 발견은 이렇게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49년, 그라머는 독일의 막스 플랑크 협회의 행동 생리학 부문 연구소에서 철새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막스 플랑크 협회란 독일의 과학 진흥을 위해서 많은 연구소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기관을 말한다. 이 기관은 현재도 활발한 활동의 보이고 있는데, 주로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을 중심적인 연구 과제로 삼은 약 50개의 연구소를 관리 운영하고 있고, 그 본부는 괴팅겐에 있다. 그라머는 집 밖에 있는 새장에서 찌르레기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찌르레기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할 철이 오면, 이동해 갈 방향을 향해서 쉬지 않고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었다. 그라머는 이런 찌르레기의 행동을 보고 의문에 빠졌다. '찌르레기는 어떻게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당시의 동물학계에서는 철새가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날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능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철새가 항상 정확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철새의 몸 속에는 지구의 자기장과 비슷한 나침반이 들어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정확하게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철새의 몸 속에 있다는 지구의 자기장과 같은 나침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그라머는 찌르레기가 보이는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그 나침반이 다름 아닌 태양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태양의 위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루에 한 바퀴 돌고 있으니 24시간에도 360도, 결국 6시간에 90도씩 이동하는 셈이 된다. 찌르레기는 이런 태양의 이동을 계산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날아가는 방향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찌르레기가 보이는 이런 행동은 '태양 나침반을 이용한 방향 정하기'라고 일컬어진다. 그 행동의 정확한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그라머는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사실 철새의 이동을 관찰하려면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니 어느 한 계절을 제외하면 철새의 행동은 관찰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설사 찌르레기가 이동하는 철이 온다고 해도, 새장이 너무 작아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그라머는 철에 따른 이동 대신 먹이를 찾아나서는 행동을 대상으로 해서, 태양 나침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라머는 재미있는 새장을 고안해 냈다. 우선 새장이 어느 한쪽으로도 모가 나지 않도록 했다. 새장에 갇힌 찌르레기의 눈에, 새장의 둘레가 완전한 원이 되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찌르레기가 새장의 모양을 통해 동서남북의 방향을 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완전한 동그라미 모양의 새장에 12개의 모이 그릇을 바깥쪽에 달았다. 물론 모이 그릇과 모이 그릇 사이의 간격은 똑같은 거리가 되도록 했다. 그라머는 이렇게 준비한 모이 그릇을 가늘고 긴 절단면이 있는 고무로 덮개를 해서 덮었다. 찌르레기가 어느 그릇에 모이가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장의 한가운데에 홰를 만들어 놓았다. 새장이 완성되었다. 이제 준비는 끝나고 실험만 남은 것이다. 그라머는 찌르레기를 새장에 들여보냈다.
그라머가 실험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새장 바깥에 달린 12개의 모이 그릇 중에서 서쪽에 있는 모이 그릇에만 모이를 주었다. 찌르레기가 서쪽의 모이 그릇에만 모이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훈련시키려는 것이었다. 결국 찌르레기는 서쪽에 있는 모이 그릇에서만 모이를 먹게끔 훈련되었다. 그라머는 찌르레기가 서쪽의 그릇에서만 모이를 먹게 되자, 두꺼운 천막을 쳤다. 천막을 치자 새장으로는 햇빛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라머는 인공적인 조명 기구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 조명의 방향을 서쪽으로 고정시켰다. 찌르레기는 이 인공적인 조명을 보고 해로 착각할 것이었다. 그라머는 중얼거렸다. "자, 이제 태양은 한 곳에 고정되었어. 이제부터 찌르레기는 어느 쪽에 있는 그릇에서 모이를 먹으려 할까?" 만일 찌르레기가 해가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해서 방향을 정하는 것이라면, 인공적인 태양의 방향은 변화하지 않지만 그것이 실제 태양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서 잘못된 방향 감각을 가질 것이다. 가엾은 찌르레기는 그라머의 의도대로 인공 조명을 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인공 조명이 하늘에 있는 태양처럼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속았던 것이다. 아침이 되면서 조명이 들어왔다. 찌르레기는 이 가짜 태양이 있는 쪽이 동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반대쪽에서 모이를 먹으려 했다. 서쪽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모이를 먹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짜 태양은 동쪽에 있지 않았다. 계속 서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찌르레기는 결국 동쪽에서 모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가엾은 찌르레기는 가짜 태양에 속아 모이를 먹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되었다. 찌르레기는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가짜 태양이 있는 곳은 남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쪽이라고 생각한 방향, 즉 가짜 태양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직각만큼 틀어진 방향의 그릇에서 모이를 찾았다. 그러나 가짜 태양은 그때에도 계속 서쪽에 머물러 있었고, 따라서 찌르레기가 찾아간 쪽은 실은 북쪽 방향이었다. 이번에도 찌르레기는 가짜 태양에 속아 모이를 먹을 수 없었다. 만일 찌르레기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우리 주인이 어떻게 된 걸까? 항상 서쪽 그릇에 모이를 넣어 주더니, 오늘은 웬일이지? 아침에도 모이가 없더니 낮에도 모이가 없잖아? 주인이여, 모이를 주오." 시간이 흘러갔다. 저물 때가 되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배를 곯은 찌르레기는 다시 모이 그릇으로 다가갔다. 찌르레기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저녁이군. 이제는 해가 서쪽에 떠 있을 시간이야. 그러니 우리 주인은 해가 있는 쪽 그릇에 모이를 주었을 거야. 설마 저녁 때까지 굶기지는 않겠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찌르레기는 저물녘이 되자 가짜 태양이 있는 쪽이 서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짜 태양이 있는 쪽 모이 그릇에서 모이를 찾았다. 가엾은 찌르레기도 이번에는 모이를 먹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가짜 태양이 있는 곳은 정말 서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라머는 이 실험을 통해 찌르레기의 몸 속에 시계가 들어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만일 찌르레기에게 생물 시계가 없다면 찌르레기는 태양을 본다고 해도 그 위치에 따라 방위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는 시계가 없다면 태양이 있는 곳이 동쪽인지 남쪽인지 서쪽인지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실험을 통해 찌르레기는 시시각각 움직이는 태양을 눈에 보이는 표지로 삼아 하루의 시각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라머는 이 실험으로 인하여 갑자기 유명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새를 채집하려고 등산을 하던 중, 산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말았다. 1959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도 채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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