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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2장 꿀벌과 찌르레기의 실험
꿀벌도 생물 시계를 갖고 있다
어느 것도 꿀벌의 시간을 재는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태양의 위치와 움직임, 온도와 습도의 변화, 그리고 공기 중의 전기 전도성 변화, 그 어느 것도 꿀벌의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꿀벌이 우리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요인, 즉 하루를 주기로 변화를 보이는 어떤 X라는 요인을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X 요인을 시계처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나선 것은 월이라는 과학자였다. 월은 암염을 파내는 광산의 갱도 안으로 꿀벌들을 데려갔다. 그곳은 지하 180미터의 깊이로, 암염의 층이 15미터의 두께로 놓여 있었다. 이 두꺼운 암염층 때문에 밤낮의 주기로 변하는 우주선도 그곳까지 닿을 수 없었다. 또한 공기 중의 전기 전도성을 변화시키는 감마선도 차단되어 있었다. 월은 이런 암염 갱 속에서 24시간 불을 켜 둔 채로 실험을 했다. 베링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되면 설탕물을 먹으러 나오도록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월은 훈련이 끝난 후, 이들의 꿀벌이 보이는 행동을 관찰했다. 결과는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꿀벌들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일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꿀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시간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실험만으로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꿀벌이 식사 시간의 간격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24시간 주기 속에서 어떤 시점을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루 중 매일 같은 시각에 먹이를 주는 실험으로는 꿀벌이 시간 간격까지 알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베링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24시간 불을 밝혀 두고 온도를 일정하게 해 둔 '꿀벌의 공간'에 꿀벌을 키우면서, 24시간과는 꽤 커다란 차이가 나는 19시간, 48시간의 간격으로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해 보았다. 그러나 꿀벌의 행동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꿀벌들은 시간 간격이 24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시각을 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24시간으로 주기를 변화시키자, 그 즉시 식사 시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꿀벌이 알 수 있는 시간이란 단순히 24시간의 주기 속에서의 어떤 시점일 뿐이었다. 꿀벌의 시간 측정이 꿀벌이 갖고 있는 생물 시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더 확실하게 증명된 것은 레너의 실험에 의해서였다. 레너는 그 유명한 대양을 건너는 실험을 한 사람이다. 레너는 베링이 만든 것과 똑같은 '꿀벌의 공간'을 만들어서 온도를 28도로 일정하게 해 두었다. 그리고는 1000럭스의 빛으로 꿀벌의 공간의 내부를 계속 비추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에서 '꿀벌의 공간'에서 사는 꿀벌들에게 설탕물을 주면서 훈련시켰다. 파리의 경도는 동경 2도이다. 레너는 꿀벌들을 파리의 지방시를 기준으로 해서 저녁 8시 15분부터 10시 15분 사이에 식사를 하도록 훈련시켰다. 그런데, 이쯤에서 간단하게 지방시와 표준시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대양을 건너는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시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지방시라는 것은 어느 지방(위의 경우에는 파리)을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해서 정한 시간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준시이다. 표준시란 정해진 지점의 지방시를 기준으로 삼아 경도 15도 범위의 여러 지역이 함께 사용하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 나라도 가장 서쪽 지방과 동쪽 지방의 경도에 상당히 차이가 있으므로 각 지방의 지방시를 기준으로 시간을 사용하면 경도가 다른 곳마다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상당한 불편을 겪을 것이다. 다른 지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을 막기 위해 우리는 표준시를 정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동서 길이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가장 서쪽 지방과 동쪽 지방 모두 하나의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시계를 다시 맞출 필요가 없다. 하지만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 캐나다처럼 동서의 길이가 먼 나라는 한 나라 안에서도 몇 가지 표준시를 사용해야만 한다. 따라서 경도가 멀리 떨어진 지방에 가면 시계를 다시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이렇게 표준시를 정해 놓고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 실험을 할 경우에는, 표준시만을 사용해서는 그 지방의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나라에서는 낮 12시, 정오가 되어도 태양이 정남향에 오지 않는다. 이는 우리 나라의 지방시와 표준시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태양이 정남향에 오는 시각이 지방시로 12시 정각인 것이다. 그러면 지방시에 맞추어 꿀벌의 훈련이 끝나고는, 곧바로 꿀벌의 공간을 비행기 편으로 경도가 74도인 뉴욕까지 실어날랐다. 그리고 꿀벌의 공간을 뉴욕에 설치해 둔 채로 실험을 계속했다. 경도에 커다란 변화를 준다는 것은 지방시를 크게 변화시킨다는 뜻이 된다.그러니 지구의 자전이 주는 영향을 변화시킨다는 뜻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레너는 파리에서 훈련받은 꿀벌들이 뉴욕에서 어떤행동을 보이는지를 관찰했다. 꿀벌은 경도 76도 만큼의 시차를 겪게 되었다. 경도 15도에 따라 지방시가 1시간씩 차이가 나므로, 경도 76도를 지방시로 따지면 대략 5시간 정도의 시간차가 있는 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레너는 뉴욕에 도착한 뒤, 꿀벌들이 다시 먹이를 먹기 시작한 시간은 뉴욕 시간으로 오전 3시였다. 그리고 이 시간은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먹이를 준 시간에서 24시간이 지난 뒤였다. 레너의 꿀벌들은 지구의 자전에서 오는 영향(여기서는 간단하게 지방시의 영향)에도 아랑곳없이 훈련받은 대로 24시간만에 다시 식사를 개시한 것이다. 레너는 이번에는 뉴욕에서 파리로 다시 꿀벌들을 실어날랐다. 이번에는 5시간을 거슬러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실험을 해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레너의 실험이 있기 전에도 꿀벌이 다른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간을 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너는 지구의 자전을 뛰어넘어 대양을 건너는 실험을 함으로써, 꿀벌이 몸 속에 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증명해 주었다. 1955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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