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4. 고대엔 남성들도 화장을 했다.
향수의 원료는 무엇일까?
향료는 고대의 성스러운 신전에서 시작된 것으로, 화장품 제조자가 아닌 사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원래 훈향으로 이용된 그 관습은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 남아 있다. 향료를 뜻하는 영어 'perfums'은 라틴어 'fume'의 합성어로 '연기를 통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산 제물 굽는 연기를 좋은 향기에 실어 예배자가 있는 곳까지 풍기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식량을 구하는 일이 전부였던 사람들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공양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중한 것, 가장 필요한 것, 즉 사로잡은 동물이었다. 그러니까 향료는 동물이 탈 때 풍기는 악취를 지우기 위한 방취제로 뿌린 것이 그 시작이다. 성경을 보면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동물을 제물로 굽자 '주님은 그윽한 향기를 맡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물이 타는 냄새가 아니라 향료의 냄새였던 것이다. 이렇듯 신성스러운 방취제에서 나중에는 강한 향기의 방향 자체가 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이 되었는데 유향, 몰약, 카시아, 감송 등의 수지를 태우는 것이 사람이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공양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향료는 악취를 없애는 방취제로서의 실용적인 역할에서 이제는 그 자체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악취를 제거하는 강한 향기는 이제 필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상쾌하고 섬세한 과일이나 꽃의 향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훈향에서 향수로, 강렬하고 자극적인 냄새에서 은은한 향기로의 변천은 약 6000년 전 중동과 극동의 양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000년까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과 나일강 연안의 이집트인은 문자 그대로 자스민이나 아이리스, 히아신스, 인동 덩굴로 향수 목욕을 했다. 이집트의 여성들은 몸의 부분마다 다른 향기를 뿌렸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 크로커스, 제비꽃에서 채취한 오일인 '캬피'를 손에 발랐고 아몬드 오일, 벌꿀, 시나몬, 오렌지 꽃과 착색용 헨나로 만든 로션인 '아이기프툼'으로 발에 향기를 냈다.
고대 그리스의 남성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좋게 여기며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는 일을 피했으나 향료는 무척 좋아하여 머리, 피부, 옷에 가가 다른 향료를 뿌렸다. 기원전 400년 무렵의 그리스 책을 보면 팔에는 민트, 가슴에는 시나몬이나 장미, 손발에는 아몬드 오일, 머리와 눈썹에는 마요라나 익스트랙트(extract)를 쓸 것을 추천하고 있다. 멋 부리는 젊은 그리스인들이 향료를 너무 남용했기 때문에 아테네 민주정치의 틀을 짰던 정치가 솔론은 아테네 남성에 대해 향료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물론 곧 폐지되었다). 향료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건너갔다. 로마에서는 적당한 향료를 바르지 않은 병사는 전쟁터에 나가는 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로마 제국이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면서 등나무나 라일락, 카네이션, 바닐라 등의 향료가 들어왔다. 중동과 극동에서 소나무, 진저, 미모사의 방향을 알았고 그리스에서는 귤, 오렌지, 레몬의 감귤 오일 제조법을 배웠다. 로마에서 향료 제조업자 조합이 결성되어 남녀 모두에게 최신의 향기를 공급하며 크게 번창했다. 향료 가게를 'unguentarii'라고 불렀는데 고대 로마의 상점가를 독점할 정도로 많았다. 이 '연고를 바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unguentarii'에서 영어의 'unguent(연고)'가 태어났다. 향료 가게에서 만드는 제품은 기본적으로 세 종류였다. 아몬드나 장미, 마르멜로의 순수 단일향으로 만드는 연고, 꽃이나 향료나 수지를 짜거나 짓이겨 혼합해 만드는 오일 베이스 액체, 꽃잎이나 향료를 건조시켜 분말 상태로 만드는 파우더 타입이었다.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도 피부와 옷, 가구에 향료를 듬뿍 사용했다. 극장에서조차도 로마의 풍속에 대해 쓴 18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본은 '원형 극장의 공기는 분수대의 물줄기로 끊임없이 상쾌했고 향료의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세기에 장미물을 크게 유행시킨 로마 황제 네로는 단 하룻밤의 향연에 오늘날의 16만 달러에 해당하는 4백만 세스테르스의 장미 기름, 장미수, 장미 꽃잎을 자신과 손님을 위해 사용했다. 또한 65년에 네로가 두 번째 왕비인 포파에나의 장례식에 사용한 엄청난 양의 향료는 아라비아 전체의 연간 제조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례식의 당나귀에게도 향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아마 당나귀는 특히 필요했을 것이다) 향료의 이러한 남용은 교회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향료는 퇴폐와 방탕의 동의어가 되었으며 2세기에 교회의 성직자들은 기독교도의 개인적인 향료 사용을 격렬히 비난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에 향료는 주로 중동과 극동에서 만들어졌다. 11세기에 십자군이 동방에서 유럽으로 또다시 가지고 들어온 가장 고가의 향수 가운데 하나가 다마스크 장미의 꽃잎으로 만든 장미 기름인 '로즈어터'로, 날개처럼 가벼운 장미 꽃잎 100파운드를 모아서 만든 것이 겨우 1온스였다.
약해지던 유럽의 향료열과 제조에 또다시 불을 붙인 것은 이국적인 향료를 가지고 돌아온 십자군이었다. 그리고 이때 향료 사상 완전히 새로운 요소인 동물성 향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약제사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동물의 분비물 네 종류는 사향, 용연향, 영묘향, 해구향으로 된 현대 향수의 기본 에센스가 된다. 네 종류 모두 생식선 등의 선분비물로 무척 불쾌하여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향수의 원료가 된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어떻게 향료로 사용되게 되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향'이라는 이름은 중국 남부의 덤불에 사는 작고 얌전한 사슴인 사코우 사슴(Moschus moschiferus)에서 유래되었다. 성숙한 수놈이라도 10킬로그램이 되지 않는다. 수놈 하복부에는 수코양이가 오줌을 뿌려대는 것과 똑같은 구조의 생식 시그널을 분비하는 주머니가 있다. 옛날 동방의 수렵꾼들은 몇 백 년 동안 가까운 숲에서 풍기는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깨달았고 결국 그 냄새의 근원을 찾아냈다. 그때부터 이 작은 사슴은 계속 쫓겨다니게 된다. 수렵꾼들은 사슴을 죽이면 그 주머니를 꺼내 건조시켜서 향료업자에게 팔았다. 사향의 정유는 거의 0,000,000,000,000,095cc의 미량까지 검출이 가능하여 부의 축적에 큰 몫을 담당했다. 강한 향기를 발하는 납 상태의 물질인 용연향은 향유고래에서 분비된다. 가장 값비싼 향수의 원료로 사용되며 사향과 마찬가지로 금과 견줄 만큼 가치가 있다. 거대한 포유류인 향유고래(Physeter catodon)는 오징어나 날카로운 갑(잉꼬의 부리를 닦는 용도로 흔히 새장에 넣어진다)을 가진 오징어와 비슷한 연체 동물을 먹이로 삼고 있다. 용연향은 이 줄톱 같은 갑에서 고래의 장내벽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것이다. 유지 상태로 떠다니는 이 동물은 자주 어부의 망에 딱 달라붙는다. 처음으로 용연향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그것이 방향을 지속시키는 강한 보류성을 가진다는 것을 안 것은 고대 아랍의 어부들이었다. 용연향을 섞어 만든 향수는 휘발 속도가 무척 빠르게 진행된다. 오늘날 사향과 용연향 냄새는 모두 합성이 가능하며, 향수업자는 향유고래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용연향의 구입을 자제하고 있다.
영묘향은 부드러운 납 상태의 물질로써 아프리카와 극동에 생식하는, 검은 반점이 있고 누런 털을 가진 야행성 육식 동물인 사향 고양이가 분비한다. 영묘향은 'Viverra civetta'에 속하는 사향 고양이의 암수 양쪽이 내는 선분비물로 생식기 근처에 생기며, 포획하여 사육하면 일 주일에 두 번 정도 채취할 수 있다. 속이 울렁거리게 하는 분취를 가지지만 다른 향수와 섞으면 방향을 내는 동시에 강한 휘발 보류제로 작용한다. 고대 극동의 향료업자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해구향'이라는 이름은 옛소련과 캐나다의 해구(Castor fiber)에서 유래하는데, 암수 양쪽의 하복부에 있는 두 개의 주머니에 모이는 분비물이다. 많은 양을 희석하면 해구향 자체가 방향이 되지만 주로 향기를 지속시키는 보류제로 사용된다. 이상 네 가지 동물성 향료의 공통적인 특징인 강한 휘발 보류성은 그것들의 분자가 무거운 데서 나온다. 무거운 분자가 닻이 되어, 향수의 향기가 바로 떠올라 공기 중으로 도망치는 것을 잡아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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