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4. 고대엔 남성들도 화장을 했다.
멋쟁이의 필수품, 생선 등뼈
머리를 손질하는 대표적인 도구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빗과 머리핀을 들 수 있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헤어 드라이어도 남녀 모두에게 필요한 필수 품목이 되었다. 가장 오래 된 빗은 대형 생선의 등뼈를 건조시킨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빗은 현재도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이 쓰고 있다. 빗 특유의 모양은 '빗살 무늬'를 뜻하는 영어 'comb'의 어원인 고대 인도, 유럽어 'gombhos'가 '이(치아)'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사람이 만든 가장 오래 된 빗이 6000년 전의 이집트 묘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교묘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반듯한 이가 한 장인 것과 두 장인 것이 있는데 한 장짜리가 두 장짜리보다 눈금이 촘촘하고 긴 것도 있다. 이집트의 남녀들이 화장대에 아주 평범하게 갖추고 있던 빗은 머리카락을 빗는 것과 특정한 머리 형태를 보존하는 빗 두 가지였다. 고고학자들은 모든 고대 문명이 실제로 각각 독자적인 빗을 개발하여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문명 가운데 브리튼인은 제외된다.
영국 제도 연안에 살고 있던 브리튼인들은 전혀 손질을 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용 기술이 발달한 로마인의 점령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빗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789년 데엔인의 침입 뒤의 일이다. 800년대 중반까지 데엔인들은 영국 전역에 정착했다. 연안의 브리튼인들에게 머리를 깨끗이 빗질하는 것을 가르친 것은 그들이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머리를 빗는 일은 종교 의식의 일부로 발을 씻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행해졌다. 만과를 앞에 두고 사제가 성구실에서 머리를 빗을 때의 올바른 방법을 나타내는 자세한 법도가 있었다. 기독교 순교자들이 초기 기독교도의 지하 피난소인 카타콤에 빗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상아나 금속제 빗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종교사 연구가는 빗에 어떤 시기의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면서 중세 시대 교회의 가장 오래 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 빗이 분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불가사의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빗에는 마력도 따라다니고 있었다. 1600년대 유럽 각지에서는 납으로 만든 빗으로 자주 머리를 빗으면 백발이 원래의 색깔로 되돌아간다고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무척 작은 양의 부드럽고 질이 나쁜 검은 납이 머리카락에 붙어 조금이나마 검게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납으로 만든 빗을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염색을 해서 그것을 빗의 탓으로 돌렸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타당한 듯하다. 이 추측을 지지하는 것으로 1600년대 말 20~30년 동안 '납빗'이라는 말이 '그는 납빗을 사용하고 있다'는 용법으로, 백발을 염색한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 들여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빗의 디자인에 본격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60년, 가정용 첫 전기 스타일링 컴이 스위스에서 고안된 해였다. 길고 반듯한 장식용 핀 '보드킨(머리를 묶는 핀)'은 그리스와 로마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묶는 데 사용했다. 고대인이 사용하던 것과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고 있는 핀을 현대에도 많은 미개 민족들이 사용하고 있다. 몸이 작은 동물의 뼈나 엉겅퀴의 줄기를 그대로 모방한 것들이다.
고대 아시아의 묘지에서는 뼈, 철, 청동, 은, 금으로 만든 머리핀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대부분은 단순한 것이지만 장식이 멋진 것도 있다. 아무튼 1만년 동안 머리핀의 형태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클레오파트라가 애용한 머리핀은 길이 17센티미터의 상아제로 보석이 박혀 있었다. 로마인은 머리핀 속을 비게 만들어 독을 숨겼는데, 클레오파트라가 독으로 자살할 때 이용했다는 핀과 똑같은 디자인이다.
반듯한 머리핀이 200년에 걸쳐서 U자형의 보비핀으로 변신했다. 17세기 프랑스의 궁정에서 가발이 크게 유행했는데 그 가발을 쓰려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든가 핀으로 단단히 붙여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짧게 해야 가발을 보기 좋게 쓸 수 있었고 만약 벗겨지는 경우에도 흉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긴 스트레이트 핀이나 U자형 머리핀 모두 '헤어핀'이라고 불렀으나 이어 18세기 영국에서 '보비핀'으로 바뀌었다. 강력 와이어에 검은 래커를 칠하고 다리가 두 개인 작은 핀이 19세기에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고 스트레이트 핀은 실질적으로 물러났는데 이것이 '보비핀'의 이름을 독점하게 되었다.
현대의 전기 헤어 드라이어는 전기 청소기와 믹서라는, 전혀 관계없는 두 가지의 발명품으로부터 탄생했다. 탄생지가 위스콘신 주 라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전기 헤어 드라이어의 최초의 두 기종인 '레이스'와 '사이클론'은 1920년에 데뷔했다. 위스콘신 주에 있는 회사인 라신 유니버설 모터 사와 해밀턴 비치 사 제품이었다. 머리카락을 말리는 아이디어는 전기 청소기의 초기 광고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는 제품의 다기능성을 주장하는 것이 통례였다. 전기가 사상 최고의 동력원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전기 제품은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이 판매 작전이 판매량을 늘렸고 소비자는 다기능 제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전기 청소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흔히 공기 청소기라고 부르는 전기 청소기의 초기 광고에는 화장대 앞에서 청소기의 배기구에 연결된 호스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는 여성을 그렸다. "왜 당신은 온풍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하는 식의 광고 문구는, 청소기가 앞부분은 쓰레기를 빨아들이고 뒷부분으로 '배기구에서 청결하고 신선한 바람'을 내뿜는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확실히 알게 만들었다. 초기에 청소기의 수요는 그런 대로 높았으나,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청소기를 어떤 식으로 최대한 활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해 머리를 말리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손으로 들고 말리는 전기 헤어 드라이어의 개발이 늦어진 것은 발명가들이 '분마력 모터'라고 부른 효율이 좋은 소형의 저출력 모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믹서가 등장한다. 위스콘신 주의 라신은 최초의 밀크 셰이크용 전동 믹서의 고향이기도 하다. 믹서의 특허 취득은 1922년의 일이지만 믹서를 작동하기 위한 분마력 모터의 개발 노력은 이미 10년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었는데 특히 라신의 유니버설 모터 사와 해밀턴 비치 사가 힘을 쏟고 있었다. 이렇게 원리상으로는 전기 청소기와 배기 온풍과 믹서의 소형 모터가 합체되어 현재의 헤어드라이어가 탄생했고 라신에서 제조되었다. 초기의 핸드 드라이어는 모습이 이상하고 에너지 효율도 나빴으며 조금 무겁고 과열되는 일이 잦았으나 그래도 머리 손질에는 전기 청소기보다 편리했다. 그리고 이것이 뒷날 시대의 유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1930~1940년대에 개량이 되자 온도나 속도의 조절 기능이 붙었다. 포터블 홈 드라이어의 독특한 신제품이 1951년 추동판 시어즈 카탈로그에 등장했다. 정가 12.95달러의 이 제품은 핸드 드라이어와 핑크 색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뚜껑 부분은 드라이어의 배기구와 연결되어 여성들이 완전히 뒤집어쓰는 구조였다. 헤어드라이어는 데뷔한 해부터 여성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으나, 남성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경이었다. 이 무렵부터 남성이 장발을 했고 머리카락을 말리고 손질하는데 어려움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헤어드라이어 시장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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