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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의 正名論] <11>오용되고 있는 법률 '공포' 개념
<진리를 찾는 것은 사물의 구별, 또는 분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판단(判斷)'의 '판(判)'은『설문(說文)』에 "判, 分也"라고 하였다('判'이라는 글자는 '半'과 '刀'가 합친 글자로서 '半'은 "소(牛)를 나누다"의 뜻이다).
인간의 판단과 인식이란 '나누는' 구별, 또는 분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 아기의 사물에 대한 최초의 인식 과정 역시 사물에 대한 구별과 분별로부터 시작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입법을 통한 정의 실현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정의 관념의 병존 및 대립과 갈등을 상호존중과 관용의 기초 위에서 공정한 절차에 따라 조정하고 그 결과에 의하여 잠정적으로 정당성을 추정하는 절차적 정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입법을 통한 정의 실현의 문제는 상당부분 공정한 입법절차의 형성과 운용에 좌우된다.
대통령의 법률 서명이 일종의 '가(假)서명' 상태로 된 까닭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회로부터 이송된 법률안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서명하는 시점에는 서명일자를 명기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일자를 명기하지 않는 이유는 관보에 게재되는 법률공포문 전문에 게재되는 관보발행 일자와의 중첩을 피한다는 취지에서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법률 서명은 일반적인 문서 작성에 있어서의 기본을 갖추지도 않고 일종의 '가(假)서명' 상태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 국가제도의 근간인 법률의 확정을 서명하면서 그 일자조차도 명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입법절차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하자가 아닐 수 없다. 입법절차의 정당성은 법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이며, 따라서 이러한 입법절차의 하자는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차용증을 쓰고 서로 주고받을 때나, 부동산 계약서를 쓸 때도 반드시 그 날짜를 써야 한다. 만약 여기에 날짜가 없다면 그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이, 그것도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틀인 법률을 서명하면서 서명한 그 날짜를 명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최근 개정된「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잘못 개정되었다
2008년 3월 28일「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다. 그 개정이유에 대해서는 "법률 등의 공포 또는 공고문 전문(前文)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불명확하여 이를 공포 또는 공고일로 변경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하고"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정된 이「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표현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잘못 거꾸로 개정된 것이다.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제5조와 제7조는 각각 "法律公布文의 前文에는 國會의 議決을 얻은 뜻을 記載하고, 大統領이 署名한 후 大統領印을 押捺하고 그 공포일을 明記하여 國務總理와 關係國務委員이 副署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 이전의 "大統領이 署名한 후 大統領印을 押捺하고 그 일자를 明記하여 國務總理와 각 國務委員이 副署한다."에서 '그 일자'를 '그 공포일'로 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과 위배되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어떻게 '아직 발생하지 않은 행위인 공포'의 일자를 미리 명기할 수 있는 것인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해보자. 한때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삼성 특검법」은 2007년 11월 23일 국회를 통과하여 26일 정부에 이송되었고 12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10일 관보에 게재됨으로써 12월 10일 '공포'되었다. 개정된「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에 의한다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4일에 해당 법률에 서명하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날짜인' 12월 10일이라는 공포일을 명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명백히 부합되지 않은 '거짓'이다. 공문서를 서명함에 있어서 '인위적으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문서 성립의 진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의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 국가의 근간으로서의 법률을 서명하면서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일종의 '가짜 서명'이 행해지고 있는 현 상황은 시급하게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제12조는 "법령 등의 공포 또는 공고일은 그 법령 등을 게재한 관보 또는 신문이 발행된 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치 1+1=2처럼 '너무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조항이 사실 대단히 문제성이 많은 법 조항이라는 점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인위적으로' 공포일과 관보발행일을 '법에 의하여' 일치시켜 놓고 있다.
미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EU 국가들과 러시아 등 세계 대부분 나라의 법률에 있어서 공포일과 관보발행일은 서로 상이하다. 즉, 공포일은 서명일과 일치되며 관보발행일은 효력발생의 기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의 법률은 'Date of document(or text)'와 'Date of publication' 등 두 가지 일자를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두 가지 개념을 완전히 달리 사용하고 있다. 전자는 법률명에 함께 붙어있는 일자로서 공포(서명)일자를 나타내며, 후자는 관보발행일로서 효력발생의 기산점이 된다.
'公布'와 '公表'의 구별
프랑스 법률에서의 공포 개념을 살펴보면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공포한다. 공포는 법률의 합법적인 탄생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법률은 관보에 게재되어야 하고, 게재된 후라도 한나절의 유예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하면 국민에 대해 이의 준수를 구속지울 수 없다"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시 절차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로서 공화국관보에 게재되는 법적 절차를 말한다."로 규정되어 공포 개념과 완전히 구별된다. 중국의「입법법」제52조는 "법률을 서명 공포하는 주석령에는 해당 법률의 제정기관과 통과일 및 시행일을 명기한다. 법률의 서명 공포 후 즉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보 및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신문에 게재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부터 '공포'라는 법률행위는 대통령이 해당 법률이 서명되어 확정되었다는 '법률의 서명 및 확정' 사실을 알린다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중국의 고대시기에서 황제들은 '명당(明堂)'에서 정령(政令)을 선포하고 제후(諸侯)들을 접견하였는데, 이때 정령을 선포하는 행위가 바로 오늘날의 '공포' 행위이다.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왕이나 황제 등 국가 수반(首班)의 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그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으나, '출판 인쇄술'이 일반화된 근대 이후에는 법률의 효력 발생 시점을 법률을 출판, 발행하여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적용시키게 되었다. 이는 최대한 국민의 입장에서 법률을 해석하고 국민의 권리를 구현하려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정신으로서 이를 토대로 하여 출판, 발행 혹은 공표의 법률적 절차가 분명하게 설정되고 이것이 제도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러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정신은 러시아 헌법 15조 3항의 "모든 법률은 공표(公表)되며 공표되지 않은 법률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 시민의 권리, 자유 및 의무에 관계되는 규범과 법령은 보편적 고지를 위해 공표되지 않으면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명문화된 법률 규정에 분명하게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공표(혹은 공시)'를 법률 효력발생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헌법상 분명하게 규정한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법률에 명확하게 반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헌법 제15조 3항은 "모든 법률은 공표(公表)되며 공표되지 않은 법률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 시민의 권리, 자유 및 의무에 관계되는 규범과 법령은 보편적 고지를 위해 공표되지 않으면 효력을 갖지 못한다."라고 규정하면서 '공표'의 용어에 'publication'의 뜻을 지닌 '오푸블리코다띠(официальное)'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동 헌법 제107조 1항은 "승인된 연방법은 5일 이내에 서명과 공포를 위해 대통령에게 이송된다."고 규정하면서 '공포'의 용어로서 'promulgation'의 뜻을 지닌 '오브나르도바니예(обнародование)'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이밖에도「공표 및 발효절차법」이 규정되어 있어 공표 절차에 있어서 가장 정교한 법률 규정을 지니고 있다. >
과연 법률의 확정 시점은 어디인가?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렇다면 과연 법률은 언제 확정되는가라는 문제이다.
과연 법률은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하는 것으로 확정되는가, 아니면 관보 발행이 완료되는 시점에야 비로소 법률이 확정되었다고 봐야 할 것인가?
이 점에 있어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이 서명일자도 명기하지 않고 오로지 관보 발행일만 기다린다는 것은 사실상 법률의 확정을 관보발행일에 맞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국가의 법률 확정이라는 국가 대사가 일개 관보발행 담당공무원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실현된다는 '어이없는' 뜻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법률 공포권자로서의 대통령의 권한을 사실상 형해화시키는 것이다. 만약 관보 발행에 의하여 법률이 확정된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서명한 뒤 '변심하여' 관보 발행 전에 법률에 대한 재의(再議)를 요구하고 국회로 돌려보낼 가능성조차 존재하게 된다. 법률의 확정 시점은 대통령의 법률 서명, 바로 그 시점이다. 즉,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법률에 대하여 재의(再議)를 요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서명을 하면 법률은 그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프랑스나 러시아의 경우 '관보'에 게재되는 법률공포문 전문의 날짜는 대통령의 서명일자이다. 우리나라 법률이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역시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한 뒤 그 서명일자를 명기한다. 그리고 법률명은 그 서명일자를 인용한 "0000년 00월 00일의「×××× 법률」"이라고 칭해진다. 그리하여 세계 모든 나라에 법률 서명일자가 법률 탄생(확정)일자로서 법률 명칭 앞에 표기된다.
하지만 일본이 서양 법률을 도입하면서 '공포(公布)'라는 개념을 단순히 "널리 알리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 '관보발행'과 등치시켰고, 이를 우리가 일제 식민지시기를 거쳐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실제 일본은 천황 칙령 6호 공식령(公式令) 제12조에 "법령의 공포는 관보로써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1946년「내각관제(內閣官制)의 폐지 등에 관한 정령」에 의하여 이 공식령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계속 일본의 '잘못된 관행'을 아무런 검토 없이 적용시켜왔던 것이다.
법률 표기 방식을 국제 기준으로 바꿔야
법률에는 중요한 날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가, 즉 언제 탄생되었는가의 법률 출생일자이다. 그리하여 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서방 모든 국가의 법률은 "0000년 00월 00일의「×××× 법률」"이라고 칭해진다. 여기에 기록되는 날짜는 이른바 공포일자로서 법률 공포권자인 대통령 혹은 왕이 법률에 서명한 서명일자와 동일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법률의 생일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법률을 관보에 게재한 출판일자이다. 원래 출판인쇄 기술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을 때는 이 날짜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출판인쇄가 가능해진 이후 대중들에게 법률이 만들어진 사실을 '출판'을 통하여 알리는 절차가 중요해지면서 출판 일자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0000년 00월 00일의「×××× 법률」" 뒤에는 "No 5" 등과 같이 법률번호(공포번호)가 뒤따른다. 법률 명칭, 법률 공포일자, 공포번호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성명, 생년월일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법률 표기의 국제 기준이자 표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국제 기준 및 표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법률을 지칭할 경우 일반적으로 앞뒤의 일자와 번호는 언급하지 않은 채「××× 법률」이라고만 부른다. 따라서 우리의 법률에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의 출생 일자를 알 방도가 없다. 오직 관보에 게재된 이른바 '공포일자'만 남게 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 출생 신고를 동사무소에 했는데, 신고일자만 남고 정작 출생일자는 없어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법률의 공포일은 관보발행일로 한다."는 '인위적인 법률규정'에 의하여 '엄연히 별도로 존재하는' 두 가지 날짜를 '인위적으로' 하나의 날짜로 묶어놓은 것이며, 이로 인하여 대통령의 법률 서명일자, 즉 법률의 출생일자는 완전히 실종되어버리게 되고, 입법절차에 있어서도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공포(公布)'라는 하나의 법률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잘못된 사용례로부터 파생된 문제점들은 우리가 용어의 사용과 그 적용에 있어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는 단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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