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 수 5,431 댓글 0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819170847&Section=04
'서거(逝去)' 역시 일본식 한자
[소준섭의 正名論] <10>'강박'된 언어
난, 꼭, 안따 우와끼가 또 하지마루 했나 그랬지.
죠오단쟈 나이와.
그래두 가만이 보려니까, 긴상이 권허는대루 무한정허구 술을 먹으니......
1940년 박태원이 발표한 소설『애경(愛經)』의 한 대목이다. 일본어가 한글로 바뀐 채 그대로 본문에 사용되고 있다. 말과 글을 빼앗긴 민족의 비극이 그대로 배어나는 장면이다.
엊그제 일식 현상이 나타났다. 언론들이 모두 "개기일식이 나타났다"고 흥분하였다. 그런데 '개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개기'는 '皆旣'라는 한자에서 왔다. 즉, '개기'란 '모두' 개(皆)라는 글자와 '이미' 혹은 '다하다'라는 뜻을 가진 기(旣) 자가 합쳐진 글자로서 해석이 될 수 없는, 실로 '억지로 이상하게' 만들어진 전형적인 일본 조어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일종의 '기호'와 같은 용어를 그 의미도 알지 못한 채 '강제로' 암기되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포복절도(抱腹絶倒)'란 "몹시 우스워서 배를 그러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는다."라는 뜻으로서 역시 일본식 조어이다. 한자어로 해석해보면 도무지 그런 뜻으로 풀이될 수가 없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거(逝去)'라는 말은 "명성이 높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다"의 뜻으로 존경심을 담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서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지나가다', '사라지다', '소실되다'의 의미로서 실제 중국에서 '逝去'는 '가버린 사랑'이나 '지나간 나날들', '잃어버린 기억'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서거 60주년"이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김구 선생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면 매우 불편한 심정이실 게 뻔한 노릇이다.
일본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천황의 죽음은 '逝去'가 아니라 '붕어(崩御)'로 표기되며, 황족과 종3품 이상의 公卿(뒷날에는 武士도 포함)의 죽음에 대해서는 '훙거(薨去)'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신문 "매일신보"와 "신한민보"는 각각 '훙거'와 '붕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순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승하(昇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검거에 관한 보고"라는 제하의 '경성지방법원검사국' 보고서에는 '6·10만세운동'을 언급하면서 "창덕궁 주인 '서거(逝去)'에 즈음하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조선 국왕의 격을 낮추려는,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나라의 격을 꺾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러한 의도가 관철되어 결국 일제시기를 거쳐 이 땅에 '서거' 용어가 보편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거'라는 용어로 묘사되는 작금의 현실은 조선 사람을 2류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일본이 구사했던 언어 전략에 길들여진 '희화화한' 자화상이다.
자동차(自動車)와 공해(公害)
'자동차(自動車)'는 과연 문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차'일까? 엔진에 휘발유를 넣어 동력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자전거(自轉車)' 역시 문자 그대로 '스스로 돌아가는 차'가 아니다. 사람이 발로 힘을 가해야 비로소 굴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름(명칭)과 실제(내용)가 부합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자동차'와 '자전거'라는 말 역시 일본어이다.
한편 '공해(公害)'라는 말은 오늘날 환경오염이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이 용어 역시 일본식 조어이다. '공해(公害)'의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보면 "공공의(에 대한) 해로움"이라는 의미로서 원래 이 말은 예로부터 '공리(公利)'의 반대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말을 환경오염이라는 의미로 곧장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지이자 '인공 언어(人工言語, Kunstsprache)'가 아닐 수 없다.
'문화재'와 '거래'
우리 사회에서 '문화재(文化財)'라는 말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화재'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음악, 인종학적 유산 및 민족, 법, 습관, 생활양식 등 인종적·국민적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까닭으로 근래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소비에 사용되는 재화를 소비재라 지칭하고, 소비재 생산에 사용되는 재화(財貨)를 생산재라 하는 것처럼 문화재 역시 문화적인 재화를 칭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재화란 기계나 가구 등 유형물을 의미하며, 반면 교육이나 의료 등 무형물은 용역(서비스)이라고 지칭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문화재'라는 용어는 눈에 보이는 유형물을 의미하는 '재화'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물의 '문화유산'을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문화의 산물, 즉, 법률·학문·예술·종교 따위의 문화에 관한 것"의 의미를 지닌 '문물(文物)'이라는 용어가 합당하다.
한편 '증권거래', '전자상거래', 또는 '거래처' 등등의 말에서처럼 우리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거래(去來)'라는 말은 일본식 조어일 뿐이다. '거래'를 구태여 한자어로만 풀이해본다면 "가고 오다"는 '어이없는' 뜻이다. "오고 간다"는 의미에 합당한 용어는 바로 '왕래(往來)'이다. 따라서 현재 '증권거래', '전자상거래', 또는 '거래처' 등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래'는 '교역(交易)'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入車, 出車, 주차장
주차장 입구를 보면 '입차(入車)'라든가 '출차(出車)'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들어가는 차", "나오는 차"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어법에 전혀 맞지 않은 이러한 용어들의 범람으로 인하여 우리 언어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주차장'이라는 단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용어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주차장' 대신 '정차장(停車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주차장(駐車場)'이란 "자동차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로서, 자동차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하여 중국의 '정차장(停車場)'이라는 용어는 "자동차를 멈춰 세운 곳"이라는 뜻으로서, '주차장'이라는 용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혜의 한강변을 온통 자동차도로가 점령하고 모든 교통 시스템을 자동차 위주로 구축했으며, 이제 지하 40m에 도로를 건설하려는 것은 인간과 환경을 자동차 아래로 놓는 사고방식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자동차 위주의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자동차 위주의 용어를 생산하게 된다.
貴下와 貴中
우리가 편지를 부칠 때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귀하(貴下)'나 '귀중(貴中)'과 같은 용어도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 즉 '화제한어(和制漢語)'이다. '귀할 귀(貴)'와 '아래 하(下)', '귀할 귀(貴)'와 '가운데 중(中)', 한자어를 아무리 풀어 보려고 해도 해석하기 곤란하다.
'인기(人氣)'라는 단어도 일본말로서 한자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사람의 기운' 등으로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명성(名聲)'이나 '명망(名望)'이라는 말이 더욱 정확하다.
향응과 言及
'향응(饗應)'은 "음식을 차려 융숭하게 대접함. 또는, 그 대접"이라는 뜻으로서 "향응을 베풀다", "향응을 받다", '향응 제공'의 경우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사실 어려운 한자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어엿한 법률용어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어로서 본래 '향(饗)'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이미 "술과 음식을 접대 받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뒤의 '응' 자가 필요 없이 '향(饗)'이라는 한 글자로 충분하다. 이렇게 한 글자만으로도 가능한데도 굳이 두 글자로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일본이 일본식 한자어를 만들 때 모두 두 글자 방식으로 만들어온 자기들의 조어 관습 때문이다.
'언급(言及)'이라는 용어도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로서 '말하다'는 뜻을 가진 '言'과 '미치다'의 의미를 지닌 '及'을 기계적으로 합쳐서 자기들 방식대로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관용구에서의 '간섭'
특히 이러한 단어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관용구의 경우를 알게 되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가슴에 손을 얹고'라는 우리말은 일본어 '胸に手を置く'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 話に花が く", "새빨간 거짓말 - 眞赤なうそ", "손에 땀을 쥐다 - 手に汗をにぎる" 등등 이러한 용례는 수없이 많고, "도토리 키 재기 - どんぐりの背くらべ"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 - 猫の首に鈴を付ける"의 경우까지 이르게 되면 얼굴이 저절로 화끈거릴 지경이 된다.
물론 이러한 관용구 중에는 거꾸로 한국어가 일본어에 영향을 끼친 용어도 없지 않을 것으로는 추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 관용구는 어근이나 어간, 접미사 등 문법 형태소(形態素)의 기능과 의미가 일본어와 완전히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는 이들 우리말 관용어구가 일본어의 '간섭'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고만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왜곡된 언어 사용은 민족공동체의 정체성 파괴
언어의 교류란 상호 평등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의 교류란 전혀 '평등'하지 않고,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정치문화의 중심지, 혹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의 언어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식 언어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언어 교류는 마치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인위적으로 쉽게 막아내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교류(혹은 침투와 간섭)의 과정을 거쳐 언어 자체가 활력을 얻고 풍부해지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정도와 수준의 문제이다.
언어는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맺어진 일종의 계약에 기초하여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어는 규약(convention)이다. 하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심화되고 있는 일본어의 우리 언어에 대한 압도적 지배성은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의 규약이나 계약의 차원을 넘어 오히려 규약이나 계약을 위협하고 공동체의 정체성 그 자체까지도 심각하게 침해하는 질적(質的)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자어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지만, 사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한자어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일본식 조어이다. 중국 학계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현재 사용하는 중국 한자용어조차도 60% 정도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개방과 교류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종속과 지배의 범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서거(逝去)' 역시 일본식 한자
[소준섭의 正名論] <10>'강박'된 언어
난, 꼭, 안따 우와끼가 또 하지마루 했나 그랬지.
죠오단쟈 나이와.
그래두 가만이 보려니까, 긴상이 권허는대루 무한정허구 술을 먹으니......
1940년 박태원이 발표한 소설『애경(愛經)』의 한 대목이다. 일본어가 한글로 바뀐 채 그대로 본문에 사용되고 있다. 말과 글을 빼앗긴 민족의 비극이 그대로 배어나는 장면이다.
엊그제 일식 현상이 나타났다. 언론들이 모두 "개기일식이 나타났다"고 흥분하였다. 그런데 '개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개기'는 '皆旣'라는 한자에서 왔다. 즉, '개기'란 '모두' 개(皆)라는 글자와 '이미' 혹은 '다하다'라는 뜻을 가진 기(旣) 자가 합쳐진 글자로서 해석이 될 수 없는, 실로 '억지로 이상하게' 만들어진 전형적인 일본 조어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일종의 '기호'와 같은 용어를 그 의미도 알지 못한 채 '강제로' 암기되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포복절도(抱腹絶倒)'란 "몹시 우스워서 배를 그러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는다."라는 뜻으로서 역시 일본식 조어이다. 한자어로 해석해보면 도무지 그런 뜻으로 풀이될 수가 없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거(逝去)'라는 말은 "명성이 높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다"의 뜻으로 존경심을 담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서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지나가다', '사라지다', '소실되다'의 의미로서 실제 중국에서 '逝去'는 '가버린 사랑'이나 '지나간 나날들', '잃어버린 기억'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서거 60주년"이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김구 선생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면 매우 불편한 심정이실 게 뻔한 노릇이다.
일본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천황의 죽음은 '逝去'가 아니라 '붕어(崩御)'로 표기되며, 황족과 종3품 이상의 公卿(뒷날에는 武士도 포함)의 죽음에 대해서는 '훙거(薨去)'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신문 "매일신보"와 "신한민보"는 각각 '훙거'와 '붕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순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승하(昇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검거에 관한 보고"라는 제하의 '경성지방법원검사국' 보고서에는 '6·10만세운동'을 언급하면서 "창덕궁 주인 '서거(逝去)'에 즈음하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조선 국왕의 격을 낮추려는,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나라의 격을 꺾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이러한 의도가 관철되어 결국 일제시기를 거쳐 이 땅에 '서거' 용어가 보편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거'라는 용어로 묘사되는 작금의 현실은 조선 사람을 2류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일본이 구사했던 언어 전략에 길들여진 '희화화한' 자화상이다.
자동차(自動車)와 공해(公害)
'자동차(自動車)'는 과연 문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차'일까? 엔진에 휘발유를 넣어 동력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자전거(自轉車)' 역시 문자 그대로 '스스로 돌아가는 차'가 아니다. 사람이 발로 힘을 가해야 비로소 굴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름(명칭)과 실제(내용)가 부합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자동차'와 '자전거'라는 말 역시 일본어이다.
한편 '공해(公害)'라는 말은 오늘날 환경오염이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이 용어 역시 일본식 조어이다. '공해(公害)'의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보면 "공공의(에 대한) 해로움"이라는 의미로서 원래 이 말은 예로부터 '공리(公利)'의 반대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말을 환경오염이라는 의미로 곧장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지이자 '인공 언어(人工言語, Kunstsprache)'가 아닐 수 없다.
'문화재'와 '거래'
우리 사회에서 '문화재(文化財)'라는 말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화재'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음악, 인종학적 유산 및 민족, 법, 습관, 생활양식 등 인종적·국민적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까닭으로 근래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소비에 사용되는 재화를 소비재라 지칭하고, 소비재 생산에 사용되는 재화(財貨)를 생산재라 하는 것처럼 문화재 역시 문화적인 재화를 칭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재화란 기계나 가구 등 유형물을 의미하며, 반면 교육이나 의료 등 무형물은 용역(서비스)이라고 지칭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문화재'라는 용어는 눈에 보이는 유형물을 의미하는 '재화'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물의 '문화유산'을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문화의 산물, 즉, 법률·학문·예술·종교 따위의 문화에 관한 것"의 의미를 지닌 '문물(文物)'이라는 용어가 합당하다.
한편 '증권거래', '전자상거래', 또는 '거래처' 등등의 말에서처럼 우리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거래(去來)'라는 말은 일본식 조어일 뿐이다. '거래'를 구태여 한자어로만 풀이해본다면 "가고 오다"는 '어이없는' 뜻이다. "오고 간다"는 의미에 합당한 용어는 바로 '왕래(往來)'이다. 따라서 현재 '증권거래', '전자상거래', 또는 '거래처' 등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래'는 '교역(交易)'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入車, 出車, 주차장
주차장 입구를 보면 '입차(入車)'라든가 '출차(出車)'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들어가는 차", "나오는 차"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어법에 전혀 맞지 않은 이러한 용어들의 범람으로 인하여 우리 언어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주차장'이라는 단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용어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주차장' 대신 '정차장(停車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주차장(駐車場)'이란 "자동차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로서, 자동차 위주의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하여 중국의 '정차장(停車場)'이라는 용어는 "자동차를 멈춰 세운 곳"이라는 뜻으로서, '주차장'이라는 용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혜의 한강변을 온통 자동차도로가 점령하고 모든 교통 시스템을 자동차 위주로 구축했으며, 이제 지하 40m에 도로를 건설하려는 것은 인간과 환경을 자동차 아래로 놓는 사고방식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자동차 위주의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자동차 위주의 용어를 생산하게 된다.
貴下와 貴中
우리가 편지를 부칠 때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귀하(貴下)'나 '귀중(貴中)'과 같은 용어도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 즉 '화제한어(和制漢語)'이다. '귀할 귀(貴)'와 '아래 하(下)', '귀할 귀(貴)'와 '가운데 중(中)', 한자어를 아무리 풀어 보려고 해도 해석하기 곤란하다.
'인기(人氣)'라는 단어도 일본말로서 한자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사람의 기운' 등으로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명성(名聲)'이나 '명망(名望)'이라는 말이 더욱 정확하다.
향응과 言及
'향응(饗應)'은 "음식을 차려 융숭하게 대접함. 또는, 그 대접"이라는 뜻으로서 "향응을 베풀다", "향응을 받다", '향응 제공'의 경우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사실 어려운 한자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어엿한 법률용어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어로서 본래 '향(饗)'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이미 "술과 음식을 접대 받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뒤의 '응' 자가 필요 없이 '향(饗)'이라는 한 글자로 충분하다. 이렇게 한 글자만으로도 가능한데도 굳이 두 글자로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일본이 일본식 한자어를 만들 때 모두 두 글자 방식으로 만들어온 자기들의 조어 관습 때문이다.
'언급(言及)'이라는 용어도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로서 '말하다'는 뜻을 가진 '言'과 '미치다'의 의미를 지닌 '及'을 기계적으로 합쳐서 자기들 방식대로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관용구에서의 '간섭'
특히 이러한 단어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관용구의 경우를 알게 되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가슴에 손을 얹고'라는 우리말은 일본어 '胸に手を置く'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 話に花が く", "새빨간 거짓말 - 眞赤なうそ", "손에 땀을 쥐다 - 手に汗をにぎる" 등등 이러한 용례는 수없이 많고, "도토리 키 재기 - どんぐりの背くらべ"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 - 猫の首に鈴を付ける"의 경우까지 이르게 되면 얼굴이 저절로 화끈거릴 지경이 된다.
물론 이러한 관용구 중에는 거꾸로 한국어가 일본어에 영향을 끼친 용어도 없지 않을 것으로는 추정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 관용구는 어근이나 어간, 접미사 등 문법 형태소(形態素)의 기능과 의미가 일본어와 완전히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는 이들 우리말 관용어구가 일본어의 '간섭'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고만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왜곡된 언어 사용은 민족공동체의 정체성 파괴
언어의 교류란 상호 평등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의 교류란 전혀 '평등'하지 않고,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정치문화의 중심지, 혹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의 언어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식 언어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언어 교류는 마치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인위적으로 쉽게 막아내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교류(혹은 침투와 간섭)의 과정을 거쳐 언어 자체가 활력을 얻고 풍부해지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정도와 수준의 문제이다.
언어는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맺어진 일종의 계약에 기초하여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어는 규약(convention)이다. 하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심화되고 있는 일본어의 우리 언어에 대한 압도적 지배성은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의 규약이나 계약의 차원을 넘어 오히려 규약이나 계약을 위협하고 공동체의 정체성 그 자체까지도 심각하게 침해하는 질적(質的)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자어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지만, 사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한자어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일본식 조어이다. 중국 학계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현재 사용하는 중국 한자용어조차도 60% 정도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개방과 교류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종속과 지배의 범주로 되어서는 안 된다.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홍보/광고 | 현재 XE 에서 Rhymix 로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 風文 | 2024.11.13 |
-
골든걸스 - One Last Time 안무
-
Bach - Air on the G String | 1 HOUR Extended | Classical Music for Studying and Concentration Violin
-
이순신·강감찬 장군 얼굴에 먹칠 하고 있다
-
2023.05 접속 통계
-
이 독도 관련 문장을 누가썼나?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vs '광고패러디'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초청
-
2023.03. 접속통계
-
2023.02 접속통계
-
충청도 말이 가장 빠르다
-
술 마신 다음 날 지갑을 보고
-
서있는 물
-
수치
-
꽃에 향기가 있듯이
-
간편하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위험한 식품들
-
자신보다 불운한 사람들과
-
격렬함은 거의 폭력에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이다.
-
인류의 최대의 불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