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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730154519&Section=04
왜 언어가 중요한가?
[소준섭의 正名論] <6>국가주권의 구성요소이자 사회연대의 필요조건
중국은 왜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았을까?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대륙과 중국 중, 어느 곳이 더 면적이 클까? 유럽이라고 대답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유럽 대륙보다 크다. 그것도 훨씬 크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대륙의 면적은 490여만 ㎢로서 960만 ㎢ 에 달하는 중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구로 따지면 유럽 인구가 4억 9,800만 명으로서 13억 명의 중국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유럽 대륙에는 모두 36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유럽이 민족 및 종교 등 모든 다양성의 차이로 인하여 원심력이 최대한도로 작동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면, 중국은 그 모든 다양성을 통제하는 구심력이 전일적으로 작동된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이렇듯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문자(文字)이다.
중국은 한자(漢字)라는 상형(象形)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족들이 분산 거주하면서 발음상 상이함이 나타날 경우에도 뜻을 알 수 있는 상형 문자의 존재에 의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한자라는 중국의 상형문자는 발음상의 차이를 초월하여 동일한 함의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자는 서로 상이한 언어를 가진 종족 간 교류와 결합의 유대(紐帶)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특히 중앙 왕조는 통일된 문자에 의하여 각 지역과의 안정된 정보 체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정치, 군사, 경제적인 결합이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비록 지리적으로 광활하고 교통은 불편했지만, 중국은 한자라는 문자에 토대하여 국토 통일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시킨 후 서로 다른 각국의 문자를 통일시켰다는 주장이 정설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하지 못한 견해이다.『사기·진시황본기』에는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 書同文字"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서동문자(書同文字)'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문자를 통일시켰다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전국시대 각국마다 여러 가지 서체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서체를 진시황이 천하 통일 후 진나라가 사용하던 소전(小篆)체로 통일시켰다는 의미이다. 즉, 진나라는 천하통일 후 정부 문건의 표준 서체를 소전(小篆)체로 통일시킨 것이다. 이후 한나라 시기에는 예서(隸書)로 통일하였다.>
이와 반대로 유럽의 경우 원래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그 언어는 표음(表音) 문자로서 지리적 거주지마다 발음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차츰 문자도 상호 달라지면서 서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모든 민족이 산산이 분열하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 종이(紙)의 존재가 양자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만들었다. 즉, 중국은 한나라 시기부터 종이가 발명되어 문자를 종이에 기록하여 성문화(成文化)함으로써 문자는 정보활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에 따라 전 국토와 종족의 통일을 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은 고작 양가죽에 문자를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가죽은 너무 무겁고 비쌌으며 또 문자를 대량으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문자에 의한 통일' 효과가 나타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도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나 중국의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國家語言文字工作委員會)와 같은 기관처럼 정부 차원에서 권위 있는 기구를 만들어 용어를 통일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용어 사용에 있어서 불필요한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언어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모국어의 지위에 대한 재확인은 국가의 하나 됨을 상징하고, 언어는 그것이 지니는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토대로 하여 시민 생활에 있어 모든 사람의 완전한 통합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국가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프랑스의 언어 정책
현재 프랑스어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분명하고 사교적이며, 합리적인 것'으로 만인에게 인정받기까지, 나아가서 '분명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프랑스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자국어의 보호와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으며, 이와 함께 국어와 관련된 사항을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거듭해 온 국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자국어의 순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시기는 1635년에 프랑스어를 순화하여 올바른 국어로 확립시키고 사전의 편찬과 문법책을 간행하는 일 등을 목적으로 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설립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재상이었던 르셜리외는 이 기구의 설립 목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란이 심한 국가에서 결속력을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인 하나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천명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언어의 규범화(codification)라는 목적을 지닌 언어정책 기구로서 모든 사람이 프랑스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프랑스어의 규칙을 정하고 프랑스어가 학문과 예술의 언어로 될 수 있도록 프랑스어를 순수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회원은 40여 명으로서 종신제 회원들은 '불멸(immortalité)'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창설자 리셜리외가 아카데미에 부여한 직인 위에 새겨진 '영원불멸(à l´immortalité)'이라는 글귀에서 유래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들은 정부 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편제되어 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94년 최초의 '프랑스어 사전'을 편찬한 이래 1935년 제8권이 출판될 때까지 당대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집대성하여 사전에 수록하는 작업을 기본적인 과제로 설정해왔다. 그리고 1958년부터는 '바른 용법에 어긋나는 단어와 표현' 리스트를 정기적으로 작성하여 간행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일환으로서 1964년 처음으로 "경계해야 할 표현들"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고, 신어(新語)를 사전에 추가하거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낱말을 폐기하는 등의 적극적인 국어 순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1972년 용어 및 신조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부 각 부처에 반드시 전문용어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 유입되는 외국어나 외래어에 적절한 번역용어를 지정하거나 새로 출현한 물건이나 개념을 지칭할 단어를 제정하는 등 관련 제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 위원회의 결정은 법령으로 제정되어 "신어관보(新語官報)"에 게재되며 프랑스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여기에서 결정된 전문용어들은 모든 공문서와 국가와 계약을 맺는 모든 계약서에 강제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전문용어는 사회의 각 영역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부처와 교육성이 관련 법령의 제정을 주도하고 법령의 범위를 정한다. 국무총리 직속인 전문용어 및 신조어 위원회는 새로운 전문용어 및 일상용어의 도입을 통하여 프랑스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이 위원회는 전문용어 및 신조어에 관한 여러 전문위원회의 업무를 조정하고 그 개별 위원회들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간의 협력을 관장한다. 위원회는 총 1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4년 임기로 국무총리가 임명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종신 의장을 비롯한 5명의 위원과 문화부 장관이 관련 부처 장관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4년 임기의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월 1회 소집되며, 위원들 외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1975년의「바-로리올법」은 언론 매체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였고, 여기에는 각종 광고와 양식 그리고 사용설명서 등도 포함되었다. 1992년에는 프랑스 헌법 제2조에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라고 명기하였다. 그리고 매스컴을 포함한 모든 공식 문건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신조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중국의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는 "언어문자 업무에 관한 방침과 정책을 세우고 언어문자 표준을 제정하며, 언어문자 관리 규정을 발표하고 언어문자의 규범화와 표준화를 촉진할 것"을 그 직무로 삼고 있다.
한 국가가 제대로 서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기본과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가 분명히 서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정명(正名)'이 실현되어야 하고, '정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말이 제대로 정립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실로 용어의 정확한 정립은 나라의 중요한 기초이다.
자국 언어를 소중히 가꾸고 이를 제도적으로 구축해온 프랑스의 경우는 우리로서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이다. 특히 말과 글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처럼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
나라와 민족의 얼과 혼을 살리는 차원에서 정부가 인적 · 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프랑스의 정책을 모델로 삼아 정부 차원의 언어정책기구를 설치하는 등 정책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왜 언어가 중요한가?
[소준섭의 正名論] <6>국가주권의 구성요소이자 사회연대의 필요조건
중국은 왜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았을까?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대륙과 중국 중, 어느 곳이 더 면적이 클까? 유럽이라고 대답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유럽 대륙보다 크다. 그것도 훨씬 크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대륙의 면적은 490여만 ㎢로서 960만 ㎢ 에 달하는 중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구로 따지면 유럽 인구가 4억 9,800만 명으로서 13억 명의 중국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유럽 대륙에는 모두 36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유럽이 민족 및 종교 등 모든 다양성의 차이로 인하여 원심력이 최대한도로 작동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면, 중국은 그 모든 다양성을 통제하는 구심력이 전일적으로 작동된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이렇듯 유럽처럼 분열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문자(文字)이다.
중국은 한자(漢字)라는 상형(象形)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족들이 분산 거주하면서 발음상 상이함이 나타날 경우에도 뜻을 알 수 있는 상형 문자의 존재에 의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한자라는 중국의 상형문자는 발음상의 차이를 초월하여 동일한 함의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한자는 서로 상이한 언어를 가진 종족 간 교류와 결합의 유대(紐帶)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특히 중앙 왕조는 통일된 문자에 의하여 각 지역과의 안정된 정보 체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정치, 군사, 경제적인 결합이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비록 지리적으로 광활하고 교통은 불편했지만, 중국은 한자라는 문자에 토대하여 국토 통일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시킨 후 서로 다른 각국의 문자를 통일시켰다는 주장이 정설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하지 못한 견해이다.『사기·진시황본기』에는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 書同文字"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서동문자(書同文字)'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문자를 통일시켰다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전국시대 각국마다 여러 가지 서체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서체를 진시황이 천하 통일 후 진나라가 사용하던 소전(小篆)체로 통일시켰다는 의미이다. 즉, 진나라는 천하통일 후 정부 문건의 표준 서체를 소전(小篆)체로 통일시킨 것이다. 이후 한나라 시기에는 예서(隸書)로 통일하였다.>
이와 반대로 유럽의 경우 원래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그 언어는 표음(表音) 문자로서 지리적 거주지마다 발음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차츰 문자도 상호 달라지면서 서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모든 민족이 산산이 분열하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 종이(紙)의 존재가 양자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만들었다. 즉, 중국은 한나라 시기부터 종이가 발명되어 문자를 종이에 기록하여 성문화(成文化)함으로써 문자는 정보활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에 따라 전 국토와 종족의 통일을 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은 고작 양가죽에 문자를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가죽은 너무 무겁고 비쌌으며 또 문자를 대량으로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문자에 의한 통일' 효과가 나타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도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나 중국의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國家語言文字工作委員會)와 같은 기관처럼 정부 차원에서 권위 있는 기구를 만들어 용어를 통일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용어 사용에 있어서 불필요한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언어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모국어의 지위에 대한 재확인은 국가의 하나 됨을 상징하고, 언어는 그것이 지니는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토대로 하여 시민 생활에 있어 모든 사람의 완전한 통합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국가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프랑스의 언어 정책
현재 프랑스어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분명하고 사교적이며, 합리적인 것'으로 만인에게 인정받기까지, 나아가서 '분명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어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프랑스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자국어의 보호와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으며, 이와 함께 국어와 관련된 사항을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거듭해 온 국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자국어의 순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시기는 1635년에 프랑스어를 순화하여 올바른 국어로 확립시키고 사전의 편찬과 문법책을 간행하는 일 등을 목적으로 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설립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재상이었던 르셜리외는 이 기구의 설립 목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란이 심한 국가에서 결속력을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통합적인 하나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천명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언어의 규범화(codification)라는 목적을 지닌 언어정책 기구로서 모든 사람이 프랑스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프랑스어의 규칙을 정하고 프랑스어가 학문과 예술의 언어로 될 수 있도록 프랑스어를 순수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회원은 40여 명으로서 종신제 회원들은 '불멸(immortalité)'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창설자 리셜리외가 아카데미에 부여한 직인 위에 새겨진 '영원불멸(à l´immortalité)'이라는 글귀에서 유래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들은 정부 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편제되어 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94년 최초의 '프랑스어 사전'을 편찬한 이래 1935년 제8권이 출판될 때까지 당대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집대성하여 사전에 수록하는 작업을 기본적인 과제로 설정해왔다. 그리고 1958년부터는 '바른 용법에 어긋나는 단어와 표현' 리스트를 정기적으로 작성하여 간행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일환으로서 1964년 처음으로 "경계해야 할 표현들"이라는 소책자를 발행하고, 신어(新語)를 사전에 추가하거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낱말을 폐기하는 등의 적극적인 국어 순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1972년 용어 및 신조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부 각 부처에 반드시 전문용어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 유입되는 외국어나 외래어에 적절한 번역용어를 지정하거나 새로 출현한 물건이나 개념을 지칭할 단어를 제정하는 등 관련 제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 위원회의 결정은 법령으로 제정되어 "신어관보(新語官報)"에 게재되며 프랑스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여기에서 결정된 전문용어들은 모든 공문서와 국가와 계약을 맺는 모든 계약서에 강제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전문용어는 사회의 각 영역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당 부처와 교육성이 관련 법령의 제정을 주도하고 법령의 범위를 정한다. 국무총리 직속인 전문용어 및 신조어 위원회는 새로운 전문용어 및 일상용어의 도입을 통하여 프랑스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이 위원회는 전문용어 및 신조어에 관한 여러 전문위원회의 업무를 조정하고 그 개별 위원회들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간의 협력을 관장한다. 위원회는 총 1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4년 임기로 국무총리가 임명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종신 의장을 비롯한 5명의 위원과 문화부 장관이 관련 부처 장관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4년 임기의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월 1회 소집되며, 위원들 외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1975년의「바-로리올법」은 언론 매체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였고, 여기에는 각종 광고와 양식 그리고 사용설명서 등도 포함되었다. 1992년에는 프랑스 헌법 제2조에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라고 명기하였다. 그리고 매스컴을 포함한 모든 공식 문건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신조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중국의 '국가언어문자공작위원회'는 "언어문자 업무에 관한 방침과 정책을 세우고 언어문자 표준을 제정하며, 언어문자 관리 규정을 발표하고 언어문자의 규범화와 표준화를 촉진할 것"을 그 직무로 삼고 있다.
한 국가가 제대로 서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기본과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가 분명히 서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정명(正名)'이 실현되어야 하고, '정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말이 제대로 정립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실로 용어의 정확한 정립은 나라의 중요한 기초이다.
자국 언어를 소중히 가꾸고 이를 제도적으로 구축해온 프랑스의 경우는 우리로서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이다. 특히 말과 글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말과 글의 소중함을 이처럼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
나라와 민족의 얼과 혼을 살리는 차원에서 정부가 인적 · 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프랑스의 정책을 모델로 삼아 정부 차원의 언어정책기구를 설치하는 등 정책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