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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217190434&Section=04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7>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①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과 세계체제
1. 16-18세기의 유럽경제와 자본주의
유럽 경제발전의 흐름
16세기는 유럽 경제가 오랜 침체를 겪고 나서 다시 활기를 되찾은 시기이다. 1340년대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사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남유럽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스캔디나비아, 러시아로 번져 나가며 유럽 인구의 약 1/3 정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은 것은 당시로서는 병을 치료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식량이 부족해졌고 따라서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졌던 것이다.
유럽경제는 중세의 오랜 침체 끝에 11세기부터 되살아난다. 그래서 인구가 증가하고 광범한 개간 사업이 이루어지며 농업도 발전한다. 또 원거리를 잇는 상업이나 수공업도 발달한다.
그래서 13세기까지 중세 후기의 번영을 이루나 14세기에 들어서며 사정이 달라졌다. 1000년경에 약 3000만이었던 유럽 인구가 1340년경에 약 7,400만이 될 정도로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의 농업 생산성이라는 것이 밀 한 알을 심으면 겨우 3-4알을 수확할 정도로 낮았으니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트가 퍼지자 막대한 피해를 낸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자 많은 농경지가 버려져 다시 숲으로 되돌아갔고 상업이나 수공업도 쇠퇴했으며 도시도 위축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럽경제는 거의 파멸적 상태에 빠졌다.
큰 전쟁이나 전염병이 돌아 인구가 많이 줄어든 다음 그것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데는 보통 약 20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그러니 16세기에 들어서서야 유럽경제가 겨우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며 식량 증산을 위해 다시 숲이나 늪지의 개간이 널리 이루어졌다. 또 수공업이나 상업도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다.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유럽경제는 대체로 17세기에 잠시 침체기를 겪었다가 18세기에 와서 다시 성장을 계속하게 된다. 특히 18세기 말 이후의 산업혁명을 겪으며 경제발전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유럽 문명의 산물인 근대 자본주의
서양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서양 근대문명의 본질적인 하나의 구성요소로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유럽문명이 만들어낸 독특한 산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기초가 마련된 16세기 이후의 유럽경제 발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맑스나 베버 같은 19세기 대학자들의 전 생애에 걸친 지적 노력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토인비(A.Toynbee)나 폴라니(K.Polani), 브로델(F.Braudel) 같은 20세기 서양의 유명한 역사가들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여러 이유로 오직 근대 유럽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오늘날 전 지구가 하나의 경제체제 안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하나의 경제적 틀(체제)에 묶여 있다는 생각은 19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다 정교한 이론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미국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I.Wallerstein)이 16세기 이후 세계 경제의 발전을 '세계체제' 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 데서 비롯했다.
이 개념은 만들어진 지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사용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월러스틴이 그것을 갖고 오늘날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제적인 지배-예속 관계를 역사 과정 속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상당한 설득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통해 16-18세기의 유럽과 비유럽 경제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2.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세계체제론이란 무엇인가
월러스틴이 유명해진 것은 1974년에 제1권이 나왔고 그 후 80년대까지 모두 3권이 출간된 <근대 세계-체제 (Modern World-System)>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16-18세기 사이 세계 경제의 발전을 다루고 있는데 나오자마자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원래 아프리카를 연구한 사회학자로 종속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속이론이란 50, 60년대에 맑시즘의 영향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이론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구조적인 지배-예속 관계를 밝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려 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프리카를 연구한 것도 아프리카를 통해 20세기 후반에 있어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관계를 폭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점에서 그는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연구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의 역사로 확대했다. 오늘날 제3세계의 종속이 16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50-1640년 시기(그는 이 시기를 '긴 16세기'라고 부른다)에 서유럽은 자본주의의 기초를 처음 확립했고 그러면서 짧은 기간 내에 전 세계의 많은 지역들을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하나의 경제의 틀로 묶인 것을 그는 세계-체제라고 부른다. 물론 그 중심부에 있는 것은 당연히 서유럽이다. 그 주위에 반주변부, 또 그 바깥으로는 주변부가 둘러싸고 있으며 중심부와 반주변부 · 주변부 사이에는 착취와 예속관계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제 3세계의 빈곤은 이 지역이 바로 수백 년 동안 중심부의 착취를 받아온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서유럽은 500년 전부터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태에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 있다. 따라서 제3세계가 이런 강고한 예속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접하는 제3세계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무엇인가 답답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해방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편에서 서양의 우월을 역사적인 면에서 고정된 구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이론은 상당한 정도로 유럽중심주의적인 시각 위에 서 있는 것으로 근대 세계경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유럽 경제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아시아 경제에 대한 평가에도 문제가 많다. 따라서 요즈음 특히 근대 초 아시아 경제가 재평가되며 반박을 받고 있다. 그러면 월러스틴의 이론을 간단히 살펴보자.
세계-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가 사용하는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에 세계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는 하나 전 세계를 모두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광역 경제를 의미한다. 즉 일정 지역에서 독립적인 여러 국가들이 무역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이 경우 그는 꼭 중간에 하이픈을 넣어 '세계-체제'라고 쓰고 그렇지 않고 전 세계를 포괄하는 체제를 하이픈 없는 '세계체제'로 구분해서 쓴다. 16-18세기는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체제로 묶이기 이전이니 당연히 세계-체제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는 '긴 16세기'에 유럽에서 최초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15세기 말에 봉건경제의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유럽이 문제의 해결을 외부로의 팽창과 상업팽창에서 찾았고 거기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아메리카로의 진출, 아시아 무역, 유럽 내부 무역의 증대가 그 결과이다.
그리하여 지역적인 노동 분업과 국가 사이의 힘의 차이에 의해 부등가 교환(부등가 교환이란 여러 조건에 의해 다른 노동량이 투입되는 상품이 같은 가격으로 교환됨에 따라 나타나는 불평등한 교환을 말한다. 기술이나 자본의 차이, 국가의 힘의 차이가 그것을 가져온다. 바나나 한 트럭분과 대형 디지털 TV 한 대가 같은 가격에 팔릴 때 바나나 생산에 훨씬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 갈 것은 뻔하다. 이 경우 기술과 자본의 차이에 따라 노동력의 부등가교환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을 생산하는 지역이 착취를 당하게 된다. 또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해 보호관세를 물리지 못하게 할 때에도 마찬가지 일이 나타난다)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한 세기라는 짧은 동안에 만들어졌다. 그 결과 중심부, 주변부, 반주변부의 삼중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북 프랑스에서는 강력한 국가와 가장 이익이 남는 경제활동과 가장 효과적인 노동방식이 자리 잡았다. 따라서 다른 지역들로부터 계속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우월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지중해 주변의 많은 지역으로 구성되는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나 농노제에 의해 비효율적이지만 싸게 생산되는 곡물, 귀금속, 원자재를 공급함으로써 중심부가 이익이 나는 활동에 특화하고 주변부를 가차 없이 수탈하도록 허용한다.
반주변부는 서, 남유럽의 남은 지역과 중유럽, 영국령 북아메리카로 정치구조나 경제활동, 노동지배 양식에서 그 중간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세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이나 노동 형태가 다 다르게 나타난다. 중심부에서는 공업과 특화된 농업이 이루어지나 주변부에서는 특용작물의 단일 경작이 나타난다. 이것은 면화나 설탕, 커피, 고무 등 원자재로 중심부에 팔기 위한 작물들이다. 또 여러 광산물들도 이에 포함된다. 또 중심부에서는 숙련공의 임금노동과 자본주의적 차지농(借地農)이 나타나나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도나 강제노동이 나타난다.
이 세 지역이 세계-체제로부터 받는 혜택도 각각 다르다. 주변부나 반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이익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심부 국가들의 강력한 힘이다. 군사력을 포함한 이 중심부 국가의 권력을 월러스틴은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서유럽을 중심부로 16-18세기에 확립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1750년 이후의 산업혁명과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확대되어 19세기 말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포괄하는 말 그대로의 '세계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없으므로 약 50년을 주기로 팽창과 정체를 되풀이하는 경기변동을 맞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가 재정비되며 더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동력이 프롤레타리아화하여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데까지 착취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본가들이 더 이상 이윤을 낼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세계질서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 어렵긴 하나 이것이 그의 이론의 대체적인 틀이다.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17>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 ①
16-18세기 유럽경제의 발전과 세계체제
1. 16-18세기의 유럽경제와 자본주의
유럽 경제발전의 흐름
16세기는 유럽 경제가 오랜 침체를 겪고 나서 다시 활기를 되찾은 시기이다. 1340년대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사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남유럽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스캔디나비아, 러시아로 번져 나가며 유럽 인구의 약 1/3 정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은 것은 당시로서는 병을 치료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식량이 부족해졌고 따라서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졌던 것이다.
유럽경제는 중세의 오랜 침체 끝에 11세기부터 되살아난다. 그래서 인구가 증가하고 광범한 개간 사업이 이루어지며 농업도 발전한다. 또 원거리를 잇는 상업이나 수공업도 발달한다.
그래서 13세기까지 중세 후기의 번영을 이루나 14세기에 들어서며 사정이 달라졌다. 1000년경에 약 3000만이었던 유럽 인구가 1340년경에 약 7,400만이 될 정도로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의 농업 생산성이라는 것이 밀 한 알을 심으면 겨우 3-4알을 수확할 정도로 낮았으니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트가 퍼지자 막대한 피해를 낸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자 많은 농경지가 버려져 다시 숲으로 되돌아갔고 상업이나 수공업도 쇠퇴했으며 도시도 위축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럽경제는 거의 파멸적 상태에 빠졌다.
큰 전쟁이나 전염병이 돌아 인구가 많이 줄어든 다음 그것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데는 보통 약 20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그러니 16세기에 들어서서야 유럽경제가 겨우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며 식량 증산을 위해 다시 숲이나 늪지의 개간이 널리 이루어졌다. 또 수공업이나 상업도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다.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유럽경제는 대체로 17세기에 잠시 침체기를 겪었다가 18세기에 와서 다시 성장을 계속하게 된다. 특히 18세기 말 이후의 산업혁명을 겪으며 경제발전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유럽 문명의 산물인 근대 자본주의
서양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서양 근대문명의 본질적인 하나의 구성요소로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유럽문명이 만들어낸 독특한 산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기초가 마련된 16세기 이후의 유럽경제 발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맑스나 베버 같은 19세기 대학자들의 전 생애에 걸친 지적 노력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토인비(A.Toynbee)나 폴라니(K.Polani), 브로델(F.Braudel) 같은 20세기 서양의 유명한 역사가들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여러 이유로 오직 근대 유럽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오늘날 전 지구가 하나의 경제체제 안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하나의 경제적 틀(체제)에 묶여 있다는 생각은 19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다 정교한 이론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미국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I.Wallerstein)이 16세기 이후 세계 경제의 발전을 '세계체제' 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 데서 비롯했다.
이 개념은 만들어진 지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사용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월러스틴이 그것을 갖고 오늘날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제적인 지배-예속 관계를 역사 과정 속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상당한 설득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통해 16-18세기의 유럽과 비유럽 경제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2.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세계체제론이란 무엇인가
월러스틴이 유명해진 것은 1974년에 제1권이 나왔고 그 후 80년대까지 모두 3권이 출간된 <근대 세계-체제 (Modern World-System)>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16-18세기 사이 세계 경제의 발전을 다루고 있는데 나오자마자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원래 아프리카를 연구한 사회학자로 종속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속이론이란 50, 60년대에 맑시즘의 영향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이론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구조적인 지배-예속 관계를 밝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려 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프리카를 연구한 것도 아프리카를 통해 20세기 후반에 있어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관계를 폭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점에서 그는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연구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의 역사로 확대했다. 오늘날 제3세계의 종속이 16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50-1640년 시기(그는 이 시기를 '긴 16세기'라고 부른다)에 서유럽은 자본주의의 기초를 처음 확립했고 그러면서 짧은 기간 내에 전 세계의 많은 지역들을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하나의 경제의 틀로 묶인 것을 그는 세계-체제라고 부른다. 물론 그 중심부에 있는 것은 당연히 서유럽이다. 그 주위에 반주변부, 또 그 바깥으로는 주변부가 둘러싸고 있으며 중심부와 반주변부 · 주변부 사이에는 착취와 예속관계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제 3세계의 빈곤은 이 지역이 바로 수백 년 동안 중심부의 착취를 받아온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서유럽은 500년 전부터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태에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 있다. 따라서 제3세계가 이런 강고한 예속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접하는 제3세계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무엇인가 답답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해방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편에서 서양의 우월을 역사적인 면에서 고정된 구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이론은 상당한 정도로 유럽중심주의적인 시각 위에 서 있는 것으로 근대 세계경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유럽 경제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아시아 경제에 대한 평가에도 문제가 많다. 따라서 요즈음 특히 근대 초 아시아 경제가 재평가되며 반박을 받고 있다. 그러면 월러스틴의 이론을 간단히 살펴보자.
세계-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가 사용하는 세계-체제라는 용어는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에 세계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는 하나 전 세계를 모두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광역 경제를 의미한다. 즉 일정 지역에서 독립적인 여러 국가들이 무역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이 경우 그는 꼭 중간에 하이픈을 넣어 '세계-체제'라고 쓰고 그렇지 않고 전 세계를 포괄하는 체제를 하이픈 없는 '세계체제'로 구분해서 쓴다. 16-18세기는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체제로 묶이기 이전이니 당연히 세계-체제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는 '긴 16세기'에 유럽에서 최초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15세기 말에 봉건경제의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유럽이 문제의 해결을 외부로의 팽창과 상업팽창에서 찾았고 거기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아메리카로의 진출, 아시아 무역, 유럽 내부 무역의 증대가 그 결과이다.
그리하여 지역적인 노동 분업과 국가 사이의 힘의 차이에 의해 부등가 교환(부등가 교환이란 여러 조건에 의해 다른 노동량이 투입되는 상품이 같은 가격으로 교환됨에 따라 나타나는 불평등한 교환을 말한다. 기술이나 자본의 차이, 국가의 힘의 차이가 그것을 가져온다. 바나나 한 트럭분과 대형 디지털 TV 한 대가 같은 가격에 팔릴 때 바나나 생산에 훨씬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 갈 것은 뻔하다. 이 경우 기술과 자본의 차이에 따라 노동력의 부등가교환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을 생산하는 지역이 착취를 당하게 된다. 또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해 보호관세를 물리지 못하게 할 때에도 마찬가지 일이 나타난다)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한 세기라는 짧은 동안에 만들어졌다. 그 결과 중심부, 주변부, 반주변부의 삼중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북 프랑스에서는 강력한 국가와 가장 이익이 남는 경제활동과 가장 효과적인 노동방식이 자리 잡았다. 따라서 다른 지역들로부터 계속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우월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지중해 주변의 많은 지역으로 구성되는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나 농노제에 의해 비효율적이지만 싸게 생산되는 곡물, 귀금속, 원자재를 공급함으로써 중심부가 이익이 나는 활동에 특화하고 주변부를 가차 없이 수탈하도록 허용한다.
반주변부는 서, 남유럽의 남은 지역과 중유럽, 영국령 북아메리카로 정치구조나 경제활동, 노동지배 양식에서 그 중간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세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이나 노동 형태가 다 다르게 나타난다. 중심부에서는 공업과 특화된 농업이 이루어지나 주변부에서는 특용작물의 단일 경작이 나타난다. 이것은 면화나 설탕, 커피, 고무 등 원자재로 중심부에 팔기 위한 작물들이다. 또 여러 광산물들도 이에 포함된다. 또 중심부에서는 숙련공의 임금노동과 자본주의적 차지농(借地農)이 나타나나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도나 강제노동이 나타난다.
이 세 지역이 세계-체제로부터 받는 혜택도 각각 다르다. 주변부나 반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이익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심부 국가들의 강력한 힘이다. 군사력을 포함한 이 중심부 국가의 권력을 월러스틴은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서유럽을 중심부로 16-18세기에 확립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1750년 이후의 산업혁명과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확대되어 19세기 말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포괄하는 말 그대로의 '세계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없으므로 약 50년을 주기로 팽창과 정체를 되풀이하는 경기변동을 맞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가 재정비되며 더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동력이 프롤레타리아화하여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데까지 착취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본가들이 더 이상 이윤을 낼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세계질서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 어렵긴 하나 이것이 그의 이론의 대체적인 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