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치마
여자들이 일할 때 막 입는 튼튼한 베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하는데 여기엔 이런 연유가 있다.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로서 전공을 세운 권율 장군은 이어 전라감사로 임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북상해 왔는데 때마침 왜군은 명나라 대군에게 밀려 후퇴하여 서울로 집결하던 때였다. 권장군이 서울의 서쪽 강가 행주산성에 웅거하여 놈들의 돌아오는 목을 노리니 그들에게는 여간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래 대군을 휘동하여 여러 날 이를 포위 공격하였는데 성 안에서는 적은 수의 군대로 잘 지켜 싸워 왜군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포위를 풀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임란 중의 유명한 행주대첩인데 이때 성 중에서는 적을 막아내는데 돌팔매까지를 동원했고 그 돌을 나르기 위해서는 부녀자들까지도 모두 합심하여 앞치마에다 돌을 담아 날아서 이를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행주의 지명을 따서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임란 전에 이미 부엌을 '행주'라 기록한 것이 있으니 '부엌치마'란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난을 치른 뒤에는 공있는 영웅을 만들고 적개심이 발로하여 이런 유의 설화는 생겨나게 마련이요, 이런 것을 영웅설화라고 한다. 또 어원을 밝히려는 점을 강조하여 '민간어원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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