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에 능참봉을 하나 했더니 한 달에 거동이 스물 아홉번이라
'늙게 된 서방 만났다'는 격으로 명목 없는 구실에 일만 드세다는 뜻으로 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런 일화도 관련되어 있다.
이조 후기의 정조가 자기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수원으로 능침을 옮기고 수원성을 쌓고 행궁을 새우며,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고 뻔질낳게 거동을 해서 능을 봉심한 때문에 나온 소리다. 그는 자기 아버지 능 주위에 송충이 끓어 소나무들이 다 죽는단 얘길 듣고, 그 중 큰 놈으로 잡아올리라 해서 그 징그러운 놈을 깨물었더니 하늘이 감동했는지 큰 비가 내려 송충이가 전멸하였다고도 전하여 온다.
또 일설에는 어떤 능참봉이 신수를 보았더니 아무 날 능상 앞에 가 엎드려 있으면 죽을 고비를 면하리라고 한다. 마침 그 날 비는 억수로 쏟아지는데 임금은 생각하였다.
"이렇게 비오는 밤이면 능상이 어찌 되려나. 지키라고 둔 관원 놈은 뜻뜻한 방에서 편하게 자렸다"
그래 군사에게 칼을 주어 달려 보냈더니 집에 안 있고 그 비를 맞으며 능상 앞에 엎드려 있더라는 보고라, 목숨을 보전하였을 뿐 아니라 상까지 후하게 탔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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