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염은 표장부
이조초 이태조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도와 공이 컸던 이지란 - 본 여진명으로는 퉁두란 - 이태조의 등국 후 벼슬을 물러나며 한 말이다.
한 나라 창업 때 공신의 한사람인 장 량이 사업의 성취와 함께 신선도를 좇아 신명을 보전한 것이 좋은 얘깃거리로 전한다. 한신이 모양 끝내 붙어 있다가 죽음을 당한 것에 비하여 확실히 현명한 처신이었다는 얘기다.
이지란은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오자 머리 깍고 중이 되어가며 상소 가운데 상투를 잘라 넣어서 뜻을 돌이키지 않을 것을 보였다.
이와 같은 말을 한 분이 또 있으니 하나는 세종의 지우를 끝내 잊지 못해 단종 손위 후 중이 되어 방랑한 매월당 김시습이 그다. 또 한 분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사신 갔던 사명당 유정이 그다. 그가 대장 가등청정을 만났을 때 "귀국에 보물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있기는 있으되 너희 나라에 있다" "무엇이냐?" 하니까 "너의 머리가 그것이다"하여 일본에 갔을 때도 '보물 얘기한 스님'이라 하여 숭앙을 받았다. 중이면서 수염을 기를만큼 그는 역시 호기남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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