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하는 술모라
고려 말의 최영 장군은 호를 철성이라 하였다. 젊었을 때 그 아버지가 매양 경계하기를 "금을 보기를 흙과 같이 하라" 하였으므로 이 네 글자를 큰 띠에 서서 종신토록 마음에 새겨 잊지 않았다.
어느 때나 그렇지만 당시의 재상들이 서로 맞이하여 바둑으로 날을 보내고 다투어 맛난 음식을 장만하여 호사를 다투었는데 그만은 그렇지 않았다. 한낮이 지나도록 두었다가 다 저녁때서야 기장을 섞어 밥을 짓고, 여러 가지 나물로 찬수를 삼았다. 손들이 주렸던 판이라 다들 먹고 나서는 "철성댁 식사가 유난히 맛있다"고들 하면 그는 웃으며 "이것도 용병하는 술모니라"고 하였다 한다.
이 태조의 위화도 회군 뒤 형벌을 받아 죽을 제 "평생에 악한 일을 한 일이라고는 없건만 오직 임령을 죽인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탐욕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내 무덤 위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성현이 '용재총화'에 이것을 쓸 때까지도 무덤에 풀이 없어 홍분이라고 하였다는데 지금도 고양군 벽제면에 있는 그의 묘는 역시 홍분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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