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당의 사처방
사명당은 임진왜란 당시도 승병대장으로 활약하였고 전란 후 일본으로 왕래하며 피납되어 간 민간인을 대량 데리고 돌아오는 등 공로가 큰 유정, 자는 소운이라는 중의 호다.
임진란은 민족적으로 얼마나 크게 적개심을 자극하였든지 이를 소재로 한 임진록-또는 흑룡록은 민간에 널리 읽히어 일반적으로 민요가 한 작가의 작이 아니듯 한 작자에 의한 창작 이상의 것으로 전 민족의 몸부림, 염원의 표출이며 생의 영위인 민족설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민족의 기억에 새로운 여러 사람의 행적을 열거한 끝에 사명당이 일본에 들어갔을 때의 행적을 쓴 것에 이런 것이 있다.
그가 신승이라 하니 어디 견디어 보라고 구리 방석을 만들어 물에 띄우고 거기 앉혀도 가라앉지 않고, 또 구리로 한 칸 집을 짓고 거기 들여보낸 뒤 사면으로 숯을 쌓고 불을 지피어 대풀무로 부니 구리가 녹아 흐를 지경이라 나중 문을 열고 보니 눈썹엔 서리가 앉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으며 "왜 이리 추우냐?"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 방이 춥든지 하면 "사명당의 사처방의 사처방인가 왜 이리 추워?"하는 말이 상식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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