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영감의 제사
이조 후기 영조 때 청나라에서 조선이 명 나라를 잊지 못해 대보단을 세우고 제향을 받드는 일을 힐책한 사건이 있었다. 유척기가 사신의 어려운 임무를 띠고 가는 도중 이종성 속칭 장단 대신이라 하는 분의 향제에 들르니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려 준다.
늙은이가 밤에 남의 제사밥을 좋아하는데 이웃에 재가한 여인이 있어 먼저 남편의 제사를 받들므로 영감이 탓했더니
"당신이 만약에 불행하고 내가 살기 어려워 개가했다면 당신 제사를 뉘 있어 받들겠오?"
하여 영감이 그리 여기고 제사를 차리게 하여 내 그런 음식을 다 얻어먹었오.
유 척기가 청나라 정부의 문책을 받을 제 이 비유로써 대답하여 외교관계를 무사히 수습할 수 있었다 한다. 물론 사대주의의 얘기라 하겠으나 선견의 안목을 높일만하다. 그는 백사 이항복의 5세손이었는데 역시 백사 현손에 이 광좌라는 재상이 있었다. 어찌나 무섭고 점잖든지 어린애들이 학질을 앓을 때 그이 이름 석자만 써 붙이면 떨어졌다고까지 한다.
또 전라도 출신의 명필 이삼만은 자기 아버지가 독사에 물려 죽은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 뱀만 보면 반드시 잡아서 먹었으므로 뱀 들어 올만한 데 그의 이름을 써 붙이면 얼씬도 못한다는 것이 그 지방에 전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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