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지탄
비육이란 넓적다리의 살인데 무사가 말을 타고 싸움터를 쏘다니면 넓적다리의 살이 내린다. 그런데 넓적다리의 살이 쪘음을 한탄하는 것이니 무사가 공명을 세울 기회가 없음을 한탄한다는 것이다.
건안 원년(196) 조 조 스스로 대장군이라 칭하며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 무렵 유비는 차츰 혹성으로서 주목을 이끌었으나 조조의 충동거림으로 인하여 협공을 당한 나머지 조 조에게 기탁해 있는 처지였다. 유비는 한실의 후예로 자처하며 한실의 부흥을 뜻하고 있었기에 차기장군과 결탁하여 조조를 죽이려는 음모가 드러나 가까스로 도망쳐서 방랑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유비가 정착한 곳은 형주의 유표의 휘하였던 바 유표는 천하를 넘어다 볼만한 그릇이 아니었기에 유비는 한낱 그의 객장으로서 작은 성을 지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이는 이미 50이 가까웠으니 어느 세월에 천하를 제패하고 한실의 부흥을 이룰 것인가.
그날도 유비는 유 표와 술을 마시다 말고 변소에 갔다가 제 넓적다리에 살이 쪘음을 알고 놀랐다. 키가 7척 5촌, 서면 손이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거인이건만 자리에 돌아와서 눈물을 흘렸다.
"대체 웬일이시오?" 유 표가 묻는 말에 유 비은 대답하였다. "내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한탄하는 것이오. 헛되이 세월만 보내어 어느덧 늙어가려 하는데..."
유 비의 비육지탄은 몇 해 더 계속되다가 적벽의 싸움에서 용명을 날리고 이태 후에야 양자강 중류의 요충인 강릉으로 진출, 드디어 촉한제국을 세우니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와 함께 삼국이 정립-형주에서 비육지탄을 말한 지 10여 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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