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듭 다그쳐 온다는 것이니 한 번 실패한 자가 다시금 세력을 일으킨다는 뜻. 만당의 시인 두목 (803--852)이 항우를 읊은 싯귀에서 비롯된다. 두목은 두보와 견주어서 소두로 일컬어진 시인이었던 바, 항우가 31세로 세상을 떠난지(BC202) 천년이 지난 시기에 항우가 "싸움에 진 몸이 부형을 뵐 낯이 없다"고 자결했던 오강땅에 이르러, 그가 강동으로 돌아가서 재기를 기약하지 않고 자결하고 말았던 것을 애석해 한 것이다.
'승패는 병가로서도 기약할 수 없으니 수치를 감싸고 견디는 것이 사내인 것을. 강동의 자제엔 준재가 많으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항우는 단순하고 격한 성품이었으며 그의 애인 우희와의 이별에서 보여준 바와 같은 인간적인 매력도 있었다. 그러나 당송팔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은 두목의 시에 대해 반대 의견이었으니 '강동의 자제가 지금 있다 할지라도 구태여 군주를 위해 권토중래 할까 보냐'고 노래하였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항우는 힘을 과신했다.'고 하였고 역시 당송팔가의 한 사람인 증공도 같은 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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