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파 산하제
나라는 망했건만 신하는 남아 있다는 것이니 당 나라때 시인 두 보의 '춘망'이라는 시의 첫 귀다. 두 보는 벼슬이 하고 싶은 욕망이 45세에야 이루어져 조그만 벼슬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 안정된 생활이 이루어지나보다 했더니 난데없이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났다. 안 록산은 68만의 병력으로 남하하여 낙양을 함락, 스스로 대연황제라고 일컬었다. 장안도 위태로왔으니 현종황제를 비롯하여 관리며 귀족들이 시골로 피난하였다. 두보도 처자를 촌락으로 피난시키고 당시 현종의 태자로 시골에서 왕위에 오른 숙종을 섬기고자 떠났던 바 포로가 되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두보는 조로한데다가 벼슬도 낮았기에 목숨도 건지고 감시도 덜 받는 가운데 전화로 망가진 서울의 모습을 체험하게 되었다. 안록산은 본래 호인이었기에 호병들이 거드럭거리며 말을 몰고 다녀 부녀자는 공포에 떨고 왕손 공자들도 거지의 몰골을 하고 어정거렸다. 이 안록산의 반란은 그 후로 사사명 부자의 반란으로 번져 9년 동안이나 끌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당나라는 어지러울대로 어지럽혀지고 무사들은 멋대로 할거하였다. 두보는 남의 눈을 꺼리며 장안을 헤매는 동안 그 서글픈 풍정을 수많은 시로써 읊었는데 '춘망' 또한 그 중의 한 편이다.
'나라는 망했건만 산하는 남아 있고 성은 봄이라서 초목이 짙었구나. 세월의 변천을 느껴 꽃에는 눈물 뿌리고 이별을 원망하며 새를 보고서도 도적인가 싶어 놀란다. 전쟁의 횃불은 석 달이나 이어져 가족의 편지는 그지없이 소중하다. 센 머리를 긁으니 더욱 성글어져 있어 갓끈을 멜 비녀를 꽂기에도 어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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