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텔의 사과
"네 개의 사과가 유럽문명을 낳았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낙원을 쫓겨나게 만든 '금단의 사과', 둘째는 '트로야' 전쟁의 원인이 된 '파리스의 사과', 셋째는 '뉴턴'이 만류인력의 암시를 받은 사과, 그리고 마지막이 곧 '윌리엄 텔'의 사과이다. 다소 억지이기는 하나 첫째의 사과는 헤브라이즘(기독교), 둘째는 헬레니즘(르네상스), 셋째는 근대과학, 넷째는 근대 정치사상을 의미한다고 보면 그런대로 수긍이 간다. 14세기 초엽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인 총독 '게슬러'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길가에 말뚝을 박아 그 위에 오스트리아 왕을 상징하는 모자를 걸어놓고 지나가는 백성들에게 경례를 강요한다. 때마침 '윌리엄 텔'이 여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그 앞을 지나가면서 경례를 않자 '게슬러'는 그 벌로써 아이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텔'로 하여금 쏘게 한다. '텔'은 보기좋게 사과를 맞추어 '게슬러'를 실망시켰으나 '텔'이 또 한 개의 화살을 갖고 있는데 대해 '게슬러가 이유를 묻자 '텔'은 감연히 대답한다. "만약 실패를 할 경우 두 번째 화살로 당신을 쏘려했소!"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폭동이 발발, '스위스'는 독립을 획득한다.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종종 예술화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쉴러'의 희곡 '윌리엄 텔' (1804)과 '로시니' 가극 (1829)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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