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눈 - 호미고메 요조
제8장. 우연이란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판단하는 것
앞 장에서 다룬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과 우연의 문제에 이어서, 이 장에서는 그 두 번째 주제로서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인 계기를 인식하려고 하는 욕구는 우리가 역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고 하는, 역사가 성립하는 근본적인 계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우연을 찾아내려는 시도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을 인식하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역사를 인식하려고 하는 근본적인 태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건대,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 수행하는 역할은 역사에 있어서 개인이 수행하는 역할과 관련하여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경향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이유로는 지극히 복잡하고 기계적인 기구로 구성되어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개인이 가지는 의미가 새롭게 확인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케네디 암살사건을 예로 들어봅시다. 케네디가 그렇게 갑자기 암살당하리라고는 어느 주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기에 케네디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암살을 당하자 새삼스럽게 그가 세계에서 수행하던 역할의 중요성이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그런 점에서 개인이 역사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새롭게 주목되었던 것입니다. 케네디의 경우와 그 의미는 정반대이지만, 히틀러나 스탈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경향은 기계적으로 짜여 있는 현대사회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런 점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향에서는 우연이라는 말이, 또한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라는 계기가 상당히 애매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선 이 우연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 먼저 우리의 개념을 정리한 다음에 역사에서 우연이 수행하는 역할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밝혀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우연이라는 말의 용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우연이란 말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미리 짐작하지 못했던 것을 우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외에 본질적인 것에 대한 비본질적인 것,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비본질적인 속성을 우연적인 요소라고 보는 용법도 있습니다. 우연이란 말의 용법과 관련해서는 일단 크게 이 두 가지 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연이란 말의 용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역상 있어서 우연과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이라는 문제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말한 것이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예외 없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 속에 존재하고 또 그 속에서 생성 소멸하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완전히 동일한 사물이란 이론상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별개의 사물 혹은 사건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를 차지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사물은 제각기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연적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세상은 온통 우연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을 역사에 적용한다면 과거는 모두 우연의 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까지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컨대 어린아이가 모든 외계의 사물을 각기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분석을 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즉 아무런 역사적인 인식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특별히 꼬집어 언급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우연의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왕왕 이런 종류의 혼란이 끼어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일단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 세상에 원인이 없는 사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모든 사건에는 반드시 그 나름의 원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라서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아무런 이유도 없고 아무런 원인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우연이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뭔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게 되면 마치 그것이 아무런 원인도 없이 우리에게 닥쳐온 것처럼 생각되지만 따지고 보면 이론적으로 그런 경우란 있을 수 없는 셈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든지 알려고 들기만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것저것 시시콜콜 알려고 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또 설사 알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건의 원인과 관련하여 그것을 알아낼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건이면 사건, 현상이면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분명히 예견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 일어날 것인지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다음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건의 경우에도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어떤 특정의 방식으로 사건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사 그에 앞선 자료들을 속속들이 검토하더라도 딱 잘라 결론을 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잠시 프랑스 대혁명을 예로 들었지만,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에 이르러 루이 왕조의 정치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도 있고 해서 누구나가 뭔가 커다란 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으며, 또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저런 조건으로 보건대 혁명까지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1789년 7월14일에 바스티유 감옥에 대한 기습이라는 형태로 거대한 혁명의 물결이 시작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무한히 복잡한 인간관계가 엄밀한 예측이나 계산을 허용치 않는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분명 우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역사 속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연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하에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사고방식과도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두 개의 인과계열이 상호 충돌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보는 사고방식과도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인과계열 속에 있는 사실들은 모두 제각기 원인과 결과의 연쇄를 이루고 있는데, 그 두 개의 계열이 어디서 충돌할지는 그 어느 쪽을 보아도 예측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역사상의 사실은 원칙적으로 이와 같은 인과계열 상호간의 충돌로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이를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일단 이론상으로는 별로 잘못이 없고 또 일반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연에 대한 설명치고는 아무래도 좀 막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저 간단하게 인과계열의 충돌이라고 하지만 그 인과계열이 서로 충돌하는 방식이나 양태는 실로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상의 사실은 어떤 것을 취하든 모둔 두 개 이상의 인과계열의 충돌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설명은 역사를 우연의 퇴적이라고 간주하는 설명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셈인 것입니다. 따라서 약간 애매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건을 두고 그것이 우연이니 필연이니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예측이나 예견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어떤 한 사건의 이유나 원인을 일단 그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건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역사의 커다란 줄기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또 그 사건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역사의 커다란 줄기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또 그 사건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의 커다란 줄기에 연결되는 경우, 우리는 이런 사건을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우연은 개개의 경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와 관계가 있다는 의미에서는 상대적인 성질의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어쨌든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의미에서는 절대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앞서 예로 들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일반적으로 요인에 대한 암살은 언제라도 일어날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경호원 따위를 거느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달라스라는 시에 오스왈드라는 이상성격의 저격수가 있고 그가 암살 계획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FBI의 예측 속에나 우리의 예상 속에나 전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케네디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단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범인인 오스왈드가 아직 채 취조도 끝나지 않은 사이에 루빈이라는 또 한 사람의 이상성격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케네디 암살사건의 우연성을 감소시킵니다. 케네디를 죽인 오스왈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케네디에 버금가는 VIP(중요인물)가 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VIP가 또다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암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만틈 FBI의 경호나 달라스 경찰의 경비에 구멍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 셈인데, 이를 되짚어보면, 케네디 암살은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것보다 그 가능성이 좀더 높은 것으로 예상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오스왈드의 피살은 달라스 시가 종전 이상으로 '검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이 점으로부터도 케네디의 암살 가능성은 좀 더 높은 것으로 사전에 예상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케네디의 암살 사건은 그 우연성이 반감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케네디 암살을 필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FBI의 예상이 훨씬 더 치밀했다 하더라도 암살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암살이라는 사실이 일어나기까지 모든 것은 불투명하고 그 사이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것인지는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는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다른 여러 사건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굳이 역사적 우연의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클레오파트라의 코'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현상 몇 가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은 2, 3세기 이래 걷잡을 수 없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자기 해체는 스스로 순조롭게 전개 된 것이 아니라 게르만 민족의 침입에 의해 더욱 촉진된 것이 었습니다. 게르만 민족은 예로부터 로마제국과 관계가 있었던 민족이기 때문에 게르만 민족의 침입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 쪽은 어떨까요? 게르만 민족의 침입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견뎌낸 -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서로마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만 - 로마제국은 7,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세계를 정복하면서부터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고 로마제국의 체제는 이로써 완전히 결정타를 맞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의 침입을 그럭저럭 견뎌낸 시점에서 로마제국의 어느 누가 이슬람의 대두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이슬람교를 믿고 있던 아랍인들도 로마제국 주변의 민족이었던 만큼 로마문명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랍인들이 교주 모하메드의 영감에 의해 마침내 일대 종교세력 및 군사세력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는 후대인 우리조차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슬람의 지중해 지배로부터 동 서 두개의 유럽이 생겨난 중세 전기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성화상의 숭배를 둘러싼 동 서양 교회의 분쟁, 프랑크 부족국가에서 일어난 혁신, 조연격인 랑고바르도족의 미묘한 역할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발전은 실로 소설 이상으로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설치는 방식은 그야말로 '절묘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또한 역사의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와는 성질이 좀 다른 우연의 실례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중세 독일의 국왕들은 하나같이 모두 단명으로 끝났습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의 국왕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수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왕권은 처음에는 형편없는 약체로 출발했지만 뒤로 가면서 마침내 강력한 통일왕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초기에는 강력했던 독일의 왕권은 그뒤로 분열만을 거듭하다가 19세기가 될 때까지도 끝내 중세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첫째로 한쪽에서는 국왕이 왕위에 오르는 족족 단명으로 끝나고 다른 쪽에서는 국왕등이 모두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고 일단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수명의 단명이라는 우연이 독일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반대로 인간의 장수라는 우연이 프랑스에 통일과 근세에 있어서의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고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수명의 단명이라는 우연이 독일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반대로 인간의 장수라는 우연이 프랑스에 통일과 근세에 있어서의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설명이 옳다고 한다면 이것은 역사의 발전이 우연에 의해 크게 좌우됨을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실례로 간주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확실히 전 근대사회에서는 나라의 제도가 근대국가처럼 정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근대 사회에서보다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국왕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왕의 교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그 만큼 미연에 방지할수 있었고, 이런 맥락에서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실 자체가 심지어는 국왕의 공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조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실 자체가 심지어는 국왕의 공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조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한에서는 단명이냐 장수냐를 기준으로 한 우연에 대한 평가도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러한 설명은 사실 그다지 적절한 설명이 못됨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단순히 독일의 국왕들은 단명으로 끝났고 프랑스의 국왕들은 장수를 누렸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어째서 독일의 황제는 프랑스의 국왕보다 단명으로 끝났고 프랑스의 국왕들은 장수를 누렸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어째서 독일의 황제는 프랑스의 국왕보다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가,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황제에 오르기만 하면 하나같이 모두 단명으로 끝나야 했던가, 여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들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이런 설명이 가능합니다. 당시의 독일은 오늘날의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 브루고뉴, 이탈리아, 후에는 시실리아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교통 사정이 좋지 않고 또 정비된 관료나 군대조직이 없던 그 시대에 이처럼 알프스의 남북에 걸쳐 있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데에는 엄청난 육체적인 노력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마도 중세의 지배자들 중에서 독일의 신성로마 황제만큼 1년 내내 여행을 계속한 황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당시 독일에는 수도가 따로 없고 정치는 항상 순회하면서 다스린다는 원칙마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국왕들은 단순히 독일 전역을 순회하면서 정력을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기후와 풍토 조건이 전혀 다르고 또 말라리아 같은 악질의 풍토병이 유행하는 이탈리아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정치도 하고 투쟁도 해야하는 실로 감당키 어려운 책무를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황제들은 이처럼 처음부터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면 독일의 황제는 어째서 이러한 대제국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그리고 또한 그것을 단순히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데서 그칠것이 아니라 어째서 보다 좋은 정치 조직을 확립해 두지 못했던가, 좀 더 효율적으로 정치의 틀을 마련해 두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국가가 처해 있던 조건으로 환원될 성질의 문제이지 결코 국왕이 단명이었느냐 장수를 누렸느냐와 관련된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역사상의 조건 속에 독일의 분열, 프랑스의 통일을 설명할 열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장수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그것을 전제로 할 대에야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든 예들은 원칙적으로 말해 일단 예측할 수 없는 몇몇 인과계열의 충돌에 기인하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과계열은 어떤 역사가 전개되는 특정 세계의 내부적인 것이거나 혹은 이슬람의 경우에서 보듯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내부적인 것이든 외부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모두 기본적으로 유럽세계의 발전에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성질의 것이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는 이런 것들과는 종류가 다른 외부적인 우연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년전쟁의 초기에 유럽을 뒤덮으면서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것으로 전해지는 흑사병과 같은 것이 그런 종류입니다. 이 흑사병은 1348년에 흑해지방 내지는 아시아의 다른 지방에서 들어온 유행병으로 1년정도 유럽전역에서 맹위를 떨치다가 수그러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규모는 좀 작지만 10년 정도마다 두세 차례 더 흑사병이 창궐했습니다. 흑사병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유래는 제쳐놓더라도 흑사병을 배놓고는 17세기 후반의 사회사, 사회경제사를 얘기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유럽 중세사의 커다란 우연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흑사병을 유럽 중세사의 본질적인 발전을 좌우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민족 대이동기에 아탈리의 지휘 아래 들어온 훈족의 침입과 같은 것으로, 일시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 영향은 얼마 안 가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것은 유럽 속에 그 원인을 가질 힘이 없었기 대문입니다. 12, 13세기에 서유럽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이단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역사서술에서는 13세기 전반에 아르비죠나 십자군의 대상이 되었던 카탈리파가 그 화려함과 당시의 프랑스사에 미친 영향의 중대성으로 인해 특별히 부각 되는 것이 보통이자만, 저는 같은 시대에 일어난 월드파라는 이단 쪽을 중시하고자 합니다. 그 까닭은 카탈리파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의 계보를 이어받은 것으로, 십자군 시대의 동서 교류를 틈타 유럽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커다란 세력으로 성장한 데에는 유럽사회에 그것이 성장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유럽인들의 기독교에게는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활동 면에서는 카탈리파만큼 화려하진 못했지만 12, 13세기의 종교운동의 일환으로서 카톨릭 교회 그 자체로부터 생겨난 월드파 쪽에 역사분석의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월드파를 분석하면 중세 말기의 종교운동에서부터 종교개혁에 이르는 다양한 예측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데 비해 카탈리파로부터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사가들 중에는 카탈리파처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영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를 딱히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문명은 이질적인 것들의 접촉을 통해서 발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영향은 그것이 들어와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부적인 조건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영향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부적인 조건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영향이 될 수 있는것입니다. 여기서 외부적인 영향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내부의조건은 필연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연이라는 것도 필연적 요인과 결합될 때에만 비로소 역사상 중요상을 갖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의 문화는 인도나 중국 등 외래문화의 강한 영향 아래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나 중국의 문화를 아무리 상세히 연구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인 일본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알지 못하고는 일본의 문화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엇하나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서양문화의 유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자칫하면 안이하게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동시에 그것을 새로이 문제로 삼게 되면 역사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이해를 얻을 수 있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저는 역사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인 요인, 따라서 그것이 외적이라는 의미에서 우연적인 요인을 문제로 삼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적인 요인을 취급함에 있어서는 항상 내부의 역사적인 조건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누차 강조한 바 있습니다. 도한 그 외부적이고 우연적인 요인과 관련해서도 두 종류로 구별하였습니다. 마니교적인 이단이나 흑사병의 경우와 같이 그 영향은 강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라져버리는 것이 그 첫번째 종류인데, 이러한 요인들은 분석을 해보았자 그 이후의 유럽사의 발전을 아는데 도움이 되는 인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중세의 이슬람도 그렇거니와 특히 일본의 외래문화의 경우에는 그 양태가 크게 다릅니다. 이런 경우에도 물론 받아들이는 쪽의 조건, 그러니까 주체적인 조건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열심히 중국사나 인도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인도사나 중국사에 대한 연구가 일본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식을 제공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도나 중국의 문화가 일본의 문화와 그 발전의 본질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카탈리파의 경우에는 그것의 일시적인 영향이 아무리 크다 해도 결국 유럽의 문화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무시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역사상의 현상이 우연으로 간주되거나 우연으로 간주되지 않는것은 일차적으로 현상 그 자체의 성질에 따르지만 결국에는 그 현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에, 다시말해 우리의 판단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역사적인 현상이 우연으로 간주되느냐 우연으로 간주되지 않느냐는 그것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영향이나 어떠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떤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의 본질과, 즉 역사발전의 커다란 흐름과 얼마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무엇이 역사의 본질이냐 하는 점은 역사적인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가질 수 있고, 또 시대에 따라서도 그에 대해 다른 대답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입장이나 특정한 시대에는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것이 다른 입장이나 다른 시대에는 우연적인 것은 항상 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필연적이든가, 적어도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논의를 이끌어오다 보니 우연적인 것이란 결국 필연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어서 너무나 뻔한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여태까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며 온통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더니 너무나 번한 결론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냐, 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 이게 뭐냐 하고 화를 내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직 몇 마디 더 덧붙일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 분을 가라 앉히고 마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아무리 해당 역사의 본질적인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현상이라 하더라도, 즉 아무리 우연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예컨대 흑사병이나 카탈리파 이단 혹은 이슬람이 미친 영향에서 볼 수 있듯이 어쨌든 그것들이 유럽의 역사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며, 따라서 명확하게 그 한계 자각한 위에서는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은 본질 = 필연과 우연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아무리 본질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그대로 역사상의 사실로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반드시 우연적인 계기와 결합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연적인 계기란 말할 것도 없이 본질적인 것과의 대비 속에서 말하는 우연이지 첫 번째 의미에서의 우연, 즉 앞서 살펴본 바 있듯이 두 개 내지 그 이상의 인과계열의 충돌이라는 의미에서의 우연을 달리 설명하면 그것은 역사상의 개별적인 사실이나 각각의 현상에 대해 그 나름의 개성적인 성질을 부여해준다는 의미에서의 우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의 우연은 역사의 연구나 서술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 혹은 그 발전에 대한 개성적인 서술이야말로 역사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서술은 말할 것도 없이 역사의 본질에 대한 구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본질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이 어떠한 개성적인 실현의 방식을 취하느냐를 밝히는 데에 역사의 재미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역사에 있어서 필연과 우연의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역사에 대한 안목도 더 한층 명확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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