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첫째마당 : 3. 우리 삶 속에 파고든 우리 문화
'3'에 완전히 미친 민족
음식 문화와 더불어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끈질긴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숫자 문화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들 중에서 한국 사람이 짝수를 좋아할까, 홀수를 좋아할까? 바로 홀수이다. 우리 민족은 홀수에 미친 민족이다. 우리 조상들은 1,3,5,7,9의 홀수는 만물을 생장시키는 생수라 했고, 2, 4, 6, 8, 10의 짝수는 만물이 결실을 맺게 하는 성수라 했다. 우리는 만물을 생장시키는 홀수를 좋아한다. 우리 민족은 무엇이든 짝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지 하나 남는 문화를 좋아한다. 이 문화를 '덤문화'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이 덤 문화를 굉장히 좋아한다.보통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장을 볼 때 쉽게 손이 안 가는 물건도 바구니 하나 덤으로 얹어 준다고 하면 너도나도 산다. 콩나물도 묶음 단위로 묶어서 500원 하면 잘 사지 않는다. 한 움큼 듬뿍 얹어 주면 산다. 우리의 재래 시장이 그 많은 백화점, 슈퍼마켓에다 할인마트까지 별별 게 다 있는데도 아직도 살아남은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덤 문화다. 서양 사람들처럼 덤 하나 없이 물건을 팔면 아무리 세일을 하고 싸게 판다 해도 깍쟁이 소릴 듣는다. 시장에 다녀온 우리 어머니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 집은 쌀되가 좋다."
이게 무슨 얘긴가. 쌀이 되에 담고 위를 싹 깍은 다음에 한 움큼 더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이 결혼하자마자 요구하는 것에 있다. 뭘까? 바로 애 낳으라는 것이다. 결혼이란 짝을 맞추는 행위다. 그러데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으라는 것은 짝수를 버리고 홀수를 빨리 만들라는 얘기다. 짝이 뭐든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불안하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짜도 홀수 날짜를 좋아한다. 홀수 두 개 겹치게 되면 전부 잔칫날이다. 1월1일은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설이다. 3월3일은 삼짇날이다. 삼짇날이 뭐하는 날인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 유명한 간장 담그는 날이다. 간장은 우리 민족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옛날에 쌀이 다 떨어진 가난한 집이라도 끝까지 남아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간장이다. 간장은 한국 사람이 생명줄이다. 그래서 쌀이 다 떨어졌을 때 이 간장을 찬물에 한 숟갈 섞어서 휘 마시면서 배고픔을 이기며 그런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간장에는 간장 고유의 음식신이 있다. 지구상에 음식에 신이 깃들었다고 믿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간장신,칠성님, 철륭신 등등이 그것이다. 다른 데 빌면 잘 효과가 없는데 최종적으로 비는 데가 있다. 돼지머리를 요구하거나 떡을 요구하거나 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성들여 뜬 찬물 한 그릇을 간장독 위에 탁 올려놓고 비는 것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얗든동 아들놈 4년제 대학 붙게만 해주이소."
이렇게 정성을 들여 빌면 무조건 합격이다.효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장을 담그는 일 자체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간장에 대한 터부도 굉장히 심했다. 간장을 담을 독을 구할 때조차도 옹기 장수의 나이가 홀수인 사람 것을 구했다. 장독에 왼새끼를 거는 것은 물론이고,간장을 담그고 장 위에 띄우는 것까지도 따로 있다. 고추, 숯 같은 거다. 처음엔 비위생적이라고 취급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 간장을 잘 보존하는 항균, 항취 작용을 바로 고추하고 숯이 해내는 것이다. 요즘에는 현미경 따위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니까 겨우 알아낼동 말동 한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알고 고추하고 숯을 띄웠을까? 이런 게 우리 문화의 비밀이다. 그 다음에 간장독에 붙이는 것도 있다. 하얀 종이를 버선 모양으로 오려서 거꾸로 떡하니 붙여 놓는다. 이게 뭐냐면 우리 사람들로 치자면 "경고, 접근하지 마시오"표시다. 서양 사람들이 인간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골바가지를 그려 놓는 것과 이치다. 벌레들한테는 제일 겁나는 게 발이다. 밟혀 죽으니까. 그래서 발 모양을 거꾸로 만들어서 장독에 붙여 놓는다. 거기에다 잡귀, 잡신 침범하지 말라고 장독간 옆에 심는 것도 있다. 맨드라미,봉숭아와 같은 빨간 꽃들이다. 이만큼 소중한 간장이기 때문에 재수 좋은 날인 3월3일날 간장을 담근다. 또 5월5일은 단오날이다. 단오는 뭐하는 날인가. 바로 여자들의 날이다. 조선 시대에 여자들이 다리를 내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그네를 뛰면서 다리를 맘껏 내보여도 괜찮다. 그네를 뛰면서 여자들의 음기, 생산력을 들판에다 막 뿌려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날에는 여자들 오줌만 따로 모아서 농작물에 뿌려 주기도 한다. 풍년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7월7일은 또 뭔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날만이 아니다. 이 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랑의 날이다. 말하자면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무슨 그런 날이 있었다니? 의아하겠지만 분명히 있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저 총각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요즘같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고 찰떡을 하나 갖다 주었다. 그 찰떡을 뭐라고 부르느냐면 걸교하고 한다. 다리를 놓아 준다는 뜻이다. 찰떡을 건네주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대뜸 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문화에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러면 9월9일은 뭔가? 9라는 숫자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볼 게 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뭘까?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뭘까? 우선 짝수는 후보에서 빼도 되겠다. 그렇다면 9일까? 9는 화투 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7이라고? 럭키 세븐은 서양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 사람들은 3을 좋아한다. 아니, 이 3이란 숫자에 완전히 미친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좋아하는 딸도 몇째 딸인가? 셋째 딸이다. 아들 삼형제가 살았는데 큰아들은 죽일 놈이고 둘째 아들은 나쁜 놈인데 누가 효도를 하고 잘 살더라? 셋째 아들이 부모님 모시고 잘 살더라, 반찬도 최소한 몇 가지? 세 가지를 먹고 산다. 싸움을 해도 우리는 몇 판을 붙고 결정하나? 삼세판! 세 판 붙고 결정한다. 화장실에 가서 노크할 때 몇 번 두들기나? 세 번을 뱉는다. 어릴 적 불알 친구들은 몇 명? 삼총사. 이름도 대개 세 자로 짓는다. 김,준,호. 또 우리는 10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뚜-뚜-뚜 한다. 반면 중국은 어떻게 하느냐면 10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뚜-뚜-뚜-뚜-뚜 한다. 민족마다 이런 것이 전부 다르다. 그만큼 3이란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민족적으로 큰일을 벌인다 싶으면 언제 하나? 3월 1일, 몇 명이서? 33인이, 3월1일 33인이 서로 맞춰 가지고 일을 벌인다.
옛날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형제,자매들이 굉장히 많아서. 보통 두 살 터울로 낳는데, 워낙 낳다 보니 생일이 좋은 날일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심한 흉년에 태어나 젖줄이라도 제대로 못 먹고 크겠다 싶으면 나중에라도 재수가 좋으라고 이름에 삼자를 붙인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이 태어난 시다. 이 시를 잘 타고 나야 앞으로의 삶이 평탄한다. 그러나 태어나는 모든 자식이 시를 잘 타고난다는 게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시를 잘못 타고나서 명줄이 짧다든지 살을 짊어지고 태어났다 싶으면 거기에 대한 막음 장치이자 보상 숫자로 이름에 삼자를 집어넣었다. 삼돌이, 삼식이, 삼순이, 삼월이, 춘삼이... 심지어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에도 삼자가 들어간다. 장단도 리듬도 뭘 좋아하느냐면 3분박짜를 굉장히 좋아한다. 세 박자,그래서 굿거리 장단이다. 친숙하게 듣는 소리 중에서 세 박자짜리가 많다. 자진모리라고 해서 한국 사람이 제일 신명을 내고 제일 좋아하는 장단이 바로 이 3분박으로 된 4박을 잦게 몰아가는 장단이다. 무가에서는 덩더꿍이라고 부른다. 자진모리를 더 빨리 하면 휘몰아간다고하여 휘모리라고 부르는 장단이 된다. 자진모리 장단은 빠르고 활기차면서도 구성진 특징이 있다. 아예 박자도 3박이요 분박도 3분박인 세마치 장단은 3박의 극치다. 그래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 은 3박에 맞추어야 제 맛을 냈다.
이렇게 재수좋고 친근한 3이라는 숫자를 세 번 겹친 숫자가 바로 9라는숫자다. 양기가 가장 충천하는 날인 9월9일을 뭐라고 부르냐면 중양절, 또는 중구절이라고 한다. 얼마나 재수가 좋은 날이냐 하면 이 날 결혼식을 올리면 무조건 잘 살게 되어 있다. 이 날 이사를 가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 앓던 이를 뽑아도 이 날 뽑아야 뒤탈이 없다. 한국 사람의 의식 구조에서 조상들 제사 날짜를 모른다 하면 이것은 불효막심이다. 혹은 점을 쳐보니 집안에 제사를 못 받아 먹는 조상이 하나 있다. 보통 조상으로 인해 생긴 탈을 산바람 이라 하는데,이건 큰일이다. 그래서 이런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주는 날이 생겼는데, 이게 바로 9월9일이다. 이 날만큼은 기제사 모르는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 주면 후손한테도 좋고 죽은 조상한테도 좋다.
자, 이번에는 부정적인 숫자를 보자. 우리가 상대적으로 싫어하는 숫자는 뭘까? 우선 짝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 4, 6, 8이 짝수인데 그중에서 6은 좋아한다. 3이 두 번 겹쳤다 해서 좋아한다. 8은 석가모니가 4월 초파일날 태어났다 해서 좋아한다. 2하고 4는 싫어하는 숫자다. 4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2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2라는 숫자도 싫어한다. 음력 2월에는 죽어도 결혼을 않는다. 2월은 바람달이라고 해서 영등할매라고 하는 바람신이 심술을 부른다. 그래서 음력 2월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아파트 중에서 죽어도 안 팔리는 것,404호. 한500만 원 싸게 내놓아야 겨우 팔릴까 말까다. 거기다 4동의 404호라면 처음부터 팔 생각은 말아야 한다. 병원 같은 곳에는 아예 4층이 없다. 빌딩에도 4층은 없고 3층 다음에 직접 5층이 되거나 4층에 에프(F)라고 표시한다. 이렇게 우리의 숫자 문화에서는 3을 미치도록 좋아하고 2. 4를 무척 싫어한다.
동남슈퍼가 그토록 많은 이유
그 다음에 우리의 방향 문화가 또 얼마나 희한한지 모른다. 동서남북 방향 중에서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방향은 동쪽과 남쪽이다. 집을 짓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동쪽,남쪽으로 짓는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서 슈퍼마켓 이름 중에서 제일 많은 게 동남슈퍼다. 동네마다 가면 동남슈퍼가 있다. 사람 이름에도 동과 남은 많이 쓴다. 동철이, 동준이, 성남이, 경남이 등등 동과 남은 많다. 그러나 동식이,남식이는 많아도 서식이나 북식이나 같은 이름은 없다. 반면에 우리 민족이 상대적으로 싫어하는 방향은 서쪽과 북쪽이다. 왜?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서방정토, 살아서 못 가는 곳이다. 북망산천도 살아서 못 가는 곳이다, 북쪽과 서쪽이 합쳐진 북서쪽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몰아쳐 오는 곳이다. 이렇게 우리가 싫어하는 서쪽과 북쪽을 서양 사람들은 또 굉장히 좋아한다. 오죽하면 항공사 이름이 노스웨스트다. 서늘해지기도 하고 뭔가 언짢다. 이렇게 서쪽과 북쪽을 우리는 상대적으로 싫어한다. 이 방향은 또 색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는 각기 색깔들이 부여되어 있었다. 동쪽과 파란색, 서쪽과 흰색, 남쪽과 붉은색, 북쪽과 검은색이었다. 고구려 고분에는 동서남북 사방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벽화가 있는데, 동쪽에는 청룡(푸른 용), 서쪽에는 백호(흰 호랑이), 남쪽에는 주작(붉은 새), 북쪽엔느 현무(검은 거북)였다. 좌청룡, 우백호란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우리네 인식 체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다섯 방위의 신들이 보호를 해주고 있다고 믿었다. 이 신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동쪽은 청제장군, 남쪽은 적제장군, 서쪽은 백제장군, 북쪽은 흑제장군, 중앙은 황제장군이다. 이러한 색깔들은 신들의 색깔이므로 신탁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풍물패들이 풍물을 두들길 때 꼭 오방의 색띠를 몸에 둘러, 인간의 몸이지만 신탁을 받았음을 상징했다. 성황당 당산 나무는 항상 이 신탁의 색띠를 허리띠로 두르고 있었고,관청이나 절에 단청을 입히는 것도 이곳이 신탁을 받은 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녀가 굿을 할 때 울긋불긋한 의상을 입다든지, 새해에 아이들에게도 때때옷을 입히는 것도 이 아이는 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잡귀 잡신은 범하지 말라 는 경고성의 음미를 담고 있다.이렇게 강한 신탁의 색깔들을 여염집에서 입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산의 색깔이라 해서 꼭 우대받았던 것은 아니다. 색깔중에 우두머리인 중앙의 황제 장군은 우물굿을 할 때는 박대를 받는다.
동방에는 청제용왕 남장에는 적제용왕 서방에는 백제용왕 북방에는 흑제용왕
여기서 황제 용왕은 슬쩍 빼버린다. 아니, 아예 황제 용왕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물에 황제 용왕이 존재한다면 물이 흙탕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에서 저승의 색깔은 꼭 서방의 흰색과 북방의 흑색이었다. 누가 저승 사자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저승 사자가 꼭 검정 도포를 입고 나타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 하늘의 선녀는 하얀 명주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연히 이승의 색깔인 동방과 청색과 남방의 적색을 좋아했다. 이것은 일반 백성들만이 아니라 왕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에서 임금은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 용포를 입고, 좌측으로는 동쪽을 의미하는 청색 옷을 입은 대신이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적색 옷을 입은 대신들이 자리했다. 이것을 보면 우리 임금들도 정사를 베풀 때는 꼭 방향을 동남방으로 앉던 것으로 짐작된다. 집을 짓더라도 동남향이고,죽어서 묻히는 방향도 양지바른 동남향이다. 그래서 노래도 동남방 일색이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창이 밝았는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고향이 남쪽이랬지...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니 얼굴...
지신을 밝을 때 풀이하는 순서도 동-남-서-북-중앙이고,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들이 제일 꺼리는 극장도 서쪽과 북쪽으로 향한 극장이다. 이런 극장에서는 목이 안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동남 친화 민족이다.
15~45도의 미학
방향만이 아니라 각도도 민족마다 좋아하는 각도가 저마다 다 다르다. 문화를 연구하다 보면 참 별별 것까지 다 접근해서 살펴보게 된다.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각도는 뽀족한 각도다. 집을 짓더라도 이 사람들은 이단 지붕을 뽀족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다. 서양의 중세 성당이 대표적인 예다. 중세의 서양에서는 성당 하나를 몇백 년씩 지었다. 워낙 건물의 덩치가 커서 그런가 보다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일단 본채가 완성되면 예배도 드리고 볼일도 본다. 건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거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그것으로 성당을 다 지었다고 하지 않는다. 지붕이 아직도 공사중이기 때문이다. 지붕을 아주 뽀족하게 해서 첨답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공사가 또 수십 년씩 간다. 이렇게 뽀족한 걸 좋아하는 서양 사람들은 옷의 어깨에 흘러 내리는 곡선을 그냥 두고 못 본다. 그래서 요것을 죽이기 위해 여기에 억지로 심을 집어넣는다. 양복이 바로 그렇다. 어깨에 뽀족한 각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민족은 어떤 각도를 좋아하느냐. 우리 민족은 15~45도, 즉 둥글고 완만한 각도를 좋아한다. 태어나는 것도 어머니의 배의 각도인 15~45도, 우리 옛날 집의 지붕 모양도 15~45도, 바문을 탁 열면 앞산 모양이 15~45도,빨래줄도 15~45도로 늘어져 있는가 하면, 우리 어머니가 붕긋하게 담아주는 밥도 15~45도, 옷을 하나 만들더라도 둥근 선을 한껏 살린 15~45도다. 우리의 국토에는 둥글고 완만한 구릉들이 많다. 북한 지역과 태백산맥의 산중을 제외하고는 전 국토가 다 둥글다.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언덕인지 산인지 모를 둥글둥글 한 구릉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중국의 산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산악 지대의 산들은 종 모양으로 불룩하게 솟아 있다. 서양의 산들은 더 뽀족하다. 유럽의 알프스도 그렇고 미국의 로키 산맥도 그렇다. 산들이 모두 삼각형 모양으로 날카롭게 솟아 있다. 우리는 삼각형처럼 뽀족한 산을 흉산이라하여 좋아하지 않는다. 뽀족한 산은 대개 메마른 산이라서 숲이나 나무들이 별로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산, 우리 국토에 수없이 널려 잇는 산은 15~45도, 둥글고 완만한 각도를 자랑한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15~45도 각도는 아예 우리의 생활 속에 잡혀 있다. 우리딸이 사윗감을 데려온다. 사윗감으로 삐쩍 마른 사람을 데려오면 어른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 사윗감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 둥실하게 살집이 잡히고 힘이 넘치는 15~45도 각도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여자들도 며느리감은 15~45도, 그래서 달덩이 같은 얼굴,부잣집 맏며느리감인 얼굴을 반긴다. 이런 것이 완전히 체질화되어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 번보자.
한국 여자들은 똑바로 보면 서양 사람들과 달리 신체구조가 일단 짧기 때문에 별볼일없는데,15~45도로 몸을 살짝 돌리면 아주 예쁘다. 그래서 우리는 춤을 춘다든지 할 때 각도를 이쪽저쪽으로 살짝살짝 돌리면서 춘다. 장구 춤을 출 때 보면은 알수 있다. 그러던 습관이 요즘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30대 정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그래도 좀 세련되었다고 온갖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40대 이상 된 여남은 명을 어디 저 관광지에 데려가서 계단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몸을 살짝 돌려 15~45도 자세로 선다. 전 세계 대통령들 가운데서 이런 각도를 사진 찍는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각도를 너무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우리 민족은 죽어서 묻히는 무덤의 각도까지도 15~45도다. 기왕에 각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문화를 보는 각도도 이야기해야겠다. 우리 문화를 관찰할 때는 여러 가지 다각도의 사각으로 살펴야 한다. 이제 절에 가서 기와가 걸쳐져 있는 모양을 딱 보고도 아! 15도~45도,진짜 둥글고 완만하구나 하는 걸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경주에 있는 신라 옛 고분들을 보고도 아, 15도~45도,정말 선이 곱구나! 하고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다각적인 시각으로 우리 문화를 살펴보고, 절대 우리 문화를 우습게 보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의 음악도 이 각도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 음악은 날카롭고 예리한 각도로 슬픔을 표현한다. 음의 높낮이가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슬픈 기분을 나타내는 거다. 실제로 그런 음악도 슬프긴 하다. 그러나 뭔가 설익은 냄새가 난다. 왜일까? 슬픔을 너무 직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서양 음악에는 슬픔을 표현하는 형식이 아예 자리잡혀 있다. 단조 음악이 그것이다. 단조 화음을 들으면 그 자체로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형식이 발달해 있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형식에 얽매이게 되는 탓이다. 슬픈 음악은 슬픈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고, 기쁜 음악은 기쁜 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슬픔 장송곡 형식으로 표현하고,기쁨은 행진곡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직설적인 게 서양 음악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은 다르다. 우리 음악에도 슬픔을 나타내는 형식이 있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에게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둥글고 완만한 각도의 음들을 쓰느냐고 놀린다. 우리의 슬픈 음악,구성진 곡조는 음의 변화 폭이 서양 음악처럼 크지 않으면서도 슬픔을 잘 나타낸다. 서양 사람들처럼 슬픈 화음을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우장육부가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자아낸다. 이렇게 말하면 생각나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앞에서 말한 익은 맛과 삭은 맛이다. 우리 음악은 푹푹 익히고 삭혀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슬픔도 기쁨도 익도 삭아서 나온다. 슬픔을 슬픈 가락으로,기쁨을 기쁜 가락으로 서양 사람들처럼 직선적으로 표현 하는 것이아니라 한껏 우회를 시키고 빙빙 돌리고 해서 15~45도를 찾아서 표현한다. 서양 음악의 표현 형태는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다. 한국 음악은 산과 골이 적당하게 어울려 은근한 편안함을 주는 표현 형태를 좋아하며,일본의 음악 형태는 약간 가벼운 듯하면서 골만 파는 효과를 좋아하고,중국의 음악 형태는 현란한 음악구성으로 그 꾸밈음이 대단하다.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찬란한 전통을 지닌 우리 문화,우리 음악이 금세기에 들어 최대의 수난을 맞은 적이 있었다. 바로 일제 치하에서의 일이다. 1910년에 일제가 강제 합병을 해가지고 저지른 일은 모두들 알고 있지만, 우리 음악에도 커다란 금이 갔다는 사실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우리 음악에 칼을 댄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다. 잘못된 것을 째서 고치는 게 칼인데, 멀쩡한 것에 칼을 됐으니 무사할 리가 없다. 1919년까지 일본 사람들의 통치 방식은 이랬다.
첫째, 조센징은 무조건 두들겨패야 말을 듣는다. 둘째, 조센징한테 일을 시킬 때는 돈내기로 내줘야 한다. 한꺼번에 떼줘야 한다는 얘기다. 일을 떼줘야 빨리 하는 것을 알고 무자비하게 통치를 한 것이다.
이러다가 1919년도에 3.1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약속한 것도 없었는데 33명의 민족 대표자들이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독립 선언서를 읽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 것이 순식간에 전국 방방곡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고 무기들고 일제와 맞서 싸운 것도 아니다. 그냥 두 손을 쳐들고 만세를 불렀다. 우리 민족을 바보로 알았던 일제는 엄청나게 놀랐다. 조선 사람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으로 갈려 싸움만 하는 그런 민족인줄 알았는데 너무 단결을 잘한다. 도대체 저 단결력의 원인은 뭘까? 일제는 고민한다. 그래서 일본의 학자들이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와 같이 들어와서 조선 민족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무엇이냐? '각하, 조선 사람이노 와 이렇게 단결을 잘하는지 알아내었스므니다.' 바로 무엇보다도 조선 사람은 겁이 없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못살게 군 역사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싸움을 하면서도 남을 절대로 공격을 못하는 민족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남을 공격할 때도 자기가 먼저 학대를 당하는 자학성 공격형 심리라는 게 있다. 주먹을 움켜 쥐고 싸울 때도 우리는 절대 먼저 치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우선 선전포고부터 하는 것이다. '때려 봐라,때려 봐라!' 상대방이 먼저 때리면 그제서야 악이 받쳐 싸우는게 우리 민족이다. 남을 먼저 공격하는 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맞아야만 싸우는 거다. 한 대 먼저 맞았으니까 신체적으로는 손해를 볼지 모르지만 싸울 명분이 있어야 싸운다는 군자의 자세다. 정당 방위는 해도 공격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부부 싸움을 할 때 물리적으로 보면 남자가 힘이 세지만 실제로 싸움에서 주로 누가 이기는가? 여자들이 거의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한국 여자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슴에 핵폭탄을 하나씩 달고 나온다. 싸움이 무르익을 만하면 희한한 소리를 던진다. '쥑이라!자,쥑이라, 마!니 새끼하고 같이 쥑이라!' 3.1 만세 운동의 힘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생각하기로는 발포 명령을 내려서 몇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 나머지는 겁이나서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이라며 만세를 더 부르는 것이었다. 사실 싸움 잘하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과 싸우기가 더 어렵다. 3.1 만세 운동에서 우리 민족의 겁 없음에 겁을 집어먹은 일제는 통치 방침을 바꾸기에 이른다. '야, 이 조선 사람들은 달래야 되겠더라.' 그래서 일제는 조선 사람을 달래기 위해 정책적으로 아주 고등 술책을 쓴다. 이것이 이른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바뀌게 된 계기다. 이제부터는 문화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통치하겠다는 거다.
우선 그 화투라는 유명한 것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이것을 마구 퍼뜨린다. 조선 땅에다가 퍼뜨려서 조선 사람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다. 한국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도 하투 놀이를 한다고 해서 화제 아닌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조금만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하는 중국의 마작보다도 작고 서양의 카드보다도 작아서 하투는 손바닥 안에 간단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따라서 비행기 좌석 탁자처럼 가로 세로 한 뼘 크기의 공간만 가지고도 한판 벌일 수 있는 화투다. 화투를 민속 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아니다. 화투는 원래 포르투칼 상인들이 카르타라는 일종의 딱지 놀이를 일본이 전래한 데서 유래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개조해서 하나후다, 즉 꽃딱지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걸 조선에 퍼뜨린 거다.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꽃들을 그려 넣어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12월의 비 그림에 일본식 복장이 들어간 것이나, 3월 4월을 상징하는 꽃으로 개나리나 진달래가 아닌 벚꽃, 싸리 등이 그려진 걸 보면 일본 냄새가 풀풀 풍긴다. 우리나라 노름꾼들이 이 화투를 이용하여 새롭게 만든 놀이가 바로 고스톱이다. 서양의 카드 게임이나 중국의 마작과는 달리 고스톱은 길어야 5분이면 한 판이 끝나는 초고속 속전속결형 도박이다. 이 점부터가 둥글고 완만한 15~45도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과는 영 닮지 않았다. 아무리 도박이라 해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고스톱은 과정보다는 빨리 승부를 보자는 식의 전형적인 노름 형태다. 고스톱은 사회학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인간 사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현상의 병폐 중 상당수가 고스톱판과 똑같다.
첫 번째, 가만히 놀고 광 팔아먹는 인간들이 그렇다. 박이 터져라고 겨우 3점 나가지고 600원 거둬들이는데, 자기는 목 좋은데 앉아서 쌍피 두 개하고 광 하나 들었다고 1,200원 딱 받고 앉아 있다 이 말이다. 또 문제가 뭐냐. 때린 때 또 때리자, 피박 씌우기. 쓰러져 가는 사람을 도와 줘도 뭐할 텐데 아예 박살을 내버린다. 이렇게 일제는 화투를 도입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전통을 갉아먹었다. 그 다음 조선 사람이 단결을 잘하는 두 번째 이유가 뭐냐? 바로 우리 음악이다. 조선 사람들은 북, 장구, 징 ,꽹과리,이것들을 치면 안되겠더라. 이상하게 이것만 쳤다 하면 너무너무 단결을 잘하더라. 그래서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데모만 했다 하면 뭐 들로 나오나? 북, 장구, 꽹과리, 징 이런것들을 들고 나온다. 그래서 이것을 없애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손을 댔다가 조선 민중들의 반발을 사서 더 큰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이기 때문에 생활을 정면로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음악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기를 죽이는 술책을 부린다. 일제가 꾸민 정책은 다른 데선 다 금지하고 딱 한 군대만 살려 놓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권번, 기생 학교다. 언젠가 춤추는 가얏고 란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다. 기생이냐 예술가냐 하는 문제를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일제는 기생학교 한 군데만 살려 놓고 우리 음악을 왜곡시켰다. 조선 예술은 기생들이나 옆에 끼고 앉아서 한량들이 풍월이나 읊는 그런 예술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졌지만 아직도 그런 시각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흔히 가야금 친다. 대금 분다 하면 전부 기생 취급을 한다. 남자가 그것을 한다면 기생 오라비다. 또 나팔 소리에서 따온 딴따라라는 말로도 부른다. 아들이 우리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들은 사내 자식이 기생이나 하는 깃을 하려 한다고 야단을 친다. 그런데 딸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하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뒷돈을 대준다. 이렇게 우리 음악은 기생들이나 하는 예술이고, 서양 음악을 하면 진짜 예술가라고 여기는 시각도 일제가 우리 음악을 왜곡시킨 데서 연유한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나면 이제 우리 자리를 똑바로 찾아야 되는데, 한 번 구부러진 걸 바로 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 음악은 계속 수난을 겪고 있다.
음악 선생님들 모두가 서양 음악 전공자들
현재 우리 초,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한국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20퍼센트도 채 못된다. 나머지는 전부 서양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음악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100퍼센트가 모두 서양 음악 전공자들이지 한국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없다. 음악 선생님들을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이 분들은 우리 음악을 배운 적이 없으므로 우리 창법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음악 교과서에는 아리랑을 비롯해서 우리 노래들이 어느 정도 실려 있다. 교과서에 있으니 가르치긴 해야겠고, 그래서 음악 선생님들은 우리 음악도 서양 음악처럼 가르친다.
'늴리리야,늴리리야,니니오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
이런 우리 노래를 서양 창법으로 곱게 부르기만 한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에서 흣 하는 기음을 빼고 고운 목소리로 곡조만 부른다면 거기서 무슨 멋이 나겠는가? 그런데 이 곡조만 배웠다고 학생들은 우리 음악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청소년들이 우린 문화 하면 제비 몰러 나간다 하는 우황청심원 광고부터 생각하고, 우리 음악 하면 장사 씨름대회에서 아주머니들 네 명이 똑같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하는 모습만 연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창법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음악도 자체도 문제다. 음악 시간에 가르치는 우리 음악은 너무 장체된 음악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 말기의 형태로만 고정되어 있다. 물론 요즘 들어 우리 음악 분야에서도 현대적인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대단히 부족하다. 흔히 한복이라 일컫는 옷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 의상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 이 의상이 과연 편할까, 불편할까? 우리것이니까 편하지 않겠느냐고? 추석이나 설 이외에는 입어 보지 않은 사람이나 그런 말을 할 것이다. 기서을 입고 화장실 한 번 가면 수습하는데 15분 가까이 걸린다. 끈만 아래 위로 일곱 군데를 매듭지어야 한다. 역시 오늘날에는 잘 안 맞는 옷이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무엇이? 바로 선이다. 한복은 15~45도의 선이 있다. 그래서 멋이 있는 선도 살리고 실용성도 살린 의상들이 최근 제법 나와 있다. 이런 의상을 보고 뭐라고 하냐면 개량 한복이라고 한다. 사실 개량이라 하는 말은 식물 종자라든지, 새마을 운동을 할 때 지붕 개량 같은 데 쓰는 것이다. 이런 의상은 전통의상이라고 불러야 한다. 전통 의상이라는 말은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의상을 가르키는 말이다. 흔히 입고 다니는 조선 말기 의상은 전승 의상이로고 부른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옛 것은 모조리 전통 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다. 전통 예술,전통 문화,전통 술... 그러나 이 전통이라는 말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 바로 자생력이다. 시대의 변쳔에 따라 그 기본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대성에 맞게끔 변화시킨 것이 전통 이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 것이 무조건 전통이라고 고집한다면, 전통의 생명력인 자생력은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 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진 박아 놓듯이 만든 것은 전승 이다. 전승도 중요하지만 시대성을 잃는다는 것은 문화의 보편성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전통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전승은 옛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니까 별 문제 없지만 전통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색해 보인다. 개량이 덜 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다. 낡은 것에서 부분을 뽑아 새 것에 포함시킨다. 이게 우리 조상이 가르치는 온고이지신의 정신이다.
그런데 말이 좋아서 온고이지신이지 이게 덜 익으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 우리 음악의 형태도 바로 그렇게 어중간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우선 노래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한자 때문이다. 다음 노래를 들어 보자.
담담장강수 유유원객정 하교불상송하나 강수에 원함정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백번 양보해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해도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는데, 중간에 이 말이 또 왜곡된다. 그런 경우는 아주 흔하다. 우리 음악을 처음 배울 때 누구나 겪는 일로 이런 것이 있다.
도련님은 흉중대략...
가슴 흉자, 가운데 중자, 큰 대자, 지략 약자 해서 흉중대략이다. 선생님이 이 부분을 노래하는데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창으로 하니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뭔가 한자어는 한자어인데, 여쭤 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겠고, 그래서 제자는 고민하면서 연구한다.
하나, 큰 대 자가 있는 거 하나는 알아듣겠다. 제자는 앞의 흉자를 느닷없이 훈자로 해석해 가지고 그럴 듯 하게 흉내내서 불부른다.
도련님은 훈령대장...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사소한 사례이지만 그밖에도 현재의 우리 음악은 안팎으로 많은 문재점을 가지고 있다.
사라져 가는 문화 유산의 모으자.
그나마 지금 이런 노래들을 제대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70대 이상이다. 장차 이 분들이 돌오가시고 나면 아예 전승이 끊길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 음악은 기록에 의조나지 않고 스승이 제자에게,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입에서 입으로 직접 전달하는 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화 유산을 감상하고 보존한다면 무슨 사찰,성곽 등을 돌아 다니는 것도 좋지만, 먼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주변에 막 널려 있는 것들을 모아야 한다. 시골에 가면 친정아버지,친정어머니도 좋고 동네 할아버지,할머니도 좋다. 그 분들은 아직 다 이런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걸 집안에서 개개인으로 녹음을 해서 간직하는 그런 자세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남대문이나 신라 고분, 고사찰, 고서적 같은 것들은 형체가 있는 문화재, 즉 유형 문화재이기 때문에 비교적 보존하기가 쉽고 보존 기간도 길다. 그런데 형체가 없는 무형 문화재는 재때제때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옛날부터 전래되어 오는 노래와 춤, 고예 같은 것들은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인간 문화재라고하여 여러 가지 지원도 해주고, 제자를 정해 전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문화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모자란 탓인지, 인간 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면 그나마의 혜택마저도 받을 수 없다는 거다. 하기야 어떤 노래,어떤 춤을 안다고 해서 일일이 정부에서 나서서 모조리 인간 문화재로 지정하고 지원해 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냐? 민간에서 해야 한다. 인간 문화재급의 중요 민족 예술은 정부에서 담당하게 하고,그 대신 각 지방,각 고을마다 무수하게 존재하는 우리 소리,우리 춤사위,전통 고예와 기술 같은 것들은 그 지방, 그 고을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보존하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막연하다 생각하겠지만, 결코 막연한 게 아니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심기 소리와 상여 소리는 언제 한 번 마음먹고 녹음기로 녹음만 하면 되고,춤사위는 약간 신경을 더 써서 할아버지,할머니께 막거리 한 잔 받아 드리고 비디오카메라 있는 집에서 카메라를 빌려다가 한 번 녹화해 두면 된다. 또 마을에 짚신 잘 꼬는 사람이 있다, 풀피리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전통 술을 잘 담그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런 기능들도 비디오카메라로 담아 두면 된다. 이런 녹음 테이프와 녹와 테이프를 잘 보관해 두면 대대로 가보가 될 수 있고, 혹시 나중에 자기 마을에 박물관이 생긴다면 기증해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수도 있다. 그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되면서 1970년대 이후로는 우리 옛것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70년대라면 벌써 20여 년 전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어머니에게서 자기 마을에 전래되어 오는 여러 가지 소리와 춤을 보고 배운 사람들은 지금 이미 60대, 70대 노인들이 되었다. 아마도 한 10년쯤 지나 그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전부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때 가서는 녹임기나 카메라를 트럭으로 실어 온다 해도 찍을 수가 없게 된다. 수천 년을 그런 대로 큰 변화없이 흘러내려온 이러한 수많은 소리들이 1900년대에 들어 하나씩 없어지다가 지금 현재는 거의 소멸 직전에 놓여 있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아무도 안타까워한다거나 이런 소리들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 것이 너무도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의 소중한 무형의 유산들은 바로 오늘도 하나식 둘씩 사려 가고 있다.
문화 줏대를 똑바로 세우자
한국 사람들은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긍정적이다. 저 경제 부흥의 에를 들 때 '오, 라인강의 기적' 이라 해서 좋게 평가하고, 독일 사람은 근면하다든가 맥주도 독일의 호프가 맛이 있다더라는 식이다. 그러데 사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원흉이다. 냉정한 입자에서 따지고 보면 우리도 2차 대전의 피해자 중 하나이므로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데 한국 사람들은 참 긍정적이다. 그렇게 된 원인 중에 하나로 문화라는 것이 들어간다. 보통 엄마들이 아기를 가졌을 때 태교한다고 듣는 음악의 작곡가들의 거의 반 이상이 독일, 오스트리아 계통인 게르만 민족에 속한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 어머니라는 헨델, 그리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바그너 등등 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음악을 엄마 뱃속에서부터 내내 듣고 자란 애가 유치원에 가면 꼭 안 빠지고 배우는 노래가 하나 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노라...
이것이 또 독일 옛노래다. 게속해서 중,고등학교에 가면 또 독일 노래들을 배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10대 애창 가곡에 들어가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노래를 정작 독일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쓸쓸한 이 말이...
로렐라이 언덕 이라는 노래인데 실제로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은 잘 모른다. 이 노래는 독일에서 제일 슬픈 노래다. 독일에서도 젊은 층은 잘 모르고 할머니들이 많이 안다. 독일 할머니들은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고 그런다. 그런데 무슨 원수가 졌는지 독일에서 제일 슬픈 노래가 우리나라 어디에 나오느냐면 횡당 보도 신호 음악으로 나온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켜지면 로렐라이 언덕의 곡조가 뚜뚜뚜뚜 뚜 뚜뚜 뚜-뚜 하고 나오는 거다. 이렇게 구슬픈 곡조가 나오니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걸어갈까? 잔뜩 풀죽은 어깨로 힘없이 걷는다. 자칫하면 교통사고 나기 똑 알맞다. 이건 조금만 신경쓰면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바꾼 예도 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주체적인 횡단보도 신호 음악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느냐면 전라북도 남원역 앞에 있다. 여길 가보면 파란불이 켜질 때 진도아리랑의 곡조가 흘러나온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남원역에서 광한루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그 횡당 보도를 건너가는데 로렐라이 언덕의 곡조와는 발걸음이 천지차이다. 이렇게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생활 속에서도 우리 음악을 얼마든지 많이 들을 수 있는 틈들이 있다. 독일 문화가 태어날 때부터 자랄 때까지 죽 연결되면서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꼬 빠지지 않고 가는 데가 있다. 독일식 호프집이다. 이 독일식 문화는 전염을 일으킨다.원래 문화란 전염성이 대단히 강하다. 문화는 때로 무기로도 사용된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햄버거, 할리우드의 미국 영화 이런 것들도 모두 문화적 무기다. 한국 전쟁 직후 우리나라 아이들이 기브 미 초코렛또 하면서 쫓아다닐 때 초콜릿도 무기였다. 이런식으로 나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거름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문화를 똑바로 알 때, 진짜 문화 줏대가 똑바로 섰을 때, 거름장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면 다음으로 둘째 마당을 열고 우리 소리의 내용으로 직접 들어가서 우리 문화를 알아보자. 그래서 과연 우리가 문화 줏대를 똑바로 세울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