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우습게 보지 말라 - 김준호
첫째마당 : 2. 삭은 맛, 익은 맛의 우리 문화
삭혀 먹는 우리 음식에 익혀 부르는 우리 노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대단히 많은 종류의 문화가 있다. 문화중에서 제일 생명력이 끈질긴 게 뭐냐면 음식 문화다. 음식 문화는 모든게 다 변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문화의 최후 보루다. 우리 음식 문화를 보자. 끈질긴 것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민족은 음식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 여행을 가는 한국 사람을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있다. 어디를 가든 우리 음식을 죽어라고 꼭 싸가지고 다닌다. 멸치,고추장은 기본이다.이게 안되면 하다못해 김이라도 꼭 가지고 간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목적지에 닿아 비행기 트랩을 내릴 때쯤에 알맞게 익도록 집에서부터 새 김치를 담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젓갈까지 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젓갈통을 랩으로 한 스무 겹 정도 둘러싸도 냄새를 완전히 막지 못한다. 공항의 마약 수사견은 평생 처음으로 맡는 희한한 젓갈 냄새에 마구 짖어 대면서 난리를 피운다. 개는 가방을 물어뜯고 가방 주인인 한국 사람은 겁에 질려 벽에 딱 달라붙어 있다. 미국 공항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처럼 끈질긴 음식 문화를 지닌 우리 민족은 특히 어떤 맛을 즐기는가? 익은 맛,삭은 막이다. 우리 한국의 3대 음식을 들여 보면 김치, 장 그리고 젓갈이다. 이 세가지에 공통적인 것이 뭐냐면 익은 맛, 삭은 맛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치를 담근 첫날은 조금 먹는다. 배추 겉절이처럼 풋풋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물이 찍찍 나오고 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이 때부터는 풋풋한 맛이 아니라 풋냄새가 난다는 거다. 다시 김치에 손 대는 때는 언제? 익을동 말동할 때다. 이 때의 김치 맛은 최고다.
김치는 기본적으로 발효 식품이다. 말이 발효지 사실은 삭혀 먹는 것, 산폐시켜 먹는 게 바로 김치이다. 음식을 삭혀 먹다니 무슨 소린다? 무엇이든 이틀이면 죄다 상해 버리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심지어는 담가 놓고 익힌 다음에야 냉장고에 넣는다. 원래 김치가 발달할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채소를 섭취하기 위해서다. 채소는 여름이 아니더라도 상히기 쉽다. 곡식 알갱이라면 수백년씩이나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가 있지만 채소는 보존 기간이 극히 짧다. 그런데 김치처럼 채소를 소금에 절여 놓으면 절대로 상하지 않는다. 상하기는커녕 한동안 놔두어야만 익어서 맛이 난다. 우리 조상들이 김치를 만들어 먹은 두 번째 이유는 염분의 섭취다. 소금은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소금 그대로 먹을 수야 없기 때문에 채소를 절여 김치로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김치만이 아니라 젓갈과 장도 마찬가지다. 젓갈이나 장도 불을 써서 익히는 음식이 아니다. 물론 장을 달일 때 불을 쓰긴 하지만 장은 담가서 직접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익을 때 까지 기다려서 먹는 발효 음식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3대 음식인 김치,젓갈,장이 모두 발효 식품이다. 우리 조상은 현명하게도 일찍부터 삭혀 먹는 요리법을 개발했다. 연전에 우리나라에 온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인류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양 요리는 기본적으로 구워 먹는 방식이다.음식을 불에 구워 먹는 것은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단순한 조리법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의 김치는 삭혀 먹는, 즉 발효시키는 음식이다. 발효 시키는 요리법은 굽는 요리법보다 진보한 문명을 나타낸다."
불에 굽는 것보다는 발효시키는 것이 훨씬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 더구나 불에 굽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발효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부터 김치는 손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음식을 발효시킨다는 것은 익은 맛, 삭은 맛을 낸다는 얘기다. 우리의 이런 음식 문화는 우리 음악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음악도 익은 맛, 삭은 맛을 요구한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노래하는 것은 악보와 똑같다. 그런데 칠순 할아버지가 노래 하는 것은 악보하고 똑같으면서도 맛이 다르다. 음악의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이구 내 신세야 박복한 내 팔자야...
같은 노래라 해도 인생의 깊은 맛을 모르는 다섯 살 꼬마는 새된 소리가 나지만, 칠순 할아버지에게서는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온다. 멜로디는 똑같지만 맛이 다르다.꼬마의 노래가 풋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는 김치라면 할아버지의 노래는 익고 익어 완전히 삭은 김치다. 여기서 이 소리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이 기운을 가리켜 기음이라고 한다.
무훈경 새해재해는 웬 고호호개해뇨
이 기음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말의 'ㅎ'소리인데,영어의 발음 기호로 쓰면 [h]발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말의 'ㅎ'과 같이 목구멍으의 가장 안쪽에서 인후벽을 스쳐 나오는 소리다. 프랑스에서는 'r'을 목구멍을 울려 나오는 소리라고 해서 후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같은 소리다.'전원일기'에서의 최불암 씨가'파-'하고 목구멍으로 웃는 소리도 대충 비슷하다. 이 소리를 많이 내면 인체의 스트레스나 화증을 없애 주기 때문에 굉장히 건강해진다.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갑자기 받는 스트레스에 '씨-'하고 반응하는 것도 소리로 화증을 식히는 인체 작용이다. 기음을 많이 쓰는 게 바로 우리 판소리다. 판소리에서는 맑은 소리를 명창이라고 할까, 탁한 소리를 명창이라고 할까? 탁한 소리가 명창이다. 이 탁한 소리는 오랜 수련 끝에 나오는 소리로, 목이 쉰 듯하면서도 카랑카랑한 소리와 '세성'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목으로 판소리에서는 '수리성'이라하여 최고의 목으로 여긴다. 이 탁한 소리에 기음이 들어간다. 기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탁한 소리가 나온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노래가 진짜 우리 노래다. 우리 소리 자체에 이 발음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 지 확인해 보자. 그냥 노래를 하면 이렇게 된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개뇨...
글자 그대로 음성적인 발음에 치중해서 노래를 하면,초등학생이 동요 부르는 것 같아서 대체로 재미가 없다. 이제 기음을 넣고 어서 해보자.
무훈경 새해재해는 웬 고호호개해뇨...
이제 어떤가? 한 가지 더 해보자.
날 좀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이것도 역시 이대로만 하면 재미없다.
날 좀 보소오호 날 좀 보소오호 날 좀 보소오호오 동지 섣다아할 꽃 본 듯이이히 날 좀 보소
이 때 한 글자 한 글자 다음에 들어가는 'ㅎ'소리가 기음이다. 기음이 들어가지 않으면 소리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음이 들어가면 소리에 한 맛을 더한다. 기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신명을 좌지우지하는 음성적인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이 기음은 흥겨운 노래에 들어가면 더욱 흥겨워 질것이고,한스러운 노래에 들어가면 더욱 한스러워지는 희한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막 담근 김치도 김치듯이 기음을 넣지 않은 것도 노래는 노래다. 그러나 춧내 나는 김치를 먹으면 맛이 없듯이 기음이 없는 노래도 맛이 없다. 기음은 팍팍 익고 삭은 김치의 맛이다. 이렇게 기음은 우리 음악에서 익은 맛, 삭은 맛을 유도하는 참기름 같은 존재다.
비빔밥 문화가 만들어 내는 시나위
마지막으로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보자. 우리 음식 중에는 비빔밥이라는 독특한 것이 하나 있다. 지구상에 밥을 비벼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또 쌈밥,쌈을 싸 먹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비빔밥이나 쌈밥은 무엇을 넣고 비비느냐, 무엇을 넣고 싸 먹는냐를 묻지 않는 음식이다. 무엇이든 넣고 비벼 먹으면 비빔밥이요, 무엇이든 넣고 싸 먹으면 쌈밥이다. 그런데 우리 음악에도 이런 식으로 비빔밥,쌈밥이 있다. 시나위라는 것이 그것이다. 시나위란 한마디로 음악의 비빔밥이요 쌈밥이다. 장구 장단에 맞춰 대금은 대금대로 나가고, 아쟁은 아쟁대로, 해금은 해금대로, 피리는 피리대로, 이렇게 섞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섞어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가락을 주고받고 나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어울려 나가는 소리가 바로 우리의 소리다. 우리의 음악은 즉흥 음악이다. 우리 음악은 원래 악보를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고 스승이 제자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승해 왔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마다, 또 배우는 사람마다 개성이 발휘되어 조금씩 달라져 왔는데, 이것이 즉흥성의 뿌리가 되었다. 물론 서양 음악의 경우에도 지휘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지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다른 색깔을 내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해석의 차이다. 서양 음악 중에서도 고전 음악과는 달리 대중 음악에는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 요즘 서양의 재즈라는 음악과 사물놀이 같은 우리 음악이 한데 어울려 자주 공연을 갖기도 하고는데, 그럴 수 잇는 이유도 바로 즉흥성에 있다. 재즈란 음악도 원래 악보 없이 즉흥으로 연주하는 데 더 매력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음악가들 중에는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정식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지, 음악에 대한 재능을 말해 주는 게 아니다. 악보가 없으니까 자연히 즉흥으로 연주하게 된다. 즉흥적인 재즈 음악에서는 리더가 하나의 악구를 시작하면 다른 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추어 연주한다. 리더가 처음을 연주하면 모두들 한 번 딱 듣고 "아,이렇게 하자는 거구나"하는 것을 금방 안다. 이렇게 시작해서 언제 끝낸다는 약속도 없이 하는 데까지 신명나게 연주를 계속한다. 재즈 음악가들은 이런 식으로 음반도 녹음하고 공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우리 음악은 둘째 가라면 서럽다.우리 음악에서도 나름대로 악보를 기록하는 방법이 있지만,대부분은 악보 같은 것 없이 연주한다. 또 웃대의 음악을 아랫대에 전승할 때도 악보 같은 건 쓰지 않고 직접 연주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친다. 악보에 의존하지 않다 보니 그때마다 약간씩 다른 음악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즉흥성이고, 시나위의 중요한 생명력이 되어왔다. 세게의 민족 음악과 관련하여 평론이 제일 발달한 곳이 독일이라는 나라다. 민족 음악 평론이 굉장히 발달해 있는데,이 사람들의 주 특기가 뭐냐면 청음을 굉장히 잘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소리를 듣자마자 악보를 타닥 옮긴다. 그런데 이렇게 옮기는 과정에서 미치고 환장할 나라 음악이 바로 우리나라 음악이라고 한다. 왜? 즉흥성이 발달해 있어서 똑같이 반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나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요청한다.
"선생님 앞에 한 것,그것 한 번만 더 해주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연주자 자신도 방금 전에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는 거다. 물론 자기가 연주한 곡이 뭔지,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지만,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 반복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요구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다음에 와서 한 번 더 들으시오."
그런데 다음 날 공연에 와서 들으면 또 달라지는 거다.
"선생님,어제와 좀 다른데요." "그래요?그럼 내일 다시 와서 또 들으시오."
물론 다음 날 공연도 또 다르다. 이렇게 사흘 공연을 내내 와서 들여 놓고도 악보를 만들 수 없다. 이러니 미치고 환장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즉흥으로 나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은 그만큼 즉흥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거부한다든지, 불협화음이 난다든지 하는 게 아니다. 웬만하면 대충 섞어 놓아도 서로 어울리는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심지어 전국에서 모인 수십명의 풍물패들이 선두 꽹과리 장단에 맞추어 대충 두들기면,치는 연주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별다른 연습이 없어도 금방 잘 어울린다. 이같은 비빔밥 음악, 시나위는 누구나 아주 쉽게 실험해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고 하자. 한 사람은 가장 널리 알려진 본조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옆에서 다른 아리랑,이를테면 경상북도에서 하는 메나리조 아리랑 노래나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부른다. 같은 아리랑이지만 곡조가 전혀 다른데도 두 노래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잘 어울려 넘어간다. 이것은 서양 음악의 화음과는 다른 것이다. 화음은 같은 노래를 높이 음조와 낮은 음조 두 부분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이지만, 시나위는 전혀 다른 노래인데도 잘 섞인다. 서양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로 어울리는 음계, 화음을 찾아내고 이론으로 만든 것이 바로 화성학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나위는 이 화성학을 이용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척척 어울려 넘어가는 가락을 만들어 낸다. 직접 해보면 얼마나 멋진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나위는 아주 자유로운 음악 형식이다. 밥에다가 고추장만 넣어도 비빔밥이 되고, 된장국을 넣으면 더욱 좋고, 열무김치나 향긋한 취나물을 들어가도 맛있고, 콩나물 무침이 있어도 비빔밥이 된다. 또 쌈을 보더라도 밥에다 된장을 얹어도 맛있고, 고등어 조림이 같이 올라가면 한 맛을 더하고, 육고기에 횟거리까지 얹어도 쌈은 쌈이다. 시나위도 바로 그런 것이다. 장구만 가지고 노래를 해도 어울리고, 거기에 북이 하나 더 들어가면 더 어울리며, 아쟁,대금이 들어가면 더 잘 어울린다. 이것이 바로 시나위다. 서양의 악기들은 한 음 한 음을 정밀하게 내도록 여구받는다. 정교한 맛은 있지만 그만큼 까다롭다. 익은 맛,삭은 맛보다는 정확함과 과학성을 추구한다. 뒤섞임과 어울림보다는 개성과 독자성에 비중을 둔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과 악기는 결코 까다롭지 않다. 아무거나 막 섞어도 어울리고 따로따로도 그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 음악이다. 그만큼 우리 음악의 악기들과 노래들은 편협되지 않고 너그러우며 받아들이는 폭이 넓다. 그러나 아무리 뒤섞여도 기본적인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익은 음악, 삭은 음악이다. 시나위로 음악을 한다 해서 양푼 깨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집어넣는다면 그건 음악이 아닐 것이다. 그 소리는 그냥 소음일 뿐 익은 맛, 삭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음악에는 음식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비빔밥,시나위가 있다.
눈물을 아끼지 않는 민족
이렇게 득특한 음식 문화의 전통을 지닌 우리 민족은 음악만이 아니라 생활의 곳곳에서 익은 맛,삭은 맛을 최고로 친다. 우리네 정서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비빔밥 정서를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감정의 표출을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서는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눈물이다. 일반적으로 눈물이라고 하면,기쁠 때 흘리는가,슬플 때 흘리는가? 슬플 때 흘린다.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은 게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다. 눈물을 슬플 때만 흘린다면 눈물은 부정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눈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우리는 눈물에 대한 긍정적이다. 한번 잘 울어 버리면 옷이 한 벌씩 생기는 나라다. 국회의원 선거 후보 연설회에 나와서 뭐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애써 강조할 필요 없다. 조금 이야기하다가 울어 버리면 여자들 사이에 대번에 소문이 퍼진다. "4번 그 아저씨 우는 데 참 안 됐어." 이런 식으로 한 번 울 때마다 5천 표씩 더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 너무나 긍정적이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도 희한한 광경이 있다. 재판 도중에 눈물을 조금 보이는 듯하면 정상을 참작하여 관대하게 봐준다. "기억이 잘 안납니다" 하는 식으로 버티었다가는 별로 환영을 못 받는다.
반면에 서양 사람들의 눈물 이미지는 어떠냐 하면 굉장히 부정적이다. 서양 사람들은 눈물은 곧 수치요, 부끄럼이요,남한테 절대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사나이 눈물이라고 하면 "남자가 오죽하면 울겠느냐"고 안쓰럽게 봐주지만, 서양 사람들은 특히 남자가 운다는 겁쟁이라는 뜻이다. 재판장에서도 피고가 눈물을 보이면 우리처럼 봐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다. 배심원들은 "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죄가 있긴 있는깁다"하고 생각한다.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서 만나는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한국 사람이 가족을 찾았을 때는 울고불고 난리인데, 해외로 입양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 고국으로 와서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았을 때 잘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양 갔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아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은 탓이다. 일본 사람들도 눈물을 좀처럼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연전에 서울시의 어느 지하철 역에서 열차 사고가 나서 한국에 유학인 일본인 유학생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 어머니가 일본에서 득달같이 날아왔는데, 눈물을 보이기는커녕 사고를 수습하느라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합니다"하더란다. 그리고는 호텔 방에 돌아와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일본 고베에서 지진이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국내에 방영된 텔레비전 뉴스를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참 무섭다. 가족들이 죽었는데 우찌 우는 사람이 없노?"
일본 사람이라고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싸우면서 성장한 민족이다. 일본의 역사에서는 수백 년 동안 무사들이 각 지방을 쥐고 흔들면서 서로 치고받고 권력을 잡았다 놨다 하며 겁나게 싸웠다. 거기서 발달 한 게 남자는 무사 정신,이른바 사무라이 정신이요,여자는 참을성과 복종이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무라이 정신,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참을성 때문에 눈물에 인색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눈물에 인색한 이유는 또 다르다.그 사람들은 이별에 굉장히 세련되어 있다. 왜냐? 이별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육식을 하는 민족이다. 이 사람들은 초원을 찾아서 소도 따라다니고 양도 따라 다니는 이동성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별을 겪는 경우가 대단히 잦고 이별하는 방식도 굉장히 세련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부모와 헤어질 때도 뽀뽀 한 번, 악수 한 번으로 끝이다. 반면에 우리는 농경 민족이다. 논을 짊어지고 다닐 순 없다. 농경 민족이다 보니까 한 군데 오래 사는 게 대단한 자랑거리다.국회의원 선거 하면 꼭 안 빠지고 내세우는 경력 1번에 뭐가 들어가느냐면 어디 어디에서 15년째 거주, 이런 경력이다. 다른 사람과 싸움 붙을 때도 대뜸 이런 으름장부터 놓는다.
"내가 이땅에서 15대째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 굴러온기고."
이렇게 우리는 자기가 한 곳에 오래 살아온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옛날 어르신들 말씀 중에 이런게 있다.
"제가 태어난 고장에서 죽을 때까지 십 리 바깥을 다녀 보지 않고 사는 게 복이다."
요즘 세상에 그럴 수 있을까만서도 제 고향에서 명대로 살다 죽는 건 그만큼 근심 걱정 없이 살았다는 얘기다. 객지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희한한 형상이라고들 말하는 민족 대이동, 추석이나 설에 무려 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 풍습도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귀소 본능이다. 서울세서 대전까지 10시간,부산까지 20시간이 걸리는 길도 마다 않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난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이 사람들 인터뷰를 해보면 대답이 한결같다.
"교통이 막히니까 귀향 길이 어렵지 않습니까?" "와요,그래도 가야지요."
이 '그래도 가야 한다'는 정신은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정인지 모르나 하여튼 국내에 살 수 없어 이민을 간 사람들인데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그 시간부터 돌아올 것을 먼저 생각한다. 우리나라 이민자들이 특히 외국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 귀소 본능에 있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저녁 7시쯤이면 거리의 상점들이 대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래서 퇴근 길이면 급히 식품점에 들러 물거을 사기 위해 시간과 전쟁을 벌이기가 일쑤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민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걱정을 안 한다. 왜?밤 12시까지 떠억 하니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저녁이면 집에서 편히 쉬거나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지만, 우리나라 이민자들은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 사람들이나 문화와 잘 어울리지 못해서 이민 생활 10년이 다 되어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막역한 본능이다. 비록 지금은 이민 와서 남의 국적이 된 몸이지만, 그리고 언제 돌아간다는 기약도 전혀 없지만, 언제고 나는 고국에 돌아가야 않겠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다. 기왕 고국에 돌아갈 거면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 금의환향해야 한다. 지 집 이민 갔다가 모두 다 까먹고 망해서 돌아왔다, 이 소리는 도저히 못 듣는다. 최소한 이민을 떠나기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소릴 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민자들은 쉴새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이다. 오로지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본능 하나로.
눈물의 양이 많은 탓에 눈물의 맛도 달라졌다
이렇게 정착성 민족에다가 어디를 가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본능을 가진 민족이다 보니까 우리는 이별에 익숙하지 않고,서양 사람들은 이동을 너무 자주 하다 보니 이별에 대범해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군대에 보내는 모습에서 미국 가정과 한국 가정은 천지차이다. 미국 가정은 아들이 군대 갈 때"마마,바이바이", "아들아,행운을 빈다.잘 갔다와라."하면서 대문 앞에서 작별하곤 끝이다. 우린 어떻게 할까? 집 앞에서 절대 안 헤어진다. 온 가족이 논산 훈련소 앞에까지 따라간다.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눈물을 찔끔거리기 시작한다.
"시간 됐다,들어가라... 훌쩍훌쩍...드가라, 그냥 드가그라,훌쩍."
이러다가 진짜 들어갈 시간이 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아버지는 부끄럽다고 저쪽으로 도망가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옷을 담은 소포가 날아온다. 그 소포를 딱 받자마자 어머니는 억 하고 기절해 버린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이별에 익숙하지 않고,서양 사람들은 이별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생리적인 작용까지도 달라져 버렸다. 생리적인 작용도 서양 사람하고 한국 사람은 차이가 난다. 서양 사람들은 눈물을 아무리 심하게 흘러도 앞쪽으로 잘 안 흘린다. 옆으로 찔끔찔끔 흘리는데 그 눈물의 양도 굉장히 적다. 더구나 흐르기는 흐르는데 이놈이 툭툭툭 떨어지는 게 아니고 짜작짜작 묻듯이 나와서 추풍령 고개(얼굴 안면의 광대뼈)에 턱걸려 있다. 요놈을 어떻게 닦아 내는가 하니 서양 사람들은 손수 건으로 찍어서 콕콕콕 닦아 낸다. 이렇게 양이 굉장히 적다. 이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우선 눈물의 양부터 다르다. 눈을 두 번만 깜박이면 주루룩 떨어진다. 눈물을 펑펑 흘린다는 표현을 쓸 정도다. 마치 물보가 터지듯이 펑펑 흘리는 거다. 또 한국 사람들은 울었다 하면 눈물만 안 흘린다. 목 윗부분에서 귓구멍 두 개 빼고 벌어진 데로는 모조리 흘린다. 눈물도 많을뿐더러 또 거기다 코는 코대로 허연 영감 할멈 둘이서 나왔다 들어갔다하고, 침은 침대로 또 질질질 흘리게 마련이다. 얼굴 전체의 분비물 자체가 너무너무 많다. 그러니 서양에서 들어온 손수건 가지고는 수습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무얼 가지고 닦는가 하니, 한복의 옷자락을 가지고 닦았다. 이 소매를 반으로 딱 나워서 위로는 눈물을 훔쳐서 닦아 낸다.밑에는 콧물이 아니라 보다 깨끗한 것을 모은다. 바로 침이다. 그럼 콧물은 어떻게 하는가? 콧물은 저 멀리 떨어진 옷고름을 가지고 닦는다. 이렇게 눈문을 닦는 부위까지도 전부 따로 발달해 있다.
재미난 얘기가 하나 있다. 옛날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할 때 보통 하루분 방송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흘린 눈물의 양을 어느 짓궂은 사람이 계산을 해봤다. 4톤 트럭 100대분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눈물을 흘리는 민족이더란다. 그러다 보니까 재미난 것도 있다. 눈물의 맛조차도 한국 사람하고 서양 사람이 다르다.서양 사람이 흘린 눈물은 맛을 보니까 소금기가 없어 조금 냉냉하다. 실제로 그렇다. 다음, 한국 사람의 눈물 맛을 본다. 우리 한국 사람 눈물을 받을 때는 직접 눈에서 못 받는다. 얼굴 전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턱 아래에서 긁어서 맛을 본다. 우리 눈물의 맛은 어떨까? 짜다고? 아니다. 간이 딱 맞다. 심지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음식 맛을 보는 데도 눈물 맛을 기준으로 간을 맞추었다. 옛날에는 집안 식구들이 대가족이어서 주로 큰 솥에 밥을 하고 작은 솥에 국을 끓이는데 전부 10분 이상이다. 밥을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맞추냐 하면 바로 이 눈물 맛으로 맞춘다. 어느 여자 대학에서 강의하던 중에 이 이야기를 하니까 여학생 하나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눈물이 그렇게 시시때때로 나와요?"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마음대로 나오겠는가? 요즘처럼 평생 가스불이나 전기 밥솥만 써가지고는 모른다. 우리 옛날 아궁이에 불을 때봐야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우리 어머니들은 부뚜막에다 한쪽 발을 올리고 솥뚜껑 문을 열고 국물 맛을 본다. 맛볼 때 연기와 김이 어디로 들어갈까? 바로 눈으로 들어간다. 눈을 뜨고는 국물 맛을 못 본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국물 맛을 볼 때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휴,매워라" 이렇게 어머니들은 짠맛을 보면서도 매운맛을 함께 보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