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2장
2. 벽사의 색
동소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본능은 사되고 나쁜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일을 알 수 없고, 가진 능력에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서는 삶의 과정 자체가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사고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생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보다 크고 강력한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바람이 각종원시신앙과 주술적인 믿음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도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이나 무의식적인 생각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과 연관된 어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든가 아침에 만나는 작은 곤충에게서도 그 날의 운세와 연관시켜 보고자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과 능력을 설정해 놓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사된 것을 물리치고 행복과 안락함, 즉 복을 기원하고자 하였다. 사된 것을 물리치는 힘, 그것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색과 관련된 측면에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음을 물리치는 양의 색
귀신이나 악하고 나쁜 것은 어둡고 드러나지 않은 깊숙한 곳에 있다. 밝음이나 개방된 곳은 이들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밝고 원기와 생명력이 충만한 것을 양, 무겁고 어두우며 숨어 있는 것을 음이라고 본 음양사상에 따라 동양에서는 귀신을 음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필원잡기〉에 따르면, 귀신은 음성인 까닭에 양성인 남자보다는 여자에 부착되는 수가 많고 빛이 드는 양지나 튀어나온 곳보다는 음습한 동굴, 오래된 우물, 깊은 계곡 등의 들어간 곳과 고사찰, 폐옥, 고목 등에 운집하여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음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강자, 즉 양이 요구된다. 음양오행사상에 의하면, 우주생성의 근본원리에 해당하는 기본색으로 백색, 청색, 적색, 흑색, 황색의 5색이 있으며, 이 중 청색과 적색이 양에 해당된다. 청색은 방위로 볼 때 태양이 솟는 동방에 해당하여 창조, 신생, 생식 등을 상징하는 양기가 강한 곳이다. 적색은 남방에 해당하여 온난하고 만물이 무성하므로 또한 양기가 왕성한 곳이다. 이에 반하여 서방의 백색과 북방의 흑색은 음에 해당된다. 음양사상에 따르지 않더라도 백색과 흑색은 생명력이나 왕성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음양오행사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상과 사고체계를 규격화시키는 제도적인 것의 일종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에 있어서 음양오행은 우주의 이치를 지켜본 다음에 이를 종합하여 정리한 원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양오행사상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인 고대사회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사고와 믿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원시사회에서 가장 큰 숭배의 대상인 태양과 불의 적색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적극적이고 강력한 '상징'을 느낄 수 있었고, 왕성한 식물과 경배의 대상인 하늘의 푸른색에서 생명력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랜 옛날부터 적색과 청색은 힘과 생명의 상징색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사되고 악한 기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할 때 적색 또는 청색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관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 민족의 주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적색과 청색은 모두 생명력과 힘이 충만한 양의 색이지만, 실제 벽사의 용도로 사용된 것은 적색이 압도적이다. 이는 적색이 태양, 불, 피와 같은 원시신앙의 주요한 대상물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 주술적인 위력을 지닌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우리 민족이 사용한 벽사(사된 기운을 물리침)의 색으로 대표적인 적색에 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2) 적색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고대인들은 그들이 신성시하고 숭배한 태양과 불의 색이 붉은 색임을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또한 자신의 몸속에서 고동치며 흐르는 붉은 피는 곧 생명과 직결되는 생명력의 상징임을 알았다. 이처럼 태양, 불, 피가 있는 곳에는 항상 생존이 가능하고 강력한 힘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태양, 불, 피가 가지고 있는 붉은색을 생명과 힘의 표식으로 삼고 이를 숭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귀신과 질병, 재앙 등과 같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사자로서 강력한 붉은색을 사용하였다. 이제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원시적 사고체계가 실생활에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재앙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에서는 붉은색을 띠고 있다는 면을 중요시하여, 홍, 주, 황 등과 같은 유사한 색을 적색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언급하게 될 이러한 유사 적색은, 그 색 자체로서가 아니라 붉은색에 준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1) 부적
벽사진경의 가장 강력한 의지표현의 하나인 부적에는 적색으로 글씨와 그림을 그려 악귀를 쫓는다. 문헌상 최초로 부적이 사용된 기록은〈삼국사기〉에 나타난 신문왕 6년 2월의 기록과〈삼국유사〉의 처용설화에 나타나고 있다. 이 기록에서 색의 명칭을 명확하게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길흉요찰(길흉을 조정하는 나무조각)과 벽사진경의 처용상이 모두 붉은 글씨로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통설이다. 조선시대 때 임금이 위독하면 액정서에서 보의를 설치하였는데, 보의란 붉은 비단에 도끼를 그려 넣은 병풍을 말한다. 또한〈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관상감에서는 주사로 쓴 부적을 만들어 단오에 대궐 안으로 올리며, 대궐에서는 이를 문설주에 붙여 불길한 재액을 막았다고 하였다. 이 때 부적에 쓴 벽사문은 귀신 귀자를 가운데에 두고 붉은 적자 12자로 주위를 두른 것도 있고, '적구절석사백사병일시소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관습은 대궐뿐만 아니라 일반 민가에서도 널리 행하여 집집마다 붉은 부적이 붙어 있지 않은 집이 드물 정도였다.
(2) 복식
복식에 있어서 이러한 예는 더욱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흉귀를 쫓는 의식인 계동난의때에는 동자 48명이 가면을 쓰고 적색 의상을 입었고, 공인 20명이 적건과 적색 의상을 착용하였다. 정월 대보름은 귀신과 재액을 물리치는 갖가지 벽사행위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날이다. 따라서 붉은 색이 가장 많이 동원되기 때문에 이 날을 단일이라고도 한다. 이 날 궁중의 내시원에서는 옥추단이라는 붉은 선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며, 이를 오색실에 꿰어 임금을 비롯한 시종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민간에서는 부녀자들이 아궁이에 불을 떼다가 불똥이 튀어 치마에 구멍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붉은 헝겊으로 구멍을 꿰매는 습속이 있었다. 이는 음습한 곳을 찾아다니는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전염병이나 괴질이 유행할 때 이를 쫓기 위하여 붉은 옷을 입었으며, 부락 입구에는 대나무 장대를 세우고 붉은 두루마기를 걸어놓았다. 시체를 넣는 관에도 옻칠을 하고 붉은 비단을 관 속의 사방에 붙여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신부의 얼굴에 바르는 연지 곤지도 시집가는 여인을 투정하는 음귀에 대한 축출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부락제의 신주들은 대개 남자인데도 빨간 연지를 칠했으며, 궁중에서 베푸는 기우제 등의 천제때 주가를 부르는 천동들도 빨간 연지칠을 하였다. 상날에 직업적으로 울음을 파는 곡비의 손톱에는 빨간 물을 들이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니, 여름날 백반을 섞어 예쁘게 들인 빨간 봉숭아물도 귀신에게는 두렵고 근접할 수 없는 징표로 여겨졌을 것이다.
(3) 음식
벽사의 의미로 사용된 붉은색의 매개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붉은 고추를 들 수 있다. 아들을 낳았을 때 붉은 고추를 다는 것이 고추의 생김새가 사내 아이들의 성기를 닮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사된 기운의 근접을 막고자 하는 붉은빛의 벽사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 하면 귀신의 장난이 심한 것으로 여겼던 간장 항아리에도 붉은 고추를 끼운 금줄을 두르고, 집을 상량할 때나 샘을 새로 팠을 때 치는 금줄에도 붉은 고추를 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생명의 탄생과 집의 신축, 샘의 신설 등과 같이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것들에 사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붉은색'으로 이를 막은 것이다. 이러한 습속이 가장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분야는 식생활에서이다. 이사를 하거나 굿을 할 때 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는데, 이는 팥의 붉은색을 이용하여 부정한 것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한 해가 시작되는 정초나 연말의 동짓날에도 팥죽을 끓여 먹는다.〈동국세시기〉에도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는 풍속을 적고, 팥죽을 대문이나 문설주 등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아 버리는 민속을 소개하였다. 정월 대보름에 먹는 오곡밥은 팥, 수수, 대추 등의 붉은 곡식이 주를 이루고 있고 또한 붉은 약식을 해 먹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에도 팥죽으로 열병을 예방하고자 하였고, 고춧가루를 넣은 개장국과 육개장을 뻘겋게 끓여 이열치열의 원리와 함께 더위병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한편, 유둣날 민간에서는 밀의 누룩을 구슬처럼 만들어 붉은 물을 들인 다음 허리에 차고 다니거나 문설주에 매달아놓기도 하였다. 이처럼 식생활에서 붉은색을 이용한 벽사의 풍습은 절식으로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4) 주생활
주생활에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건축재료로써 붉은빛이 나는 황토를 즐겨 사용하였다. 흙에도 갖가지 색깔로 된 여러 종류의 흙이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붉은빛에 가까운 색을 골라 벽사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서울 종로의 흙이 붉은빛의 황토였는데, 이 종로의 황토를 파다가 집 문 앞에 깔면 병귀가 들지 않는다고 하여 마구 파가는 바람에 이를 막는 '금토방'을 붙여야만 하였다. 동신을 모신 사당과 그 동신제의 제주가 사는 집 사이에는 붉은 황토를 깔아 사귀를 막았다. 또한 각 고을에 수령이 새로 부임하는 날에는 마을 밖 오리정에서부터 관가에 이르는 길까지 붉은 황토를 깔았다고 한다. 이에 동원되는 부역을 '황토부역'이라 하였다. 정약용은〈다산필담〉에서 이러한 황토를 까는 풍습이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전제한 뒤, 태양이 가는 길인 황도를 흉내내어 귀하게 받들고자 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붉은 황토의 살포 풍습 역시 새로운 사람에게 잘 붙는 악귀를 물리치기 위한 벽사색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벽사의 용도로 사용된 적색은, 직접 붉은색을 칠하는 적극적인 행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붉은 옷, 연지, 봉숭아물, 고추, 팥, 대추, 붉은 황토 등 생활주변의 다양한 매개체를 통하여 그 의미를 전달하여 왔다.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에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험보러 가는 아들·딸의 옷 속과 환자의 이불, 베갯잇 속에 붉은색의 부적을 넣어놓는다든가, 이사를 했을 때 팥죽, 시루떡 등을 만들어 이웃에게 돌리는 등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독특한 적색관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일상생활에서의 불행이나 질병 등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는 악귀의 소치로 여겨 그 악귀가 두려워하는 붉은색을 상징적인 힘으로 사용함으로써 방대한 '붉은 기속'을 형성하여 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