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상징세계 - 구미례
제1장
수
3. 숫자 ‘3’
우리나라 사람에게 '3'은 특별한 숫자이다. 오랜 옛날부터 3은 길수 또는 신성수라 하여 최상의 수로 여겨져 왔다. 그러면 왜 3을 최상의 수, 수 중의 수로 여기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기로 하자. 3이란 숫자가 지닌 깊은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숫자 1과 2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은 하나의 수량을 말하지만 동시에 사물의 전체와 태극을 나타내고 있는 수이다. 음양의 이치에서 보면 1은 아무 수와도 섞이지 않은 순양의 수이다. 또한 최초의 수이므로 1에서부터 모든 사물이 생겨나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2'는 하나가 아닌 최초의 단위이자 최초의 음수이며 순음의 수이다. 또한 음과 양, 하늘과 땅, 남과 여 등과 같이 둘이 짝하여 하나가 된다는 대립과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3'은 양수의 시작인 순양 1과 음수의 시작인 순음 2가 최초로 결합하여 생겨난 변화수이다. 즉 음양의 조화가 비로소 완벽하게 이루어진 수가 3이다. 따라서 3은 음양의 대립에 하나를 더 보탬으로써 완성, 안정, 조화,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짝수인 2처럼 둘로 갈라지지 않고 원수인 1의 신성함을 파괴하지 않는 채 변화하여 '완성'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3이라는 숫자는 세 개로 나누어져 있지만 전체로서는 '완성된 하나'라는 강력한 상징을 띠고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원래 '삼'이 '솥 정(鼎)'자를 표현한 것이라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정이란 중국 고대의 국가를 상징한 보기이다. 이 보기는 다소 변형되어 불전에 향불을 담아 올리는 그릇으로도 이용되었는데, 세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만일 다리가 네 개이면 지면이 평탄치 못할 경우에 안정되게 서 있을 수 없으나, 세 개이므로 어떠한 요철바닥에도 끄떡없이 튼튼하게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옛 선현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이 세계가 완성되고 살아 움직이게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천, 지, 인 3재를 기본으로 하여 완성과 안정을 상징하고 있는 3수는, 앞서 '단군신화에 나타난 수 관념'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의 시조신인 환인, 환웅, 단군의 삼위일체적 존재로 그 신성함을 더하게 된다. 이들 삼신이 셋이면서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는 삼일신적 인식은'3은 곧 완성된 하나'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보는 불·법·승으로, 각각 '진리를 깨달은 이', '진리 자체', '진리를 배우고 추구하는 자'를 뜻하고 있다. 이들 셋이 모일 때 비로소 불교가 성립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종교로서의 올바른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있어 3은 완성과 안정을 상징하는 가장 신성하고 이상적인 수이며, 동시에 순음과 순양이 합해서 변화를 지향하는 발전적인 수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민속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3은 대표적인 양수로서, 아들을 뜻하는 길수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아들을 극히 선호한 전통사회에서는 이미 딸을 잉태하였다 하더라도 주술적인 수법에 의하여 사내아이로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딸을 아들로 바꾸는 '전녀위남'의 민속이 뿌리박게 되었다. 이 때 '3'이란 숫자는 바로 아들을 뜻하는 길수로 사용된다. 이는 양수(홀수)가 남성이고 음수(짝수)가 여성이라는 음양사상에 기초를 둔 것으로, 순양인 1은 아버지를, 순음인 2는 어머니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머니와 아버지인 1과 2가 결합하여 생긴 3은 양의 수이므로 아들이라 생각한 것이다. 전녀위남의 구체적인 예를 보면 수탉의 긴 꼬리털을 세 개 뽑아 임부의 요 밑에 몰래 넣어두거나, 남자를 상징하는 활줄을 임부의 속허리에 매어놓고 석 달 만에 풀면 딸이 아들로 바뀐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의 꼬리털 세 개, 석 달이란 것 등이 아들을 상징하는 3의 길수를 주술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출산 후에는 금줄을 치게 된다. 아들을 낳았을 경우에는 고추와 숯, 딸을 낳았을 경우에는 숯과 백지를 각각 꽃아 두는데, 이때 숫자는 세개씩 꽃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출생을 다스리는 산신을 셋이라 보아 이를 삼신할머니라 하였으며, 아기를 낳은 뒤 초3일 또는 초7일, 두7일, 삼7일마다 삼신할머니에게 밥과 국 세 그릇을 떠놓고 아기가 무사히 자랄 수 있도록 치성을 올리게 된다. 그 외에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년 동안 집안에 머물다가 승천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3년 상 등 관혼상제를 비롯하여, 일상생활에서 격언, 속담, 관용어 등으로 가장 많이 친근하게 사용되고 있는 숫자가 3인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중매는 잘 하면 술 석 잔, 잘 못하면 뺨 세 대 .삼 세 번 .코가 석 자 .3척 동자 .겉보리 석 되만 있으면 처가살이 않는다. .장님을 셋 보면 그 날 재수가 좋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는 좋은 일, 궂은 일에도 3이라는 수를 널리 사용하여 좋은 일은 더욱 좋게, 궂은 일은 원만히 풀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그들의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또한 양수가 두 번 겹친 것을 좋아하여 이를 길수로 여겼다. 우리 민족이 기리는 설날(1.1), 삼짇날(3.3), 단오(5.5), 칠석(7.7), 중양절(9.9) 등은 1, 3, 5, 7, 9의 양수가 두번 겹쳐 이루어진 날이다.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 숫자 중에서는 특히 길수인 '3'인 중수, '삼십삼(33)'을 꼽을 수 있다. 33은 가장 완벽한 수, 그리고 강력한 전체성을 상징하는 독특한 수 관념을 형성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중심에 수미산이 높이 솟아 있다고 하고, 그 꼭대기에 이 세상의 선악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도리천(도리 : 인도어로 33을 뜻함)이 있다고 한다. 이 도리천을 우리는 33천이라고 많이 부르고 있다. 즉 여기에서의 33은 지상에서 가장 높고 세상의 모든 것을 포괄하여 관장하는 수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라 경덕왕이 5악3산의 산신을 집합시켜 대덕한 스님을 천거하는 날을 중삼의 3월 3일로 잡은 것도 이 날에 33의 전체적인 뜻을 내포시킨 것이다. 즉 대덕스님을 뽑는데 필요한 전국가적 규모의 확대를 33이란 숫자로 상징한 것이다. 또한 중삼일에 다레를 올렸던 신라풍속도 중삼일이 갖는 전체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약정을 한 신라 혜공왕 4년에 길찬 벼슬의 대공형제가 모반의 깃발을 들고 합세한 민중과 더불어 왕궁을 33일간 포위하고 풀었다는 기록 역시 이 포위 기간의 우연적 숫자로 보기보다는 33이 갖는 전체적 의미, 즉 온 백성이 왕의 약정에 저항하고 있다는 고의적 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33사상은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된 과거의 문과 정원으로도 제도화되었다. 과거의 선발 인원을 일정한 성적에 도달한 사람 모두를 뽑거나 필요한 수만큼 뽑지 않고 나라의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주력적 뜻에서 33명만을 뽑았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무과가 처음 생겼을 때 그 정원을 28명으로 정하였다. 28이란 숫자는 도교의 28수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고대 사회에서 해와 달과 여러행성 등의 소재를 밝히기 위하여 황도에 따라 천구를 스물여덟 개로 구분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문과의 정원은 33명인데 무과는 왜 28일일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문관은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이므로 가장 높고 완벽하며 전체적인 것을 상징하는 '33'수를 사용하였고, 무관은 나라를 지키는 벼슬이므로 하늘 위에서 세상을 감싸고 지켜주는 28수의 '28'을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33인 제도는 화랑도 및 동자군의 선발에도 적용되었다. 동자군은 기우제 때 합창대로 또는 궁중의 약재로 많이 쓰이는 동뇨의 공급원으로, 그 외에 각 관청의 의장 소년병으로 부정기적으로 특채되었으나 그 수는 반드시 33명을 넘지 못하게 하였다.
이 같이 33이 지닌 사상은 근대에 이르러 각 단체의 발기인 수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한말에 보부상 단체의 발기인 수도 33명이었고, 3.1 독립선언의 민족대표도 33명이었다. 33인이 참여한다는 것은 곧 전민족이 참여한다는 것을 뜻하였으며, 실제로도 3·1운동은 역사상 온 겨레가 거족적인 공감 하에 하나로 일어선 민중봉기였던 것이다. 이렇듯 33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강력한 전체성과 정의가 깃들어 있는 숫자로 사용되어 왔다. 이제까지 숫자 '3'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 그리고 그것이 사용된 여러 가지 예를 살펴보았다. 막연히 좋은 수, 상서로운 수로 생각하여 왔던 '셋' 또는 '삼(3)'이라는 숫자에는, 이처럼 우리 민족의 철학과 사상, 정서와 기원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