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 주강현
생명나무, 황금가지의 수수께끼
나무를 대신하는 높다란 신간
신령스런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 자체로서만 존속했던 것도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 자체라는 원초적 형태로서만이 아니라 이동이 가능한 신간으로서도 존재했다. 신간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솟대를 꼽을 수 있으니,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권에서 두루 살펴보았던 그대로다. 처음에는 가지와 잎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생명나무로서의 역할을 하다가 차츰 나무의 생장력만이 상징적으로 옮겨진, 즉 가지와 잎이 제거된 나무기둥이 대신 생명나무로서 자리를 잡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곧 나무기둥은 단순한 기둥이 아니라 나무의 생장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살아 있는 나무의 대용품이었던 것이다. 장대가 신간으로 쓰이는 가장 좋은 실례는 제주도굿에도 있다. 큰 굿판에 큰대라는 긴 신간을 세우고 제상과 신간 사이를 다리라고 부르는 긴 무명으로 연결시켜서 신을 청하게 된다. 신들이 이 큰대를 통하여 강하하고, 큰대와 제상 사이의 무명다리를 건너서 온다고 여긴다.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신간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동국세시기>2월의 기사에는 제주도의 신간이 잘 드러나 있다. "2월 초하룻날 귀덕, 금녕 등지에서는 장대 열두 개를 세워놓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기다란 장대가 상징하는 신령성은 두레기에서도 두드러진다. 꿩장목을 위에 달고 깃폭을 늘어뜨린 두레기는 농민들의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꿩장목은 단순한 꿩털로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비상하려는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 새 대신 새털이 장대에 앉은 셈이다.
충청도에서는 볏가리 세우기가 전해진다. 긴 장대에 오곡을 매달아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볏가리 풍습 역시 신간의 범주에 들어간다. 서낭대의 신간, 하늘에서 신을 받는 신대...... 이 모든 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약속이다. 이 대목을 쓰면서 한남대학교 이필영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련다. 징기스칸이 13세기에 세운 몽고제국의 수도 캐라코룸 왕국 입구에는 은으로 된 나무가 있었는데, 이 꼭대기에 네 마리의 오리가 앉아서 각각 술, 말젖, 꿀차, 쌀술을 뿜어냈다고 한다. 이 은빛 나무는 북아시아 여러 종족의 세계나무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신간의 형태를 숭상하는 풍습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모든 숲 속의 빈터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시베리아 야쿠트족에게는 이런 속담이 있다. "모든 숲 속의 빈터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거의 모든 숲들이 그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야쿠트족의 전통적 자연철학의 전형성은 바로 정신에 관한 것이다. 1991년 여름 세계 샤머니즘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사하로브 박사는 세 개의 정신은 어머니의 혼과 땅의 혼, 공기의 혼을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전통적인 중부 시베리아 사람들은 특수하게는 정신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눈다. 그들이 세상에 대한 전망을 갖는 정보의 주요 원천은 조상들의 정신적인 유산 속에 담긴 자연철학적 요소이다. 따라서 그들이 위대한 신성거목이란 뜻을 지닌 '아리마 마스'를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 아리마 마스는 주로 길가에 서 있다. 나뭇가지에 오색의 헝겊을 걸어 잡아매고 나들이길의 안전과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이 우리의 서낭목과 너무도 똑같다. 숲 속의 빈터마다 이름을 부여하는 정성어린 마음으로 나무를 지극하게 모시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마을의 숲과 나무는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신성스런 공간인 마을나무숲은 그 자체가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숲과 나무가 마을신앙처로 기능하면서 생태문제를 해결하는 사례가 무수하게 많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마을나무, 면나무, 군나무, 도나무,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된 수목이나 숲들 중에서 마을에 있는 것들의 상당 부분이 바로 마을신앙처라는 점이다. 또한 지정 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에 현재는 공식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지만 상당수의 신목이나 당숲들은 공식 지정하여 보호해야 할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다. 또한 현재는 신앙심이 해체되어 단순한 고목으로만 남아 있는 나무들도 과거에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또 현재는 홀로 존재하는 수목도 과거에는 거대한 숲 속에 자리잡았다. 제주시 월평동과 영평동에 가면 다라쿳당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팽나무 부부신이 자리잡고 있다. 본풀이에 보면 남신인 산신백관은 한라산의 토착신으로, 수렵 목축의 신이며 마파람의 신이며 육식을 하는 부정한 신이다. 여신은 강남에서 온 외래신으로, 농경신이며 하늬바람의 신이며 쌀밥을 관리하는 깨끗한 신이며 아기를 보살피는 신이다. 이들 팽나무로 된 남녀 신이 부부의 연을 맺고 좌정하고 있는 중이다. 보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예송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낮에도 캄캄할 정도로 숲이 깊어서 사람들은 당숲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곤 한다. 보길도는 물이 귀하다. 예송리에서 큰 하천은 산신당고랑, 작은 하천은 우대미고랑이라 부른다. 산신당고랑은 이름 그대로 예송리 당에 인접하여 흐르기에 붙여진 말이다. 바닷가에서 위로 올라가 작은 계곡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숲이 나오는데, 하천에 바로 인접한 나무들 중에 거대한 당산나무가 서 있다. 산신할머니가 숲 속에서 잠들고 있다. 당할머니가 거주하는 나무 아래로 흐르는 물은 바로 그녀가 내려주는 신성한 물이니 함부로 물을 더럽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진도의 상만리 비자나무(천연기념물 111호)는 높이 9.2미터의 웅장한 거목으로, 천년 세월을 자랑한다. 해마다 정월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산등성이를 타고 비스듬하게 눌러앉은 비자나무 아래에 모여서 소나 돼지를 통째로 잡아놓고 제사를 지낸다. 신안군의 관매도 후박나무(천연기념물 212호)도 수령 8백 년, 높이 18미터의 거목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은 물론이고 마을성황님으로 정초에 모셔진다. 이와 같으니 많은 천연기념물들이 마을나무인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몇 년 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이곳만은 지키자'는 국토살리기 캠페인을 벌였을 때, 다시금 주목받은 숲 중에 성황림이 하나 있다.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92호인 성남리의 수림지와 93호인 성황림이다. 서로 2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로 비유한다. 숲에 들어가면 해묵은 고목 등걸이 쓰러져 있고, 이끼가 생생하게 자라고 있다. 바로 천년 세월을 버텨 온 천연림이다.
21세기의 생태환경을 읽으며
근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들은 이들 숲에다 '미신'이란 딱지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마을나무를 '미신나무'라고 구박하면서 학대하였다. 도대체 미신이란 무엇인가. '문명인'의 관점에서 '야만인'을 덜 개화된 인종으로 비하해서 보는 것과 같이 미신이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당당한 정신이 된다. 이에 반하여 바깥 사회의 국외자들에게는 미신이 된다. 더욱이 마을나무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거론되는 것일진대, 이를 '미신나무'로만 몰아대는 우리의 편협한 이해방식이 안타깝다. 이렇게 미신 딱지를 붙인 것은 서구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땅을 찾은 서양 선교사들(그들은 대개 애숭이 청년들로 타민족 문명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였다)은 마을나무와 숲을 단지 '우상타파'라는 네 글자로만 해석했다. 1992년 가을에 한국역사민속학회에서 서울시 사당동 장승배기의 장승을 베어 넘기는 사건을 가지고 긴급 좌담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참석하여 이런 말을 했다.
제주도에는 곳곳에 수백 년이 넘은 '팽나무' 등의 신목이 있는데 이 팽나무를 천주교인과 신부들이 파괴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미신을 타파한 셈이 된 거죠. 특히 제주도 남쪽지방에 가면 '뱀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뱀이라면 '사탄' 아닙니까? 사탄을 숭배하다니 이건 말이 안된다며 주민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미신을 적극적으로 타파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몇 군데의 신목을 잘라버리고 당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잘라버린 나무로 '공소'를 짓는 데 썼습니다. 그러니까 '일거양득'이었겠죠. '미신타파'에도 좋고, 공소를 짓는 데 재목으로 쓰고 '일석이조'였던 셈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기독교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근대화, 문명개화, 사회개조, 구습타파, 새마을운동 따위의 무성한 구호들이 숲을 가득 채워 나갔다. 70여 년 전의 월간 <조선농민>(1926년)을 들추어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개 묵은 고목압헤 가서 제단을 모아놋코 꽤쇠를 치며 술을 부어 절을 한다. 별 기괴망측한 짓을 다하나니 그 따귀신이 나무귀신으로 변하엿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도 보입니다...... 야만인종들이 토템을 중심으로 굿센 단결을 짓는 것처럼 동신을 중심으로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모우는 것은 똑같은 의미로 볼 수 잇을 줄 암니다...... 토템생활을 하는 그 사람들은 야만인종이라 하는만치 동신제 지내는 여러분도 야만인종일 것입니다. 자긔도 토템생활을 하면서도 토템생활을 하는 야만인종들을 비웃는 동신제 지내는 여러 어른님네. 하로밥비 태고시절 이약이 생활을 벗어나서 사람다운 의식있는 생활하기를 몹시도 기대려 말지 안슴니다."
문명과 야만을 편가르기 하는 잘못된 습성이 매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들이 오늘날 보는 것처럼 마을 숲과 마을나무는 왜소해졌다 거대한 나무들은 거의 베어져서 사라졌고 마을나무, 정자나무 등으로 일부만 존재할 따름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왜소해진 숲과 나무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깊은 숲과 웅장한 나무가 던져주는 신성함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현지 조사를 다니다 보면, 오늘날은 신앙심을 상실하고 그저 홀로 존재하는 정자나무도 예전에는 거대한 숲 속에 사는 나무였고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숲과 나무의 변화가 너무나 극심하여 과거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을 이제는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우리의 생명나무에서 21세기 생태환경의 미래를 읽고 있다. 전세계의 숲을 누가 망쳐버렸는가. 오늘날 전세계 숲의 대부분을 망치고 있는 '아무 대책 없는 과학'은 바로 구미인들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세계사의 발전이란 명제는 바로 숲과 나무의 소멸이란 차례를 밟아 나갔다. 그들의 세계관은 바로 근대화, 선진과학기술문명 따위의 방식으로 대지를 오염시켰다.
과학기술문명의 오염을 그야말로 서구적인 시각에서 극복해 보려고 하지만 서구사회가 주창해온 '무한정 발전론'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진보적인 생태론자들조차 애써 생태환경의 미래를 서구적인 관점에서만 모색하려고 한다. 이제, 우리들의 나무와 숲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나무와 숲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공존방식은 그 자체가 생태문제를 뛰어나게 인식한 것이기도 했다. 나무와 숲을 사랑하던 살림방식, 그것은 대단히 오래되고 원초적인 삶의 방식이며, 생태의 문제가 바로 우리 문화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큰나무 전시회를 다녀와서
1995년 여름이었던가. 손장섭 화백에게 전화를 걸었다. 1980년대 어느 모임에선가 뵌 적이 있고, 1989년에 경희대 박물관에서 무속전시회를 개최했을 때 이석우 교수와 함께 찾아와 잠시 담소를 나눈 정도가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전화를 거는 필자의 마음은 무척 설레었다. 신문에서 '손장섭 전시회 큰나무'란 제목과 사진 한 컷을 보는 순간, '드디어 기다렸던 그림이 출현했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참으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압축한 그림이 나타났다는 기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동안 우리의 마을나무를 그렇게 본격적으로 그린 사람이 있었던가. 삼척 궁촌 신수, 강화 당산나무, 강진 신수, 삼척 근덕 신수, 서해안 신수, 삼척 도계 신수, 김제 신수, 법성 근교 신수, 남해 언덕 위의 당산나무, 백련사 신수, 마을 동구 당산나무, 김해 신천리 신수, 대전 근교 당산나무, 강화마을 당산나무, 마을신수, 강화 당산나무, 언덕 위의 당산나무...... 그의 그림 제목이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음나무, 은행나무, 왕버들, 백송, 후박나무, 비자나무, 동백나무...... 그가 익히 그린 나무들이다. 임학자 김학범 교수가 <마을숲>이란 책에서 꼽은 마을나무가 소나무, 느티나무, 오리나무, 느릅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쉬나무, 회화나무,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왕버들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노린재나무, 벚나무, 모감주나무, 미루나무, 물푸레나무, 졸참나무, 털야광나무, 음나무, 합다리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잣나무 등이나 대략 일치한다.
흡사 고호를 연상시킬 만큼 흰색을 강렬하게 사용한 마을나무는 더욱 신령성을 얻은 듯싶다. 그 흰색은 마을나무에 한껏 어울리는 위엄과 격조, 그러면서도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 뿌리박은 생명나무에 숨결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삼척 도계의 느티나무의 뻥 뚫린 나무 등걸에서 푸른 새싹이 솟아나고 있다. 고목나무에 새 잎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 문화의 희망 읽기를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라고나 할까. 그는 작품집의 마을나무 옆에 실물 사진도 함께 실었다. 그는 발로 뛰면서 이 땅의 마을나무들을 최초로 집대성한 셈이다. 그이의 붓길을 통하여 마을나무는 비로소 '미신' 따위의 잘못된 딱지를 벗고 대중 앞에 우뚝 선 것이다.
그림을 살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큰나무 전시회 포스터를 연구실 벽에 붙이고, 손 화백이 기념으로 준 화집에서 '서해안 느티나무' 그림을 오려서 책상의 유리판에 깔아두었다. 생명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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