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 주강현
생명나무, 황금가지의 수수께끼
문명세계에 보내는 편지
나는 지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간 북미 인디언 수와미족의 추장 시애틀이 쓴 '문명세계에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1855년 피어스 대통령에게 이 편지를 보냈으나 미국 정부는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미국독립 2백 주년을 기념하여 뒤늦게야 공개했다.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백인들이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당신네 신과 우리의 신은 같은 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이 우리의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당신들은 신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신입니다. 그리고 신의 연민은 백인들에게 동등합니다. 이 대지는 신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지를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모독입니다. 백인들도 소멸할지 모릅니다. 아마 다른 종족들보다 먼저 소멸할지 모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켜 나간다면 당신은 어느 날 밤 자신의 오물 속에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륙을 당하고 야생마들이 모두 길들여지며 성스러운 숲 속이 인간 냄새로 꽉 찰 때 그리고 산열매가 무르익는 언덕들이 수다스러운 부인네들에 의해서 더럽혀질 때 잔목숲과 독수리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리고 이동과 사냥이 끝장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우리들의 숲도 인간의 냄새로 가득 찬 것이 아닐까. 아니, 냄새를 가득 채울 만한 숲조차 이미 사라진 것이 아닐까. 참으로 위대한 자연의 선물, 숲과 나무에게 위대하다는 말밖에 달리 붙여줄 말이 있을까. 그러나 대지는 모욕당하였고, 숲은 능욕당하였다. 동물들은 숲에서 쫓겨났고, 어린 잡목은 인간의 발자국에 뭉개졌고, 숲은 수다스런 음성으로 가득 찼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수나무는 '미신나무'로 내몰려 금줄이 벗겨졌고, 심지어 전기톱에 잘려 바둑판이나 장식용 나무등걸이 되었다. 인간의 역사,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당수나무의 나이테는 무늬목 장식 이상의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이 땅에서 추방시켜버렸을까. 그리고 그러한 가혹한 행동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사람들은 마을에 신성공간을 설정하여 당숲, 당산, 당섬 따위의 이름을 붙였다. 숲이 아니라면 나무 몇 그루를 심어서 신성공간을 연출하였으니 정자나무, 당산나무, 당나무, 당목, 신목 따위가 그것이다. 이들 나무와 숲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이탄층의 화석꽃가루를 찾아내어 당대의 식물군을 재현하는 고생물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 탄생 이전의 지구는 전부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숲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신석기시대 이래로 시작되었다. '신석기혁명'은 농경정착으로 나타났으며 이때부터 숲과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숲을 장악하기는커녕 극히 일부분만을 쓸 뿐이었다. 적어도 중세사회까지 이러한 상태가 이어졌다. 애초에 숲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 흔히 말하기를 인간은 원래 숲에서 왔다고 한다. 원시 선조들은 숲에서 그들의 생활터전을 닦았고, 나무열매를따먹고, 고기를 얻기 위해 숲 속의 야생 조수들을 쫓아다녔으며, 나무를 연료로 삼고 숲그늘 아래서 추위와 더위를 피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와 전혀 달랐다. 독일의 대중저술가 펠릭스 파투리는 역저 <숲>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원래 숲에서 왔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바람일 따름이고 사실은 전혀 다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 빙하기 이전의 숲들은 인간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인간이 뚫고 들어가 살기에는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무서운 존재였을 뿐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던 시기에도 숲은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숲은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정착되었다. 산림자원을 한없이 이용하면서도 숲에 대한 외경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는 어느 날 갑자기 비약적으로 발전하여-'비약적 발전'이라는 표현을 허락한다면-숲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숲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게 되자 이제 인간은 숲을 깔보게 되었다. 숲은 집단적 능멸을 당하였고 숲 속의 동물들은 추방명령이나 학살경고 따위를 받아야 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의 자연관은 말할 것도 없이 자연과의 친화였다. 집을 짓더라도 자연에 순응하여 바람과 물을 다스리는 풍수를 활용하였고, 숲과 나무를 두려워할 줄 알았다. 숲과 나무가 많이 모여 사는 산을 숭배하여 산신신앙이 지금껏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마을이 만들어지면 으레 숲과 나무를 정하여 마을의 신으로 모셨다. 나무로 땔감을 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수많은 나무를 벤 것은 사실이지만 송금령 따위로 나무를 적절히 보호했다. 또 마을마다에는 마을숲이 있어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구한말에 이 땅에 들어온 열강들이 눈독을 들인 것 중의 하나가 잘 보존되고 있던 우리의 숲과 나무였다. 결국 제국주의 세력이 이 땅에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숲과 나무는 사라지게 된 것이다. 갑자기 마을나무를 베기 시작하자 업구렁이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기어나오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업구렁이의 세상 출현은 신성스런 나무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무에 신성 따위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무슨 원수를 대하듯이 마을나무를 베어 넘기기도 했다. 마을나무에서 신이 떠나자 나무는 생명을 잃고 단지 목재 따위의 실용적인 용도만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마을나무로서는 대단히 수치스런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스스로 살아 있는 나무, 생명을 주는 나무
마을나무의 성스러운 역사 역시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윗대 할아버지인 단군은 신단수를 통해서 지상에 나타났다.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에 이르렀다"라고 <삼국유사>에 씌어 있다. 왜 하필 신단수로 내려왔을까.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해도 기껏 백 살을 넘기지 못한다. 반면에 정상적으로 자란 나무는 1천여 년을 살아도 울창한 나뭇가지를 드리우고 여간해서 죽는 법이 없다. 사람이 생명력이 강한 나무에 외경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무를 향한 우리들의 외경심은 수직적 우주관과 관계가 깊다. 웅장한 나무들은 어머니 대지에 뿌리박고 서서 우주를 바라본다. 나무는 땅 속 깊이 파고드는 뿌리로 지하계까지 잇고, 솟아오르는 식물의 생장력으로 하늘 꼭대기까지 뻗어오르는 상징성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천계와 지상, 하계를 연결시키는 우주축으로서 나무만큼 적합한 것은 없으리라. 나무를 통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민족은 우리 민족뿐일까? 박시인이 엮은 <알타이 신화집>은 시베리아 신화의 한 대목을 잘 보여준다.
[하느님이 만드신 하얀색의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구경하며 걸어다녔다. 동쪽에 가 보니 넓고 밝은 벌판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산꼭대기에는 큰나무가 있었다. 나무 꼭대기는 일곱 층의 하늘 위에까지 솟았고, 뿌리는 땅 밑에 있는 깊은 나라까지 내려갔다. 나무에서 흐르는 진이 아래에 괴어 있는데, 아주 맑고 향기로웠다. 그 나무는 생명의 나무였다. 마르는 일이 없고 사시로 청청한 잎사귀는 하늘나라 신령님들과 살랑살랑 속살거리고 있었다. 하얀 사람은 동쪽을 떠나 남쪽, 북쪽, 서쪽으로 갔다. 그리고 사방을 살펴본 후에 생명의 나무에게 말하였다.
"나무의 신령님, 땅의 신령님, 숨 있는 모든 것이 짝지어 살며 가지를 치고 있는데, 사람인 저만은 짝이 없이 혼자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머리 숙여 무릎 꿇고 비오니 제게도 짝을 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생명의 나뭇잎이 속삭이기 시작하더니, 젖빛 비를 내려 주었다. 향기로운 바람이 감도는 그 나무가 딱하고 갈라지더니, 나무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나와 유방을 드러내고 젖을 먹으라고 했다. 그것을 먹고 나니 원기가 샘솟는 기분이었다. 나무에서 나온 신령님은 이 사람에게 온갖 복을 주고 물, 불, 쇠 등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젖과 꿀이 흐르기에 일명 생명 나무 또는 우주나무, 세계수라고 부르는 나무다. 영원불멸의 나무로 '스스로 살아 있는 나무', '생명을 주는 나무'인 것이다. 시베리아 야쿠트족은 '세상의 황금배꼽'에 가지가 여덟 개인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이 낙원은 최초의 남성이 태어나, 나무 둥치에서 몸만 내민 여성의 젖을 먹고 자라는 그런 땅이다. 그들 시베리아인에게 세상은 천상, 지상, 지하 3층으로 나뉜다. 생명의 나무는 이들 세계로 통하는 우주축으로 작동한다. 시베리아 무당인 오윤의 성스런 주거처에는 신수인 캐리약스 마흐(위대한 오윤나무)가 서 있다. 오윤나무에는 아홉 개의 가지가 하늘로 뻗어 있어 우주로 통한다. 이 같은 신화는 인도나 이란은 물론이고 고대 동방의 문화권에서 두루 발견할 수 있다. 유럽에서도 생명나무는 자라났다. 북구의 신화에 '이그드라실'이란 이름이 붙은 양물푸레나무가 그것이다. 유달리 흰빛을 지닌 양물푸레나무가 지닌 생명의 환희가 지금도 북구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유럽의 축제에 등장하는 '5월의 나무'도 생명의 나무이다. 나는 여기서 영국의 프레이저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방대한 학문적 결정인 <황금가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이태리의 성스러운 숲, 한 그루의 나무를 둘러 싼 신화를 연구하여 무려 13권의 노작을 완성했다. 일설에는 그가 네미의 호수 근처에 있는 디아나 신전을 묘사한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시에서 <황금가지>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황금가지>는 우리 자신의 당나무를 깊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왜 우리들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의 황금가지를 끌고 온 이유는 바로 우리의 황금가지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심정에서이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1949년 조르주 뒤메질의 서문의 붙은 <종교사개론>에서 '식물 숭배의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다음과 같은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1.돌-나무-제단의 집단. 이 유형은 종교 생활의 가장 오래된 층에서 실제적 소우주를 구성한다(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인도차이나-인도, 페니키아-에게 해). 2.나무-우주의 이미지(인도, 메소포타미아, 스칸디나비아 등) 3.나무-우주적 신의 현현(메소포타미아, 인도, 에게 해) 4.나무-생명, 무궁한 풍요, 절대적 현실의 상징. 대여신이나 물의 상징과 관계를 가지며, 불멸의 근원과 동일시된다. 5.나무-세계의 중심이며 우주의 버팀목(알타이족, 스칸디나비아인 등) 6.나무와 인간의 신비한 관계(인류의 선조로서 나무, 조상 영혼의 집적소로서 나무, 나무들의 결혼, 통과의례에서 나무의 존재 등) 7.식물의 재생, 봄, 해(년)의 '재생'의 상징으로서 나무(5월목 등)
엘리아데의 친절한 분류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생명의 나무가 자랐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인간을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로 파악한 인물이다. 온갖 종교가 공생하고 있어 가히 '종교박람회장'이라고도 부를 만한 우리 나라 역시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나무 그리고 마을 지킴이
우리 나라 마을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무는 느티나무가 아닐까. 괴목이라고도 하는데, '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나무와 귀신의 만남을 뜻한다. 이들 나무는 금기의 대상이며, 숲은 성역이 되어 마을지킴이라 부르게 된다. 마을나무를 꺾거나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히면 벌을 받는다. 이들 지킴이에는 마을굿이나 개인의례를 통하여 지전이나 물색을 걸어 모시기도 한다. 특히 서낭당이나 제주도의 마을굿에서 헌납하는 화려한 물색들은 민중의 소박하면서도 원초적인 미적 감동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주도 신목에 널브러진 화려한 '물색'의 민중적 미의식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마을지킴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사람들의 정성어린 대접을 받은 나무는 더욱 영검을 지니게 된다.
역사 속에서 나무의 영검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도둑이 훔친 소를 끌고 밤새 도망을 쳤는데 날이 새어 아침에 보니 은행나무 주위만을 맴돌고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에 나무가 크게 울어 국난을 알렸다. 일제 시대에도 할머니 당산의 힘이 작용하여 마을에 일본사람이 사는 것을 아예 막았다. 한국전쟁 때도 마을나무를 모신 마을에서만큼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병이 전국을 휩쓸어 여러 마을의 소들이 떼죽음을 하였는데 어떤 마을의 소들은 마을나무의 가호로 아무 탈이 없었다. 마을나무에 소를 매두었다가 돌아가면 병이 씻은 듯이 없어지자 소를 나무에 묶어두려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름 모를 전염병으로 이웃 고을에서 죽어 나갔으나 어떤 마을에서는 한 사람의 환자도 없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일이 없으며 개미나 뱀이 나무 밑에 나타나는 일도 없다. 나무에 올라가서 놀던 아이들이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대홍수로 보가 넘쳐 흘러 마을이 떠내려갈 지경에 이르렀지만 마을나무가 구해주었다.
마을나무의 영험을 인식하는 민중의 이해방식은 대충 이런 식이다. 또한 마을나무는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바로메타이기도 하다.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봄의 잎사귀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한해 농사를 점쳤다. 나뭇잎이 한목에 나면 풍년이고 여러 번 나누어 나면 흉년이 든다. 잎이 나무 밑 쪽에서 먼저 나면 그 해는 조생종벼가 잘 되고 위쪽에서 먼저 나기 시작하면 만종벼가 잘 된다. 매년 꽃이 필 때 위 아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꽃이 피면 풍년 든다고 기뻐하고 꽃이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면 흉년이 든다 하여 미리 식량을 절약하고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절대로 썩은 나뭇가지도 잘라서는 안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 마을나무를 잘못 대하여 벌을 받았던가. 어떤 사람들이 나무에 신이 없다며 먹물을 뿌렸으나 그날로 집에 불이 났고 그들은 마침내 미쳐버렸다. 당산나무를 무시하고 그 옆에 정미소를 차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았으며 아들도 눈이 멀었다. 장터에서 당산나무에 바칠 제물을 사 오다가 맛을 본 죄로 입이 퉁퉁 부어버렸다. 예전에 어느 사람이 금줄 친 마을에 들어와서 사냥을 하다가 죽었다. 왜병들이 마을을 급습하여 마구 나뭇가지를 잘라 냈는데, 잘린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왜병들이 깔려 죽었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당산제를 모시지 못하게 하려고 일꾼을 시켜 나뭇가지를 베게 했는데 그날로 일꾼이 죽고 말았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를 조금 다치게 했더니 뱀들이 쏟아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위의 예를 통해 우리는 '마을나무에 손 대면 아주 안 좋거나 마침내 죽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듯 나무의 영험성이 늘 강조되곤 했다. 그래서 수몰 등으로 마을을 떠나야 할 때 당산나무도 함께 모셔 가는 경우마저 생겨난다.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의 충주호 언덕에 자리잡은 당나무의 경우에는, 1984년 수몰로 마을이 이주하면서 풍장을 치고 제를 지낸 후 서낭신을 옮겨왔다. 연기군 서면 용암리 주민들은 1985년 마을저수지가 완공되자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물이 차 오르고 있을 마을의 동구나무가 윙윙 우는 소리가 매일 들렸다. 그래서 그 해에는 제사를 한 번 더 지내면서 동구나무를 위로했다. 송기숙 선생의 소설<당제>를 읽어 본 이라면 누구나 이들 수몰지구의 마을나무가 처한 상징적 지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미신타파' 등으로 마을나무를 모시지 못하게 되자 마을에 변고가 잇따랐다는 얘기가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동네 청년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이 죽어 나간다거나 마을에 되는 일이 없다는 식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마을나무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여 생긴 변고로 믿고, 그 동안 소홀했던 마음을 반성하고 다시 정성을 들여 집단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한다. 모두 마을나무의 영검을 믿는 소박한 신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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