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프로이트 - 김정일
1장 진료실에서 쓴 프로이트 심리학
정신방어기제
'방어'란 위험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위험은 흔히 외적으로 일어나는 것만을 생각하지 쉽지만 내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또한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말을 하다가 갑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고 쳪에 앉아 있는 예쁜 여자를 부둥켜안고 싶은 예에서 나타나는 원초적 본능은 스스로 잘 방어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커다란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어는 내적으로는 원초적인 본능인 성적, 공격적 충동이 의식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아가 이용하는 수단이다. 이를 정신 분석학에서는 '정신방어기제'라고 한다. 자아가 내적인 충동에 대해 방어를 하지 않을 경우 이런 충동들은 불안을 야기한다. 현실적으로 초래되는 다음의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이 방어기제에는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 동일시(identification), 투사(projection), 부정(denial), 억제(supression), 억압(repression),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 고립화(isolation), 취소(undoing), 전치(displacement), 퇴행(regression), 승화(sublimation), 상징화(symbolization), 백일몽(daydreaming), 등이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어떤 군인 둘이 어깨동무하고 비틀거리면서 지나가다가 한 군인이 길 가는 여자들을 붙들고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을 보았다. 여자들은 깜짝 놀라 저항하다가 넘어지기도 했는데, 옆에 있는 친구 군인이 뜯어말려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여자들은 뒤에서 욕하고, 그 둘은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가다가 맞받아 욕하고 그래도 계속 뭐라고 하면 그냥 못 들은 체 바삐 걸어갔다. 그러다가 또 어떤 여자를 만나면 한 군인은 덮치고 한 군인은 말리곤 했다. 그들은 술에 취해 보였는데, 특히 덮치는 쪽이 많이 취한 것 같았다. 갈지자로 걷는 게 의식이 별로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뒤에서 욕하는 여자를 향해 말린 군인 처음에는 미안해 하다가 욕이 계속되자 '창녀 같은 게...' 하면서 욕을 맞받아 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강제로 쓰러뜨려진 여성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웃음이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섹시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 일을 정신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우선 길 가는 여자에게 닥치는 대로 키스하는 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적, 공격적인 욕동(이드)이다. 그 욕동은 마치 쓰러진 여자가 웃음짓는 것처럼 항상 그 자신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를 무분별하게 행사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이는 곧 다시 자기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오겠기에 방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해롱해롱 전혀 정신이 없다. 이미 술에 취해 '퇴행'할 대로 퇴행한 것이다. 그래서 옆의 친구(자아)가 뜯어말렸다. 이 뜯어말리는 것은 '억제'와 '억압'이라고 볼 수 있다. '억제'는 의식적으로 행해지고,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고 한다. 이 경우 친구는 그 취한 군인을 강제로 여자로부터 떼놓고 앞으로 밀고 나갔고, 또 그 취한 친구도 그 밀림에 순순히 따랐기 때문에 '억제'와 '억압'의 기능이 모두 행사됐다고 볼 수 있다.
뒤에서 욕하는 여성에 대해 친구가 창녀 같다고 맞받아 치는 것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 '부정'과 자기의 받아들일 수 없는 속성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투사'의 방어기제를 쓴 것이다. 그러다가 뒤에서 계속 소리쳐도 그냥 모르는 체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은 '고립화'의 방어기제를 쓴 것이다. 정신방어기제는 이같이 기본적 욕동을 조절하는 것 외에도 어떤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쪽으로 마음의 방향을 조절하기도 한다. 남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때 합리화를 하거나 복잡하게 이론으로 포장하거나(주지화)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들 방어기제 중에는 '승화'와 같이 효과적으로 본능적 욕동을 조절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성공적으로 조절하지 못하여 정신적인 긴장 등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있다. 이들 방어 주에 신경증을 일으키는 방어로는 억압, 전치, 격리, 반동 형성, 취소, 대리 형성, 전환 등이 있고 정신병을 일으키는 방어로는 부정, 퇴행, 함입, 투사, 병적 동일시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방어기제는 누구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형태를 사용하고 있으며 반드시 병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방어기제의 형태와 활용 범위 및 인격을 왜곡시키고, 행동을 지배하고, 적응에 장애를 주는 정도 여하에 따라서 정신건강은 결정될 수 있다.
나르시시즘, 자기애적 인격장애
청소년 시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재미있는 상상에 빠져 들기도 했다. 저 거울 속의 나는 아무리 봐도 너무 잘생긴 것이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저 모습은 내가 마음속으로 영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많이 닮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소룡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제임스 딘 같기도 하고...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잘도 맞춰진다. 바로 청소년기의 주체성 형성 과정에 스쳐 가는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이란 지나친 자기 사랑, 자기애 또는 자기 중심성을 말한다. 이는 리비도가 자기 신체 내부로 향할 때 발생한다. 이런 청소년기의 나르시시즘은 나이 들어서도 간산이 스쳐 가곤 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는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외모에 감탄하기보다는 정신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감탄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사고하는 나를 보니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환생한 것 같기도 하고 융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거울을 떠나 현실로 돌아오면 곧 초라하게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시적으로 스쳐 가는 자기애가 요즘 청소년들이나 신세대들에게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나 보다. 왕자병, 공주병이란 말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고, 또 그들 표현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찍는다고 생각한다는 도끼병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왕자병, 공주병이란 자기를 왕자, 공주같이 귀한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자기를 그렇게 받들어 준다고 착각하면서 지속적으로 취해 있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이를 정신 병리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왕자병, 공주병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특히 강하게 지속되는 사람들은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tic personality disorder)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자기 중요성 또는 자기 재능과 성취에 대한 과대적 사고의 양상이 장기간 지속 2) 성공, 권력, 뛰어난 재치, 미모, 이상적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공상에의 몰두 3) 남으로부터 끊임없는 관심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자기 현시적 욕구 4) 비난, 무관심 또는 패배에 대해서 냉담한 무관심이나 분노감, 굴욕감 또는 공허감으로 반응 5) 특권 의식,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 6) 타인의 느낌에 대해 공감할 수 없는 것 7) 남을 지나치게 이상화 했다가 느닷없이 평가절하하는 등의 극과 극을 오락가락하는 태도 등...
그렇다면 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왜 이런 자기애적인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걸까? 그것은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미숙성을 들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기애는 자기 신체로부터 쾌감을 얻고 또 자기에 대한 이상상을 형성하는 초기 발달 단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것이 나이 들어서까지 지속되는 것은 미숙하고 신경증적인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에릭 에릭슨은 성장하는 시기마다 꼭 해결해야 하는 특별한 과제가 있어서 이를 만족스럽게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만성적 적응장애에 빠진다고 하였다. 또한 각 시기에는 앞으로의 발달 과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사람과 결정적으로 부딪치는 위기가 있다고 했다. 즉, 유아기에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서로 주고받는 만족과 불만의 정도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한 신뢰(trust) 또는 불신(mistrust)의 토대가 설정되고, 조기 아동기에서는 대소변 가리기에 따른 부모와의 관계 여하에 따라 자율성(personal autonomy)이나 수치(shame), 의문(doubt)의 자세가, 후기 아동기에서는 가족과의 관계에 따라 자발성(initiative)이나 죄악감(guilt)이, 학동기에서는 근면(industriousness)이나 열등감(sense of inferiority)이, 청소년기에서는 동년배 그룹과의 관계나 지도자상에 따라 주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이나 주체성의 확산(identity diffusion)이, 초기 성인기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intimacy)나 고립(isolation)이, 성인기에서는 생산(procreation)이나 자기도취(self-absorption)가, 마지막 완숙된 성인기에서는 완성(integrity)이냐 절망(despair)이냐의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인격 발달을 위해 1차적인 필수 조건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여러 가지 정서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고, 또한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태도나 행동을 배우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러한 과제들이나 위기에 맞닥뜨려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부모의 과잉보호나 돈의 품에만 안주하여 이를 소홀히 했을 때 여러 가지 대인 관계에 장애가 생긴다. 그중 하나가 어린 시절의 자기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왕자병, 공주병에서 벗어나 남들에게 존경받고 남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진정한 왕자, 공주가 되려면 거지왕자나 소공녀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의 길로 스스로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남과 자기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대처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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