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주강현
똥돼지의 내력을 묻는다
지금부터 조금은 '지저분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양해하시라. '변' 따위의 점잖은 '위장 명칭' 보다는 보다 원초적인 '똥' 을 화두로 '생태민속기행' 을 떠나려하기 때문이다. 똥돼지는 글자 그대로 똥을 먹여 키운 돼지. 똥돼지하면 누구나 제주도를 연상하지 않을까. 그만큼 제주도에서 가장 널리 키워왔다. 그러니 사람들은 당연히 제주도에서만 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살던 남원땅
88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광주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휴게소가 나타난다. 휴게소에 차를 세워두고 좁은 샛길로 나가서 주민들이 다니는 굴다리를 통과, 5분여만 걸어가면 아곡리마을에 당도한다. 고속도로가 지날 뿐 완벽한 산골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외양간과 돼지우리가 함께 독립채로 세워진 유별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2층변소'라고도 부르는 그 건물의 층계로 올라가서 일을 보면 아래층에 살고 있는 돼지가 달려와서 날름 받아먹는다. 돼지우리는 지극히 컴컴하다. 1층에는 창문을 달아 밖에서 햇볕이 들어오게 만들었고, 외부에서도 돼지를 보게끔 되어 있다. 제주도 '통시'의 돼지우리는 넓게 운동장이 있어 햇볕도 쬐고 운동도 하게 되어 있는데 비해 이곳은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몇 집을 찾아가서 면담조사를 시작했다.
"똥돼지를 키우고 있다면서요?" "똥돼지요? 그런 것 몰라요" "아, 집집마다 '2층변소'가 있잖아요" "동네 망신이지. 그런 거 사라진지 벌써 오래요."
웬 동네망신? 두 집을 들렸으나 냉담한 반응만 나왔다. 밭에서 감자를 캐던 할아버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겨우 답을 얻었다. 분명히 똥돼지를 키우고 있으면서, 왜 이다지 냉담한 거부반응을 보였을까. 할아버지의 설명으로는 똥을 먹여 돼지를 키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되, 똥만 먹이지 않고 사료도 함께 먹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단다. 막상 똥돼지마을로 소문나는 것을 주민들이 싫어하는 분위기란 설명을 덧붙였다. 이장의 허락을 받아서 20여 집을 일일이 다니면서 변소 실태를 점검했다. 개량변소로 신축한 집도 더러 있었으나 대개 개량변소가 아니었다. 변소에는 모두 돼지가 살고 있었고, 별도로 분리된 독립변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변소 없이 생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돼지우리와 변소가 같은 장소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확인되었다. 몇 집에서는 변소의 화장지가 돼지우리에서 발견되었다. 심지어 어느 집에서는 개량변소를 버젓이 만들어놓고도 재래식 변소를 없애지 않았다. 물론 재래식 변소에서는 돼지가 살고 있었다.
<은자의 나라, 꼬레아 Corea, The Hermit Nation>를 쓴 그리피스(W. E. Griffis)는 '조선사람들은 화장실 사실이 매우 불충분하다'고 단언했다. 똥조차 '자원 재활용'했던 우리식 거름문화가 그들 서양인들에게는 불결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원의 농민들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요즘에도 이렇게 똥으로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남부끄럽다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똥은 지저분하다. 그러나 똥돼지는 맛있다. 그러니 똥돼지는 계속 키워나가되, '지저분한 똥문화'를 공개할 수 없다... . 남원의 그 마을사람들은 현실의 경제적 이득과 심리적 위축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비공개 똥돼지 키우기'를 했으리라. 하지만 무엇이 남부끄럽다는 말인가.
똥은 돼지에게 영양가 높은 음식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똥을 늘상 '지저분한 것'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의 '똥사랑'은 유별났다. 우리 농민들에게 똥은 참으로 '황금'이었다. 똥은 농사짓는 황금 그 자체였다. 사람똥, 소똥, 돼지똥, 닭똥 가릴 것 없이 각각의 용도에 맞게 퇴비를 만들어 논밭에 뿌렸다. 몸에서 나온 폐기물을 똥장군에 실어서 논밭으로 내가고, 논밭에서 거두어들인 식물을 먹고, 다시금 폐기물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자연계 순환, 그게 과거의 방식이었다. 나는 똥돼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항상 이런 도표를 그린다.
똥 - 돼지 - 돼지똥 - 곡식과 채소 - 사람 - 똥
각각의 똥들은 성분이 일정치 않다. 돼지똥은 어디에 쓰이는가. 지리산 같은 산동네로 가보자. 산간동네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밭농사 위주다. 제주도는 더 말할게 있겠는가. 제주도의 논은 전체 경작지의 고작 1~2%를 넘지 못한다. 바람에 날리는 푸석푸석한 화산재투성이의 열악한 조건에서 곡식에게 준거름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밭농사의 으뜸은 역시 보리밭이었고, 비료 없던 시절에 보리밭에는 돼지똥이 최고였다. '쌀 세 말을 먹고 시집을 가는 처녀가 없다' 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가난했던 산골에서 돼지똥은 보릿고개를 넘겨주는 밑거름인 셈이다. 민속학자 고광민(제주대 박물관)은, 제주도 서부지역은 아예 보리씨와 돼지거름을 섞어서 밭에 뿌리고, 동부에서는 돼지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고 나서 씨를 뿌려 농사짓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주도는 밭이 절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가장 늦게까지 똥돼지가 남게 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왜 하필 똥돼지인가. 똥은 돼지에게 가장 '영양가 높은 음식' 이다. 나 자신도 똥을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어도, 대충은 안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몸에서 흡수되는 비율은 극히 낮다고 한다. 우리의 몸은 그때그때 흡수할 수 있을만큼만 받아들인다. 나머지는 그대로 배출한다. 돼지로서는 아주 간단하게 '고단백 종합영양식품' 을 받아먹게 된다. 돼지는 잡식성이라 사람이 먹던 음식찌꺼기도 잘 먹는다. 그러나 음식찌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먹고 살만해진 최근의 일이다. 사람이 먹을 식량조차 귀했던 시절에 돼지가 먹을 충분한 양의 음식찌꺼기를 매일 쏟아버릴 수 있었을까. 똥이 아니었다면 늘 사료부족으로 돼지는 아사할 판이었다. 마을의 개들조차도 사람의 똥에 의지하였기 때문에 '똥개' 라 부르지 않았던가.
돼지 사육의 사료문제 해결. 처치 곤란한 똥의 수거. 보리밭에 뿌려지는 돼지똥. 이 셋이 결합, 똥돼지문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결국 똥처리, 사료조달, 비료공급이라는 '일거삼득', '일석삼조' 의 효과가 아닌가. 오늘날 생태환경의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리사이클링의 중요성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쓰레기를 다시금 재생시키는 문제가 늘 제기되고 있으나 리사이클링은 되돌려주기 위하여 또 다른 열량을 요구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 비추어보면, 똥돼지문화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란 생각이 든다.
그대들의 허울 좋은 도덕청결주의
우리는 매일 화장실에 간다. 물론 우리 집도 어렸을 적에는 재래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히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예전에 비하면 참으로 위생적이고 청결한 삶은 누린다고 할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근교에 나가면 밭에 똥을 뿌려 '상서롭지 않은 냄새' 를 풍기며 채소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밭을 지나치려면 코를 쥐고 다녔던 추억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러다가 수세식문화가 보급되었고, 똥은 그야말로 물에 씻겨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서구인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수세식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똥을 물에 씻어서 정화조를 통하여 강물에 섞어 보내는 것이다. 정화시설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환경오염문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이 아니라 재생품이었던 똥을 버림으로써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인가.
청결을 금과옥조로 삼는 현대인들. 그들은 똥돼지문화에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똥은 수세식 변소를 거치는 순간부터 자연을 더럽히고 있다. 그러나 선조들의 똥은 자연으로 되돌려져서 자연과 함께 소멸되고 먹거리의 자양분이 되었다. 양자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무엇이 더 문명적이고, 무엇이 더 야만적인 것인지. 적어도 선조들은 똥을 내버려 강물을 오염시키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
깨끗한 수세식 처리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환경 훼손의 시작임을 안다면, 서구식 청결관은 '청결도덕주의' 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프랑스의 구조주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명저 <슬픈 열대>에서 서구사회 자체가 하나의 부족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서구인들의 발명과 업적을 중시하는 태도를 '과열된, 혹은 움직이는 사회' 라고 부르며, 종합적 재능과 인간적 교환의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사회를 '냉각된 또는 정적 사회' 라고 불렀다. 과열된 사회는 확실히 '열역학적' 사회다. 그의 이론에 따른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냉각된 사회에서 과열된 사회로 이동하였다. 엄청난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는 심각한 생태환경의 파괴로 나타났다.
한국민속답사회의 회원들과 함께 지리산 동남부인 산청지방 답사를 갔다. 산청에는 전통적 살림집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사마을이 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옛 양반집에 들어갔다가 뒤뜰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변소는 2층으로 높게 올라가 있었는데, 용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 '물' 은 흘러서 밖으로 나오게 설계되어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듯 대리석으로 동그랗게 물이 고이는 홈을 파놓았다. 그 거름을 떠서 집안의 채마밭에 주게끔 되어 있다. '돈깨나 있는' 양반집에서조차 왜 이다지도 '똥' 을 중시하였던가. 어떻게 집안에 '더러운 시설' 을 둘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남사마을을 방문하여 뒤뜰 구경을 할 일이다.
똥돼지문화권은 전체 동아시아?
돼지가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서 늘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역시 선사시대 출토품이다. 돼지뼈가 다수 출토되어 돼지사육의 역사가 선사시대로 올라감을 보여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읍루조' 에 이르길, 그 지방의 기후는 추워서 부여보다 혹독하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며,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그 두께를 몇푼이나 되게 하여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제주도에서도 돼지를 기른다고 했다. 장례식에는 망자의 먹이감으로 돼지고기를 관 위에 쌓아 놓는다고도 했다. 주몽신화에도 알을 돼지우리에 집어던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돼지기르기의 역사는 정착생활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본래 활엽수가 우거진 습윤한 숲에서 자라던 돼지를 잡아다 길들였다. 돼지는 넓은 잎나무 수풀이나 습기 많은 골짜기에서 잡식성으로 생활하던 야생의 무리였다. 떠돌이 유목생활에서 종경정착생활로의 변화는 가축사육의 보편화를 가져왔으나, 동시에 사료문제의 심각성도 불러왔다.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사료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돼지를 방목한다. 물이 풍부한 활엽수림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같이 고밀도의 집약농법사회에서는 돼지를 방목할 처지가 못 된다. 사료난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잡식성 동물이었던 돼지는 사람의 똥을 먹기에 이른 것이다.
돼지사육과 사료문제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식품으로 만들게 된 원인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금기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원인을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료문제에서 찾았다. 원래 중동지역은 지금 같은 사막이 아니었다. 활엽수림이 울창한 지대에서 돼지는 부족하지 않은 물을 근간으로 하여 폭넓게 분포되었다. 그러나 숲이 사라지고 사막화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숲의 멸망은 돼지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했다. 그 바람에 돼지고기를 예전처럼 쉽게 먹을 수 있던 시대도 지나갔다. 단백질을 쟁취하기 위한 심각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종교적 금기가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돼지고기 먹는 행위 자체를 종교적 금기로 묶어버림으로써 돼지고기를 둘러싼 갈등의 소지를 없앤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의 선조들은 종교적 금기로 묶기보다는 똥을 돼지에게 먹임으로써 사료문제의 심각한 위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돌파해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 산간지대는 그렇다고 치고, 논농사를 많이 짓는 평야지대에선 왜 똥돼지문화의 사례가 하나도 없을까. 평야지대도 이모작을 하며 보리농사와 쌀농사를 병행했으니 똥돼지가 있어야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 아닌가. 평야지대에 똥돼지문화가 없는 것을 편의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산간지대에서는 전적으로 보리농사를 짓기 때문에 똥돼지가 필요했지만, 평야지대에는 보리농사가 보조적이므로 똥돼지문화의 발전이 덜 이루어졌다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다. 해답은 오히려 가축사육의 지역적 차이에서 주어질 듯하다. 돼지사육은 대체로 평야지대보다는 산간지방에서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이 점이 산간지방에 똥돼지문화가 집중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는 남원 같은 지역에 일부 남아 있으나 예전에는 전국이 똥돼지를 키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점에서 서서히 똥돼지문화가 사라지고, 남쪽에서도 극히 일부에만 잔존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 본토에서의 똥돼지문화는 일단 남원에서 발견된 것 이외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혹시 이 글을 읽고 필자가 모르는 곳에서 똥돼지를 길러왔다면 제보를 부탁드린다.) 똥돼지 하면 역시 제주도다. 그렇다면 인근 다른 나라에서는 똥돼지가 없을까.
제주도와 문화적 친연성이 깊은 오키나와부터 살펴보니 예외없이 똥돼지가 발견된다. 오키나와 똥돼지도 돼지가 마당에 나와서 노는 제주도식 '통시'로 양자간의 친연성이 너무도 뚜렷하다. 한반도의 육지에서 제주도, 오키나와에서 걸친 똥돼지문화권이 확인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똥돼지문화는 남쪽 해양문화였을까. 그렇게 단정짓기는 곤란한 것 같다. 변소 밑에서 돼지를 기르는 모습의 중국 후한시대 출토품이 전해진다. 미루어보건대, 과거에는 동아시아 전역에 똥돼지가 퍼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똥돼지문화가 소멸하면서 외부와 격리된 일부 섬지역에만 흔적을 남긴 것으로 여겨진다. 예전에는 오지에 지나지 않았던 제주도와 오키나와에 똥돼지문화가 잔존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성싶다. 물론, 이 역시 추론에 불과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서양돼지는 똥돼지가 될 자격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 종류는 1,000여 종. 우리나라에서도 요크셔, 바크셔를 비롯한 외래종 돼지가 침투하여 토종을 몰아내는 데 99.99% 이상 성공하였다. 토종돼지는 흑색으로 체질이 강건할뿐더러 질병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음에도 거세당하였다. 그 이유는 돼지가 육용으로 보급되면서 몸집이 큰 왜래종만 키웠기 때문이다. 또 토종돼지는 주로 산간지방에서 많이 사육되었다. 똥돼지를 찾아다니다가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똥돼지는 몸집이 작고 주둥이가 긴 토종 검정돼지들이다. 남원은 물론이고 제주도 똥돼지도 모두 그렇다. 그런데 서양돼지도 똥을 먹여서 키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실험을 해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체질상 불가능할 것 같다. 오래도록 똥만 먹인다면 틀림없이 그 체구를 유지할 영양의 부족으로 틀림없이 병이 날 것이다.
똥돼지가 토종돼지뿐인 것은 단순히 우연적인 일만은 아니다. 토종 돼지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똥에 익숙해 있었고 먹이량이 적다. 아니 어쩌면 이런 적응과정에서 체질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토종은 이 당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들의 배설물과도 친숙했던 셈이다. 그래서 '신토불이'론이 등장한 것이리라. 우리에게 돼지는 매우 가까운 동물이다. 돼지가 신이 된 적은 없어도, 늘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렸다. 웃는 듯한 돼지머리는 늘 복을 주는 인상이었다. 소와 더불어 돼지는 조상이나 신에게 올리는 희생양의 으뜸이었다. 황해도굿에 생타살과 익은 타살이 있거니와, 산 돼지를 칼로 얼러서 혼을 빼고 무릎을 꿇게 하는 타살거리가 그것이다. 이 타살거리는 바로 수렵시대의 잔혼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예이다. 우리들의 돼지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양면적이다. '돼지발톱에 진주', '돼지발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같이 격에 어울리지 않음의 대표처럼 거론되기도 하고, '돼지같이 생겼다', '돼지 오줌통에 몰아넣은 이 같다'는 대목에서는 돼지를 극도로 못생긴 사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반면 긍정적으로는 '복돼지 같다', '돼지 같이 먹는다'와 같이 풍요와 다복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새해 벽두의 돼지날인 상해일에 돼지주머니를 신하에게 나누어주어 풍농을 염원하는 대목이 나온다.
토종이야말로 우리네 토양에 맞아 병도 없고 기르기도 편하다. 한데 오로지 양과 크기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이 토종을 밀어냈다. 양과 크기라는 상품경제의 '슈퍼 콤플렉스' 논리가 이 아담하게 생긴 토종을 밀어냈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 하나 있으니, 지금도 마을굿에서 토종 돼지만을 올리는 곳이 꽤 있다. 마을굿 제물로 검정돼지만을 고집하는 걸 보면 토종의 신에게 차마 서양돼지를 올릴 수 없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는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다.
논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똥돼지의 맛을 예찬하련다. 나의 소견으로는 사람의 몸에서 배출된 똥을 먹어서인지 맛이 그만이다. 사료를먹여 키운 돼지에서 항생제가 발견되고, 그 항생제가 그대로 사람의 몸에 축적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도 '무공해 돼지고기'를 일반 돼지고기와 엄격히 구분하여 비싼 값에 별도로 팔고 있지 않은가. 남원이나 제주도에서도 아는 사람은 똥돼지만 찾는다고 한다. 혼례식 같은 잔치가 있는 집은 아예 똥돼지를 한 마리 주문하여 잔치상에 내놓는다. 서울의 이화여대 앞에도 똥돼지 전문집이 하나 있어서 알만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고 한다. 그 똥돼지집의 고기가 확실한 똥돼지인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무쪼록 곳곳에서 똥돼지를 다시 키우고 전국에 보급할 일이다! 그래서 중국의 연잎 돼지요리나 서양의 바베큐요리를 능가하는 요리를 개발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것을 살리고 우리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길이자 선조들의 자연관을 잇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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