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 주강현
브리지드 바르도와 황구의 비명
파리의 브리지드 바르도와 평양의 김정희
상쾌한 날씨였다. 언제 보아도 상쾌한 날씨. 그러나 브리지드 바르도(다음부터는 남들처럼 나도 B.B로 호칭하겠다)는 화가 나 있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만 들려오지 않았어도 B.B가 이렇듯 흥분할 이유는 없었다. B.B는 그날따라 기르고 있는 강아지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혔고, 발톱도 깎아주었다. 아침식사는 대충 끝내기로 했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달팽이 요리를 주문하여 포도주 한 잔으로 끝을 냈다. 신문사에 편지도 전해야 하고, 기자회견도 준비할 참이다. 도대체, 지난 88년 올림픽 때도 야만적인 개고기 음식에 대하여 격력하게 항의했건만 시정이 되지 않는 '야만의 나라' 대통령이 프랑스에 온다는 일 자체가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단호하게, 최고로 격력하게, 세계적인 동물보호운동가로서 '최후통첩'을 보내리라. 한국의 대통령은 반드시 그걸 '먹고 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B.B양이 이런 식으로 우리의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준비하고 잇을 때, 나는 북한생활에 관한 책을 마무리짓고 잇었다. 출간될 책의 제목은 <북한의 민족생활풍습>(1994년 5월 출간)이었고, 나는 이렇게 썼다.
북한에서 많이 먹을 뿐더러 대중화되어 있는 단고기(개고기)는 인민적 식생활 기풍을 잘 말해주거니와 다양한 민족음식을 통한 식생활 기풍이 민족생활사에 흐름에 입각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재미교포 김연수의 방문기에서도, '이질화될 수 없는 식습관'이라고 하면서 '남북한에 살고 잇는 우리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는 개고기국에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대중적인 음식으로 치고 있거니와, 개고기 요리법에 관한 글이 발표되기도 한다. 전국료리사협회 평양시 창광지회 단고기국집분회 김정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름난 우리나라 단고기는 말 그대로 그 맛이 달고 영양가가 높을 뿐 아니라 소화흡수가 잘 되어 사람들의 건강에 대단히 좋다' (단고기국을 맛있게 끓이려면<조선료리>, 1993년 2월호).
실상 남과 북의 음식맛이 다소 편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이질화를 가져올 정도는 아닐 것이다. 평안도 김치와 전라도 김치의 통일, 함경도 단고기와 경상도 개고기의 통일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탓이다. 함경북도 끝녘의 김치와 전라도 목포의 김치가 다소 맛깔이 다르다고 해서 진짜 김치가 아닌가. 분단된 세월이 반백 년 가까워오고 있지만 민족음식의 원류는 남과 북 모두 동일한 것이다. 더욱이 그 '입맛'을 지켜내려고 한 북한사회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인정되어 통일 뒤 하나의 민족음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개고기를 통한 민족의 통일... 운운하는 식으로 글을 맺고 있던 나는 '개고기 추방'을 부르짖 외신보도를 보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그리고 세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첫째, 일반 사람들은 분개하여 직. 간접으로 행동에 나서는데 왜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내 언론은 묵묵부답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우리 개고기음식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가능하다면 요리법까지 소개해야 할 책무를 우리들 스스로가 저버린 데서 비롯되었다는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료리사협회 평양시 창광지회 단고기국집분회 김정희'란 긴직함에서 엿보이듯, 북한은 정책적으로 개고기를 권장하고 있다. 나는 우리 남한사회 역시 개고기집을 국가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믿는다. 북한에 대해서 이러저러 말도 많지만, 개고기 음식을 그처럼 조직화시킨 태도에 대해서만큼은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다. 셋째, 우리의 관습에 관한 문제다. 나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각인된 말이 하나 있다. 음식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한 음식 놓고는 절대로 이런저런 타박을 하는 게 아니다.' 대단히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귀한 음식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비판대에 올리는 것부터 우리의 예의범절에 어긋난다.
황구는 황구끼리
수캐는 어마어마한 체구를 자랑하며 암캐의 엉덩이 위로 사뿐히 몸을 실었고, 수캐에 비해 너무나 볼품 없는 조그만 암캐는 그때마다 중량을 감당하지 못해 뒷다리를 꺾고 털썩 주저않는 것이었다. 혀를 뼈물은 수캐는 뾰족하게 선 귀와 늘씬한 체구를 자랑하며 함부로 암캐를 다루고 있었다. 암캐는 복날이 서러운 조그만 재래종 황구였다. 황구는 기구한 여인처럼 사력을 다해 순종하고 있었으나 수캐의 폭력은 철저의 극이었다. 수캐는 기진하여 무릎을 꿇어버린 황구의 등위로 길게 체구를 얹어 뻗고 우람한 불알통을 딸랑거리며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였다.
"황구여, 꼬리를 내려라! 제발!"
황구는 알량한 꼬리를 받쳐들고 감질나는 쾌락을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캐는 여의치 않은 동작 때문에 무척 신경질나는 모양이었다. 큰 입을 벌려 황구의 목덜미를 덥썩 물었다 놓았다 하며 장군처럼 즐겼고, 황구는 그때마다 닳아빠진 빗자루 같은 꼬리를 하늘 높이 쳐들고 뒷다리를 불끈 세워보기도 했다... . ...그때였다. 고막이 따가울 정도로 앙칼진 황구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한 쌍의 개는 서로 돌아서고 있었으나 황구의 뒷다리는 한 뼘은 실히 공중에 떠 있었다. 수캐는 황구의 불끈 들린 뒷다리를 끌고 있었다. 황구는 진창 바닥에다 턱을 끌고 그 요란스럽고 처절한 비명을 내뱉고 있는 것이었다. 황구는 죽어가는 듯싶었다... . 천승세의 소설 <황구의 비명>을 다시 펴 들었다.
학생시절에 샀던 '창작과 비평사'의 1975년판인데 윗대목이 실린 220페이지는 그 당시도 감동을 받았던 대목인지 밑줄이 그어져 있다. 미군기지촌 용주골로 떠난 은주, 지금은 이름이 담비킴으로 변한 은주에게 작중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황구는 황구끼리... 황구는 황구끼리.' 그리하여, '서럽지 않은 황구와 황구'로 살자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한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황구의 비명이 바로 우리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제아무리 국제화를 떠들어대도 황구가 스스로 토종성을 아는 순간, 국제화는커녕 목숨마저 잃을판이다. 제3세게적 시각, B.B의 '동물애호', 서구정심주의적 강요, 백인 우월주의, 애완과 굶주림 같은 명제들을 새삼스럽게 들먹일 필요도 없다. B.B가 소설 속에 '수캐'라면, 우리는 '황구'가 아닐까. 나는 민속학 강의 때마다 개고기문화를 다루면서 천승세의 소설을 읽게 한다. 그리고 서구중심주의 시각에 길들여져 온 삭생들에게 약소민족이 본능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소설 속에서 뽑아 엄중이 선포하곤 한다. "황구여, 꼬리를 내려라! 제발!"
복날 개를 먹는 이유
이 글을 쓰면서 임실군 오수로 내려가 보았다. 오수에는 의견비가 전해져 온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스. 한적한 동네에 들어서면 농협건물 앞에 검정개 동상이 서 있고, 골목으로 접어들면 의견비를 모신 숲이 나타난다. 사람목숨을 구해준 의견설화는 오수가 대표격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신포집을 찾아갔다. 인근 일대에서 으뜸으로 소문난 개고기집이다. 의견비까지 세운 동네가 개고기의 명소라니! 탕을 한 그릇 시켜놓고 주인장에게 물으니, 의견제까지 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견비 동네와 개고기집, 참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정작 어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는 늘 '개에 준하는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소나 닭처럼 예외없이 가마솥에 들어가 최후를 마쳤다. '우량식품'을 '혐오식품'으로 기피할 만큼 고기가 남아돌았던 게 아니다.
하필이면 왜 복날에 많이 먹을까.
절기상으로도 절박한 지경이었다. 호미질을 하다 보면 '배는 고파 등에 붙고'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베잠방이는 바짝 소금기에 버무려 지고 하늘은 지글지글 타다못해 온 몸을 옥죄인다. 아시, 두벌, 만물을 매고 나면 복날이 걸쳐 있게 마련. '보신탕!'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한의학자 이영종 교수(경원대 한의대학장)가 적절한 답변을 보내왔다. 여름 자체가 불이다. 게다가 더위의 절정인 삼복은 경일로 화기가 왕성하면서도 쇠에 해당한다. 따라서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화극금이므로, 쇠를 보충하기 위해 개를 먹어야 한다. 개에게 쇠의 기운이 있는 탓이다. 영양학적 측면 이상으로 동양의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이냉치열이 아닌, 더울 때 더운 음식을 먹는 이열치열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위를 근본적으로 이기는 현명한 처사인 셈이다.
개고기를 즐기는 백중날은 막상 개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백중은 우리의 전통 속에서는 머슴의 생일이자 두레의 '호미씻이' 날이기도 한지만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고통을 받고 돌아가서 방황하는 어머니의 넋을 달래려고 부처에게 부탁하여 개로 환생한 일을 기리는 날이다. 우란분재를 베풀고 넋을 달래니 개가 된 어머니가 극락정토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개가 된 어머니를 기리는 날에 집중적으로 개를 때려잡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영양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 개고기는 사람의 근육과 가장 가까운 아미노산 조성을 가진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찬물로 씻으면 기름이 엉겨붙으나 개고기는 그대로 씻겨나간다. 현대인이 그토록 기피하는 콜레스테롤도 적다. 무엇보다 개장국을 먹을 때 부추, 깻잎, 고추, 파, 마늘, 들깨 따위의 건강식 야채를 함께 먹으니, 그것 자체만으로도 몸에 좋은 것은 뻔한 이치다. 내가 보기에는 고기 자체보다도 이같은 야채가 오히려 개장국이 영양식임을 보장해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단 복날 먹는 음식으로서만이 아니라 병후 조리, 상처 치료 등에도 효험이 높다. <동의보감>에서도, 성이 따뜻하며 독이 없고 오장을 편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도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도 멀리 남도 바닷가로 유배 간 형 정약전에게 올린 편지에서 개고기의 영양성을 높이 평가했다. 지극히도 형을 아꼈던 다산은 영의 몸을 걱정하여 개고기 조리법까지 상세히 적어 보내면서, 애꿎게 개고기를 타박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다산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8월조를 보니 이렇게 씌어 있다.
며느리 말이받아 본집에 근친갈 재,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개고기
고고학자들은 신석기시대 사림터에서 개뼈를 다수 발견하였다. 개는 방어용, 사냥용, 의복용, 식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으며 선사시대부터 인간에게 길들여진 가축이다. 중국의 <주례>, <예기>, <논어> 따위의 '엄숙한' 경전에도 이미 개고기가 등장한다. 고구려 안악 3호분에는 도살된 개가 양, 돼지와 함께 그려져 있다. 부여는 아예 육축에서 관직명을 따와 구가, 마가, 우가따위로 정하였다. 구피의라 하여 함북지방에서는 일제시대 초기까지도 개가죽옷을 입으니 개의 쓰임새가 넓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농경정착시대 초식 위주의 생활에서 개고기는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육고기 보충이 항상 필요하였다. 방대한 들판과 숲, 희박한 인구밀도, 유목과 이동생활, 고기잡이 등의 생활이 아니었기에 농경 정착과 더불어 자리잡은 우리의 식생활사는 늘 초식을 기본으로 하였다. 고도로 집약된 동물성 단백질을 필요로 했을 때, 막상 먹을 만한 야생동물은 매우 잡기 힘들거나 단백질원으로서도 높은 효율을 지닌 것들이 못 되었다.
가축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는 소, 돼지, 닭 정도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전통시대에 소를 잡는다? 상상하기 곤란한 일이 아닌가. 국법으로 도살금지령까지 내려졌으니... 중앙에서는 한성부, 각 지방에서는 지방관아에서 병으로 죽은 소조차도 확인한 후에 낙인을 하여 매매하게 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벌을 주기도 하였다. 운반 교통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농령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는 가축이 아니라 차라리 가족이었다. 조선 전기 강희맹이 쓴 농서인 <금양잡록>을 보자.
마을에 일백 호의 농가가 았으나 소를 가지고 잇는 사람은 겨우 십여 호이다. 그나마 소를 가지고 있는 집도 한두 호를 제외하고 는 송아지를 겨우 기르는 사람뿐이어서 일백 호의 논을 소 몇마리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돼지도 귀했다. 닭도 백년가객 사위가 올 때 내놓을 정도로 귀한데다가 달걀을 낳아야 했다. 그래서 꿩. 노루 사냥에 나서고, 겨울만 되면 토끼몰이와 멧돼지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여름철이 다가오면 수풀이 우거져서 사냥조차도 불가능해진다. 더욱이 한창 농번기에는 사냥할 겨를도 없다. 이때 마을을 어슬렁거리면서 다니는 개들이야말로 '유일하게 걸어 다니는 음식'이 아니겠는가. 개라고 흔해빠진 것도 아니었다. 가을과 겨울, 봄에 키워서 한여름이 다가오면 올해는 "누구네집 차례다"라고 하면서 순서를 정해 개를 잡았다. 기르기는 개인이 기르되 먹기는 공동체 차원에서 먹었다. 그나마 고기량도 늘상 모자라니 장국으로 끓여서 집단 시식하는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렇듯 유구한 세월을 먹어온 음식을 보고 혐오식품이라니.
개고기 금기와 애완동물
개고기를 먹으면서도 가릴 것은 가려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금기가 있다. <산림경제>를 들추어보면 장황하게 금기해야 할 속신을 늘어 놓았다. 개날에 개를 먹지 말 것, 개의 형태를 잘 가려서 먹을 것 따위의 시시콜콜한 것에서부터 '비록 짐승이나 능히 주인을 사랑하는 알음이 있으니, 집에서 기른 것은 가급적 잡지 말라'고 하는 이해할 만한 권유도 있다. 개고기에 관한 종교적 터부도 늘 존재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굿에 소, 돼지, 닭은 써도 개고기는 금물이다. 마을굿의 제관은 일체 비린 것과 육고기를 피하는 것이 관레인데, 특히 개고기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산신제를 올리려고 산에 가는 사람도 개를 피한다. 산신인 호랑이가 개를 좋아하기 때문에 호환을 막기 위한 방책이라고 한다. 스님 같은 종교인들도 지나친 자극을 피하기 위해 금기한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 서구식 개념의 '애완견 사고'와 식용 터부가 확산되었다. 결론은 늘 '어떻게 그토록 사랑스러운 개를 먹을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그렇다면 세계의 음식문화로 시야를 넓혀서 비교해보도록 하자.
인종이 다양한 만큼 식문화도 다양하기만 하다. 원숭이 골, 송아지 태반, 말고기 내장, 심지어 곤충을 즐겨 먹는 민족도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를 즐겨 먹었다던가. 인간에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의 경계선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런 것은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개고기에 퍼부어진 비난의 핵심도 개는 어디까지나 '먹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는 애완동물'이라는 데 있다.
과연 애완동물은 먹을 수 없을까.
근년에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 있는 몇 가지 발언들을 이 대목에서 인용함이 적절할 것 같다. 그는 혐오동물과 애완동물의 구분이 특정한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에 따라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애와동물처럼 키워지던 동물들도 그 주인의 위장(혹은 그 주인의 동의가 있다면 어떤 다름 사람의 위장)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일년 내내 고기가 모자라는 데다가 낙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형상임을 지적하면서 쓰는 다음의 재미있는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북경의 영국대사관 관저에서 리셉션이 있었다 중국 외무부 장관이 대사의 스패니얼 암캐를 보고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대사는 그 개가 곧 새끼를 낳는데 만약 장관이 그 새끼 중 한두 마리를 선물로 받아주면 영광이겠노라고 말했다. 4개월 뒤 두 마리의 강아지를 담은 바구니가 장관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몇주일이 지나 두 사람이 공무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대사가 물었다. "그 강아지들이 어떻습니까?" 장관은 주저하는 빛도 없이 "맛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몽관게사 전문가 주채혁 교수(강원대)가 울란바토르를 다녀오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엇다. 그곳에서는 투실투실하게 살찐 누렁개 여러 마리가 떼지어 다니더라는 것이다.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군침을 흘릴 만도 한데, 정작 몽골인들은 개고기를 먹는 한국 사람들은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정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유목민이다. 그들은 개를 먹을 이유가 없다. 개를 먹어치우는 것보다는 방어, 호신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풍부한 말고기와 말젖이 지천에 깔려 있는데 뭐하러 개고기를 먹겠는가. 애완동물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애완동물은 과연 개나 고양이 따위에만 국한될까. 그렇지 않다. 보아구렁이나 독거미, 바퀴벌레를 기르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끔찍이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다. 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더 많다.
뉴기니에서는 전통적으로 돼지를 애완동물로 키운다. 그들은 돼지들을 귀여워하고 총애한다고 한다. 최근의 외신보도를 보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애완돈이 유행이라 나이가 먹더라도 커지지 않는 좀 더 작은 돼지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린다고 한다. 예쁜 리본에다 옷까지 차려 입은 애완돈을 보면 정말 귀엽기도 하다. 그러니 개만 애완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생각은 편견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떤 동물이든 애완동물로 만들 수 있으며, 그들 애완동물들은 대개 주인의 솥에서 생애를 마감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세계인류학자들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개고기는 폴리네시아, 필리핀, 중국 남부 사람들이 즐기는데 특히 중국 광동성의 개고기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광동성에서는 향육이라고 하여 개의 부위에 따라 갖가지 요리가 개발되었다. 그들에게는 개가 애완동물 이전에 그저 고단백의 음식일 뿐이다. 음식과 애완의 우선 순위를 따진다면 음식이 앞선다는 뜻이다.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잇다. 세상에서 다리가 두 개 달린 것과 네 개 달린 것 중에서 못 먹는 것이 딱 2개 있다. 전자는 사람이고 후자는 책상이란다. 사람과 책상 빼놓고서는 못 먹을 게 없다는 말이다.
<강철군화>글 쓴 미국의 진보적인 작가 잭 런던은 편견에 가득찬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 <조선사람 엿보기>에서 비아냥거리듯 개고기 풍습을 서술하고 있다.
그들은 부드러움과 관용이부족하다. 특히 동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개를 먹는다.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위장을 즐겁게 하기 위한, 즉 별미로써 먹는다. 봄에 어린 개는 우리에겐 어린 시기의 어린 양과 같은 것이며, 늙은 개는 그들에겐 우리가 매일 먹는 양과 같은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농사를 끝내고 먹는 개고기가 '배고파서 먹는 음식' 이 아닌 '사치품' 이란 말이가. 진보적이라는 그가 이 정도의 '삐딱한 시각'을 가졌으니 다른 서양인들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개고기 풍습도 세계의 음식문화사적 견지에서 보면 남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먹음직한 음식' 이냐, '한 가족'이냐. 양자 사이에는 무슨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점이 동서문화의 상호 이해를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야만의 얼굴과 문명의 얼굴을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한여름이 다가온다. 우리는 여전히 개고기를 먹을 것이고, 북한이나 연변에서도 여전히 '단고기'를 먹을 것이다. 오수의 신포집에도 사람이 들끓어 대목 장사를 할 것이다. 피서철만 되면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차에 깔려 죽거나 체포.처형되는 개들이 즐비하고 개똥으로 범벅된 길거리가 있는 파리가 과연 문명적인가. 제3세계의 굶어죽는 아이들을 살리고도 남을 만한 비용이 개 먹이값으로 들어가고 있는 야누스적 현실, 변 처리를 위하여 먹이 대신에 알약을 먹이고, 함부로 '그 짓'을 못하게 하기 위해 수술대에 뉘여놓고 '고자'를 만들거나, 아예 짖지 못하게 성대 수술을 자행하는 것이 과연 선진적인가. 사람은 '사람답게',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하지 않을까. 언제 개들이 스스로 미용을 원했던가. 어느새 우리나라 개들도 매니큐어칠을 당하고 목욕과 미용 '학대'로 비동물적인 수모를 받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인권이 절대적이듯 개는 개답게 살 수 있는 견권이 필요할 것만 같다. 우리가 오히려 해야 할 일은 개의 전문적 사육과 위생적인 개고기 식품가공이 아닐까. 사료를 주어서 비육소를 키우듯 비육견을 양산하다 보니 단백질의 불균형이 생겨 개 본래의 영양학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음식물 찌꺼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여 생태계보호도 할겸, 평소에 '자연식'을 한 건강한 개 사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개의 도살도 법적 장치를 만들어 개선해야 한다. 음성적으로 하다 보니 불필요한 '야만성'이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이같은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개고기의 유통이 제자리를 찾는다면 개고기값도 현재보다는 훨씬 내릴 것이다. 그러면 어느 음식점에서나 설렁탕이나 해장국 메뉴판 옆에 개장국도 함께 올라가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 개고기의 보신적 효과를 어느정도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보신탕 같은 이름으로 지나친 보신 효과만을 강조하는 과신도 버릴 때가 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음식을 먹을 때마다 보신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한여름에 누구는 삼계탕, 누구는 개장국 식으로 자유롭게 선택하여 먹을 수 있고, 그 자유의지의 선택에 관해서는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않는 '음식문화의 민주주의'가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가. 몬도가네 식으로 개, 뱀, 자라따위만을 찾아다니며, 심지어 외국 나들이까지 해서 코브라를 시식하고 오는 따위의 반열에 개고기를 올려두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고하고 싶다. 아직은 각 민족마다 식생활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점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심사숙고할 사항이다.
개가죽은 장구피로도 으뜸인데, 차마 개가죽을 벗겨 악기를 만들 수 있겠냐고 얘기한다면 민족악기마저 없애라는 말인가. 프랑스사람들도 감격해 마지않는 사물놀이패의 악기 중에서 장구피를 개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안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지나친 간섭은 제국주의와 문화우월주의의 '야만스런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프랑스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산호초 위에서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멍청이가 아니다. 그들의 반인류적 행위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항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여름밤의 '개꿈'
B.B.초청하여 내가 직접 조리한 개고기 만찬을 대접하고 싶다. 음식문화의 다원성과 세계인의 국제적 연대를 위하여!
보설 : 개고기 조리법
이 글에 덧붙여 나는 개고기 조리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봉유설>, <동국세기>, <열양세시기>,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동의보감> 같은 책들을 들춰보면, 구장, 개고기찜이 자주 등장한다. 개고기 애호가들이 지금 드시고 있는 방식과 옛법을 비교하거나, 혹은 직접 해 드실 수있도록 있는 그대로 옮겨본다.
요리법 1. <규합총서>의 개찌기
살찐 개 한 마리를 법대로 죽여 씻지 말되, 다만 창자를 정히 씻어 맹간장에 고추장을 조금 섞어 기름, 초, 깨소금, 후추가루, 미나리, 파를 함께 삶되, 먼저 개대가리와 다리 넷을 넣고 그 다음에 남새를 넣고 뚜껑을 제쳐덮어 물을 부은 후, 수건으로 둘러 김 나지 않게 하여 끓는 소리가 들리거든 잠깐 불을 물렸다가 뚜껑의 물을 퍼내고 찬물을 고쳐 붓고 끄르름한 불로 땐다. 이렇게 세 번 하면 고기가 무르고 뼈가 스스로 빠지니, 단단한 나무 말고 빈 섬 세 잎이면 족하니, 다 고아지거든 내어, 살은 고기 결대로 손으로 찢고 칼 대지 말고, 내장은 썰어 다시 삶은 국에 양념하고 간을 맞추어 국을 끓이되 밀가루를 많이 풀면 걸게 되니라. 개장을 깨소금과 기름 많이 쳐 양념하여 다시 주물러 중탕하여 쓰니라.
요리법 2. <동국세시기>의 개장국
개고기를 삶아 피를 넣고 푹 끓인 것을 이름 붙여 개장이라 한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또 국을 만들어 고추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 시절음식으로 한다. 이렇게 하여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약을 보강하는데 효과가 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또한 이것을 많이 파느니라.
요리법 3. <음식디미방>의 개장국느름
개를 삶아 뼈는 발라버리고 깨끗하게 씻어 다시 솥에 넣은 다음 볶아 찧은 참깨가루와 간장을 넣고 다시 삶는다. 삶아낸 고기를 엇비슷하게 썬다. 여기에 즙을 친다. 즙은 진가루와 기름, 간장을 한 소큼 끓여 파를 두드려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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