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의 세계 - 저 : 해롤드 셔어먼 / 역 : 안동민
제2장 마음의 신비의 탐구
3. 텔레파시로 화해한 연인
수개월 후에 퍼시스라고 하는 처녀-그 여자는 우리 구역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텔레파시를 믿고 있다는 것을 털어 놓고 이야기한 사람이다-가 초감각력에 의한 조력을 부탁해 왔다.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말씀 좀 들어 주세요, 헤롤드씨. 제 애인이 해군에 입대했는데 요즈음 휴가를 얻어 돌아와 있다는 말을 잠깐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가족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쪽 집에는 전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는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전화를 걸어와서 만나고 싶다고만 한다면 사실은 화해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텔레파시에 무엇인가 힘이 있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일요일 밤에 상의하기 위해서 데이트한다는 통신을 그이에게 보내 주세요. 만약 그가 그렇게 한다면 전 텔레파시를 믿겠습니다."
퍼시스는 이런 의뢰를 하기 위해서 토요일 밤에 나를 불러냈다. 나는 당신과 융커는 절교했으므로 이것은 퍽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든 해 보자고 했다. 나는 그날밤에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융커가 그때 틀림없이 잠자리에 들어가 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또 예의 낡은 고등학교 앨범을 꺼내어 융커의 사진을 찾아서 확실히 마음에 보이게 될 때까지 계속 응시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융커, 자네는 퍼시스를 만나고 싶지? 그 여자도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고 있네. 내일이라도 좋으니 전화를 걸어서 내일 밤 7시 경에 데이트 하자고 부탁해 보게!"
호우머에 대한 실험에서 한 그대로 상대편에서 받았다고 하는 느낌이 들 때까지 이 통신을 계속해서 되풀이 했다. 충분히 30분 이상이나 이 통신을 보냈다. 꽤 격렬한 저항을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한숨을 돌릴 만한 기분이 되었을 때 송신을 중단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퍼시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지금 융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고 말했다.
"융커가 오늘 밤 7시 30분 경에 만나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해 왔어요?"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꼭 그 시간이예요." 라고 퍼시스는 그것을 인정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라도 정말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안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한 그대로 나는 정신을 집중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두 청춘남녀가 수면상태에 있으면서 간신히 나의 상념을 받아들인 것 같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하고 사소한 실험에 지나지 않았으나 초심자인 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뜻이 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의식의 신비적 능력을 더욱 더 연구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라디오가 이제 막 보급되어 그로 말미암아 전파와 약간 비슷한 사고의 파동이 전달되는 '정신 에테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걔개의 인간이라고 하는 살아 있는 물체가 잠재의식의 수준에서 일체가 되어 있는 의식의 광대한 그물 모양의 조직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있는 송신기이자 수신기란 말인가? 텔레파시가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무수한 상념이 언제라도 의식 사이에서 교환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것을 자각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닌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발달한 능력이 사람들에게는 없는 듯하다. 그런데 내 앞에 가슴을 뛰게 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의식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의식의 불가사의한 힘을 발달시킴으로써 끌어 내어지는 커다란 이익과 함께 커다란 위험까지도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발달시킨 것은 무엇이든 다 그것을 취급하는 방법에 따라 선악 어느쪽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이든 다 파괴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만들어 내는 일을 중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운동경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시 심령현상이라고 불리고 있던 연구를 깊이 파헤치고 있었으므로 극단적으로 달렸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균형을 잃고자 생각했었더라면 혹 잃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정신과 애정의 안정을 유지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막는 수단으로서 건전한 정신을 건전한 신체에 깃들게 하도록 하는 것은 절대필요한 일이라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명심하고 있다. 육체의 오감의 범위를 넘어선 의식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의식의 작용에 대한 자신의 지식은 억울한 일이지만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깨달았다. 의식작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모든 방면을 의식적으로 좀더 잘 제어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되면 서서히 분명히 알 수 없는 초감각적 능력과 이성적으로 대처하여 아마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 능력을 유도하기도 하고 감독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전생애를 건 이 연구에 손을 대었던 것이다. 정신계에 도전해야 될 미지의 문제가 지금도 내 앞에 가로놓여 있다. 그 진보는 지지부진하고 희망을 잃은 일도 여러번 있었으며 때로는 환멸까지도 느꼈으나 사기를 붇돋아 주고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여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나는 간단히 몇 마디 말로 마음을 작용시키는 방법을 말할 수 있다. 여러분도 자신의 인생과정에서 그것을 실제로 시험해 보고 그 방법을 스스로 실증해 보기 바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신활동의 전범위에 걸쳐 있다. 이미 이러한 사실의 몇 가지인가에는 정통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혹은 정통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초감각상의 탐구라고 하는 모험에 관계하기에 앞서 자세히 조사해 두는 편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편의상 그리고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서 의식의 깊이에 따라 마음을 명확한 일곱 가지 수준으로 구분해 두고 싶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4. 잠재의식 수준
이것은 현재의식이 작용하는 부분이다. 마음의 이 부분은 육체적 오감의 작용으로 완전히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자기가 사는 외계와 접하고 있는 것이다. 추리하고, 추측하고, 의심하고, 예측을 하며 동화하는 마음이다. 당신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심상의 끊임없는 흐름에 이러한 일로 자극을 받은 감정이 결부되어 잠재의식에 흘러 들어간다.
잠재의식에 의한 육체 제어수준
이것은 심장, 폐, 위, 신장, 그 밖의 신체의 전 기관의 전반적인 기능을 제어하고 감독하는 지능이 있는 부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제어작용은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이 작용한다. 그러나 걱정, 기우, 증오심, 그 밖의 해를 끼치는 감정을 품게 되면 잠재의식층에 의한 이 제어활동에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결과가 된다.
기억 수준
잠재의식의 이 부분은 오감을 통해서 받은 외계에서 체험한 모든 인상을 모두 저장해 두는 창고이다. 이 인상들은 마음에 그린 그림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그림에 관계하고 있는 것은 그때의 감정이다. 이 기억은 필요에 따라서 현재의식의 요구에 의해 대개는 이용할 수가 있다.
창조적 수준
이것은 강렬하게 느긴 욕망이나 불안에 대하여 즉시 반응하고 건축가가 청사진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 인상들을 사용하여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끌어 당기는 힘을 갖고 있는 전자기적 부분이라고 해도 좋다. 만약 그 생각이 올바른 것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과 환경, 자력, 기회, 그리고 만날 필요가 있는 사람들조차도 끌어당기는 데에 힘을 빌려 주려고 이 창조력은 활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치유력 수준
이것은 내가 생명의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수준이다. 병에 걸리든가 상처를 입으면 이 예비적인 개조용 에너지가 작용하기 시작하고, 신체의 모든 세포에 침투하여 건강을 되찾는 임무를 완수한다. 질병이 치유된 건강상태를 기원하고,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마음 속에 그릴 때 이 에너지를 구해 보면 좋다.
직관적 수준
이 마음의 수준에는 초감각적 지각의 능력이 들어 있다. 이 능력은 육체적 오감과 같이 시간이라든가 공간 또는 육체적 한계에 의해서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보통은 직관으로서 인용되는 형태로 현재의식 수준과 통하여 그 기능을 다한다. 이 인상들을 의식이란 범위에서 합쳐져 일상생활 안에서 그 지도나 보호를 받는 일이 많다.
광대무변한 의식수준
이것은 의식의 최고 수준이며, 내부의 아주 깊숙한 곳에 있다. 그것은 조물주와 결부된다. 그것을 통하여 육체를 초월한 존재의 가능성을 기회가 있을 대마다 느낄 수가 있다. 만약 육체를 느슨하게 하고 현재의식을 휴식시켜 주의력을 실재의 중심방향에서 내부로 향하게 하면, 이 깊은 곳의 정적 속에서 다만 신의 존재, 또는 신의 의식으로 밖에는 묘사할 수 없는 것과 접촉할 수가 있다. 이것은 모든 진리의 광명과 영감이 생기는 수준이며, 이 수준에다 진짜 정신적 지도자나 신비가들이 마음을 맞추었던 것이다.
자아, 본체, 영혼-즉 '나는 영원하다'라고 하는 저 실재물-의 위치 관계를 마음 속에 그려 내게 하기 위해서 실체가 하나의 고리의 중심에 있다고 상상해 주기 바란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의식의 일곱 가지 수준이다. 제일 바깥 쪽에서부터 현재의식 수준으로 시작하여 각 수준은 그 후 일정한 순서에 따라 중심 또는 참다운 자기의 방향을 향하여 내부에로 뻗어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진짜 배열은 아니지만 그 작용을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와 같은 부분이 실제로 있고, 현재 그 기능을 완수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실재의 중심에 있는 참다운 자아는 활동을 일으키게 함과 동시에 관찰까지도 한다. 그것은 필요와 요망에 따라서 이 일곱 가지 수준 전부에 언제든지 관여할 수 있다. 이 혹성 위에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장비와 기구를 부여 받은 육체에 인간의 영혼이 깃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자유 의지와 자유롭게 선택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부여 받은 모든 힘을 최고로 활용한다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풍부한 잠재능력의 개발이라든가 여러 가지 정신능력, 감각능력을 계통적으로 연구하여 정립시킨 사람은 지금까지도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스스로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큼 넓고 위대한 예지를 간직하고 있는 작은 우주이다. 그리고 각자가 의식적으로 자기의 실체를 알게 된 데까지 진화하고 있다. 우리들은 자기의 내부와 외부에,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에 하나도 남김 없이 침투해 있는 듯한 이 초월적인 힘과 무한한 관계를 갖고 있다. 종교가는 그 힘을 신이라고 하며, 과학자는 에너지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은 어느 나라의 언어를 찾아보아도 없다.
나는 청년시절에는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늘 더나지 않아서 그 무렵에는 아주 무서웠고 또 고독한 느낌이 들었었다.-이 광대함과 심원함에는 전혀 어찌할 수가 없다고 안타깝게 느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이제까지의 여러 해에 걸쳐 꽤 원숙해진 체험에 의해서 얼마간의 지혜가 같추어지자 그칠 줄 모르게 솟아 나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샘이 나타났다.-지금 나에게는 영혼이 갈망하는 진리를 찾아 헤매고,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영원의 존재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마음에 나타난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이 책에 씌어 있는 것을 통하여 이러한 내적 확신이 나타나기를 나로서도 바라는 바이다. 그것은 고금동서를 통해서, 인류가 열심히 찾고 구해 왔던 지식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아나 육체적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와 관계가 있는 초감각적 능력의 발달을 통해서만 계시되고, 그에 의해서 모든 인간이 의식적으로 조물주와 조화할 수가 있는 지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인생과 맞서 싸우고, 성공시키는 힘을 부여해 주는 자아에 대한 지혜이다.
나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완전히 배울 때까지는 나를 개발하려고 해도 거의 진보가 없었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적어 내려가 보려고 한다. 인간은 원래 마음 속에 그린 그림에 의해서 사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기억 속에서 영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과 함께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대에 체험한 감정이고 혹은 감정에 호소한 반응이다. 일어난 일에 불안감과 증오심이 수반되어 있으며, 이 인상들은 내부의 의식과 함께 남는다. 어떤 일이 지나가 버렸다고 해서 그것이 이제 사람에게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애에 있어서의 경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흐름에 다른 형태로 살아 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것들을 자유롭게 생각해 낸다거나 혹은 무엇인가 불행한 사건을 회상함과 동시에 정신적 또는 감정적으로 불안해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비극적인, 혹은 아쉽게 생각하는 사건의 재발견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좋든 나쁘든 과거에 있어서의 생각의 종국적인 결과를 뿌리칠 수는 없다. 이것은 이미 기술한 대로 마음의 영역에서는 뜻이 같은 자들끼리 항상 모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이 정신적 혹은 감정적으로 과거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의해서 현실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 근심 걱정이나 증오와 똑같이 욕망이나 열망의 성질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이 상상하는 일은 무엇이든 그 생활 속에 재현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기억해 두기 바라는 바이다. 이 창조력에는 추리하는 능력이 없다. 잠재의식이 명하는 바에 따르고, 마치 외계에서 재현하기 위한 계획을 미리 짜 놓은 것처럼, 모든 심상은 그것에 관련이 있는 감정에 순응한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의 경험에 의해 부여받은 우리들의 심상 그 자체를 바꾸거나 제거하는 이외에 그에 의해서 방향을 새로이 정립한 생활이나 행동은 할 수 없다.
그림처럼 마음에 상상을 그리는 일은 최초의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이 태어났을 때부터 일어나고 있는 정신작용이다. 몇만 년 동안이나 인간이 발달시킨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은 아직 자기의 감정이나, 지각하거나 마음속에 품는다거나 하는 마음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타인의 참다운 감정과 동기를 말을 통해 올바르게 느낄 수만 있다면 의미론과 같은 번접스러운 문제 다위는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들은 인간의 언어의 다양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5. 제2 인격에 의한 방해
사람이 초감각적 능력을 알기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거기에 헷갈리기 쉬운 것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타인의 마음에서 전해져 오는 심상과 격렬한 감정이 자기의식 속에 개입해 오거나 매달리기도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대가 많고, 그에 의해서 받은 인상을 동시 발생이라든가 우연한 일이었다고 해석을 내리는 일도 많다. 초감각적 체험이 아주 선명하고 명백한 경우에는 설사 설명은 하지 못하더라도 보통이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과는 떨어져 잇어 겹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 각자가 '전자기의 방어체'라고 불러야 될 것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는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각양 각색의 잡다한 생각이나 감정의 침입으로 끊임없이 거칠어졌을 것이 틀림없다. 질병, 격렬한 정신이나 감정의 혼란, 최면술의 암시와 억제, 알코올 또는 마취제의 사용, 정신이상 등으로 이 방어력의 장을 파괴할 수가 있다. 이러한 상태가 하나 또는 그 이상 있으면 실체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경우에 따라서는 그 독재적 지배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지기 쉽게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매적 능력이 있다-그것은 그 정신과 신체가 딴 사람 같은 상태가 되어 그 상태를 맷확하게 말하다는다, 상대편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의 지나가 버린 체험을 말하는 능력이나 혹은 조만간에 그 사람을 향해 오는 사건을 예언할 수도 있는 능력이다. 그와 같은 특이한 능력자가 황홀상태에서 자기의 본성과 의식을 포기하고 다른 실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자기를 통하여 이야기 하게 하고, 혹은 자기의 정신과 신체를 이동시켜서 자동기술이나 염력의 실험, 또는 갖가지 물질화 현상을 실시할 때에는 다른 영이 빙의되거나 씌워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또 이와 똑같이 통상적인 경우에는 억압하고 있는 그들 자신의 성질의 일면인 '제2의 인격'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단언 할 수 없다. '제2인격'과 소위 '육체를 떠난 영'의 상이점을 발견하고 구별한다는 것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출되어 있는 잠재의식에는 암시와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의식의 모든 국면을 합리적이고 또한 과학적으로 연구하려고 기도했을 때에 부딪치는 심원한 신비성이 있다. 초감각으로부터 상상력을 데어 낸다는 일은 퍽 곤란한 일이다.
상상력은 부족한 내용을 즉석에서 수놓거나 제멋대로 보충하려고 노력한다. 흔히 있는 일인데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은 어떤 인상이든 그것을 강조하려고 하면 그 경우에 대한 이미 옛날에 기억속에 들어간 내용이 기억의 밑바닥으로부터 불러 일으켜진다. 이렇게 하여 이전에 하나의 기억으로서 비축하고 있었던 마음의 그림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텔레파시로 잡은 영상과 합쳐져 버린다. 그런 채색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흘러 들어오는 인상을 자기 마음대로 색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의 침입을 미리 살펴 알아 내고 제외할 수 있는 발달된 능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끊임없는 활동은 어떤 텔레파시 능력자라도 100%의 정확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곤란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특이한 능력자가 언제나 정확한 예언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엇인가 술책을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으로 관찰한 상대의 실험에서 나의 경우 70% 내지 90%는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다. 잘못이 파고 들어 올 여지는 언제나 있다고 해도 좋다. 또 어떠한 특수 능력자라도 우연성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경험을 쌓은 텔레파시 능력자는 시험중에 매우 뜻 깊은 정확한 사실을 되풀이 해서 맞추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으며, 때로는 초감각적 능력을 입증하는 힘을 손상시키는 외부로부터의 방해 요인이 나오는 일이 있다.
후에 차차 이들 상념 전달의 문제를 좀더 자세히 말해 보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는 당면한 기본적인 것만 재음미해 두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제까지 말한 지식을 잠재의식 속에 넣어 풍부한 정신 능력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고법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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